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라
직분 매관매직과 부정 선거 만연…민주주의 의사결정 필요
“한국인에게 가족은 종교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역할은 사회 전반을 통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이 가족의 역할을 문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이것에서 파생된 유교적 가족주의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 나타나는 병폐는 교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 가족주의에서 파생된 권위주의와 신분주의, 배타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등은 결코 우리가 계승할 문화가 아닌 지양해야 할 과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족주의를 개척할 수 있는 인식과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교회에 나타난 유교적 가족주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직분에 대한 서열 문화
가족주의 문화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권위주의 문화다. 권위라는 것은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부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에 따른 보상책인 양 생각하는 풍토가 팽배해 있다. 천리에 바탕을 둔 가족 중심주의와 오륜적 질서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왕정의 권위주의를 만들었다. 특히 한국교회 내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배치되는 권위주의가 만연되어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한국교회 내 직분은 목사·장로·권사·안수집사·집사·성도 등으로 수직적인 신분주의를 이루고 있다. 물론 강단에서는 이것이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엄연히 우리 앞에는 이 서열적인 신분이 존재한다. 모든 정치구조 속에서도 하부(?) 직분이 상부(?) 직분의 의사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를 다는 행위를 엄격히 제지한다. 성경에서는 직분이 기능에 따른 분류임에도 사회조직의 직위처럼 형성되는 것은 조직의 건전한 의사소통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직분에서도 임직순 또는 연령순에 따른 서열화는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당회를 봐도 최근까지 장로로 임직이 되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말로 후배 장로들을 교육시키는 관행이 있고, 후배 장로들을 엄격히 규제하곤 한다. 옛날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적용되었던 비인격적인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결과다. 이런 관행은 당회뿐만 아니라 안수집사회, 권사회 등에서도 반복되는 문화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 서열에 있어 자유로워야 할 목사 사회에서도 더 엄격한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은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와 부목사, 전도사와의 지독한 서열화, 같은 부목사들조차도 학교 졸업순, 목사 안수순에 따른 서열화는 결국 군대 문화보다 더한 계급적이고 비인격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일례로 담임목사에게 찍히면 그 교회에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 청빙되는 것도 어려워지고 목사 세계에서 왕따 당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로서 교회개혁을 외치거나 부패를 지적할 수 있는 내부 고발자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서열문화의 대표적인 병폐가 매관매직 또는 부정한 선거 문화다. 누구다 직분을 얻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다 보니 담임목사나 장로 등이 그 직분을 주는 대가로 헌금을 요구하거나 교회의 일정한 기여를 요구하는 것이 거의 관행화되었다. 또한 이 직분을 획득하기 위한 많은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각 교단의 총회장 선거 등에 많은 금품이 오고 가며 한 교단에서는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제비뽑기 방식에 의한 총회장 선출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감투에 대한 욕심과 서열주의가 한국교회에 그대로 침투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0~30년 전만 해도 직분 자체가 고난이요, 헌신이었다. 하지만 교회가 대형화되면서부터 변질되었고, 실제로 이런 문화가 소형 교회에까지 스며들었다.
폐쇄주의적 회의 문화
교회의 각종회의는 지나칠 정도의 권위주의 문화가 팽배해 있다. 특히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당회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무력할 정도로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담임목사나 힘 있는 장로의 의견에 거수기 역할을 하거나 반대 의견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당회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은혜로 합시다”라는 은혜 지상주의를 통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담임목사의 권한은 각종 회의의 의장의 역할에 그쳐야 할 것인데, 절대적인 의사결정의 주관자가 되어 대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런 것은 담임목사가 유교적 가족주의에의 가부장적인 역할과 흡사하여 아버지의 지시는 절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라는 사고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가부장적인 문화는 제왕적 권위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교회에 있어서 담임목사 혹은 당회는 이 제왕적 권위주의라 불릴 만큼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된다.
제직회에 참석해보면 가끔 당회의 결정이니 따라달라고 하거나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이라며 토의 자체를 못하게 하는 등 일방통행식의 의사전달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편하고 자유로운 상황일지 몰라도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고, 민주주의 교육에 익숙해진 젊은 교인들에게는 납득되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그동안 권위적이었던 공직사회나 기업 등이 이러한 상향식 문화를 지양하는 현실에서 사회를 이끌어야 할 교회가 비민주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자체는 선교에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성장에 마이너스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당회나 담임목사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아니 제자리에 놓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더욱 과감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형식화된 회의보다는 실질적인 토론이 가능하도록 각종 회의를 주관하고, 이것을 통해 공동의 선을 이루는 모습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폐쇄주의적인 회의를 배제하기 위하여 당회나 제직회 등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청제도나 회의 결과를 인터넷이나 주보 등에 공개하는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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