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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버려야 신앙이 삽니다. 신학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저는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라는 말을 아주 싫어하는 평신도입니다.  등록한 교회는  몇개교회에 등록을 했지만  다니는 교회는 남포교회입니다.  신학을 공부했지만 신학교는 성경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신학교는 방향과 방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교수가 가르쳐주는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택은 스스로 하는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곧 신학도 어떤 신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내 신앙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저는 칼빈주의 신학을 기독교의 참된 신학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최소한 칼빈의 오대교리는 성경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제 신앙고백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칼빈주의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꼭 필요하고 알아야 하는 기본신앙의 설명서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강력해서  알미니안주의까지도 문제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웨슬레주의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제가 신학을 했고  칼빈주의를 공부했고 역사적 전천년설을 공부했고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내 신앙의 중심으로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이 장로교 신앙에 맞춰져 있는 골수 장로교 신자이지만  신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이 만성사를 운영하면서  신학공부보다 장사를 어떻게 하면 잘할것인가?  어떻게하면 사업을 키울것인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것인가? 를 고민하면서 영업전선에서 열심히 사는것이 내가 살아갈 길이다! 라고 생각하고 공부는 접고 그냥 저냥 아무런 의미 없이 살다가....저를 깨운것이 신사도운동이었습니다. 


저를 깨운 신사도운동이 얼마나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저는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 신앙안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유년부 교사생활에 만족해하며 살아왔던 삶에 신사도운동이 파문을 일으킨것입니다.  이것을 접하고 저는 왜 장로교가 저 신사도운동에 물들어버렸나?  왜 모든 교회가 신사도운동에 빠져버렸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다시 신학책을 펼쳐들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7년정도 지난 후였습니다.   많은 형제들이 저에게 백투예루살렘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백투 예루살렘같은 프로그램들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한 줄기중에 하나일것입니다.  인터콥 최바울같은 사람도 아마 이걸 주장할겁니다. 조용기 목사도 저보다 더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분이지요.  저는 조용기도 싫어하는데.....


지금 너무나 복잡 다단한 신학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칼빈주의 하나로 딱 끝나면 정말 간단하고 쉬운데 말입니다. 왜? 이 복잡한 세계로 들어왔을까?  왜 내가 이곳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을 쉴새없이 하며 욕을 먹어가면서 싫은소리 들어가면서 이런 말을 해야할까?  


한동안 저는 조용하게 지냈습니다. 아니 제 삶이 바빴습니다.  이 만성사는  가을에서 봄까지 바쁘고 더워지는 여름부터는 시간이 조금씩 나기 시작해서  이시간에 저는 바둑을 둡니다.  바둑을 두지 않으면 인터넷 서핑을 하고  남포교회 목사님 설교를 다시듣거나  다른 분들 목사님들 설교를 찾아 듣기도 하고  궁금했던것을 다시 공부하기도합니다. 


저는 칼빈주의 신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제 중심입니다.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신학과 이 신앙의 고백의 터위에  하나를 더 세웠습니다.  남들은 이것을 세워도 되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하는 그것 바로 대체신학의 타도입니다.  대체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단어입니다. 


대체신학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신학입니다.  이 신학의  근본에는 카톨릭이 있고  카톨릭을 개혁해서 나온 루터가 있습니다.  칼빈은?  대체신학자가 아니라 칼빈은 이방인 신학입니다. 그리고  대체신학에 대해서는 칼빈은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그냥 건너뛰었습니다.   제가 만약 천주교인이거나 루터교인이거나 감리교인이었다면  대체신학을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을 입에 달고 다녔을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렸고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떠들고 다녔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신학교의 문제입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칼빈주의자들도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신학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면  신학을 버려야합니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대체신학을 말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지마라!  그러면서 성경의 영적 해석을 강요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으면? 어떻게 영적으로 보라는 건지? 전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쉽게 설명해서  십계명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그냥 우리는 그 문장이 가르치는 방향대로 가면 됩니다.  하나님으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며 부모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도적질 안하고 간음안하고 훼방하지 않고 거짓말 안하고....십계명은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이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말씀 그대로  인정하면 됩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에게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구하러 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그냥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들을 보면 다 직접적으로 그냥 단순하게 해석하면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은 비유정도뿐입니다. 이것도 비유이니  비유로 해석하면 됩니다.  천국은 하며 시작하는 비유들은  천국이 크고 소중한 곳이다. 라고 생각하면 될정도의 간단한 해석만 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하나님의 약속도 그냥 그 말씀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후사가 날것이다. 이스마엘이 아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이삭이 난겁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돌아올것이다.  말씀그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종살이를 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냥 그 말씀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영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고 우리는 성전의 일부입니다.  우리 몸을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겠지요.  영적인 해석이  우리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졌다. 이런식의 단순한 해석만 하면 됩니다. 


평신도 여러분!  목사들이 만약에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라고 말씀하시면 의심하십시요!  성경을 너무 영적으로만 해석해버리는 분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전혀 다른 해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비일 비재합니다.   


그리고 신학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신학이란 그저 성경을 잘 이해하게 하는 학문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쉬운데.....목사들은 자기 밥줄이 걸려서 그런지 몰라도 평신도에게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이건 엄포입니다. 겁주는 겁니다.  겁주는 것에 놀아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실을 말하면 그 진실을 거짓으로 덮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고자 하는 것은  진실을  알면 자기 밥줄이 끊기기 때문에 진실을 덮는 것입니다.   십일조 안해도 됩니다.  주일 성수 안해도 됩니다.  율법을 지킬 필요 없습니다. 신앙안에서 자유를 누려야합니다.  교회 안나가도 구원받는데 하등 지장없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죄인이 아닙니다.  가나안 성도는 오히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를 포기한 분들입니다.  교회가 성전이 아닙니다. 내가 성전입니다.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요!  그들은 자기들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성경해석은 자기들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성경해석은  스스로 하십시요.  내 지식이 10%면 10%만 이해하면됩니다. 내 지식이 50%면 50%만 이해해도됩니다.  내가 이해할수 있는데 까지 이해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신학을 버리는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겸손할때 성경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성경위에 있지 않고 성경아래 있을때 성경을 바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성경을 내맘대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성경은 이해하기 정말 쉬운 책입니다.  하나도 안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해석하십시요. 당신이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것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성령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냥 그렇게 해석하면 됩니다. 이걸 영적으로 해석해야한다.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만 유대인이다. 이러면서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지만  유대인이 된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 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이방인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이방인은 이방인일뿐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면적 유대인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의 이 말씀은  너희가 할례를 받았냐? 할례를 받았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지만 참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교회가 이면적 유대인들이다.  이면적 유대인들이  영적 이스라엘백성들이다.  그렇게 규정 지어놓고  성경을  나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니....전혀 해석이 하나도 안되는 것입니다.  나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규정해놓고 성경을 읽으면 절대로 성경은 해석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장도 문맥도 전혀 어울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를 이방인으로 규정해놓고 성경을 읽어야지만 성경을 이해하기 쉬어집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성경에 보면  탐욕 욕심이 가득하고  훼방하는 자이고  도적질 하는 자이고...이방인에 대해서 온갖 나쁜것들을 다쎃놨으니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라고 부정하고 싶어져서  이방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이방인임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무조건 이방인을 부정적인 사람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며 이방인을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도 있으며  예수님의 조상들 가운데는 라합 룻같은 이방여인들이 조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찾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대해 주셨다는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것을 가득 입혀놓고....너희는 이방인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다.  딱 이렇게 규정해버리니....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성경에서의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  야곱의 후손들은 그냥 허공에 붕 떠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성경해석은 개판 오분전이 되어버리고....그래서 결국 들고 나오는것이  영적해석이라는 방법인것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영적해석을 위해서 신학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는것입니다.  신학은 바로 성경해석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의 오대교리도  알미니안주의도 다 성경해석방식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버리십시요!   신학을 버려야  성경을 바로 볼수 있게 됩니다.  신학안에 갖혀버리면 성경을 바로 보는 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아브라함을 축복하십시요.  그럼 축복을 받게될것입니다. 이 축복이 부자가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에게  이스라엘에게 준 하나님의 축복을 똑같이 주겠다고 하셨다면  이스라엘을 축복하십시요.  이스라엘이 받을 축복이  영원한 기업의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똑같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영원한 기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완벽한 성경해석입니까!   


대체신학이라고 불리는 이것만 버리시면 성경이 눈에 들어오게 될것입니다.  성경해석이 줄줄 됩니다. 그냥 줄줄 성경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이다. 라고 규정하고 이방인의 시각에서 성경을 보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고 이들이 말을 안들어서 때리기도 하시고 벌을 주시기도 하시고 저주를 주시기도 하시고 율법을 주시기도 하시고 복을 주시기도 하시고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기도 하시고.....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참 많은걸 하셨구나......그런데 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그 복을 나에게도 주신다네.....이스라엘을 축복해야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 축복을 그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니까.  그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저주할 이유가 있습니까?  더 사랑하고 축복해주어야지요.  이것이 이방인이 축복받는 길입니다. 


기생라합은 여리고 사람이지만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주고 그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을때 하나님께서 그 기생라합과 그 가족의 목숨을 살려주시고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복을 함께 누리는 방법입니다.  롯도 보아스를 만나서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런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롯은 나오미를 쫓아서 자기나라로 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이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신학을 버리십시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이런 신학을 버리고 더 완전한데로 나아가야합니다.  신학을 버려야 성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제가 신학을 했지만 신학은  고집만 쎄게만들어버립니다.  내가 배운건 이건데......저사람이 말하는건 틀렸을꺼야!  날 가르친 스승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했는데  영적으로 얼마나  성경해석을 잘하는데......박사고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인데....저사람이 나를 틀리게 가르쳤을까?  저사람이 하는 말이 맞지  내가 읽는 성경을 내맘대로 해석하면 안될꺼야....


그래서 성경을 덮고 신학책에 몰두해서 사는것이 신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신학교 4년동안 성경일독하기 정말 힘듭니다. 읽어야할 신학책이 장난아니게 많거든요.  저도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책들을 다 버렸습니다. 왜?  성경해석의 방해가 되었으니까요!  


대체신학을 버리고 신학을 버리고 나니 성경을 너무 자유롭게  자유자재로 해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거침이 없어진 것입니다.  성경해석의 의문점이 하나도 없이 다 해결되어 버린것입니다. 


그래서 신천지고 여증이고 안상홍이고 다 와라!  니들을 다 한방에 무너뜨려줄테니까!  이렇게 자신감을 갖게 된것입니다. 신학은 머리아프게 만듭니다.  신학을 가지고 신천지와 대화하면 절대로 신천지 못이깁니다.  여증도 못이깁니다.  신학을 배운 자가 오히려  이슬람교인에게 토론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절대로 기독교 신학으로 이슬람교 신학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학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면  다 이깁니다.  못이길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릴수 있습니다. 


딱 한마디면 됩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유대인의 후손으로 오게 되어 있는데....안상홍 당신은 유대인입니까?   문선명 당신은 유대인입니까?  이만희 당신은 유대인입니까?   성경에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예언되어있는데   안상홍 당신은 다윗의 자손입니까?  문선명 당신은 다윗의 자손입니까?  이만희 당신은 다윗의 자손입니까? 


이들이 영적으로 자기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입니다. 라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건 영적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혈통적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을 말하는 겁니다.  당신의 피가 유대인의 피가 섞였냐구요!!! 라고 반박해야합니다. 


영적해석을 말하면...문선명도 영적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될수 있습니다.  영적해석으로  이만희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될수 있습니다.  영적해석은 그냥 갖다가 붙이기만 하면됩니다.  그럼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가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대체신학인것입니다.  당신은 한국사람이지 유대인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방인이지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따로 있습니다.  당신은 이방인이지  표면적이건 이면적이건 당신은 유대인이 될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가짜입니다. 


라고 말할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영적해석의 무서움을 깨달아야합니다.  


전 제가 말하는 것 이것을  많이 깨닫기를 바라지만  많이 깨닫지 않아도 단 한명이라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깨달았다면 저는 그것으로도 만족합니다. 


신학을 버려야  신앙이 삽니다.    신학을 버려야 성경을 바로 볼수 있게됩니다.  눈을 떠야합니다.  눈을 뜨십시요!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거짓 신학에서 벗어나 참 신학으로 돌아오십시요! 


당신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이고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과 한몸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한몸이 되어서 그들이 받을 축복을 함께 받게되는 축복을 받은 이방인이라는것을 깨달으십시요!  그래야  수없이 많은 거짓 속임수에서 벗어날수 있게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