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자의 길(마10:16-20)
교회 안에는 예수 믿어 구원 얻고 생활 속에 은혜를 입고 사는 소위 예수를
믿는 자가 있습니다.그리고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증거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이 두종류의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있지만
생활 중심의 각오를 생각하면 단순히 예수 믿는 자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때부터 한국교회는 예수 믿고 복 받아 팔자 고치는 종교로 하락해버렸
습니다.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으로 정착해버렸다는데 문
제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기독교 정신으로는 평가하기 어렵거나 사회에 구설수 되는 일들로
교회 사회의 문제점들이 80년대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고 최근에는 아프칸
피랍사태 이로 매우 침울한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증거자의 정체성과 그 정신에
대해 다시 살피면서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자들로서 세상에 증거자가 될 때,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 정신을 함께 공유해야 하기에 증거자의 길이라는
제목 하의 메시지를 얻고자 합니다.
1.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
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할 때 '보
라', 하고 말머리에 추임새같이 강한 느낌의 감탄사를 쓰신 것은 내용의 중
요성을 의도할 때 사용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변화를 고할 때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할 때도 보라, 이두~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는 첫 말씀에 내가 너희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라는 헬라어 단어가 보낸다는 말에 어근을 가진 아포스톨로스(a
jpovstolo", apostolos)라는 말입니다.
'보낸다'는 말 아포스텔로(ajpostevllw)는 어떤 특정 지역에 파견한다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인으로 파송을 받는 제자는 하늘의 뜻을 안고,즉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파견된 하늘의 대사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우리들의 경험이 그러합니다. 스스로 복음을 위해 나설 수 없
습니다. 반드시 주님의 사상을 깨닫고 개인적으로 사명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보냄을 받는 것은 복음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야 하며 자고 깨고 생각하는 것
이 복음 전파에 몰두하며 특별히 증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령의 역사라 할
만한 일들도 일어나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예수 믿게 되는 것은 주님이 불러주셔서 믿어졌습니다.
요 6:65『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
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
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
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래서 믿는 것은 복음을 통하여(살후2:13)부름을 입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도 은혜요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그런데 구원은 이렇게 은
혜롭게 얻었으나 구원의 내용,즉 복음을 증거, 혹은 전파하려할 때는 쉬운 일
이 아닙니다.오죽 했으면 증거한다는 말이 곧 순교한다는 단어와 같이 쓰이겠
습니까?
여기서 나는 성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정신을 확인해둘 필요
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입니까? 증언자입니까?
물론 믿기도 하고 증언하는 증거자이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증거자라고 해서 꼭 목사나 선교사의 이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중
에 성도의 모든 삶 자체에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자의 사명을 띠
고 나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명심할 바는 먼저,주님께서 증거자로 보내신다는 사실이며 증거할 때
그렇게 보냄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개국의 대사가 남의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에 대해 무슨 전달 사항을 분명하
게 해야지 내 의도를 가미해서 전달하고 일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하늘나라 대
사가 되는 증거자로 마찬가지로 보냄을 받은 자의 처지를 확실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국내나 국외나 어디든지 소명의식을 가지고 복음의 증거자가 되려면
보냄을 받은 사명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소명의식이 먼저 확신되어야 합니다.
1)내가 남달리 복음전파에 불타는 정신이 있는가?
2)삶의 중심에 계속적으로 증거에 몰두하는가?
3)성령의 감동적인 경험과 개인적 신앙의 간증이 나타나는가?
4)죽음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복음전파가 그리 좋은가?
김범수의 죽을 만큼 보고싶다라는 유행가 가사를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감동
을 받았습니다. 죽을 만큼 보고싶은 사람이 많을 겁니다.그 중에 잃어버린 자
식을 찾는 부모의 심정이나 부모 잃은 자식만큼 보고싶은 것이 더 있겠습니까?
복음을 위하고 싶은 감정이 그 정도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얼마나 열정이 심했느냐 하면, 성경에는 복음 전파하지 않는다고 벌을
받는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표현은 그의 간절함을 이렇게 말합니
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
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2. 지혜와 순결을 겸비해야 합니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뱀은 태초 하와를 유혹하던 사단의 도구로서 사람을 유도하는 지혜의 상징이
기도 합니다. 본래 사단적인 생각은 아주 지능이 뛰어나고 보통사람들의 생각
을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고 나가는 사람은 막무가내 설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
이면서도 단정한 처세로 효과있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
다.
그래서 주께서 17절에 이어, '사람들을 삼가라'고 권면합니다.
성도가 일상의 생활 중에서라도 믿음의 행실이 그야말로 너무 종교적 티만 내
고 지혜롭지 못해서 오히려 상식적인 일마저 거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처세뿐 아니라 이어지는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는 말씀을 연결해서 이해하게 될 때,복음의 순수성을 세속적인 것으로 보
이지 않게 하나님의 지혜로 대처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는데 비둘기는 깨끗한 것을 쪼아먹고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기도 했습니다.순결이라는 말은 간사함이 없고 불순물
이 섞이지 않는 단순하고 건전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혜나 비둘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속하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예수
께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비둘기같은 성령이 보였습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
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러므로 복음을 들고 나선 사람은 주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과 진리의
뜻대로 지혜롭게 대처하고 비둘기처럼 순결하여 오직 복음에만 충실해야 합니
다.
복음의 증거자라는 사람이 세상의 처세에 의존하여 복음을 사회의 문화적 형
태로 이해되어지게 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상이며 세상의 사상보다 더 강하여 목숨을 담보로 믿고 목
숨을 건지는 그런 종교입니다.
오늘의 교회사회는 교회의 순수 복음을 찾기 힘든 세대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문화적 환경이 아니라 참된 기독교사상의 복음이 변질될 때 교
회도 세상도 버림을 받습니다.
복음의 증거자로서 처세하는 것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상의 힘에 무조건 의존할 수도 없고 의탁할 성질의 복음도 아닙니다.
고전2:10-11『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
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
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도는 그래서 세상을 향하여 선생이라 했습니다.
히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세상을 향하여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참된 지혜로는 교회가 바로 알고 살아갑
니다. 세상은 본래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
고 살기 때문에 실상은 지혜가 없는 세상입니다.성도는 역사관이 분명해서 세
상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복음을 증거하려는 자는 성경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대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와 성령의 역사가 적극적으로 따라야 합니다.복음
을 전하되 순수 복음을 그리고 순전한 사상자로 나서야 합니다.
3. 죽을 각오, 일사각오의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
질 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의도를 품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복음입니다. 그
런데 이 평화의 복음이 전달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죽음같이
어려운 삶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영적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당신 뿐아니라 당신을 따를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 예언
하시고 각오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복음이 구원을 얻는 자에게 기쁨이지만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화평이 아
니라 환난이 임할 것이라 했습니다.
마 10:34-35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더구나 복음을 증거하려는 자는 더욱 이런 어려움이 강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세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뒤에 이어 성령이 가르치시는 지도가 있다고 하셨지만 결국 죽을 각오가 있어
야 되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고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그러나 함께 하시지만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라고 하심대로 긴장스럽고 찢기고 물려 죽기까지 할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입
니다.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식한 사람들로부터 무턱대고 예수 믿는다는 조
건 하나만으로도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 15:25『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
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도 믿지만 지켜주시기만 바란다면 증거자로 나서
지 말아야 합니다.오늘 설교의 주제인 증거자의 길에 선 사람이라면 지켜주실
줄도 믿지만 안 지켜주어도 복음 사상에 충실하여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를 실현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말을 들어봅시다.
단 3:17-18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
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기독교는 생명종교라고 합니다. 생명을 얻되 영생을 얻는 종교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의 짧은 생명은 복음을 따를 때 버릴 수 있는 것이 원칙이고 주님께서
본 장 말미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각오되어야 할 부분을 교훈하시면서 죽
을 각오를 당부하셨습니다.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복음의 증거자로서 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진리에서 벗어
나 마귀의 술책에 익숙해 있어서 잘 받아들이지 않고 미움과 적대를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예언도 먼저는 공회에 넘겨지고 끌려가고 21절에 가서는
형제도 부모도 죽는데 내어주기까지 하는 버림까지 받으니 각오하라는 것입니
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믿는 자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입니까, 예수를 증거하는 자입니까?
우리는 모두가 믿는 자입니다. 그러나 증인으로서 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 영광을 제대로 알고 소망하는 인생관이 설정되고 가장 기쁘게 여기는 자
들만이 감당하려 할 것입니다.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만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위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각오하고 소망 중에 외쳤던,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고백을 함께 하면서 하늘 소망을 품고 증거자의 길을 잘 가
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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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는 예수 믿어 구원 얻고 생활 속에 은혜를 입고 사는 소위 예수를
믿는 자가 있습니다.그리고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증거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이 두종류의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있지만
생활 중심의 각오를 생각하면 단순히 예수 믿는 자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때부터 한국교회는 예수 믿고 복 받아 팔자 고치는 종교로 하락해버렸
습니다.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으로 정착해버렸다는데 문
제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기독교 정신으로는 평가하기 어렵거나 사회에 구설수 되는 일들로
교회 사회의 문제점들이 80년대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고 최근에는 아프칸
피랍사태 이로 매우 침울한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증거자의 정체성과 그 정신에
대해 다시 살피면서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자들로서 세상에 증거자가 될 때,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 정신을 함께 공유해야 하기에 증거자의 길이라는
제목 하의 메시지를 얻고자 합니다.
1.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
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할 때 '보
라', 하고 말머리에 추임새같이 강한 느낌의 감탄사를 쓰신 것은 내용의 중
요성을 의도할 때 사용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변화를 고할 때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할 때도 보라, 이두~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는 첫 말씀에 내가 너희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라는 헬라어 단어가 보낸다는 말에 어근을 가진 아포스톨로스(a
jpovstolo", apostolos)라는 말입니다.
'보낸다'는 말 아포스텔로(ajpostevllw)는 어떤 특정 지역에 파견한다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인으로 파송을 받는 제자는 하늘의 뜻을 안고,즉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파견된 하늘의 대사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우리들의 경험이 그러합니다. 스스로 복음을 위해 나설 수 없
습니다. 반드시 주님의 사상을 깨닫고 개인적으로 사명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보냄을 받는 것은 복음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야 하며 자고 깨고 생각하는 것
이 복음 전파에 몰두하며 특별히 증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령의 역사라 할
만한 일들도 일어나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예수 믿게 되는 것은 주님이 불러주셔서 믿어졌습니다.
요 6:65『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
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
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
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래서 믿는 것은 복음을 통하여(살후2:13)부름을 입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도 은혜요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그런데 구원은 이렇게 은
혜롭게 얻었으나 구원의 내용,즉 복음을 증거, 혹은 전파하려할 때는 쉬운 일
이 아닙니다.오죽 했으면 증거한다는 말이 곧 순교한다는 단어와 같이 쓰이겠
습니까?
여기서 나는 성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정신을 확인해둘 필요
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입니까? 증언자입니까?
물론 믿기도 하고 증언하는 증거자이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증거자라고 해서 꼭 목사나 선교사의 이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중
에 성도의 모든 삶 자체에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자의 사명을 띠
고 나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명심할 바는 먼저,주님께서 증거자로 보내신다는 사실이며 증거할 때
그렇게 보냄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개국의 대사가 남의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에 대해 무슨 전달 사항을 분명하
게 해야지 내 의도를 가미해서 전달하고 일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하늘나라 대
사가 되는 증거자로 마찬가지로 보냄을 받은 자의 처지를 확실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국내나 국외나 어디든지 소명의식을 가지고 복음의 증거자가 되려면
보냄을 받은 사명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소명의식이 먼저 확신되어야 합니다.
1)내가 남달리 복음전파에 불타는 정신이 있는가?
2)삶의 중심에 계속적으로 증거에 몰두하는가?
3)성령의 감동적인 경험과 개인적 신앙의 간증이 나타나는가?
4)죽음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복음전파가 그리 좋은가?
김범수의 죽을 만큼 보고싶다라는 유행가 가사를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감동
을 받았습니다. 죽을 만큼 보고싶은 사람이 많을 겁니다.그 중에 잃어버린 자
식을 찾는 부모의 심정이나 부모 잃은 자식만큼 보고싶은 것이 더 있겠습니까?
복음을 위하고 싶은 감정이 그 정도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얼마나 열정이 심했느냐 하면, 성경에는 복음 전파하지 않는다고 벌을
받는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표현은 그의 간절함을 이렇게 말합니
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
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2. 지혜와 순결을 겸비해야 합니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뱀은 태초 하와를 유혹하던 사단의 도구로서 사람을 유도하는 지혜의 상징이
기도 합니다. 본래 사단적인 생각은 아주 지능이 뛰어나고 보통사람들의 생각
을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고 나가는 사람은 막무가내 설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
이면서도 단정한 처세로 효과있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
다.
그래서 주께서 17절에 이어, '사람들을 삼가라'고 권면합니다.
성도가 일상의 생활 중에서라도 믿음의 행실이 그야말로 너무 종교적 티만 내
고 지혜롭지 못해서 오히려 상식적인 일마저 거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처세뿐 아니라 이어지는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는 말씀을 연결해서 이해하게 될 때,복음의 순수성을 세속적인 것으로 보
이지 않게 하나님의 지혜로 대처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는데 비둘기는 깨끗한 것을 쪼아먹고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기도 했습니다.순결이라는 말은 간사함이 없고 불순물
이 섞이지 않는 단순하고 건전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혜나 비둘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속하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예수
께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비둘기같은 성령이 보였습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
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러므로 복음을 들고 나선 사람은 주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과 진리의
뜻대로 지혜롭게 대처하고 비둘기처럼 순결하여 오직 복음에만 충실해야 합니
다.
복음의 증거자라는 사람이 세상의 처세에 의존하여 복음을 사회의 문화적 형
태로 이해되어지게 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상이며 세상의 사상보다 더 강하여 목숨을 담보로 믿고 목
숨을 건지는 그런 종교입니다.
오늘의 교회사회는 교회의 순수 복음을 찾기 힘든 세대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문화적 환경이 아니라 참된 기독교사상의 복음이 변질될 때 교
회도 세상도 버림을 받습니다.
복음의 증거자로서 처세하는 것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상의 힘에 무조건 의존할 수도 없고 의탁할 성질의 복음도 아닙니다.
고전2:10-11『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
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
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도는 그래서 세상을 향하여 선생이라 했습니다.
히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세상을 향하여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참된 지혜로는 교회가 바로 알고 살아갑
니다. 세상은 본래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
고 살기 때문에 실상은 지혜가 없는 세상입니다.성도는 역사관이 분명해서 세
상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복음을 증거하려는 자는 성경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대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와 성령의 역사가 적극적으로 따라야 합니다.복음
을 전하되 순수 복음을 그리고 순전한 사상자로 나서야 합니다.
3. 죽을 각오, 일사각오의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
질 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의도를 품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복음입니다. 그
런데 이 평화의 복음이 전달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죽음같이
어려운 삶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영적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당신 뿐아니라 당신을 따를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 예언
하시고 각오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복음이 구원을 얻는 자에게 기쁨이지만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화평이 아
니라 환난이 임할 것이라 했습니다.
마 10:34-35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더구나 복음을 증거하려는 자는 더욱 이런 어려움이 강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세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뒤에 이어 성령이 가르치시는 지도가 있다고 하셨지만 결국 죽을 각오가 있어
야 되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고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그러나 함께 하시지만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라고 하심대로 긴장스럽고 찢기고 물려 죽기까지 할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입
니다.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식한 사람들로부터 무턱대고 예수 믿는다는 조
건 하나만으로도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 15:25『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
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도 믿지만 지켜주시기만 바란다면 증거자로 나서
지 말아야 합니다.오늘 설교의 주제인 증거자의 길에 선 사람이라면 지켜주실
줄도 믿지만 안 지켜주어도 복음 사상에 충실하여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를 실현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말을 들어봅시다.
단 3:17-18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
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기독교는 생명종교라고 합니다. 생명을 얻되 영생을 얻는 종교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의 짧은 생명은 복음을 따를 때 버릴 수 있는 것이 원칙이고 주님께서
본 장 말미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각오되어야 할 부분을 교훈하시면서 죽
을 각오를 당부하셨습니다.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복음의 증거자로서 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진리에서 벗어
나 마귀의 술책에 익숙해 있어서 잘 받아들이지 않고 미움과 적대를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예언도 먼저는 공회에 넘겨지고 끌려가고 21절에 가서는
형제도 부모도 죽는데 내어주기까지 하는 버림까지 받으니 각오하라는 것입니
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믿는 자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입니까, 예수를 증거하는 자입니까?
우리는 모두가 믿는 자입니다. 그러나 증인으로서 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 영광을 제대로 알고 소망하는 인생관이 설정되고 가장 기쁘게 여기는 자
들만이 감당하려 할 것입니다.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만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위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각오하고 소망 중에 외쳤던,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고백을 함께 하면서 하늘 소망을 품고 증거자의 길을 잘 가
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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