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질상 악한 자들이기 때문에 의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없음이 아니라 본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하와를 유혹할때도 하와의 의심은 딱하나 정말 죽을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먹어도 죽지 않으니 안죽는다고 생각했고 그 사과를 아담에게까지 먹였고 아담도 하와가 먹고 죽지 않은것을 보고 자기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먹게된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중요하지 않고 자기의 경험이 중요하게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지요. 하나님은 이 선악과를 먹을 경우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했고 아담과 하와는 영적죽음을 먼저 맞이했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이 육적인 죽음까지 당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켜졌고 인간의 허황된 생각과 경험은 오히려 독이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고 만것입니다.
요즘 근래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런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믿음 곧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확신과 믿음을 내안에 가질경우는 결단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수 없다는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질상 인간은 부패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안에 선한것을 둘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본질상 믿음을 가질만큼의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수 있다"고 지금 믿음있다는 분들 신앙이 좋다는 분들 뛰어나다고 하는 분들 믿음이 좋다고 소문난 조용기 목사같은 분들 과연 그들은 겨자씨 하날만큼의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들이 산을 옮길수 없다면? 믿음이 없다고 봐야할까요?
믿음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가 문제인것입니다. 우리가 두어야할 소망 곧 구원은 이땅이 아닌 내 안이 아닌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하는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살아난것이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요. 내안에 믿음을 두고 확신을 두는것은 불신앙을 가져오게 될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내안에 믿음과 소망을 두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것이고 그리스도에게 맡기는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고민들 걱정과 근심들 죄와 세상의 염려들을 다 그리스도께 맡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요? 온갖 걱정근심죄와 염려들을 다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닙니까? 내가 죄를 지어서 구원받기 틀렸다고 말하는것 그것은 본인의 생각일뿐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신적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이 믿음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점쟁이를 찾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점쟁이들중에 용한 점쟁이는 내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수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능력을 얻기를 구합니다. 병고치는것, 방언하는것, 등등...능력얻기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런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표적을 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과 이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수없이 많은 표적과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과 이적은 예수님을 믿을수 있는 방편이 되지 못합니다.
난 방언을 했으니 구원받은것이 확실하고 성령님께서 내안에 계신것이 확실해? 라고 판단하고 계신다면 좀더 고민해보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내가 확신하고 판단하고 있는것이지 하나님께서 판단하고 계신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판단하시는 경우가 어떤 경우입니까? 바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나타나는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것을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하나님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기도를 합니다. 세리는 어떻습니까? 자기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곧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와 능력을 가지고 구원의 유무를 판단하고 있지만 세리는 구원의 유무를 자기가 판단하지 않고 자기의 있는 모습그대로 하나님께 고함으로서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고 있는것입니다.
믿음의 확신을 어떻게 가지고 싶으십니까? 방언을 하고 싶으십니까? 전도를 하면서 믿음의 확신을 갖고 싶으십니까? 병고치는 은사를 받고 싶으십니까? 내안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으십니까?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자기자신을 포기하고 그리스도께 모든것을 맡기는것입니다.
조건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걸 해주시면 나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조건을 걸때 과연 들어주실까요? 들어주는 경우도 있고 들어주지 않는경우가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실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해서 그 조건을 보고 들어주시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서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수 있는것이 기드온의 기도에서 드러납니다. 기드온을 위해서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기드온의 말도 되지 않는 기도에 응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서 행하여진 일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때 조건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맞는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을 알아갈때 참 그때는 정말 어렸다고 생각하게될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들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싶으십니까? 소망을 하나님께 두십시요. 내가 믿는다라는 말을 삼가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것을감사히 여기십시요. 만약 죄로 인해서 구원의 소망을 잃어버린듯하면 하나님앞에서 회개하십시요. 용서받지 못할죄는 없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은것을 확신하신다면 더이상 믿음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애쓰지 마십시요. 구원은 내가 이루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또한 내 맘에서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구원자 되심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조건을 걸고 받았다면 아마 조건이 사라질경우 선물도 거두어 가셨을 것이라고 착각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을 보고 선물을 준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주신것입니다.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준것입니다. 그것을 의심하지 말고 감사히 받으시고 그리스도 예수가 나의 죄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시고 영원한나라의 상속자로 삼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것.....
그것은 내가 하는것이 아니라 내안에 성령님께서 그것을 알게 하셔서 고백하게 된것임을 기억하십시요. 예수님께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신앙고백을 하게된것은 내가 한것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것임을 깨달으십시요. 아버지께서 하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고 그 고백으로 충분한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고백이 주를 믿는 우리들의 고백이 될때 그 고백이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것임을 인정할때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땅을 당당히 살아갈수 있을 것입니다. 더이상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이교회 저교회 옮겨 다니지 마시고 지금 이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불러보십시요.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아버지이시고 온우주의 창조주 되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돌립니다. 주예수 그리스도시여 어서오시옵소서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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