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복음이 되려면 삼위 하나님이 일체를 이룬것처럼 복음도 그리스도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를 이루어야 온전한 복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틀렸다는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면에서 볼때는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된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곧 나 혼자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이웃과 그리스도가 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안에서 나만 그리스도와 연합된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연합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하나로 연합되어서 한몸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연합되어 있는 것이 반쪽복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복음의 핵심 당사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복음은 실상 이방인을 향해서 전파된것이 복음이니 이방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이면 100%가 맞습니다.
이 복음이 어디서 부터 온것입니까? 바로 언약에서 온것입니다. 복음은 언약을 뿌리로 하여 왔기 때문에 언약을 빼고 복음을 말할수 없습니다.
곧 언약을 뺀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이는 50%의 복음도 아니고 그냥 0%인것입니다. 복음은 언제나 언약을 뿌리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도 이 언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약에 오실것으로 언약되어 있다는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언약을 바탕에 두고 있음으로 기독교의 복음은 0%복음은 아닌것입니다. 최소한 50%점수는 줘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관계에서 100%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안것이고 이단이 되는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그동안 가르쳐온 복음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만 강조하교 복음은 그리스도와 이방인의 관계만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당사자가 이방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당사자를 빼놓고 언약을 한 하나님만을 강조함으로서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으로 만들어 언약을 받은것을 은혜받은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이 복을 받은 자들이고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하여 언약을 받은자들 택함을 받은자들을 구원받은자들로 만든 오류를 범하고 만것입니다.
택함받은 자들은 무조건 구원받았다고 하는것이 성경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와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적 구원관계 한번믿으면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믿음이 있어도 구원을 잃을수 있다는 주장들이 성경안에서 부딛치는 이유가 성경이 두개를 말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성경에는 이렇게 설명해야할 두 부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존재와 이방인의 존재가 성경에 있는데 이 두부류를 향한 복음의 적용방식이 다르다는것이 가장 큰 문제인것입니다. 곧 칼빈주의는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을 적용함으로서 칼빈의 오대교리가 나오게됬는데 이 교리는 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알미안주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들을 복음에 적용했는데 이게 문제점이 되는것이 이 언약의 말씀들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들을 복음에 적용함으로서 문제가 되는 것들인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택함을 받은 자들로서 이미 날때부터 하나님의 언약인 할례를 받아서 구원을 얻은 위치에서 그들은 삶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나은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음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차별이 없었지만 곧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고 에서도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의 의미에 있어서는 야곱을 중심으로 두고 설명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태어나기도전에 야곱을 택하여 장자로 삼으시고 야곱의 12아들로 이스라엘 민족이 되게 하셨음으로 이스라엘의 택한백성들이라고 할때 이 택한 백성이 바로 야곱의 자손들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야곱의 자손들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자손들이라 칭하는 것은 그들이 택함 받은 백성들이다. 라는 의미로 읽는것이 좀더 정확히 성경을 이해할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말할때 가장 복음을 잘 설명한 책을 로마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가 두개의 큰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부터 8장 그리고 9장부터 16장까지로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1장부터 8장은 복음의 보편적인것을 설명하는 부분으로서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모두 적용하는 부분들입니다. 이부분들을 해석하여 나온 책이 바로 기독교 강요인것입니다.
그리고 9장부터 15장까지의 말씀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을 중점에 두고 복음을 설명한 부분이라서 이 부분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에 두고 성경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책입니다.
이부분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이부분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방인들에게는 특별히 해당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부분을 이용해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방인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수 있다는 말을 하게 되는것을 보게됩니다.
이는 비성경적 주장일뿐만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설명을 제대로 못한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택함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유는 그들을 하나님이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맡은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율법과 언약의 중심이 믿음임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믿음을 행함으로 바꾸었기 때문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고 할례를 받아 언약의 자손으로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자손이 되었다고해서 무조건 다 구원받는다고 하면 과연 하나님이 정직한 하나님 공의로운 하나님 될수 있을까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놔둔다는것은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한 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해야 하는 자들인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언약의 자손이 되게 한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모든 인류에게 복이 되게 하려고 부른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실것이 예언되어 있지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온 이방인에게 빛이 되게하려고 이스라엘을 부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이 되게 하려고 불렀는데 그들이 한 짓은 하나님 아버지를 근심과 고통속에 있게 한것입니다. 오히려 행함으로 의를 실천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행실을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까지 비유를 하면서 그들을 책망했던것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고 하면서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그 말씀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한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수 없게 된것입니다. 이 심판을 성경에서는 저주라고 불립니다. 이 저주는 죄를 범함으로서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서 지은 죄임으로 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율법의 저주를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이 율법의 저주가 이스라엘에게 내려졌고 이 율법의 저주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방인의 때로서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이방인의 때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이시기는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저주의 때였지만 또한 하나님의 복음이 이스라엘을 찾아갔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가면서 그 복음이 온땅에 전파되게 된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복음은 100% 완전한 복음으로 전파되어야 했는데 문제는 그 시기가 유대인들에게는 시련의 시기요 저주의 시기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버렸다고 하는 시기라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온다거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유대인으로 출생한다는 것을 그냥 간과하고 성경에 나오는 복음을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이방인의 관계를 그냥 복음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관계로 폭을 넓혀버리는 바람에 복음의 세밀한 의미와 그 복음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적 사상이 덮혀버리는 문제를 발생하고 만것입니다.
복음은 언약과 떼어놓을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한것은 복음의 적용은 이방인에게 언약의 적용은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언약의 관계가 떼어놓을수 없는 관계라서 이 복음에 언약을 포함시켜버렸고...이것이 문제가 된것은 언약과 관계가 없는 이방인이 복음을 믿음으로 언약과 관계가 있는 존재가 되어버려서 언약과 관계가 있는 이스라엘백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는데 육체적으로는 야곱의 자손이 아니니......들고나온것이 바로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끌고오게 된것입니다.
복음이 언약과 뗄레야 뗄수 없는 이유는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모든 믿는자들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을 믿는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겠다고 약속했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그 언약인 영원한 기업을 그 후손들이 얻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곧 영원한 기업을 얻을수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이유인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는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것이고 약속한 것을 받는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영원한 기업입니다.
복음은 영원한 기업을 얻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열매이며 언약의 핵심인것입니다.
복음이 언약을 빼놓으면 0% 복음이고 언약안에 복음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을 빼먹으면 50%복음이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완전히 제거한 복음은 가짜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맺은언약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알미니안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은 그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자체가 바로 구원을 잃을수 있다는 주장과 하나님과 협력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은 약간의 인간의 행위가 포함되는 구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구원의 핵심에는 율법이 있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의로와질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복음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이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것은 분명히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안에서의 복음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는 분이라는 것과 복음을 믿는자들은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신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약속했으니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모두 구원할것이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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