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을 때 가장 감동이 되는 부분을 찾아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실제라고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해보면
예수님께서 로마황제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정치적, 경제적, 학문적으로 복음전하는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황제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46년에 걸쳐서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한 헤롯왕의 아들로 왔다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당시의 대제사장의 아들이나 석학중에 석학인 가마리엘문하에서 태어났다면 고생도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는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과 제대로 된 동네 분위기에서 자라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신 하나님, 수천년동안 말씀을 통해서, 사사들과 왕들과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통해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그 환경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였습니다.
인간은 처절한 가난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삶의 실체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멸시당하는 자리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면 멸시당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죽음의 위기를 겪어보지 아니하면 생명의 존귀함을 절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사람들이 겪는 가난과 멸시와 죽음을 전부 정직하게 겪어셨으며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을 닮자고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예수를 닮고자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신 예수님은 만나지 않고서 가짜 예수를 열심히 닮으려고 한다면 일평생 속고 사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율법사들, 바리새파의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미워하고 틈만 나면 붙잡고 때려 죽이려고 하였습니까? 그들이 지금까지 만났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과 예수님은 도저히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가지도 동의할 수 있는 구석이 예수에게 없었기 때문에 사기꾼이며 누동자이며 가짜라고 판정하고서 신성모독자로 몰고서 붙잡고서 침뱉고, 조롱하고, 뺨을 때리고, 벌거벗기고서는 온갖 모욕을 가하였으며,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교회안에서 몸과 물질과 생명을 다바쳐 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아내, 자기 남편, 자기 아이들, 자기 부모들, 자기 친척과 이웃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목사는 하나님처럼 모시면서 자기 남편은 집에서 키우는 개보다 우습게 여기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교회일에는 피터지게 싸우려고 하고 목숨까지 걸면서 자기 자녀와 아내를 위해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돈만 벌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한번도 가족과 형제자매들과 친척들과 아웃들에게 복음의 삶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으면서, 돈 벌어서 교회에 와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온갖 기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안의 얼굴과 교회 밖의 얼굴에 너무나 차이가 있는 두터운 가면을 쓴 삶을 태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허상의 삶을 사신 적이 없습니다.
태어나는 그 현장부터 30년동안 사셨던 그 삶의 환경, 그리고 공생애 기간동안 겪었던 환경, 도살장에 끌려다니는 개처럼 두들겨 맞으면서 비참하게 죽어야 하였던 십자가의 현장까지 너무나 리얼하게 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리얼한 환경과 삶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 리얼합니다.
각자 주어진 가정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리얼하다 못해 처절하다고 표현하여도 모자람이 없는 상황이 벌어져 있는 가정이 수없이도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환경만 바라보면 나에게만 왜 이러한 삶이 주어졌는가라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말구유에서 있었으며, 죽음을 피해서 애굽으로 도망쳐야 하였으며, 나사렛이라는 가장 척박한 땅에서 살아야 하였고,
평생을 머리둘 곳이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사셨음을 묵상할 때 비로소 희망이 가슴으로부터 솟아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한번도 낙심하시거나 좌절하시거나 불평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을 그대로 받았던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복음 때문에 매맞고, 굶주리고, 끌려다니고, 도망다니고, 병들고, 지친 삶이었지만, 그는 항상기뻐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 그러한 삶이 가능하였습니까? 그 가슴 속에 리얼하게 이 땅에서 사시다가 처절하게 버림받았던 십자가의 예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유일한 소망은 십자가의 예수님, 부활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발 말 잘 듣는 자에게는 "돈이나 벌게 해주고, 집값이나 올려주고, 자식을 일류대학이나 넣어주고, 사업잘되게 하고" 자기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병들게 하고, 저주나 하고, 망하게 하고, 삼류대학이나 들어가게 하며, 비참하게 만드는" 귀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복을 받는다고 하고 인정받는다고 하면 자기집까지 담보로 잡고서 헌금을 바치면서, 정작 살아 있는 연로하고 힘없고 병든 부모나 가난한 형제들에게는 용돈 몇 백달러도 주지 못하고서 자기 주머니를 꽉잡고 벌벌 떠는 너무나 비인격적이고 저질적인 교인들이 한 두명이 아닙니다.
연로하고 힘없고, 병든 부모와 가난한 형제 속에 임재하시는 실제의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과 전혀 관계도 없는 화려한 교회 바닥의 고가의 대리석과 인테리아장식에 돈을 갖다 바치면 큰 복을 받는 줄로 착각하는 허상에 철저하게 포로된 이 단말마적인 삶이 오늘날 교회의 타락을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만든 가짜 신을 믿으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때리고 멸시하고 십자가에 던져버리고서 철저하게 허상을 따라 살고 있는 유대백성들에게 어떤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46년동안 지어졌으며, 솔로몬성전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던 그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하여 돌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도록 버려두었습니다.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아서 십자가에 던져버릴 정도로 지나치게 열심이었던 그들이 신봉하였으며, 1년에 수백만명의 디아스포라들이 찾아와서 제사를 드렸던 그 예루살렘성전이 철저하게 훼파되도록 내버려 두셨던 분이 바로 우리들이 실제적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똑 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내주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너희 몸은 거룩한 성전이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 는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진정한 성전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몸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가꾸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며, 하나님사랑, 이웃(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사랑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진정한 성전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를 드러내고, 잘난척이나 하려고 하며, 주목을 받고 싶어하고,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며, 지나친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의 삶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열심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그 옛날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던 자들과 거의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종교적인 열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고, 내 가족과 내 이웃 속에 계시는데, 그 예수는 버려둔채, 그 예수는 손가락질하고 삿대질 하면서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적인 행위에만 몰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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