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개성이 넘치는 사회가 되어가는것이 역사의 발전과 과정속에서 어쩔수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것을 부인할수 없을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통제할수 없어지고 자녀들은 학교와 사회를 통해서 새롭게 배우는것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의해 그들의 사고또한 일정하게 균형잡힌 사고를 할수없고 복잡한 사고를 하게되고 그런 복잡한 사고들이 아이들을 점점 지치고 힘들게 하고 있는것이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것이다.
아이들은 과거와같이 부모의존적이지 않고 오히려 개성넘침으로 부모님들을 벗어나고자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재정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것을 지금 청소년들을 부모로 둔 분들은 알것이다.
우리가 자라던 시대의 내가 어릴적 시대와 지금 아이들의 시대가 너무나도 다르다는것에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동이 오고 부모님들마져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난해할때가 너무나 많은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할수 있는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것을 잊으면 안될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변하지 않는것은 바로 부모님들의 사랑이다. 아이들이 가장 느끼고 싶어하고 가장 갖고 싶어하고 가장 소원하는것이 바로 부모님과 소통하는것임을 부모님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의 소통의 방식은 부모세대가 이해할수 없는 방식이 되었으니 아마 공부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거라고 난 본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의 소통방식으로 배우고 그들의 세계에 동화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이들의 소통방식을 배운다고 해서 해결할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영적인 부분을 교회에서 해결해 줘야 하는데 교회는 그것을 하고 있지 못하는모습을 보이니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다.
특히 자유주의적 신앙이 대한민국 교회들을 먹여 삼키고 있으니 부흥이라는 명목하에 교회들마다 기복신앙적 신앙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를 강조하다보니 아이들이 제대로된 가치관을 정립하게 전에 성공이 우선인 인생에서 낙오되는것이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잘못된 가치관을 세울수 있음에 우리는 경계해야한다.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성공하는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에서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을 다스리고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것은 세상속에 군림하고 성공하고 높은 위치를 차지하라는것이 아님을 몇명이나 알지? 어른들부터 기독교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음으로 아이들도 지금 헷갈리고 있고 성공이라는 목표하나를 가지고 자기의 모든것을 쏟아붇고 있으니 그 아이들이 성공을 했을때의 그 허탈감을 누가 채워줄것인가 우리는 고민해야 할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성공은 세상속에 녹아들어가는 빛과 소금이 되는것이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 이름이 들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주님께서 영광받게 하는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고 우리의 삶이 바로 주님의 삶이 되어 주님이 영광받으시는 삶이 되도록 하는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닌가!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우리에게 이름을 알리라 성공하라 성공하고 나서 예수님께 감사를 돌리면 예수님이 영광받지 않겠느냐라고 가르친다. 많은 연예인들이 성공하고 나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할때 과연 세상이 그 연예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가?
오히려 하나님께 누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습이 추하게 보일때가 있지 않던가? 오직 낮은 자리에서 빛과소금의 역활을 감당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는 삶을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그들의 삶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성공이란 내가 잘되는것이 아니라 내안에 예수님이 잘되는 것이니 내가 비록 인생에 실패한다고 할지라도(남이 보는 실패들,낙방,파산,......등등)그런것들에 의해 삶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는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일때 하나님은 그 자체로 영광을 받으실것이다.
사도시대의 제자들은 요한만 빼고 순교자들이 되었다. 그들이 로마의 압제속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지만 누구도 그들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당시는 그들에게 조롱하고 그들을 실패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하는 은헤를 누리고 있으니 어찌 그들을 실패자라고 말할수 있는가?
세상과 짝지어 사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정복하는 삶을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때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것이 진정 성공의 삶이 아닌가? 세상이 하라는대로 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이 하라는것을 거부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것이다.
작금 교회의 주일학교의 아이들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들이 교회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의 것을 더 배우고 세상의 것을 더 알아가려고 하는것은 현재 교회들이 당면한 문제점들이고 이 문제점들은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교회들은 미래에 아이없는 교회 나이든 분들만 존재하는 교회로 전락할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의 교회들과 미국의 교회들이 지금 타락했고 텅텅 비어가고 있으며 어쩌다 교인들이 있는걸 보면 대부분이 나이드신 어른들 뿐이라는 것이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서유럽과 미국의 현실이다.
왜? 유럽과 미국의 아이들이 교회를 버렸을까? 그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교회또한 그 전철을 밟아갈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복음의 순수성을 가르치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아이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확립하는데 교회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것을 증명하고 있는것이다.
복음의 순수성이란 예수님의 가치관을 정립해주는것으로 아이들에게 십계명의 중요성과 예수님을 믿는자들의 세계관이 어떠한지를 아이들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자기 좋을대로 행동할수 있다는것을 우려해야 한다는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귈수 있고 사회에서 성공할수 있고 부자로 살수 있으며 좋은 대학도 갈수 있고 미래에 큰 인물이 될수 있다. 성공할수 있다고 말하는것으로 아이들을 유혹할수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목숨까지 바칠수 있는 순교자의 정신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어릴수록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는것이 어떠한지 예수님을 믿는 삶이 미래에 나에게 어떠한 삶을 살게할것을 요구할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청교도의 신앙(요즘 대한민국에 청교도 어쩌구하면 이단으로 낙인찍힐수도 있다.)의 순수성을 찾아야 한다.
이단들은 이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함으로서 인간에게 자유라는 명목하에 하나님을 엉뚱한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 지옥이 없다느니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라느니 이세상을 살때 우리가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위해서 예수님을 믿는거라느니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거라느니 이런식으로 가르치는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을수 있다.
예수님이 아이들의 삶의 주인이 되는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예수님을 삶의 도구로 생각하게 만든다는것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의 삶을 아이들에게 강요함으로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수의 포로가 되게 만든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틀린것인가? 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은 예수님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되고 인간 자유의 삶을 누릴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은 어차피 영으로 죽은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죽은 영이 산영이 되었으니 우리의 영혼은 죽음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것임으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 되어야 하는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옳은 세계관이다.
예수님의 삶이 나쁜 삶인가?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삶 예수님이 원하시는대로 따라가는 삶이 얼마나 인간을 풍요롭게하고 자유를 누리게하며(예수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하는지 깨닫지 않는 자는 모를것이다.
성적인 문란함이 지금 아이들을 강타하고 있다. 너도나도 남친여친해가며 12살 ~ 16살 아이들이 남자친구가 없으면 왕따당할만큼 지금 아이들의 세계는 처참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 교회가 청소년들에게 제대로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가르치지 않고 또 어른들이 그런 삶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음으로 인해서 아이들은 지금 방황하고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난 보고 싶다.
자유란 이런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쾌락을 즐길 자유가 있다고 말할수 있으면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쾌락을 자제할 자유도 있다는것을 가르쳐야 한다. 십계명에서 우리가 해서는 안될것들을 하나님이 가르치신다. 해서는 안될것들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것이 아니다.
다른신을 섬기지말라고 했다고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길 이유가 있는가? 다른신을 섬기지 않을 자유가 있다. 살인하지말라고 했다고 우리가 살인할 자유를 억압한다고 말할수 없다. 우리에겐 살인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주안에 생명의 법이 새로운 율법을 만들었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순수성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주안에 자유라는것이 어떤것인지 우리 아이들은 세상이 주는 쾌락과 자유와 혼동하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고 우리의 범죄함을 인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으니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얼마나 엄격하신 분인지 아이들은 지금 잘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냐오냐 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내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칠까 두렵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경우 아이들이 눈이 쏙 나올만큼 혼내야 한다. 아이들에게 혼나야 할 이유를 정확히 말해주고 왜 혼이 나야 하는지 왜 그것을 해서는 안되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를 가르치지 않을경우 그 아이들이 자라 분별하지 못하고 자유와 방종을 헷갈리게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아이들을 버릴수 있다. 그들을 방종케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르치지 않음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죄의 심각성과 무서움을 폄훼해버리는 삶을 살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전에 진노의 하나님인것을 알아야한다. 그는 죄를 용서하는 분이시지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용서를 베풀지 않는 엄격한 아버지 이심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단들은 이를 경홀히 여긴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본성을 경홀히 여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고 구원하시는 능력과 부활을 폄훼한다.
그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함으로 인해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게 하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것에 대한 엄격함을 가르치지 않음으로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서 구원의 기쁨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하고 왜 부활이 필요한지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복음을 축제화 시키고 복음을 놀이화 시킴으로 주님께서 죄로 인해 고통당하시는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것을 지금 나는 목격하고 있다. 이래가지고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쇄락의 길을 걷지 않으면 다행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주의 신학계열의 교회들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강조한다. 하지만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수 있는 교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음으로 교회마다 사랑없다고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버리는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은 모두 악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수 없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수 있지만 모두 그렇게 다 할수 없다는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기 이전에 하나님의 죄에대한 무서운 진노와 형벌을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를 무시하고 안믿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안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안믿는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쉽게말해 하나님 "니까지께" 나를 지옥에 보내? 웃기고 있네라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가슴속에서는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고 있는것이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한 교회들로 인해서 타락되어가는 교회의 일부를 바라보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니 이 세상을 다 구원할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수 있느냔 말인가? 라고 하나님을 향해 따진다. 하지만 성경에 사람이 죽으면 심판이 있는데 믿는 사람은 생명의 심판을 믿지 않는자는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생명의 심판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겼냐를 따져 상급을 주는것이라고 하고 멸망의 심판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얼마나 그가 하나님을 잘 못섬겼느냐를 따져 벌을 주는것이라고 하는데....믿지 않는자들은 지옥이 있어봤자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보다 더 지옥같은 세상이 있겠느냐. 지금도 지옥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지옥이 현재와 같다면 지옥에가도 좋으니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반항하는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구별하여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커서 그 아이의 오류는 심각하게 드러날수 있게될수 있다. 반기련이나 안티기독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들이고 어릴적부터 교회를 섬겼던 자들이었다고 하니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시급한지 깨달아야 할것이다.
알파코스나 여러 은사주의 프로그램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명확히 가르치지 않는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이래가지고는 초보신앙인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수 없다.
성공이 우선이 되고 행복이 우선이 되고 이 땅에서의 삶에 평안이 우선이 되는 가르침들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나그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이땅은 본향으로 가기위한 하나의 거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결코 집을 장만하지 않으며 저축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전진할 뿐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가르치지 않는 알파코스는 초보신앙인들이 환란과 핍박이 닥쳤을때 쉽게 배교의 길로 갈수 있음을 경계해야한다. 기독교는 결코 좋은게 좋은 종교가 아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종교이다.
성경에 기록된것을 가감하는 자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하나님은 결코 이를 소홀히 여기는 분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모든걸 용납하시는 분이라는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살기 힘들면 자살을 택하라고 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살을 용인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고 용서받지 못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선지자들도 힘들고 어려울때 하나님께 죽음을 간청했지 스스로 죽은 사람은 없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구원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영역이니 우리가 그 비밀을 알수 없지만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자살을 허용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하나님은 맺고 끊음이 확실한 분이시다.
심판할 사람은 심판하고 상급을 줄 사람에게는 상급을 허락하실것이다. 그분의 뜻대로 말이다. 그분의 뜻을 폄훼하는 어떤 가치관도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이단을 경계해야 하고 이단적 요소를 가진 프로그램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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