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에베소에 온 바울
노우호: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서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마치고 다시 갈라디아지방을 다녀거쳐서 부루기아를 지나 에베소로 가게 되는데 그 경로는 사도행전 18장 18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더 여러 날 행하다가 형제들과 작별한 후 배를 타고 일단 수리아로 가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고린도에서 떠나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머리를 깎았다는 내용을 읽을 때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죠?
김성윤: 예
노우호: 아마 바울이 나실인으로 헌신 했던 것 같습니다
나실인은 부정한 일을 행하면 머리를 깎고 결례를 행합니다
겐그리아는 아테네의 맞은편에 위치한 항구입니다 거기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18: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치 아니하고
18: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18: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
갈라디아에 왜 가느냐 하면 갈라디아교회에 편지 보낸 것으로 끝내지 않고 편지를 받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바울은 반드시 확인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설마 잘 되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바울의 생각은 만약 잘못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자세가 바울의 사역 가운데 많이 나타납니다 만일 그들이 잘못되면 보통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일이 잘못되면 돈이나 물질의 손해를 보면 되지만 교회의 일은 생명이 걸려있는 일입니다 육체의 생명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이므로 설마 잘되겠지! 하는 생각은 안 되고 만일(만분의 일)에 잘못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를 거쳐서 부루기아(골로세, 헤라폴리스, 라오디게아) 이곳을 다니면서 제자들을 굳게 합니다 흔들리는 제자들을 잡아서 굳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세상은 끊임없이 세상(사탄)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바람이라는 말도 '영'이라는 단어입니다
바람=퓨뉴마(영)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모두 같습니다
히브리어는 '르하크'
헬라어는 '퓨뉴마'
모두 같은 바람(영)입니다
어떤 바람에 움직이던지 모두 바람에 움직입니다 사탄의 바람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령의 바람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차례로 다녀가면서 흔들리는 제자들을 굳게 세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굳게 서리 위해서는 변하는 것을 따라 다니면 반드시 우리도 변하고 흔들리게 됩니다 변치 않는 것을 바라보고 붙잡고 있으면 변치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치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 바람이 불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게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있도다!)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부루기아 지방을 돌고 있을 때쯤 되었는데 에베소에 난데없이 아볼로라느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볼로는 유대인이면서 태어나기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에 있는)이고 이 사람은 학문이 높고 성경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그러나 학문도 많고 일찍 도를 배워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지만 부족한 것이 있으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니까
아볼로는 그런 놀라운 것을 어디서 배웠냐고 묻게 되고 그들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바울과 함께 있었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아볼로도 아가야(고린도)로 건너가겠다고 해서 가보라고 고린도에 현제 지도자가 없어서 고린도교회가 허전 할 것이라고 권하면서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 아볼로가 가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지도자들이 떠나고 난뒤 바울과 디모데 실루아노 브리스길라 아굴라 이런 사람이 떠나고 나니까 교회가 허전해 있었는데 이런 경우 새로운 교역자가 오므로 굉장히 반가웠겠지요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아볼로는 잘생기기도 하고 언변이 좋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바울은 기록에 의하면 외모가 출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키가 작고 머리는 대머리고 미간이 너 좁아서 눈썹이 거의 붙어 있고 코는 메부리코, 시력이 좋지 않았고 그리고 말이 따따부따 함으로 앉아서 담소하는 것은 괜찮은데 웅변이 부족합니다 이런 것으로 사람들이 멸시하기 쉽지요 외모가 출중하지 않고 사도가 아닌 것 같고 몸이 건강하지 않아 자주 아프고 이렇게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은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기록에 의하면 그의 얼굴이 때로는 천사같고 때로는 사람이더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수준이 낮을수록 사람의 외모를 보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의 내면의 영적인 것과 인격적인 것을 보지 않고 외모만 보게 되니까
바울과 아볼로가 비교가 됩니다 사람을 비교하지 않아야 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비교를 합니다 저번 목회자보다 이번 목회가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비교하게 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불과 1년 6개월 된 교회이므로 아볼로가 건너 갔을 때 2년 남짓되는 교회이므로 철이 없지요 그래서 바울이 떠나고 아볼로가 들어가면서 고린도교회에 아볼로파가 생긴 것입니다 옛날에 바울이 있을 때 병고침을 받았던지 은사를 받았던지 체험을 한 사람들은 바울파가 되고 중간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파도 아볼로파도 아무것도 아니고 진짜는 게바(베드로)라고 하면서 베드로파가 생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모두 무슨 말이냐 우리는 그리스도파라고 하면서 크지도 않은 고린도 교회가 4개의 파가 생겨나서 교회가 아주 큰 어려움을 격게 됩니다
가장 힘들게 했던 파가 바울파인 것 같습니다 현제 교육자는 아볼로이지만 큰 신령한 은사를 체험했던 사람들이 볼 때 바울은 방언도 하고 병을 고치는 은사도 고 하나님의 은사가 보이는데 바울은 강의를 잘하고 말을 잘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언사가 안 보이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아볼로는 성령도 안 받은 사람 같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실 에베소에 와서 하는 말을 보면 세례요한의 세계밖에는 모른다고 하던 것을 봐도 (아볼로가 성령을 체험하고서 고린도에 갔는지는 몰라도) 고린도교인들 중에 신령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판단할 때는 아볼로는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예배시간에 아볼로가 설교하는 시간이 되면 방언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훼방을 하니까 결국 아볼로가 거기 있지 못하고 사임을 합니다 사임을 하고 바울이 있는 에베소로 건너 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쓴 내용을 보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방언하는 사람들은 질서에 따라서 교역자의 지시에 따라 2-3사람이 할 일이고 통역 없이는 교회에서 방언을 하지 말라고 하는 복잡한 이야기가 왜 나왔느냐 하면 여자들의 거센 방해로 아볼로가 사역을 못하게 되니까 그 때에 고린도교회의 특수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바울이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고 바울파라고 하는 여자들과 방언을 받은 사람들이 예배를 어지럽히게 함으로 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볼로가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아볼로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사람이라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고린도교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바울파라고 하면서 목회자의 목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지지한다면서 방언하며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잠잠하라! 방언은 금할 것은 아니지만 방언하는 사람들은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지 말고 하더라도 질서 있게 2-3사람이 하고 교회를 어지럽히게 하지 말라고 지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는 이런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격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면 다 될 줄 알고 있지만 성령이 임한 고린도교회도 이렇게 어려움을 격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목사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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