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란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바뀌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서 변질되고 타락하고 쇠락해지는 교회를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이라는 것이다. 개혁은 바뀌는것이 아니라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땅의 기독교가 회복되려면 진정한 신학을 되찾아야 한다.
한국기독교가 무기력한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세대주의신학을 배격해야 한다고 하는데...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경을 한쪽으로만 보는것은 아주 큰 문제를 야기한다.
칼빈이 주석을 쓰고 성경을 해석했지만 칼빈이 에배소서 3장 6절을 해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개혁주의 신학은 에베소서 3장 6절을 해석할줄 모른다. 그리고 개혁주의는 로마서를 1장에서 8장까지만 보았고 9장부터 16장까지는무시해버렸다.
개혁주의 칼빈주의 신학은 로마서 8장을 해석한것일 뿐 9장의 토기장이 하나님과 11장 언약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가지와 접붙임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무시해버렸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큰 오류다! 이 오류가 변질을 가져왔다.
기독교가 다시 살려면 본질을 바로 찾아야한다.
그 첫번째로 기독교인들이 주제파악을 할줄 알아야한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잘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님을 깨달아야한다. 본질적으로 저주받은 자들이고 하나님을 알수 없는 자들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을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깨달아야한다. 이것이 바로 본질의 회복이다.
당신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짐승같은 존재이다. 라는것을 깨닫는것이다. 쉽게 말해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이 부른것이 아니라 우리는 정말 비참한자이고 최악의 상태이며 절대로 구원을 받을수 없는 존재들이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었다는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깨달아야한다. 그런데 교회들이 전도할때부터 사람들을 너무 띄워주고 존재감을 높여주면서 하나님이 억지로 구원을 준것처럼 만든것이다. 구원받았다는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것인지를 깨달아야 하는것이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자기들이 특별해서 하나님이 택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택한 자들이다 선택된 자들이다. 할례를 통해서 율법을 통해서 자기들은 언제나 거룩해질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들이고 하나님은 자기 것이라는 교만에 빠져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한 열국의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명령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의에 빠져서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섬기는 우상을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제사장 나라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이방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죄에 빠졌으니.....그들이 안망할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이스라엘이 망한것처럼 기독교가 망하는 이유도 자기들이 특별해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택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버림을 받은 자들이 있거늘...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정말 하나님이 무조건 구원을 주었을까?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믿음을 갖지 못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이 대한민국 교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것은 아닌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것처럼 우리 기독교인도 이름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돈을 섬기고 세상을 쫓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일이다.
이렇게 되니 기독교가 세상과 구별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가 더 세상보다 타락하고 돈과 섹스에 탐닉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영화를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계속해서 교회는 타락을 해가는 것이라고 밖에 볼수 없는것이다.
교회안에 알곡들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가라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그 가라지들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데.....알곡들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것이다.
기독교가 찾아야될 본질의 두번째는 하나님의 나를 부른 이유를 찾아야 하는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른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땅에 전파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온땅에 알리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복을 온땅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기독교인을 부른 이유도 바로 기독교인들을 통해서 이땅에 복을 주기 위함이라는것을 깨달아야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나를 부른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복을 주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을 주고 세상에 복을 주기 위해서 나를 불렀다는 것을 깨닫는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복받으려고 하면 안되고 세상에 복을 주려고 해야한다. 교회가 세상에 복을 주어야하는데 세상에 복을 주는것이 아니라 세상을 거지취급하고 있다. 그러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기독교가 찾아야될 본질 세번째는 믿음에 대한 문제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은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이것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조직신학도 교회론도 기독론도 신론도 종말론도 믿음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목사들 조차도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믿음은 우리의 생명이 예수그리스도로 부터 온 생명이며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영원히 살수 있다. 내 생명은 내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며 내 생명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들었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세상 만물은 모두 말로 만드셨지만 인간만큼은 직접 빚으셨고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것이다.
아담에게 준 생명은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하심으로 하와에게 연결되었고 그 아담과 하와가 결합하여 아이를 낳음으로 그 아이가 또한 그 생명을 이어받게 된것이다.
이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긴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사단이 이 생명을 가져가 버린것이다.
이것을 찾아온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단에게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치뤘고(그 이전에는 양을 죽임으로 죄값을 치뤘다) 이제 더이상 우리는 죄값을 치루지 않게 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단에게 뺏기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것이다. 예수님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자기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것이다. 왜? 우리가 가진 생명이 자기것이니까!
자기것을 뺏아간 사단으로부터 그 생명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생명을 우리게 주신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사단으로 부터 빼앗긴 자기 생명을 다시 찾아오시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믿는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사는것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바로 그의 생명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이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온것임을 인정하고 나를 죽이고 내안에 그리스도를 살리는것! 그것이 진정으로 복음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신학이 수없이 많은 논쟁을 벌이지만....그러나 생명을 얻는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의 생명이 예수님의 것이고 예수님이 사단에게서 피값을 주고 사셨고 그 생명을 다시 우리에게 주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목숨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돌려주셨으니....이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믿는 믿음안에 사는것이 참 믿음인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질때라야 비로서 하나님앞에 겸손해질수 있으며 세상앞에서 잘난척 하지 않고 내 생명이 내것이라는 교만에 빠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내안에 있는 생명이 예수그리스도 것임을 인정하고....그 믿음안에 사는 삶이 참 기독교인의 삶인것이다.
인정하자! 나의 생명이 예수그리스도의 것임을 인정하자 나는 비참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나를 구원하신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이것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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