그리스도의 섬김
신동식 목사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주님의 오심은 바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오셨다고 합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입니다. 섬김이 없는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섬김은 성육신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5-7]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 같이 된 것이 바로 섬김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섬김은 공생애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머리 둘 곳이 없는 연약한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십자가를 지심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은 섬김의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 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3-5]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은 처절한 낮아지심과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은 고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낮아짐과 나누어 주심에는 엄청난 고난과 헌신을 감당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으심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야하는 주님의 마음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왕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얼마 있지 않아 죽이라고 외치는 이들로 변할 것을 알면서 예루살렘을 들어가는 주님의 모습은 섬김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섬김이 오늘 우리가 있게 된 근원입니다. 그리고 이 섬김을 가슴으로 받은 이들의 섬김으로 주님의 섬김이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섬김은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드러냈으며 몸으로 증거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이러한 섬김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섬김을 사셨던 그리스도를 가장 높은 자로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섬김은 어렵고 힘든 길을 가는 것이지만 반드시 생명을 낳는 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오늘 우리들에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철저한 낮아짐과 나누어 줌이라고 말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며 이 땅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섬김의 길이 있기에 면류관의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을 기대하십니다. 섬김이 없이는 영광이 없습니다. 섬김은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섬김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반드시 영광의 목적지로 갑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의 삶이 바로 섬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부활과 승천에 있다면 이 영광에 앞서서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으며 그 앞에는 낮아짐의 섬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섬김을 잊지 말고 묵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섬김 그 복된 길을 갈 수 있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