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스크랩]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빛의열매
2007. 9. 17. 07:42
[열린창]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 ||
"목사는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교우 여러분, 정말 죄송한 고백입니다. 이번 주 제게 주신 아버지의 말씀이 없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준비하려 해도 도전이 없고, 말씀을 제 삶에 적용할 만한 간증도 없습니다. 말씀이 없는 설교는 백해무익하기에 이번 주 우리 교회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셔서 묵상도 하시고 성도의 교제를 풍성히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에 도전이 없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교인들에게 긴급히 전해진 담임목사의 위와 같은 고백을 듣게 된다면, 교인들의 태도가 어떠할까? 진솔하다고 여길까? 아니면 무능한 목사님 밑천이 떨어졌으니 교회에서 내보내어야 한다고 할까? 주일은 글자 그대로 '주님의 날'이다. 목사 또는 목사의 특별한 활동이 주일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 아니다.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찾아온 성도들에게 주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죄 많은 인생들을 향한 설교 말씀일까? 이것이 아버지가 진정 바라시는 바일까? 설교보다는 상한 심령으로 함께 드려지는 기도와 찬양을 기뻐 받으실 주님이 아닐까? 주객이 전도된 예배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배의 회복이 필요한 목사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하는 장로가 주일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를 영상으로 재연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장로는 교인들을 만나 목 세우기 바쁘고 장로질 하는 재미에 하루해가 저무는 줄 모를 일이다. 목사는 설교하는 재미에 강대상을 묘자리로 삼으려 한다.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오르는 목사나 단 아래의 평신도 모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이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목사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도 안되고 신화적인 자리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주일이 목사를 예배하는 날인지 주님을 예배하는 날인지 헷갈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여, 여기가 좋아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되….” 변화산에 올라 환상적 종말과 천상의 즐거움을 맛본 제자들에게 주님은 고통받는 죄인의 몸으로, 상처받은 성도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목사는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종놈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변화산에 머물러 있는 한 아버지에 대한 예배와 섬김을 회복하는 길은 요원하다. 사역 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목사와 장로들이야말로 예배를 회복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하는 병든 신자들이 아닌가? 주일의 사역 때문에 예배를 회복할 수 없다면 토요일이나 월요일, 목사와 장로들을 위한 예배가 별도로 마련되어져야 할지 모른다. 목사 이전에 신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가 주님의 인카네이션을 배워야 하는 이유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주님은 이 땅에 머물며 종의 형상, 고통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살다 가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셨기에 그분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말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는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의 종 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밤이면 섹스도 해야 하고, 성도들이 짓밟으면 억울하고 아프다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가슴 쥐어짜는 연약한 인간이다. 골프도 치고 싶고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평신도처럼 때로 돈에 대한 유혹에 빠져 보고 싶은 오관의 동물이다. 그런 목사의 지위가 하늘을 찌를 기세가 되었다면,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고 했더니 농촌교회의 목회자나 가난한 개척교회의 목회자는 죽지 말라고 해도 이미 죽었단다. 80퍼센트 이상의 목사는 이미 기사회생도 어려운 지경이란다. 정말 그런 분들에게 격려와 용기가 필요하다. 누룩같이 번지는 대형교회에 대한 경쟁적 암투가 작은 교회운동의 본령을 망치는 암초가 된 것은 아닐까?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연고를 그들의 수효가 적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관심은 가지지 못해 마음이 아프고, 누리지 못해 가슴이 시린, 잡초처럼 짓밟힌 그러나 야생마처럼 다시 일어나는 믿음의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신다. 목사의 관심과 사랑, 장로의 헌신과 섬김이 의에 대하여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대하여 녹아지고 죽어질 때 교회가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 양국주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국제대표) |
출처 :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