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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마의 충실한 몸종이었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지마의 충실한 몸종이었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후배 녀석에게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녀석이 좀 아는 한 회사에서 이번에 초등학생 대상 해외유학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월 수업료가 2000만원에 오전 수업 이후엔 승마, 골프 등의 ‘과외’가 포함됐다고 한다. 게다가 유학기간이 종료되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소위 ‘이너서클’을 구성해 멤버십을 유지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흔한 사례였다. 그래서인지 여기까지는 들어줄만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업목표’였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현재 형성된 부와 기득권을 대물림하여 자손들이 여전히 부와 기득권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구체화됐다 뿐이지 사실 이것도 새로운 사실은 아니었다.


 


영화 ‘한반도’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면서 서프에도 관련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그중 오늘 대문글 ‘조중동의 영화 한반도 읽기’에 달린 누리꾼 ‘아하’의 댓글을 함 보자.


“웬만한 사람이라면 영화의 설정 자체가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황당하여 이런 이야기를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럴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봅니다. 보통 사람도 자신의 역사와 사회를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영화 줄거리에 모욕감을 느꼈을 겁니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볼게 전혀 없는 쓰레기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예상된 반응으로 그나마 이 누리꾼은 점잖게 표현한 편이다. 한마디로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응을 보임으로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이 누리꾼은 ‘그럴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웬만한 사람’ ‘보통사람’의 역사와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빌어 “사실을 무시하는 영화 줄거리”라고 지적했다. 어디까지가 맞는 말인가.


‘웬만한 사람’ ‘보통사람’이라는 개념은 각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차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을 무시했다’는 점은 수용하기 힘들다.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도 정말 ‘보통사람’이라면 ‘한반도’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안성기 씨가 실제 대통령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적 상상력’에 대한 상식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어떤 대목이 ‘사실을 무시했다’는 것일까. 강우석 감독이 보수층이 말하는 ‘위험한 민족주의’를 부각하기 위해 우리나라 통수권자의 현실을 지나치게 비굴하게 그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순진무구, 완전소중, 평화추구 ‘착한’ 일본을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것인가. 역사에 대한, 현실에 대한 사실 검증이 없었다는 말인가.

 

 


지난해 3월 한국사회를 제대로 흔든 사건이 있었다.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였던 한승조 교수의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성론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일제강점 찬양론 등이었다.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을 역임한 한상범 교수는 이런 현상을 한승조 개인의 돌출발언이 아닌,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파 출신 우익·기득권층의 ‘의도적 반발’이라고 지적했다.


한상범 교수가 제시한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30년간 이 땅을 총칼로 통제한 인물들이 모두 세지마 류조(瀨島龍三)라는 걸출한 일본 우익거두의 ‘충복(忠僕)’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X팔린 일이지만 한국대통령이 한 일본인의 ‘충실한 몸종’이었다. 한 교수는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를 따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산케이신문이 발간한 세지마 류조의 ‘회상록’에는 전두환이 1979년 12·12 쿠데타에 앞서 일본대사에게 ‘거사’를 미리 ‘보고’했다는 점을 공개하고 있다. 큰 틀에서만 보더라도 박정희의 수출주도형 종합상사체제, 전두환의 민심수렴을 위한 올림픽 유치, 노태우의 일본식 내각제 추진 등이 모두 세지마의 원격조정에 의한 ‘작품’이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가장 한심한 사례는 노태우가 기록했다. 퇴임 이후의 처신과 공적과업에 대해 직접 조언을 구했던 노태우는 세지마가 방한하자 술좌석에서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열창해 세지마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충복이라도 이 정도면 ‘격이 많이 떨어지는’ 몸종급이다. 아이디어가 고갈돼 몸으로 웃겨야하는 늙은 광대가 떠오르는 안쓰러운 대목이다.


한국의 식민지화에 대해 ‘당연한 조치’라고 말한 작자가 바로 세지마다.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미국와의 동맹을 기본 틀로 해야 한다”는 이 작자의 주장은 일본우익의 ‘지정학적 전략론’으로 대표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오카사키히사히코의 저서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에도 나온다. 세지마는 미국과 러시아를 가상의 적으로 꼽는 여전한 군국주의자다.


1911년생인 세지마는 지금도 건강하다고 한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 이래 전두환, 노태우 등 정치권뿐 아니라 1990년대까지 한국 경제계도 세지마에게 깍듯했다. 전경련은 세지마를 자문위원으로 ‘극진히’ 예우했으며, 일본군출신으로 박정희 밑에서 주일대사가 된 ㅊ 아무개는 세지마 앞에서 앉지도 못하고 부동자세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MBC에서 지난해 방영한 ‘제5공화국’에도 등장했었다. 전두환이 일본의 협력을 위해 세지마에게 무릎을 꿇고 술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집권을 앞둔 전두환에게 세지마는 “개에게 공을 던져주면 정신없이 놀듯이 국민 역시 적당하고 즐겁게 신나는 일을 만들어주면 정치판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며 올림픽개최를 조언하기도 한다.


 

 

다시 영화 ‘한반도’로 돌아가 보자. 전두환에게 조언하는 세지마의 모습이 갑자기 뭔가를 떠오르게 하지 않는가. 그렇다. 친일인사와 국무총리의 만남이다. 보수언론을 떠올리는 2명의 보수인사는 총리(문성근 역)에게 친절하게 “혹여 국민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진다면 두드려 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게 지도자의 일이지”라고 조언한다.


미국과의 관계는 차치하더라도 풀어야할 한일관계가 있다. 확인된 사례만으로도 십수년전까지 유지되던 국제적 종속관계가 있다. 여전히 공공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겨대는 군국주의 국가가 바로 이웃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본의 주장과 똑같이 생각하는 ‘새끼 제국주의자’들이 여전히 한국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지적한 영화 ‘한반도’에 폭로한 ‘현실’에 보수층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밥 먹고 살게 된 것 같은가”하는 친일파총리의 발언은 관객을 자극하는 ‘과장된 무엇’이 아닌 ‘실재’인 것이다.


그런데도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황당해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럴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거나 “자신의 역사와 사회를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다”고 항변하는 자칭 ‘웬만한 사람’과 ‘보통사람’이 있다. 이 누리꾼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웬만한, 보통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과 ‘진실’ 사이의 괴리를 보게 된다.


자신들의 창업주(?) 내지는 사주(?)를 등장시킨 영화 ‘한반도’의 흥행에 당황하는 조중동과 ‘대를 이어 기득권을 물려주고자’ 조중동을 조종하는 우리사회의 기득권세력, 그리고 이 기득권을 조정하는 일본군국주의자와 그 너머에 얼핏 보이는 미국의 불편함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들의 부화뇌동에 부응한 일부 ‘웬만한 사람’과 ‘보통사람’들은 좀 의아하다.


과거사청산에 저항하는 친일·수구세력에 대한 한상범 위원장의 말이 떠오른다.


“도둑놈이랑 무슨 타협이 필요한가. 독재의 폭정에 대항해 투쟁하던 당시의 기백과 열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억울하게 죽어간 무수한 청년학생과 유수한 인사들의 영령에 더 이상 침을 뱉지 말라. 개혁은 결코 소풍놀이가 아닌 투쟁이라는 점을 벌써 잊어서는 안 된다.”



                                                                                                ⓒ 希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