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프로그램 잘 준비된
칼인가?그릇인가?
이단 프로그램 도입적용은 미혹수단 양과 염소 왕래 활성화
이단 프로그램 도입적용은 미혹수단 양과 염소 왕래 활성화
이 글은 교회성장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단과 사이비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무차별적으로 여과나 검증이 없이 도입 혼합하여 사용하는 행각이 만연하고 있는 현실에 진리수호를 위하여 유익한 내용이다.
사실 이단과 사이비의 방법을 혼합하여 적용하는 것이 교회성장과 전도에 좋은 것이라는 공감으로 구미가 당길 것이나, 이를 따지고 보면 이단과 사이비들이 사용하는 악습을 기독교계에 널리 오염시키는 행위이다.
이를 서슴없이 종합세트로 적용하는 이가 알파코리아 알파코스 이사장 류 목사이다. 그는 각 교단에서 이단과 사이비로 규정을 받은 T/D 뜨레스 디아스 프로그램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잘 준비된 하나의 수단이요 그릇으로, 이를 잘 활용하면 교회의 생명력과 활기를 더해 줄 수가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생활」이라는글에서아래와같이확인되는것이다. <2006/05/11/17:26 /http://blog.naver.com/leepa7/100024240671>.
《“뜨레스 디아스는 영성훈련 차원에서 퇴수회 중심의 잘 준비된 프로그램이다. 뜨레스 디아스는 하나의 수단이요 그릇이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만약 바른 목적, 바른 신학을 갖지 않은 어떤 개인이나 교회가 이 그릇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담는다면 분명 개인의 영성이나 교회를 해칠 우려가 있다. 경건을 더러운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들이 오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목적과 바른 신학을 가진 교회와 목회자들이 이 그릇을 활용한다면 교회에 생명력과 활기를 더 해 줄 수 있다. 한국교회가 대형화 되어가고 또 일부에서는 물질주의, 세속주의의 흔적을 보이고 개 교회주의와 분열주의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때에 강력한 영적 능력을 지닌 그룹 제자훈련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한 공헌을 감당해 주리라 믿는다.
뜨레스 디아스 당국자들도 이런 차원에서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한 주님의 도구라는 인식과 사명 하에 기도하면서 진실하게 영적훈련을 감당해야 하리라고 본다. 앞으로 이 뜨레스 디아스운동은 교회 밖 평신도 운동으로, 그리고 교회 내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이름 그대로 불꽃처럼 번져 갈 것이다.”》 .
이는 곧 이단과 사이비들의 프로그램이 정상이라는 전재에서 이것을 사용하는 자에 성향에 따라 득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단이 사용하면 교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고, 바른 목적의 신학을 가진 자가 사용하면 교회에 생명력을 더한다는 것이라니 그럴싸하나, 이를 따지고 보면 어불성설이다.
류 목사와 같이 이단과 사이비의 프로그램이 정상이라는 수단이나 그릇이라는 전재의 발상부터 판단의 오류임을 알아야 한다. 이단과 사이비로부터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정상적인 그릇이라는 인식부터 잘 못 된 것이다.
물론 올바른 수단으로서 그릇이 사용자의 적용에 따라 득실은 논 할 수가 있겠으나, 어찌 이단자로부터 나온 프로그램을 정상적인 그릇이나 수단이라 할 수 있는가? 이단과 사이비들이 만든 프로그램은 거짓 사상에 실천을 위하여 사단의 전략으로 만들어진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악한 자의 간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악의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교훈에 의하면 이를 선택하거나 사용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얼마든지 있는데, 어찌 악한 자들의 기호에 따라 만든 가르침을 위한 실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가?
이것은 이단과 사이비성에 실효를 위한 일관성 있게 맞추어진 것으로 이것을 따른다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일 뿐 아니라,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도입적용의 행각이다.
올바른 성경 인식을 하는 사람은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성경에 반하는 악한자의 궤계로 만들어진 것을 도입하지 않는다. 거짓 자들의 프로그램 도입은 비 진리를 위한 방법과의 타협이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성장의 원리를 희생시키고, 사단의 방법으로 길 드려지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므로 이단과 사이비들의 지경을 넓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단과 사이비들의 프로그램을 공적으로 타협하는 사람은 성도들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를 시켜야 한다.
만약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이단과 사이비의 집단에 프로그램을 인정하여 자연스럽게 왕래하므로 혼합되는 일이 촉진되는 것이다. 이 행위는 가짜를 진짜에 더 가깝게 받아 드리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타협하는 중재와 수용의 시대로 명료한 단순함보다 혼란을 주는 복잡함이 있다. 류 목사가 이단의 방법을 좋은 그릇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국교회 각 교단이 경계를 규정한 것에 반하는 행위로서, 이단과 사이비들과 왕래가 되도록 끊어진 다리를 재건, 진리의 분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파멸로 인도하는 결과를 선동 촉진하는 타협자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존 E. 애쉬브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복음주의의 불문의 기본 전제들 중의 하나는 거대함이 복의 표시이며 타협이 성장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 원리를 희생하는 전략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아니고 오직 사탄의 전략이다.
타협을 성장 전략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스펄젼은 성경적 분리에 대한 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류에 연루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성공적으로 대항할 힘을 잃게 할 것이다... 우리의 엄숙한 확신은, 진정한 영적 교제가 있을 수 없는 곳에는 교제가 있는 것 같은 모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알려진 치명적 오류와의 교제는 죄에 동참하는 것이다... 오류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내가 보았거나 내가 보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심사숙고할 것도 없이 그 단체와 즉시 관계를 끊었다.
그 때 이후 나의 조언은 '그들로 부터 나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알려진 악으로부터의 명백한 분리와 비교할 만한 항거는 없다고 느꼈다... 나는 나의 증거를 무의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신앙으로부터 탈선하는 자들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그들과 교제하는 자들로부터 내 자신을 분명하게 단절시켰다...
자신들을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분리시키는 자들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어떤 댓가를 치룬다 할지라도, 우리의 자유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다.
마크 시드웰은 성경적 분리를 이해하고 적용하기라는 그의 새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바르게 말했다.
“공적인 인물이 범하는 공적인 죄는, 속임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 공적으로 책망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배교(背敎)와의 교제를 옹호하고, 거짓 교사들과 불신자들과 협력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공적으로 도전한 죄가 있다.
그가 잘못 인도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또는 만일 성경적 경고를 적절하게 받지 못한다면 그에 의해 잘못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충성된 목사는, 비록 그 사람이 복음을 전파하는 체하고 또 혹 어느 정도 그러할지 몰라도, 그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 기껏해야, 이것은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처럼 행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입장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불행스럽다. 우리가 오직 입장에만 집중하고 성경적 불순종이나 타협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비성경적 입장의 주된 선동자요 촉진자요 옹호자일 때, 우리는 그가 촉진하고 있는 그 죄를 비난하면서 그 사람을 폭로해야만 한다.”
2007/02/16 / www.chptp.org / www.craah.org.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회 상임회장 원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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