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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운동/프 리 메 이 슨

사탄의 덫

사탄의 덫


[2000년 12월호] 피터 마스터스, 존 쉬트콤



오늘날의 예언, 환상, 방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사탄에게서 나온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단순하게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잘못을 많이 저지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탄이 그 사람들을 직접 움직이기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믿는 사람이 길을 잘못 들 수는 있지만, 사탄이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믿는 사람도 정신적으로 과로하면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환상이 나타나기도 하겠지만, 그런 경험은 그 사람에게 악마가 들렸다는 가정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다.

신앙이 독실한 신자라면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마구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강한 나머지, 고뇌하고 하나님의 '은사'를 바라면서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많다. 방언에 대한 강한 욕구와 필요성에 사로잡히면 머지 않아 그렇게 되는 수가 많다.
독실한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방언은 악마에게 그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이나 신체의 반자발적이고 고도로 고양된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환상에 빠진 상태에서 극도의 카리스마적 경험을 하면 악마가 간섭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치유 행위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강한 영향력 때문에 병에서 일시적으로 구제받는 것이요, 상상의 치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악마의 힘이 반드시 관련된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카리스마적인 거짓 지도자들은 이교도 지도자들처럼 어둠의 세계에서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더욱 열광적인 카리스마 교파 신도들의 잘못된 의식 행위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사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아주 자발적으로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카리스마적 가르침의 영향을 받았기에 환상적인 경험, 충동, 우연의 일치, 그 밖의 여러 가지 주관적 경험을 신뢰하게 된다. 곧 충동적인 경험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라고 믿게 되며, 마침내 꿈과 환상을 통해 그런 가르침을 모두 수용하는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도날드 버딕은 「방언: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가」란 저서 마지막 쪽에서 여러 열광적 카리스마 신도들이 방언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사랑, 고도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이루어진 관계, 기도에 대한 더욱 강렬한 욕망 등을 얻게 되었으며 그들에게는 성령이 신성(神性)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내적 갈등과 긴장이 감소된 것이다.

그러나 신도들에게는 방언할 필요 없이 성경에 순종할 때 그런 이익이 보장된다. 방언으로 그런 이익을 얻었다면 방언 그 자체 덕분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영적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방언은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요, 신도들을 거짓되고 위험스러운 길로 빠뜨리게 된다. 방언은 초자연적 경험의 심리적 대체물이기 때문이다. 버딕 박사가 말했듯이 방언은 이성적인 자제와 결별된 두뇌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치료는 심리 치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방언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이 미묘하고 귀중한 이성이란 도구를 장난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방언과 그 밖의 카리스마적 감정상의 자포자기 행위는 믿음을 보이는 것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그 신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존재라는 물질적인 증거를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신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에서 격려와 위안을 얻지 못하고 주관적인 인상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행위는 신도들이 영적 축복을 추구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위험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카리스마적 경험이란 길에 빠졌다가 다시 나오게 된 신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한 동안 눈을 감고 손을 올려놓는 예배 방식과 영의 움직임에 따라(아니면 그렇게 생각되는) 자제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깊이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열광적인 예배와 밀폐된 관계성이 그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방언 경험, 곧 천국의 언어가 환상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음에 사로잡혀 기적과 같은 '해방감'을 맛본 것이다.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결국 그런 카리스마 단체의 전체적인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정한 가르침과 거리가 멀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예언이란 말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졌고, 카리스마 은사운동 지도자의 교리 이해는 피상적이요, 영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점차 성장하고 있는 극단주의, 특히 엑소시즘(exorcism) 및 치유 행위와 관련된 거칠고 터무니없는 주장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카리스마 교파에서 탈퇴한 사람들은 의로움과 거룩함에 대해 진정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음에 실망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 성화를 위한 영의 침례라는 공식이 삶의 방식에 영향을 준 것이 없으며 죄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했다고 자인하고 있다. 감정상의 자포자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그 카리스마적 은사운동 예배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모든 것이 반복적이고 진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런 예배 방식은 기초적이고 고도로 주관적인 구원관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세속적인 리듬의 음악을 부끄럼 없이 사용하고 전반적으로 경외감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감정을 상하게 되었기에 영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더욱 심원하고 실질적이고 경외롭고 객관적이며 신성이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로, 전혀 현실과 관련이 없는 기적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과장을 하고 있는 경향에 실망했다고 했다. 거의 전적으로 감정, 경험, 스릴, 기적, 충동, 우연의 일치 등에 의존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벗어남으로써 구제받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영적 혼란의 시대에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적 진리, 곧 이 복음의 시대에서 기독교인들의 예배와 증언을 진정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진정한 영적 능력에 따라 미신과 사탄의 교리를 믿는 여러 서구 국가들이 정죄되었기에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의 지배라는 그늘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전환되어 사탄의 앙갚음이 목전에 대두하고 있다. 카리스마성령운동에 따라 기독교인 자신도 마술이라든지 마법과 거의 차이가 없는 의식을 옹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옛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을 굳게 지키라." (살후 2:15)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요한계시록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