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가까이 있다!
황희상 / TheVoice 편집장
무엇이 이단인가?
최근 들어 이단 종파가 말 그대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이 거짓되고 사탄적인 이단에 현혹되고 있다. 생소한 신흥 이단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기존의 이단 종파들도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이들의 신앙과 예배 의식을 접해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비정통적인 종교와 예배의식에 몰려들게 하는 것일까?"
왜 이단이 생기는가?
이단의 창궐은 말세의 징조이다. 성경은 디모데전서 4장 1절에서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을 것이라고 이미 예언한 바 있다. 말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헌신하기보다는 이를 거부하고 탈선하게 된다. 이런 '영적 탈선'의 원인을 데이브 브리이즈 목사는 '인간 본성이 어두움을 사랑함', '영적 미숙', '영적 전복', '지적 교만'의 네 가지 요인에서 찾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마음 속에 종교심을 갖고있다. 이 종교심은 수많은 거짓 종교들을 역사 속에 탄생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많은 종교들에는, 그것이 비록 각기 추구하는 신적 존재의 대상이 다르고 교리나 의식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인생의 행복을 누리기 소원한다는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작정하시고 그 뜻대로 섭리하시는 우리의 인생에 만족하는 것이다. 올바른 믿음은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인간의 종교심은 정해진 운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 인생의 운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려고 한다. 이 조절 방법이 곧 종교 의식으로 표출된다. 이런 의식이 민간 신앙에서는 무당종교, 또는 기우제나 산신제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종교 현상과 인간의 종교심이 어울려서 발생한 것이 신흥종교이고 이 신흥 종교의 교주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신격화 되어 추종을 받는다.
이단은 무엇인가
'이단'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신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계의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교회를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비추어서 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1∼5)"
오직 예수만을 따르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 다시 말하자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속적 인본주의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이단인 것이다. 세상 것에 대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는 이단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다음에 제시하는 이단의 보편적 특징들을 기준으로 자신과 자신의 교회를 점검해 보도록 하자.
성경 외 계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이는 다른 무엇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단 종파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후에도 어떤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계시를 주셨고, 그것을 자신들이 기록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보다 더 권위있는 계시로 믿는다. 때로는 보통 사람들보다 '신의 영감을 특별히 더 받는' 지도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의 말은 결코 오류가 없고, 성경과 동일하거나 더 큰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단 교주들은 자기가 영 분별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방언이나 예언을 하는 것으로 위장 하고, 영서를 쓰는 등의 신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추종자들에게도 그러한 체험을 강요한다.
잘못된 구원의 기초
구원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이 땅 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이단은 이러한 심리를 잘 이용한다. 구원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의 개념이 아닌,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결과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추종자들로부터 물질적 착취와 종교적 열심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은 누구나 죄인임을 말하면서도, 그 죄를 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되어야 함을 말하면서, 육체적 자학이나 금식 기도 등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허망하고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불확실한 소망
이단은 세상에서는 누구도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끝까지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치료책을 제시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은 구원을 얻을 만한 선행도, 자선도, 기도도, 예배도 충분히 드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두려움에 항상 사로잡혀 있다. 뭔가 늘 불안해 하는 사람은 '착취'하기가 쉬운 법이다. 이에 반해 성경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는 멋진 약속을 해주고 있다.
메시아임을 자칭
이단 종파들은 그들의 인간 지도자의 인격과 말을 신격화 시키는 데 그 공통점이 있다. 메시아임을 자칭하는 이단 교주들은 자신의 지능과 인격의 힘을 사용해서 무지한 자들을 조종하고 통제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중재자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령을 어떤 신령한 힘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그 힘을 자기가 준다고 믿게 한다. 혹은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교주 자신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게 확실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추종자들에게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다. 단체에서 봉사의 영역을 지정해 주고, 장래를 결정해 주며, 배우자가 누구라는 것까지 지목해 준다.
추종자들은 이들에게서 "내 기도를 믿으라"든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식의 말을 듣는다. 이는 그들이 특별한 은사나 깊은 영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일종의 엉터리 선전문구이다.
교리적 모호성
이단은 성경에 교훈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띄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아무리 들어 봐도 앞뒤가 맞지 않고 혼동스럽다. 그들에게 더 이상 교리라는 용어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차라리 체계적인 주장을 갖추기 보다는 감정적인 흥분을 더 잘 이용한다. 영창의 사용, 높이 쳐든 손, 단조로운 멜로디 노래의 반복, 스타카토식의 몇 마디 말의 반복 등으로 이루어지는 예배 행위들은 반 이성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정 구조를 이용하기 위해 고안된 수법이다. 이러한 장치에 의해 추종자들은 일종의 평온함 또는 감정적 격양, 환희 등을 느끼게 되는데 이단 종파는 이것을 종교적 체험이라고 하나 사실은 정서적 쇼크에 불과하다.
복음의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고 간단한 것이다. 교회가 이것을 올바로 선포한다면 최소한 교리적 모호성 때문에 이단에 빠져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분명한 교리를 솔직히 선포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것이 이단 종파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음은 자명하다.
명확성은 하나님의 복음인데 반해, 모호성은 사탄의 복음이다.
"특별한 발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발견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이 우주 안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단 종파들의 시초는 교주가 받았다는 개인적이고도 출처가 불분명한 종교적 체험이다. 이것이 자칭 '계시'이다.
사실, 어떤 주제에 대해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더 끌리는 사람은 없다. 이단은 이것을 이용한다. 특별한 영적 발견이 있다고 떠드는 종교적인 허탄한 이야기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이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기독교는 사사로운 개인들의 특별한 발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풍부한 증거자료 위에 근거한 것이다.
기독론에 있어서 혼란스러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이단은 예외없이 이 물음에 혼동을 준다. 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 혹은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또 인성을 부인한다.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결국 복음의 참된 일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첫 걸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그들의 정의가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성경의 일부분만을 강조한다
이단 종파들은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성경의 전체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거룩, 하나님의 왕국, 죽음, 은혜, 행위, 율법, 믿음 등에 관한 특정 구절 하나를 취해 그것을 하나님의 전 경륜과 대치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경의 한 인물의 말이나 전체 성경 중 한 권의 강조점에서 매력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말씀의 전체적인 메시지에 관심 기울이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다.
충성을 강요하는 조직체
이단 종파는 추종자 하나하나를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옭아 매어서 일종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이들은 추종자들을 자신의 조직에 완전히 뛰어들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규칙의 그물에 걸리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조직, 개인적인 조직이 많은 것도 이단 종파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조직이 진리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더 조직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절대 진리는 자연스럽게 충성을 유발시킨다는 것을 명심하자.
경제적인 착취
복음이 놀라운 메시지가 되는 것은 누구든지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역사적으로 진정한 교회의 지도자는 돈 문제에 있어서 매우 청렴했다.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은 전혀 다르다. 헌금은 특권과 은사와 능력을 얻는데 큰 효용이 있다고 떠벌인다. 그리고 조직에 많은 헌금을 하지 않는 벌로 지옥의 불이 임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없이 한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의도
이단 교주들은 마치 피해망상증에 걸린 것처럼 자기와 다른 모든 견해를 비방한다. 자기들의 주장과 다른 타 종교 집단을 모두 부패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매도하며,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을 저주하고, 겁을 주며 협박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다른 집단에 대한 테러도 서슴치 않는다.
성경은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사람을 시험해 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의해 교회는 심각한 진통을 겪게 된다.
사랑을 빙자한 타협과 혼합주의
사랑은 교회의 독특한 속성이다. 그러나 사랑이 지나치다 보면 복음을 세속주의와 그릇된 이단의 논리에 타협시키는 정도까지 영적인 적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를 이단 종파는 반긴다. 교묘하게 기존의 성경 이야기를 먼저 꺼내 놓고 나중에 그들의 이단적인 신학적 결론을 그럴싸하게 혼합한다.
혼합주의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단지 이단 종파에 불과한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무비판적으로 성행되는 오늘, 진리 수호를 위해 세상과의 싸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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