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아들을 교육하는 문제에 있어서 나는 아내와 많이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투지만 또한편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아들은 이제 17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나이로는 3살이지만 이제 태어난지 일년 반도 안됬다는 것이지요. 내 아들은 하지만 요즘 못하는게 없습니다. 별명이 따라쟁이입니다. 아버지가 하는것 엄마가하는것 습관적인 버릇들을 아이가 따라하다보니....나에게 저런 버릇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니 내 행동을 조심하게 되더군요.
저는 한국성서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를 전공했습니다. 부전공으로 선교학과입니다. 신학교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배운것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쉽게 말해서 소통입니다. 저는 제 자신과 너무나 잘 소통하고 있는데 세상과 너무 소통이 안되서 답답한 사람입니다.
제 아내와도 잘 소통이 안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 사회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아주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대한민국 사람들과 좀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동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그것은 제 아들을 교육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아마 다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아들을 공부하는데 온힘을 투자하지 않을것입니다. 제 아들은 지금부터 20세가되어 사회에 진출할때까지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할것입니다. 그것은 내 아들이 학교에서 꼴지를하든 일등을 하든 그 성적이 인생을 결정짓지 않도록 할것이라는 말입니다.
대학을 가든 못가든 내 아들이 천한 직업을 택하든 고급직업을 갖든 돈을 많이 벌든 적게벌든......내 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이 뭔지를 알고 살아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즐기는것이고 삶은 원래 괴로운것이니 이 괴로운 삶을 역으로 즐겁게 바꾸어 그것을 즐기며 살도록 하겠다는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만큼 괴롭게 인생을 산 사람도 없을것입니다.
내 나이가 마흔하나이니 여기 있는 목회자들가운데서도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닐것입니다. 내가 정상적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서 정상적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면 지금쯤 목회 십년의 중견 목회자가 되어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본 썩을 대로 썩은 그래도 신학교 가운데서 가장 경건하다는 그리고 때묻지 않았다는 한국성서시학대학교에서 느끼는 그 악취는 나에게 목회의 길을 가서는 안될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했고 그것에 지금 나는 감사할 뿐입니다.
어릴적부터 매일같이 맞고 자라온 나로서는 인생은 언제나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는 큰소리가 나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연필들 힘조차 생기지 않을만큼 심리적으로 아주 심한상처를 받은 자입니다.
언제나 몸은 약해서 병을 달고 살았고 건강해진것은 고등학교 졸업할때쯤되서야 건강해졌고 군대에서 비로서 건강한 몸을 얻기는 했는데 군대에서 또하나의 더러운 병을 가지고 전역했으니 그것은 피가더러워서 헌혈도 못하는 적십자사에서 헌혈하지 말라고 권고까지 내려온 그런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몸은 담에 자주 걸렸고 한의사 말로는 60을 넘겨 살수 없을거라고 했으니 내 인생은 20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매일같이 맞고 자라온 사람으로서 이만큼 생각이 건전하게 자란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이 경험들을 내 아들과 공유할것입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겪을 수없이 많은 일들과 고통들과 두려움들에서 이겨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음을 함께 나눌것입니다.
내 아들은 아마 세상에서 왕따가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소통할줄 모르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내 아내는 아들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아이를 울립니다. 물론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것만 하도록 할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아이를 내가 원하는대로 끌고가는것은 더 흉포한 짓입니다.
17개월된 아이가 얼마나 악한생각을 하겠으며? 얼마나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이제 걸으면서 보게되는 세상의 모든것이 다 호기심으로 가득한것인데? 자기 편하자고 아이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태어날때부터 누워만 있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내가 원하는대로 한곳에서 앉아있거나 장난감 가지고 조용히 놀고있기만을 바라는것은 아마 무모한 짓일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어떻게 부모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겠습니까! 부모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과 소통하는 법도 배우지 못할것이고 진짜 고집불통에 외골수에 성질만내는 포악한 자로 자라게 될것입니다.
아이에게 학습지를 공부하게 하는것이야 말로 사고의 능력을 닫게하는 아주 무식한 짓입니다. 1+1=2 이런 단순한 질문과 대답만을 요구하는 것은 공부가 아닙니다. 이건 암기죠! 이게 무슨 공부입니까? 조선시대 수도는? 한양이다? 조선시대때 무슨 수도가 있습니까? 그냥 왕이 있던곳이 한양인것이지요!
고려는 왕씨 조선은 이씨 이거 아는게 공부가 아니지요! 고려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가지고 먹고 살았는지...이런것부터 배워야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님들 아십니까? 고려시대때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신라시대때 화랑이 있었다! 이걸 아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화랑이 왜 만들어졌고 무슨 일을 했고 화랑의 존재가 신라에서는 어떤 존재인지? 이런것들을 아는게 공부입니다.
만약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어 훔쳐왔을때 그 아이가 그것을 도둑질로 알고 가져왔을까요? 무조건 때리고 남의것을 가져오면 안된다는 식의 가르침은 가르치는것이 아닙니다. 이는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것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왜 남의것에 손을 대서는 안되는지부터 알아야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것은 공부가 아니라 암기고 법을 왜 지켜야 하는지를 아는게 공부입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주 미친짓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은 한국어를 잘 해야하고 한국어를 잘해야 그 아이들은 자기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영어로 시작해서 태어나서도 영어로....쭉 영어로 가르치는 아이들까지 생길정도이니......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식의 가르침은 결국 그 아이가 자라서 이 한국을 자기 모국으로 생각하여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세계화속에서 단지 자기 육신이 한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영어열풍으로 아이들을 영어에 몰두케 하는 짓은 이 한국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고 세계속의 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거대한 음모가운데 하나라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속에서 내 아들은 결코 영어를 자기가 한국임을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것을 깨닫기 이전에는 한마디도 가르치지 않을것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영어를 공부해야하면 어쩔수 없겠지만 영어를 공부하기 싫다면 절대로 강요에 의해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없을것입니다. 내 아들은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고 영어가 필요하면 영어 잘하는 사람 쓰면 되는것이니....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한국어로 얼마나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소통할수 있는지부터 가르치는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소통입니다. 그러나 이 꽉막힌 세상속에서 내아들이 혹시라도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있습니다. 그 염려속에서 나는 내아들의 소통의 대상이 되어줄것이고 내 아들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공부의 중심입니다. 교회안에 소통이 없습니다. 요즘은 교회안에서도 서열을 나누고 우열을 나누고 차별을 둡니다. 이건 소통이 아닙니다. 교회안에서는 다 형제이지 무슨 차별이 존재한단 말입니까?
소통이 없으니 십일조의 액수크기로 직분이 나뉘고 신분의 차별이 존재하는것은 이 교회가 소통하기를 포기했다고 밖에 볼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내 아들이 영어를 얼마나 잘하고 학교에서 몇등을 받아오는것이 성도들끼리의 대화라면? 그 교회는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하는것이 맘편할것입니다. 그런 교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지난 교회에서는 바로 이 차별때문에 다시는 발걸음을 두지 않습니다. 생일이 같은 나이의 동갑내기와 우리 아들은 몸무게와 키 하는 행동마다 비교하며 차별을 두었으니 우리는 등록한지 얼마안된 성도이고 그들은 교회안에서 비중있는 위치에 있으니 결국 사람들은 우리 아들을 못난아들로 만들었으니 제 아내가 과연 그런곳에서 견딜수 있었을까? 이것뿐이면 견디겠지만 앞으로 자라면서 또한 얼마나 비교당할것인가? 를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그 교회를 포기했습니다.
이게 교회의 현실이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현실이 아니라 세상의 현실인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과 동화되어 이제 교회인지? 세상인지? 분간이 안가게 된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하는지? 정말 고민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쟁하는 사회에 경쟁속에서 갈등하는 아이로 키울것인지 아니면 협동하고 협력하며 돕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소통하는 아이로 키울것인지? 내 아들을 독불장군으로 1등만하면 모든게 용서되고 예쁘기만 하면 모든것이 다 용납되는 그런 아이로 키울것인지? 우리 기독교인들은 정말 고민해야 할것이라고 봅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소통하지 못하는 어른들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결국 젊은이들을 내쫓고 있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경쟁속에서 살아남는법만 배우다 보니 한가하게 교회나 다닐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아마 전부일것입니다.
내가 아는 장로가 고삼은 교회 나오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했을때? 정말 기겁했습니다. 아니 주일은 쉬어야 하는데? 주일까지 공부하고 교회 나오지 말라고??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가 장로라고 해도 솔직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사껀껀 그 장로와 마찰을 빚었지요.
그는 딱뿌러지는 엘리트를 선호했지만 나는 소통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독불장군처럼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 대장은 할수 없는 그런 자입니다. 그러나 대장과 부하들 사이에서 중간역활은 잘 감당할수 있었지요!
그러나 희안하게 대장급들은 나를 싫어하더군요! 왜냐하면 나는 독불장군이 아니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1+1=2를 가르치는것은 10분이면 되고 나머지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을 주어야합니다.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생각할수 있는 시간.....봄이되면 꽃이피고 싹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여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합니다.
봄이 되면 싹이 나고 꽃이 피는건 당연하거야! 가 아니라 싹이 나고 꽃이피는것이 이러이러해서 꽃이피고 싹이나는거야! 라고 단정지어 해답을 제시하는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해답을 찾아가게끔 그 생각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도 그 생각은 존중되어야하고 틀렸다고 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아이의 상상력은 전부 정답입니다.
이 상상력을 죽이는 이 대한민국에는 참된 교육과 가르침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너희들 이거 다 유치원에서 배웠지! 라고 말하고 대충 수업을 진행하는 그런 학교에서 내 아들이 무엇을 배우고 올지 뻔하기 때문에....나는 내 아들을 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 참 교육을 내 안에서 시도할것입니다.
그것은 내 아들이 하나님과 스스로 소통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는것입니다. 하나님과 참된 소통을 이루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나는 그 소통하는 법을 너무 늦게 배웠으니.....그래도 늦게라도 소통할수 있어서 다행일까요?
아이들의 교육! 이 대한민국 학교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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