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오순절 성령 강림
노우호: 오늘은 오순절 이야기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게 되면서 비로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지요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과 아들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탄생하신 사건과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은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오순절에 임하였던 방언은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방언의 언사와는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그때는 로마와 유럽 등 여러 나라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16개국에서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 들었습니다 사도들이 설교를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6개국에서 모여든 모든 사람들이 현지 언어로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야!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언어로 듣게 됨이 어찌 된 일이냐!
정말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복음이 빠른 시일에 세계로 확산되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16개국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복음이 전해 진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16개국이 사람을 한곳에 모으기도 어렵지만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온 세계로 흩어지면서 동시에 16개국에 복음이 확산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짧은 시간에 16개국에 복음을 전하기는 어렵지만 성령이 하시므로 가능한 일이죠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겁에 질려 마가다락방에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체험하고는 담대하게 거리로 뛰쳐나와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물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갈지라도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이후에는 어떤 핍박과 환란이 닥친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고 위협이나 폭력이나 법이나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하고 계속해서 복음이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숨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거리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장에 보면 제9시의 기도시간에 이스라엘은 낮을 12시간으로 나눕니다 따라서 제9시라고 하면 오늘날 오후 3시가 됩니다 그 때쯤에 일어나면 기도하거나 일터로 나가는데 유대인들은 점심 먹고 나면 잠을 한 숨 자고 낮잠을 자고 나면 보통 3시쯤 됩니다
3시부터 기도를 하거나 일을 하는데 제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 갑니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일이지만 당당히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법정에 불려가게 되는데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말도 말라고 협박을 받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겠는가? 너희의 말을 듣겠는지? 너희들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면서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당당하게 선포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때려서 보내주지만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맞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전혀 두렵거나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장에 가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나오는데 이런 사건은 어떤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자주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한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으로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한번 보여준 이후에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한번만 일어난 사건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남는 기록들이 가끔 있습니다
6장에 넘어가면
집사를 뽑습니다 7집사를 뽑는데 모두 남자를 뽑았습니다 스데반과 빌립, 브로그르,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안디옥 사람 니골라 이렇게 7사람의 집사를 뽑았는데 이들은 굉장한 실력을 갖추고 어떤 면에서는 사도들에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고 성경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빌립도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렇게 집사를 세워서 교회의 일들을 맡아 하는데
7장에 가면
곧,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바울이 함께 있었는데 스데반이 순교하는 것을 보면서 전설에 의하면 사도바울과 스데반이 가말리엘문하생으로 같이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스데반을 일찍이 예수를 믿게 되고 바울은 끝까지 예수를 반대 하였던 사람인데 바울이 자신 신앙과 율법에 얼마나 확신을 가졌던지! 스데반 죽이는데 가편 투표를 던질 정도로 바울은 율법에 열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죠 그러나 스데반이 죽을 때 그 모습을 보면서 돌에 맞아 죽으면서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원망도 않고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얼굴에 밝은 빛을 내면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주는
김성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노우호: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보고 바울이 크게 찔림을 받은 것 같습니다
과연 자신이 가진 신앙과 신학이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인가! 하고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억제하려고 더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다마스크스까지 가서 이웃나라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 씨를 말리겠다는 마음으로 바울이 교회를 잔멸할 작정으로 핍박하게 됩니다
8장 3절에서 표현하는 잔멸한다는 의미는 잔인하게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들어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무관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을 가지고는 일을 할 수 없고 핍박을 해도 열정적으로 하고 열심이 특별한 사람을 변화시켜 놓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성윤: 뜨겁거나 냉철한 사람!
노우호: 예,
바울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는 합당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 이후에 복음을 전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원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핍박을 많이 했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으므로 핍박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변화되는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다마스크스로 말을 타고 가는 길에 태양빛 보다 더 밝은 빛이 자신에게 비춰지면서 자신은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어 지는데 그가 엉겁결에 부르짖기를 주여! 뉘십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이렇게 들려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예수님을 경멸하는 표현으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느냐! 빈정대는 소리로 멸시하는 의미로 '나사렛 예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멸시 천대하는 의미로 바울도 평소에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많이 사용 했었다 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잔멸하려 다니면서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사용하고 다녔기에 예수님께서 그래,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죠 바울이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도 그가 두 번째 엉겁결에 했던 질문이 있는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바울의 일생일대의 질문이 되겠는데 예수님이 누구신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2가지 질문에 대한 것을 알게 된다면 인생을 다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고 내가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면 인생을 다 배운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고 학문도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또,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인생을 모두 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이 엉겁결에 물었던 질문으로 주여, 누구십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2질문은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래서 그의 서신에 나타나는 그의 신학 전체의 흐름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밝히는데 남은 인생을 모두 쏟아 놓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으로 인하여 옛날에 가지고 있던 학문과 지식을 배설물과 해로 여긴다고 하면서 예수를 아는 지식 외에는 모두 버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다른 모든 학문은 초등학문에 불과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굉장한 율법이나 철학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은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된 삶을 살게 되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로 마케도니아, 아가야, 로마까지 증거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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