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대로 안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역사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역사란 사람의 의도대로 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람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시는 일을 사람으로 알 수 없게 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얻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안 되고 진리를 깨닫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구원에 기여하게 된다면 구원은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생각과 양심과 이성까지도 부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분명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인간은 다 어리석어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인간의 마음의 계획하는 것과 생각까지 허망하여 졌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인간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심지어 인간은 자기의 필요가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같은 절망적 무능상태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우리가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시고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이셨고, 초자연적인 증거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것을 보고 들었고 자기들이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날 것을 미리 말씀하셨는데 막상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탄한 듯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각기 제 갈 길로 간 것입니다. 몇몇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지만 베드로는 다른 몇몇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 잡으러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초자연적인 기적을 여러 번 체험했지만 믿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순전히 교육적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사람들을 믿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에 예수님도 실패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서 무능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고 하신 것은 그만큼 성령님의 역할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계시의 주체이시고, 성령님은 그 계시를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적용시키시는 분입니다. 즉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계시의 사역이었고 성령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계시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에 성령님이 오시니까 제자들이 그제야 믿음이 확고해져서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선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령님에 대하여 너무 편협 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어떤 능력, 즉 에너지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배터리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이해는 아주 잘못된 이해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는 우리의 선택과 의지를 무시하고 역사하셔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특별한 역사이지 일상적인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양심의 작용을 통해서, 상식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2권에서 불신자들이 쓴 문학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성령의 역사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문학작품 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비를 선한 사람의 밭에도 내리시고 악인의 밭에도 내리시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절-
구원을 얻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안 되고 진리를 깨닫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구원에 기여하게 된다면 구원은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생각과 양심과 이성까지도 부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분명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인간은 다 어리석어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인간의 마음의 계획하는 것과 생각까지 허망하여 졌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인간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심지어 인간은 자기의 필요가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같은 절망적 무능상태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우리가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시고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이셨고, 초자연적인 증거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것을 보고 들었고 자기들이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날 것을 미리 말씀하셨는데 막상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탄한 듯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각기 제 갈 길로 간 것입니다. 몇몇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지만 베드로는 다른 몇몇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 잡으러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초자연적인 기적을 여러 번 체험했지만 믿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순전히 교육적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사람들을 믿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에 예수님도 실패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서 무능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고 하신 것은 그만큼 성령님의 역할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계시의 주체이시고, 성령님은 그 계시를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적용시키시는 분입니다. 즉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계시의 사역이었고 성령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계시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에 성령님이 오시니까 제자들이 그제야 믿음이 확고해져서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선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령님에 대하여 너무 편협 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어떤 능력, 즉 에너지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배터리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이해는 아주 잘못된 이해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는 우리의 선택과 의지를 무시하고 역사하셔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특별한 역사이지 일상적인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양심의 작용을 통해서, 상식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2권에서 불신자들이 쓴 문학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성령의 역사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문학작품 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비를 선한 사람의 밭에도 내리시고 악인의 밭에도 내리시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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