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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행위론자들과의 논쟁 아닌 논쟁을 하는 이유..

내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서 죽음가운데 있는 자였는가? 
아니면  내가 비록 죄로 인해서 원죄가운데서 죽음가운데 있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을 알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는가?  

로마서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알수 있는것이 무엇인가? 있어서  하나님을 알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정치 않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것인가? 의 문제 때문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문제가  알미니안들의 주장이나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이나  틀림이 없다고 말하는것에 우리의 논쟁의 핵심이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그점은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하나님을 알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미 죽은 자들에게는 그런 모든것이 쓸모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사망이 왕노릇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사망한 상태인것입니다.  결국  의를 행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존재  의를 행할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죄로 인해서 분리되었고  우리안에  생명이 없다는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느냐?  인정 못하느냐? 의 문제가 바로  논쟁의 시발점입니다.   구원을 얻는것에 대해서  우리의 공로 곧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공로가 인정되느냐? 안되느냐? 의 문제인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했다?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  누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는데  내가 반응했다.  이것이 옳은것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우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난자처럼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살고 불효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 없이 이땅에 태어날수 없는 존재입니다.  부모없이는 생명을 얻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스스로  믿은자들처럼 하나님앞에 교만할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뭐라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불효한다고 해서 그 자식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효도하는 자녀들은  부모님이 주신 생명  내 몸의 모든것이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것임으로 부모님을 향해서 효를 다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신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알미니안파들은  솔직히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는다는 그  말을 보면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가 스스로 났다고 생각하는 교만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났으니  스스로 죽음도 택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존재들입니다.  자살?  목숨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자살한자가 구원을 잃느냐? 아니면 본질상 구원을 받지 못한거냐? 아니면 불효한것이기에  구원은 받지만 책망을 받느냐? 이런것은  나중에 하나님앞에서 물어볼 질문같습니다.  

그러나 자살은  해서는 안되는 큰 죄입니다.  내 목숨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교만에서 비롯된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이땅에 났으니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교만한 마음 아닐까요?  

우리는 스스로 날수 없듯이 하나님을 믿는것도 스스로 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고 나서야 비로서  하나님을 알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 것이지  복음을 듣고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가  처음에는  자기안에 있는 생명을 깨닫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자기안에 생명을 깨닫고  자기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회개와 성화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택할수 있고 버릴수도 있다면?  우리가 자녀되는 과정을 내가 결정할수 있다는것인데?  과연 그런 결정을 할 권리가 나에게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부모에게 태어날것인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것인데?  제가 볼때  윤회론자들이  전생에 어떻게 살면 다음생에서 어떻게 태어난다고 하는 그런 거짓말들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그들의 거짓말이 더 옳은것처럼 보일수 있지 않을까요?  

이생에 착하게 살아서 다음생에 부자로 태어나거나 아프지 않게 태어나거나.....우리가 태어날것을 이생에서 선택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윤회설이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삶의 주인이 아니고  내 몸이 내것이 아닌한  우리는  우리의  주인되는  것으로 부터 살아가야하는데  과거에는  사망이 나의 몸의 주인노릇했다면  이제는 복음을 통해서 중생하고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살아나서  이제 성령님이 내 몸의 주인이 되었으니 우리는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을 오히려 감사해야지?  왜 여전히 내 몸의 주인은  나인것인냥 살아가는지? 저는 그것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내가 죽고 싶다고 죽을수도 없는 존재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태어날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우리는  어쩔수 없이 이땅에 태어난 존재들인데?  이왕 태어난것  우리가 이땅에서 알아가야하는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참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아가고 그것을 찾았을때는 그것을 감사하면서  그 진리대로 살아가는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 삶인가요?  더이상 나로 인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고  과거와 미래로 인해서 우리가 걱정할것도 없고  오늘 염려 오늘로서 족하고  내일은 내일의 삶이 있음을 또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것  얼마나 평안할까요?  

저의 평안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주인은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거듭나게 하신 성령님이십니다.  나는  부모없이 태어날수 없는 존재이고  부모없이 살수 없는 존재였듯이  하나님없이는 구원을 받을수 없고 하나님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기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할일이 있겠지요.  그것은  돈버는것도 아니고  큰일을 하는것도 아닐겁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나로 인해서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는 일  밖에 나가서 우리 아들이 착하다는 말을 듣는것만큼 더 좋은것이어디 있을까요?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이 땅에서  나쁜놈이라는 말안듣고 착한 사람이라는 말듣는것으로도 기뻐하실것입니다.  

신앙이 이런거 아닐까요?  저는 논쟁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의를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는 말을 할때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화를 내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욕하는 자들을 향해서  그냥 참고 있는것이 옳을까요?   저의 분노를 이해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