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기도에 관한 연구
Ⅰ.서론........................................ A. 연구목적 및 동기 ............. B. 연구 방법 ..........................
Ⅱ. 관상의 이해 .........................
Ⅲ. 관상으로 들어가는 방법........... Ⅳ. 관상기도의 실재 ...................... Ⅴ. 결론..............................................
사람들은 묵상기도를 하고자 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별로 원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한국교계에 가톨릭 적으로 묵상기도가 발전하여 내려 왔으며 그에 기독교가 접한 부분은 미흡합니다. 기독교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의 현존체험에 이르기까지를 잘 다루지 않고 통성 기도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이 부르짖으면 기도를 하는 것 같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기에 내면적인 성찰을 보고한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는 점입니다. 이미 길들여진 통성 기도와 부르짖음에 익숙해져서 침묵으로 나아가는 기도는 많은 장애가 따릅니다. 침묵으로 나아갈 때 우선 눌리기가 쉽다는 점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지침서가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는 점입니다. 관상으로 들어갈 때 어떻게 들어가야 될지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합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크리스찬의 내면적 성숙에는 반드시 이 관상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관상기도는 자신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지와 상관없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고 이루고자 하시는 부분이며, 성장, 성숙하려는 크리스찬의 삶에는 변형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어느 한 것으로 치울 칠 것이 아니라 균형이 있는 기도 생활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그 삶의 실제가 되어서 현세 천국으로 삶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중요성을 알아 본서에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관상은 하나님과 직접교통입니다. A. 연구목적과 동기 관상기도를 하는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 이유는 자주 접할 부분이 없었습니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관상기도를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는 것입니다. 또 처음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잘 모릅니다는 점입니다. 관상기도를 할 때 수반되는 장애요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통성기도할 때에도 생기는 것이므로 조금만 주위를 기울이면 방해 요소들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고정관념을 버리고 조금만 훈련을 합니다면 관상의 실제를 맛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통성 기도하는 것처럼 훈련만 되어 집니다면 관상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는 점입니다. 보다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에 관하여 다루고자 함에 있어 그 목적을 두었고 좀 더 관상기도가 삶의 실제의 부분에 나타나 성숙한 크리스찬의 삶을 이루고자 함에 그 동기가 되어 연구하게 된 목적입니다. b. 연구방법 관상기도에 있어서의 연구방법은 각 책을 통하여 연구하게 될 것이며, 수집된 자료들을 합하여 제시 할 것입니다. Ⅱ.관상의 이해 관상기도의 이해에 앞서서 관상기도는 누구에게로부터 오는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대상은 누구라는 것도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도 앞서 할 일입니다. “관상기도를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계획에 협력하는 기본적” 인 것입니다. 관상은 하나님의 상을 바라봄으로서 이루어지는 관계이며 그 안에서 마음껏 주님과 대화 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펼칠 수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하나님과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대화합니다. 현존의 사랑을 느낄때나 아니면 그분의 활동하심을 가만히 바라봄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말합니다. 좀 더 이해를 돕는다면 내 안에서 그분의 활동을 바라봄으로 일어나는 사랑의 대화인 것입니다. “관상기도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는 종교에 있어서 인식 양식의 하나로, 실천적 태도와는 상대적인 태도를 말하며” 신비적 사상이나 초월적인 존재인식에 대한 직관을 말합니다. 관상은 하나님을 직관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며, 순수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크리스찬의 삶과 성장은 하나님께서 초월 가능성과 함께 당신에게 주신 당신 자신의 기본적인 선, 즉 존재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둡니다.” “당신이 내 안에 계시는 현존과 성령의 활동을 자각하는 것은 당신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든 진정한 기도는 성령께서 당신 안에 현존하심과 그분이 중단 없이 계속적으로 당신을 고무하십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는 데에 바탕을 둡니다.” 성령이 당신 안에서 기도하시고 당신은 그 기도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만날 때 어떠한 상태에 있어야 할 것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수동적 자세에 있어야 하는지 또는 능동적인 상태에 있어야 할지를 먼저 인식하고 기도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관상이란 예수께서 지금 여기서 나에게 제시해 주시는 구체적인 사람을 사랑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기에” 구체적인 인식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통한 관상적 인식은 내 존재 전체와 일치를 이루고 현존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A. 관상기도의 역사 관상이란 말은 기독교에서는 흔히 쓰는 말은 아닙니다. 관상보다는 묵상이란 말로 표현되어 관상과 묵상을 같이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관상은 묵상을 통하여 도달하는 것으로 묵상보다 차원이 높다 할 수 있으나 당신에게 익숙하게 인식되어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관상이라는 말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여러 다른 의미를 갖게 되어서 그 의미가 매우 모호한 실정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은 히브리어의 da'ath를 번역하면서 gnosis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히브리어는 하나의 정신이 아니라 전인격을 포함하는 아주 친밀한 지식이라는 강한 뜻을 갖는다.” “크리스찬의 처음시대의 15세기 동안은 관상기도에 긍정적인 태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6세기 이후부터는 부정적인 태도가 널리 퍼졌습니다.” 어떻든 간에 관상에 부정적인 반대 속에서도 관상기도는 발전을 거듭 하여 왔으며. 오늘날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관상은 진정한 영성 생활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며, 모든 그리스찬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상기도는 12세기의 지도자들은 관상기도를 발전시키려고 하였습니다. “12세기경부터 종교적 사조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져” 신학적 큰 학파들이 생겨났다. “베르나르도, 성 빅토의 휴와 리처드, 성 티에리의 윌리엄 등과 같은 12세기의 영성 지도자들은 이에 따라 기도와 관상의 신학적 이해를 발전시키려 노력하였으며, 13세기에 이들의 가르침에 따른 묵상의 방법들이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대중화되었습니다.” 14세기와 15세기의 대흑사병과 100년 전쟁으로 도시와 마을의 사람들이 죽어 갔다. 이때 도덕과 영성이 퇴폐 되었고 수도 단체와 모든 조직들이 휘청거렸다. 15세기말에 정감기도 방법이 자세히 기술되었고 “16세기로 들어서면서 정신 기도는 사고를 주로 하는 논리적 묵상, 의지의 행위를 중점으로 하는 정감적 기도, 하나님에게의 몰입을 위주로 하는 관상으로 나뉘었습니다.” 관상기도는 하나의 기도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지향과 방법이 다른, 하나의 다른 기도로서 새로운 기도의 형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574년 예수회의 총장 신부인 에버라드 머규리언은 스페인 지부에 보낸 지침서에서 정감적 기도와 오감의 응용으로 하는 기도를 금지시켰다.” “1522에서 1526년 사이에 저술된 ‘이냐시오의 영성 수련’은 현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성 상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관상기도의 역사는 “19세기 동안에 많은 성인들이 있었지만 소수만이 관상에 대하여 말하고”있습니다. 관상은 초기 그리스찬들의 기도 중 가장 두더러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의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1. 어원적 고찰 관상이란 말은 하나님의 지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리스어 성경은 히브리어의 da'ath를 번역하면서 gnosis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히브리어는 하나님 정신이 아니라 전인격을 포함하는 아주 친밀한 지식이라는 강한 뜻을 갖는다. 바오로 성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는 하나님의 지식을 뜻하기 위하여 이 gnosis라는 단어를 그의 서간에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스 교부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크레멘스, 오리게게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 등은 신플라톤파에서 theoria라는 단어를 따 왔습니다. “이것의 원 뜻은 진리의 지적 시각을 뜻하며,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theoria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최고의 활동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 기술적인 용어에다 교부들은 사랑을 통하여 얻어지는 일종의 경험적 지식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da'ath의 뜻을 가미하였습니다.” 이 theoria의 용어를 이와 같이 확대해서 이해하면서 라틴어 contemplatio(관상)으로 번역하였고 이 뜻이 크리스찬의 전통으로 내려왔습니다. 2. 성경적 이해 관상이란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이루어지는 현존의 체험을 말합니다. 나는 그분에 동의하며, 그분은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다스린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적 근거를 찾고자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분은 항상 당신에게 문을 두드리며 다가오십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원하시며, 그분과의 만남을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당신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당신이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당신을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 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 하심이니라”.(롬 8:26-27) 또한 당신의 생각 속에 오시사 당신을 다스리고자 하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고 당신의 마음속에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며, 만나기를 바란다. “당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떼어놓는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는 바로 당신 생각입니다”. “이를 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 됨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가만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당신속에 계신 그분이 사랑의 활동에 따라 당신은 반응하면 됩니다. “당신은 그저 은총영감에 따라서 성경 내용을 이리저리 생각하며 단지 어떤 의지의 행위 하거나 아무 때고 관상기도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아무런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분의 활동에 동의하며, 사랑의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B. 관상이란 관상의 일반적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또는 하나님의 속성을 던져지는 사랑의 단순한 바라봄입니다.” 관상은 인식의 한 방법으로 영상이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관상함으로써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상기도란 바로 사랑으로 가득 차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을 통하여 예수님과 내 존재와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내 안에 존재 전부의 활동을 말합니다. “관상이란 감성적 지식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또 그 사랑에 응답함으로서 얻어지는 지식입니다.” 관상이란 예수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사랑과 현존을 체험하므로 그분의 뜻에 동의하며 조화로운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관상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느낌의 단계로 이끌어 주어 사랑을 통해 얻게 되는 영적인 맛을 보게 해줄 것입니다.” “관상은 주님을 똑 바로 직관으로 보고, 알고,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관상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맺음으로 그분의 사랑의 활동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현존체험 인 것입니다. 1. 관상의 원천 관상의 원천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관상은 예수의 신성이 관상의 원천입니다. 거룩하신 분의 현존이 감싸주시는 경험을 할 때 당신은 내면으로 관상하도록 이끌린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니면 묵상기도의 뒤받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말미암아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으로부터 가장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온갖 은혜가 당신 인간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스스로는 경험적으로나, 개념적으로는, 영적으로 체험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어떠한 종류의 체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분이 신성한 체험 안에 있지 않습니다는 것이 아니고 그 경험들을 초월시킨다는 말입니다.” “관상은 내가 이룩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시는 그 무엇입니다. 관상은 나에게 내려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관상은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장하도록 마음을 준비하는 방법은 관상 그 자체를 찾아 애쓰고 그리워하며, 노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거룩하신 빛이 인간의 마음에 부딪치면, 하나의 빛 줄기가 프리즘에 부딪쳐서 여러 색깔로 나뉘듯이 여러 가지 많은 양상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자유로 활동하시도록 받아들이기 위해, 영적 위안을 털어 버리도록 마음이 끌리는 것은 성령의 현존이 강해집니다. 이리하여 절대 신비이신 분은 절대 현존이신 분이 됩니다. 성령은 성경과 당신 일상 생활의 사건을 통해 당신 양심에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당신의 참 자아인 내면의 깊은 원천에서 당신의 양심에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관상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이 당신 안에서 신성한 체험으로 이끌어 주시고 현존경험의 활동이 당신의 의식 활동의 원천이 됩니다. 이것이 관상의 원천입니다. 2. 관상에서의 합일 관상에서의 합일은 그분의 존재 인식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이며, 그분의 뜻에 동의하며, 인식하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당신자신이 몸담고 있는 실재를 각성하는 하나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언제나 당신 안에서 내재하고 계시며, 당신은 그 실재의 차원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멀게만 여겨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속에 하나님은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 당신 속에 실제의 차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되고 만다. “관상기도가 경험하는 단계에서 하나님의 내재를 의식하는 단계로 옮겨 갈 때 관상상태가 이루어 졌습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함으로 늘 내 안에서 운행하십니다. 그러나 내재를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으로 그분을 위해 비워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생각을 고치고 그분은 언제나 내 안에 계시는 것을 인식하고 현존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현존의 체험은 쉬워 질 것입니다. 당신 속에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생각을 치료받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분은 내게로부터 드러나시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는 믿음을 가지기를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당신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당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떼어놓는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는 당신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 속에 더 이상 머물지 않도록 인식하고 사랑의 결정체이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고자 하는 열망, 당신 안에 그분이 현존하시도록 당신을 그분께 열어 드리고자 하는 열망은 당신의 주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분이 당신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동의만 하면 그분은 당신을 끌어당기어 그의 사랑을 인식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현존에 동의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분의 현존입니다” “거룩한 단어를 사용하여 그분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면의 수준에서 생각하는 단순한 사고입니다”.“주님 오시옵소서” “성령님 오시옵소서” 등의 단어를 사용할 때 그분께로 향하는 내면의 활동이 시작되고 또는 여러 가지 혼란이 오거나 생각에 빠질 때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면 현존으로 나아가는 것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진정한 자기 부인을 통해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여지를 삶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임재의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상속의 단어를 움직이면 머물지 않고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배처럼 현존의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상상속의 사고는 내적인 것이며, 당신의지의 충동을 나타내는 단어는 더욱 내적입니다 단어의 수준을 넘어서 순수한 인식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내면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존으로가는 자의 기본 자세이며,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거룩한 단어는 당신의 심적 인식의 수준을 넘어서 당신 존재의 원천,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 계시는 삼위일체이신 분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Ⅲ. 관상으로 들어가는 방법
관상기도는 묵상기도를 통해서 관상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도 질서가 있고 통로가 있습니다. 묵상 즉 “향심기도는 관상기도로 들어가는 데에 일어나는 장애를 줄이려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관상으로 들어갑니다면 보다 쉬운 기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직관으로 알고, 또 포착하는데, 이것이 마음이라는 특수 기관입니다.” 우선 묵상기도를 할 때 여러 가지 방해요소들의 방해가 따릅니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하는 환경의 방해와 소리들이 묵상과 관상을 하는데 방해를 일으키며, 제일 심하게 일어나는 것이 생각입니다. 이 생각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또는 주의성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알고 관상기도를 합니다면 좀더 효과적인 관상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상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기도자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모습으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과의 현존 체험을 위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묵상으로 들어가려면 장소적인 부분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당신주변에 어느 곳 하나라도 소음이나 공해가 아닌 데가 없습니다. 조용히 책을 읽으려고 해도 소리의 소음은 잠잠 할 때가 없습니다.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을 선택을 하고 시간으로는 비교적 조용하고 제일 평안한 시간을 선택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다. 처음기도를 들어갈 때 들어가기 싫은 감정이 생깁니다. 생각 소음 등의 벽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초월하여 들어가면 조용히 다가오는 주님을 만날 때면 참으로 참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관상기도를 하는 시간은 이른 새벽도 좋고 오후시간도 묵상하기에 좋다. 또한 막연히 묵상을 합니다고 앉아 있는다고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자가 마음을 움직여 들여야 합니다. 의지을 들여서 그분에게로 향하는 움직임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상상을 통해서든지 말씀을 통해서 그분께로 향하는 움직임이 있는 한 기도는 진행될 것입니다. 이제 장소와 시간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면 눈을 감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내어 드리는 의향을 표시하는 거룩한 단어를 선택하여 그 단어를 상상 수준에 도입합니다.”기도하는 자가 내적 고요를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고요를 이루는 시간이20-30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 당신의 일상적인 사고로 다시 되돌아갑니다.” 이때 조용히 하나님과의 대화할 시간입니다. 일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때입니다. 내면깊이 하나님을 인식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활동이 내 안에서 원합니다면 대화는 이루어 질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또 한가지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방해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선 눈을 감으면 시끄러운 소리들이 다가옵니다. 그 소리들이 시끄럽다고 묵상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소리들을 수용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그 소리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전통적인 방법에서는 이러한 소음이나 영상, 느낌, 생각, 환상 등을 수용하고 떠내려 보냅니다거나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을 요합니다. “일상 활동으로부터 감각들을 거두어들이면 깊은 휴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화소리 같은 갑작스런 방해되는 소리가 있을 때에는 흥분하지 말고 가급적 소음을 줄이는 것이 좋다. 이러한 소리에 귀를 기당신이지 마십시오. “흥분하는 것은 감정으로 채워진 사고의 일종으로서 일단 침묵에 이른 상태를 깨어 버리게 됩니다.” “당신이 그 사고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당신의 의식이라는 강 위를 떠내려가게 내버려두고 ,그리고는 당신의 의식이라는 강 자체로 당신의 주의를 돌리는데 있습니다.” 부딛혀 싸우는 것을 피하고 이 방법에서는 “당신의 내적 스크린에 비춰지는 어떠한 지각도 사고라고 봅니다. 이것이 정서, 영상, 기억, 계획, 외부에서 오는 소음, 평화스런 감정, 심지어 영적 교감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해물들과 함께 주님께로의 여정이 이루어 가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현존을 인식하고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영상은 눈을 감으면 그림처럼 나타나 그것에 마음을 다 빼앗끼고 마는 현상이 생기기 쉽다. 관상을 하려면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한 사항입니다. 분주한 마음으로 앉았을 때는 더욱더 조금 전 영상이 앞을 가린다. 관상을 할 때 먼저 생각으로 찾아오기 쉬운 방해물이 오기 쉽다.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고자 함인데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습니다. 생각에 잠기다가 하나님의 현존에 가까이 가보지 못하고 관상에서 나오는 경향이 많다. 생각이 나를 괴롭힐 때 그것에 힘을 써 싸우지 말고 그냥 지나치기를 권하고 싶다. 또한 수용하는 방법도 생각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방해물들이 그 시간 함께 내면 속에 있게 되고 사고들로 인하여 장애물을 만들게 합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거룩한 단어를 쓰기를, 상징이나 아니면“ 성령님 오소서” 또는 “주님” 십자가 앞에 고백을 하면 다시 현존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B. 말씀을 통하여 성경묵상을 통해서 단순성 묵상이 관상적기도로 들어가는 것이 용이합니다. 신앙인에 삶에 있어서“말씀을 듣는 마음 대화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마음을 침묵을 통해서 다듬어집니다.” 또한 상징어로서의 거룩한 단어를 사용하여 관상으로 지향하는 것도 좋다.“거룩한 단어는 당신이 어떠한 것을 선택하였던지 관계없이 거룩합니다.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뜻이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지향이 거룩합니다.” “거룩한 단어는 당신이 당신의 원천(source)으로 파고 들 수 있게 만듭니다.” “성경 묵상을 통해서 지성적인 목적성과 감성적 및 실천적인 목적성이 달성되어질 때 단순성 묵상과 관상적 묵상에로 접하기가 더욱 용이해집니다고 생각합니다.”말씀 한 구절을 읽고 묵상으로의 여정의 길을 가고자 함에 그 내용에 펼쳐진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들어가게 되면 성경말씀의 장면이 무대가 되어서 관상으로의 활동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속에서 생생하게 그 장면을 느껴 보는 묵상의 훈련을 하게 되면 관상으로의 합일의 체험은 보다 쉽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C. 영상을 통하여 관상기도에 있어서 영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십자가상을 바라보면서 들어 갈 때 점점 내 안의 활동이 시작되므로 관상으로의 현존 체험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영상 중에서도 관상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영상으로서 다가오는 관상기도가 아닌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순수한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뜬 기분 상태를 느낄 수도 있고 황홀경에서 영상을 바라볼 수 도 있습니다. 잘못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영을 분별할 때 오는 거슬림 또는 느낌이 이상 할 때에는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주님을 부르므로 그 영상이 주님으로부터 오는지 혼란으로부터 오는지를 구별해야 방해를 덜 받고 관상으로의 영적 지향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관상은 일차적으로 관계성이므로 지향성을 갖는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지는 장면을 따라 가면서 현장을 바라보는 것도 관상에 있어서 좋은 방법 중하나입니다. “묵상기도가 지향하는 여정의 끝에 도달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당신에게 시각적 영상이 더 도움이 됩니다면 그것을 사용하십시오...그 영상의 상상의 수준에 도입하면서 만일 다른 사고가 들어왔습니다고 깨달을 때 바로 그 영상으로 부드럽게 돌아가야 합니다.” “시각적 영상은 일반적인 것이어야 하며 너무 선명하거나 정밀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키딩 p.69. Ⅳ.관상기도의 실재 관상기도의 실재는 관상기도를 함으로서 일어나는 열매들입니다. 관상기도를 하면서 깨달음을 실생활에 적용시킨 삶을 주님께 드리는 그러한 생활로써 당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도 과정입니다. 관상기도와 관상생활은 구분 지으면서도 실재에 함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관상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활동하시고 그 사랑의 활동을 인식한 당신은 실생활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관상기도와 생활은 구분되어 집니다. 즉 관상생활은 하나님께서 깨달게 하시고 사랑의 체험들을 당신이 수고와 인내와 감사와 은혜로써 행하여야 할 부분입니다. 그 분은 당신과 함께 하시며 모든 부분의 실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A.내면 성숙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을 자라게 하시고 당신을 성숙시킬 힘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숙되어지는 실천과정입니다. “관상기도는 정통적으로 볼 때에 변형과정이 완성 되도록 시작되고 완성시키게 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어제와 오늘의 행동이 같으면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면의 세계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이러한 성숙의 삶을 살아 드리는 과정에서 관상기도를 빼놓을 수 가없습니다.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참 나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내속에서 주님이 살아계셔서 역사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를 변화시키는데 원천이 됩니다. “인간적 노력은 불러 주시는 은총에 힘입은 것입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변화시키시고 당신을 변형의 일치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B.내적 치유 관상에 있어서 내적 치유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랑의 활동에 의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세계에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고 자기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은 순수한 그분의 사랑의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치유 관계입니다. “내 마음이 괴로울 때는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의하여 그 아픔을 토하고 치유 받는 것이 제일 큰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는 믿음 위에 나의 모든 것을 아뢰면 소망가운데 기쁨을 얻고 하나님 을 사랑하는데 주력 할 것입니다. 관상기도의 훈련을 통하여 내적 정화의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어렸을 적에 가졌던 충격적인 정서적인 충격들을 무의식 세계로 내려가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관상함으로 주님과 함께 떠오르게 되고 주님과 함께 치유 할 수 있습니다. “충격적인 정서적 경험들의 휴유증이 당신의 신체와 신경계통에 긴장, 불안, 기타 각종 심리적 방어 체제 등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는 사실이 점점 증명되어 가고 있습니다.” 의식할 수 없는 사건들을 관상기도를 하므로 말미암아 의식의 표면화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로써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C. 관상의 열매 관상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일치이며, 그 분의 뜻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활동에 열매를 가져옵니다.” 관상기도에 있어서는 열매는 필수적인 것이며,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빚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온유, 진실, 그리고 진리(갈5:22), 이 열매는 당신의 협력과 노력 없이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관상기도 속에서 말씀하시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행실이 이어져야 합니다. 관상기도를 하면서 행동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합니다면 올바른 기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자기 뜻을 실현케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며, 기도자는 자기의 행동에 문제되는 것을 고치고 사랑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노력을 기울일 때 바른 기도는 사람의 행실을 변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관상생활을 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 생활이 연결되지 않으면 관상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실생활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도는 주로 너무 추상적이거나 형식적인 기도입니다.” Ⅴ.결론 본문을 통하여 관상기도의 유래와 어원적인 고찰과 이해를 도와 관상기도의 입문으로 들어섰다. 관상기도에 있어서 반드시 유의해야되고 알아야 할 것은 관상기도는 당신가, 즉 기도하는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기도의 원천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의 뿌리하고 있습니다는 사실입니다. 관상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직접 직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의 활동을 통해서 당신은 인식하고 그분의 활동의 당신은 동의함으로 합일에 이르게 됩니다. 묵상을 통해서 관상으로 들어갈 때에 묵상에서는 나의 의지력이 필요하고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만이 존재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그분의 사랑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최대한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나를 부인하고 그분에 뜻에 동의하며 현존의 체험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관상의 대상은 하나님인 것을 인식하고 그분을 통해서 사랑의 원천인 예수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사랑의 관계로 이어져야 합니다. 관상으로 들어갈 때에 많은 장애 요인이 따릅니다. 그러나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지 말고 방해요소들을 가만히 바라보다든지 흘러보내든지 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각, 감정, 환경, 소리, 등의 방해물들을 처리합니다. 보다나은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그 주님 앞에 이 사실들을 고백할 때 또 다른 처리방법으로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존의 체험을 느끼는 순간은 황홀하며 온 몸이 사랑의 감동에 이어져 그분의 사랑의 활동에 참여케 됩니다 |
출처 : 맑은 물 흐르는 곳
글쓴이 : 들풀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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