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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산상수훈강해집

8장 영적 의욕의 시금석

 

8장 영적 의욕의 시금석



 앞장에서는 6절을 대략적인 의미로 다루었습니다. 8장에서는 같은 주제로 좀 더 실제적인 방법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복이 가장 중요한 복의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음을 가르치는 구원론의 완벽한 진술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 복이 특이한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이 복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시금석((test), 즉 어떤 일정 시점에 있어서의 우리의 상태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상태에 대한 시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매우 철저하고 실제적인 두 개의 시금석이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우리의 교리의 시금석으로 생각해 봅시다. 이 한 복은 구원론에 대한 두 개의 가장 흔한 반대론을 다루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 두 반대론이 동일한 사람들 속에서 발견될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상태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첫째 진술입니다. 올바를 의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의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 선물로 받아야 할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한 진술은 이 두 가지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적 제시가 구원을 너무 쉽게 만든다는 사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여러 가지를 너무 쉽게 만든다는 이유로 복음을 반대하거나 복음이 여러 가지를 너무 어렵게 하기 때문에 복음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전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절대적인 진술인 실제생활의 시금석을 살펴보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배부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즉각적 채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그 속에 거하시려 오신 것을 압니다. 성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본질적인 문제도 역시 해결됩니다.


 채워지는 것의 의미가 이것이라면 우리는 이런 일들을 누리고 있는가?라고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이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실의 유일한 원인은 우리가 참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있는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방법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제의하는 바입니다. 성경전체를 살펴보면 이것의 의미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위대한 성도들의 전기를 읽음으로써 성서의 기록을 보충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있는가 아닌가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들 자신에 적용해야 할 어떤 시금석들이 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첫 번째 시금석은 우리 나름의 거짓된 의를 꿰뚫어 보는가?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있다는 첫째 표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어떤 것으로, 또는 우리가 지금까지 행한 어떤 것으로 자기 만족감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의 필요와 구주의 필요를 깊이 인식함을 의미하며, 우리가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보며 만일 구주와 그의 구원이 제공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실로 전혀 소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성도들과 같이 되고자하는 의욕을 우리들 속에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시험하기에 매우 훌륭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 같이 되고자 하긴 하되 잘못된 방법으로 소원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의욕은 없이 그들이 누린 축복만을 즐기려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의인처럼 죽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의인처럼 살고 싶어해야 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예비적인 시금석들에 대하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있는지 세밀한 검토를 하기 위한 시금석들의 하나가 있습니다. 참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는 사람은 이와 같은 의와 반대되는 모든 것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스스로 이 의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에 반대되는 것을 삼갈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주리고 목마르는 것의 일부가 됩니다.


 이것을 세분해봅시다. 이 생에는 하나님과 그의 의에 공공연히 반대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집에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가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 집을 피합니다. 이것은 영적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기에 그치치 않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면 해로운 것들을 피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 의욕을 마비시키거나 무디게 하는 것들을 피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시금석을 제시하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는 것은 우리가 이 의를 활발하게 상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이 의를 날마다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면 여러분은 바쁜 시간 속에서도 시간을 내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시금석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는 사람은 항상 그것을 얻을 기회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의를 발견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의 주장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성경을 위해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깨달으려고 애쓰십시오. 성경에 관한 책들을 읽으십시오. 그런 다음 기도하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일에 도움이 될 성도들의 전기와 모든 문서들을 손에 넣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거의 미친 사람같이 됩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의만을 찾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노력이 의로 인도되고 있지 않음을 압니다. 즉, 여러분이 이 의를 참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여러분이 혼신의 힘으로 이 의를 찾을 때뿐인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지만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얻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어째서 우리 모든 사람의 가장 큰 의욕이 되어야 하는가? 저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못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어서 파멸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주며 하늘에 가서 그와 함께 그의 거룩한 존전에서 영원을 보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의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