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강좌- 사랑학강의
구약성경에 제일 마지막 책 이제 말라기를 남겨 두었는데 구약 성경은 대부분을 우리가 잘못 읽고 있지만 어쩌면 그중에 잘못 읽고 있는 책이 말라기가 아니겠는가.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오늘 교회에서 대게 말라기 하며는 딱 두절만 읽는 거죠.
3장 10절 11절.
그래서 11조만 하면 그저 복을 받는다.
시험을 해 봐도 좋다.
이렇게 모든 교회가 말라기의 주재나 요절이 십일조 하면 복받는 것이 이것이 마치 주재요 그것이 요절 인것 처럼.
뭐 동양이나 서양이나 보수와 진보가 꼭 같이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기서가 말하는 메시지가 하나도 제대로 안 들려서 그래요.
말라기를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 이제 말라기를 공부하기 전에 그 배경을 말라기 선지자가 일 하셨던 그 배경을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데.
한번 느혜미야서 보셨죠?
그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일세 동기 마누스라는 예루살렘 총독 자격으로 말미를 얻어서 오는 기간이 약 12년쯤 됩니다.
그렇죠? 12년.
그 12년 동안 에스라 하고 느헤미야가 함께 힘을 합해 가지고 대단한 일들을 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를 이제 주목 해야 되는데.
첫째는 그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준수 한 것 이고.
둘째는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성경 강좌를 했어요, 성경강좌.
율법서 강좌를 한 겁니다.
물론 오경만 가지고 했겠는데 그 7월에 이르러서 온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가지고 새벽부터 오전까지 성경 말씀을 율법서를 읽어 주고 설명해 주고 그래서 백성이 다 깨닫게 되었고 그걸 깨닫게 되자 온 백성이 다 통곡을 했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에스라 느혜미야 서에서 주목을 해야 되는데 에스라서에서 주목할 부분은 성전 건축이 이루어 졌다.
스룹바벨 성전 건축이 이루어 진 것이고.
느혜미야 에서는 그 느헤미야가 와서 그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 중건 한 것이고 그리고는 이제 성경강좌를 했다.
이런 건 아주 참 중요한 대목인데 그 외에도 이제 뭐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겠죠.
근데 성경은 그런 거 여러 가지 일 한 거 전혀 우리에게 소개 하지 않고 특별히 그 성벽을 중건 한 것과 성경강좌 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십 이년이 되자 느혜미야가 다시 그 자기를 파송해 주셨던 페르샤 황제에게로 돌아갑니다.
원래 12년간 총독 자격으로 임기가 12년 잡아 가지고 왔기 때문에 페르샤로 돌아갔어요.
저 생각엔 아마 이 느혜미야가 성품이 워낙 철저한 분이고 완벽한 분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12년 되는 날 도착 했을거 같아.
아마 저 생각에는 하루도 모자르지도 않고 남지도 않게 정확하게 12년 되는 날 도착하지 않았게는가.
제가 보기에는 그 느혜미야 라는 분이 인품이 그래요.
그래서 이제 왕을 찾아가서 엿듣게 하면 이제 밖에 있는 그 내시가 예루살렘 총독 느혜미야 입시 옵니다.
이렇게 이제 보고를 하겠죠?
그러면 들라 하라. 해서 이제 들어갔단 말 이예요.
왕이 얼마나 반가 웠겠요
느혜미야를 그렇게 아끼고 했는데 이 사람이 12년씩이나 있다 오니까 얼마나 반가워했든지.
이게 누구야 이게 누구야 이게 누구야? 음~~
느혜미야 아닌가?
근데 팍 늙어 버렸어 이렇게.
고생이 많았던 게야 그렇지 않은가?
밖에 아무도 없느냐? 항상 있죠.
오늘 주안상 내봐라 내가 느혜미야 하고 마셔야 되겠다.
그래 이 사람아 술과 친구는 오래 된게 좋은거야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그 왕이 반겨하고 기뻐하는지.
가만있어 그러면 우리가 이게 얼마만이지?
폐하 제가 12년 임기로 갔다 왔습니다.
그렇지 12년이지.
이 사람아 12년이 뭐야 그래 응?
난 그저 한 몇 년 만에 올줄 알았더니 12년을 써 가지고 날 그렇게 곤혹스럽게 했잖아.
그래 다시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
그럴 때는 네 해야 합니다,
저는 또 내일 가 봐야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 말은 왕이 그렇게 반겨하고 사랑스러워 하고 하면요.
그땐 가만히 있는 거야.
그런 사랑은 다 받아들이고.
자기 할 말은 다른 시간에 해 다른 시간에.
지금 왕이 기뻐서 왕이 즐거워서 왕이 이야기 할때 자기 이야기 꼬박 꼬박 이야기 다 하고 그러면 안되요.
여러분 최소한 그런 센스는 있어야 돼.
그저 묵묵히 있다가 그래 그 뭐 친구들 좀 찾아 봤는가.
제가 오늘 지금 막 도착 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 뭐 틈틈이 들리라고.
사람들을 인사 할 데도 많겠지.
그래 느혜미야가 물러나와 가지고 이곳저곳 이사람 저사람 인사를 할곳 다 인사하고 돌아 보고 그리고 이제 다시 왕을 찾아 갔습니다.
그래 음, 다들 많이 변했지.
그래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느혜미야가 폐하.
페하께서 기뻐하시고 제가 목전에 은혜를 입었사오면 저를 다시 예루살렘에 보내 주셔서.
뭐야 또 가겠다는 거야 아 그런 거야?
아이고 이사람 참 이거 못 말릴 친구네 이거.
아 자네 없으면 사람이 없나 거?
예 사실 뭐 에스라 선생님 뭐 하늘나라 가시고 제가 혼자서 이렇게 돌보다가 왔는데 예루살렘에 아직은 지도측이 그리 중간층이 두텁지가 못해서 제가 하던 일이기 때문에 제가 마무리를 하는게 더 좋을거 같습니다.
그래 뭐 자네 마음이지.
꼭 가겠다면 누가 막을 수가 있겠나.
근데 이번엔 저번처럼 그리 오래 있지 말고 금방 와, 응?
뭐 필요한 거 없어?
뭐든지 이야기 해봐.
이 사람아 내가 자네 하나쯤 도와 줄수 있어 얼마든지 이야기 해봐.
그래서 뭐 아주 백지 수표 한 장하고 그래서 느혜미야가 올때 또 상당히 또 제정적인 어떤 후원을 가지고 그리고 이제 돌아 왔을 거예요. 예루살렘에.
그러면은 예루살렘에서 페르샤까지 가는데 한 5-6개월 걸렸을 것이고 가서 머무는데 한 뭐1-2개월? 그거 정확 하지 않습니다.
어떻든 그리고 다시 오는데 또 5-6개월 이리 걸리면 빠르면 1년 만에 돌아 왔을 것이고 조금 뭐 지체했으면 1년 반 정도.
아마 그 이상은 아닐 겁니다.
일 두고 간 사람이 그렇게 뭐 여유 있게 다닐 사람 같지는 않고 한 1년에서 1년 반 안에 다시 갔다 온 거예요.
근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느혜미야가 떠날 때 다시 올거 라고는 생각을 안했어.
왜 냐면 자기 사제까지 다 가지고 그렇게 고생도 하고 그 고생하고 그렇게 다 욕을 먹어 가면서 그렇게 일 했는데 그 편안한 페르샤에 좋은 자리 가면 그만이지 뭐 다시 오겠나,
하면서 사람들이 다 참 좋은 사람 이였다 솔직히.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말이야.
까다롭죠, 워낙 철저한 분이라.
여러분 그렇게 윗사람들이 까다로우면 밑에 사람들 좀 힘들어요.
근데 보내 놓고 나면 시원섭섭하고 좀 추억은 대게 아름답게 그렇게 기록 되는 법이라,
그래서 참 좋은 사람이다 했는데 다시 올거 라고는 생각 안했죠.
아 근데 느혜미야는 가서 페르샤 황제의 제건을 받아 가지고 다시 온거 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 다시 왔을때.
세상에 그 고생 하고 자기 사제를 가져 와서 다떨어 바치고 다시 오다니 세상에.
그러면서 느혜미야가 와서 보니까 뭔가 다 주저주저 하고 뭐 머쓱하고 다 뭔가 낌새가 이상한 거야.
이 뭘까뭘까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세상에.
그 느혜미야가 성벽 중수할 때 그렇게 훼방하고 반대하고 협박 공갈 모략중상하고 그 나쁜놈 그 산발랏과 도비야 하는 놈이 있었는데.
그 도비야 라는 놈이 하나님의 성전에 큰 방 한 칸을 비워 가지고 사무실을 내 놓고 둥지 틀고 앉았어, 미친놈이.
그래 느혜미야가 뭬야? 하고.
그냥 선 걸음에 달려 가가지고 도비야 끌고 나와서 막 멱살 치켜들고 들었다 놨다 몇 번하고 막 마당에 페데기를 쳐 버리고.
그리고 이제 그 안에 있는 비품이나 무슨 다 꺼내 가지고 다 불 살질러 버리고.
지도층 사람들 다 불러 가지고 어떻게 이런 일이 다 벌어지냐 어떻게 뭐 어떻게 된거야 도대체가.
하고 호통을 치니까,
성전 관리가 제대로 안됐다 그래요.
성전 관리가 왜 안돼나 왜?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이게 다.
레위인들 다 어디 갔어?
다 먹고 살길 찾아서 전리로 다 흐터져 갔다는 거예요.
이런 이게 무슨 소린가 지금.
그래 이제 차근차근 물어보니까.
에스라 세상 떠나고 느혜미야 페르샤 가 버리고 그 1년 사이에 국민들은 십일조도 안 하고 첫 열매도 안 가져 오고.
그러니까 레위인들 먹고 살길이 없죠.
성전 관리인들이.
그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어른이 없으니까 뭐 누가 통제도 안되고 뭐.
그래서 결국은 성전에 관리하던 레위인 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서 이리저리 다 전국으로 흐터져 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느혜미야가 당장 사람을 풀어 가지고 도망간 레위인들 다 잡아 와라.
몽땅 잡아다가 원 위치해 일단.
하고 백성 전체를 불러 가지고 총회를 합니다.
총회를 하면서 여호와의 율법대로 정상적으로 십일조와 첫 열매를 드리기로 여호와의 이름을 가르켜 맹세를 다 시켜 전부다.
그 맹세를 하면서 그 느혜미야가 자기 옷에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털 털면서 만약에 모세의 율법대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그 기업에서 이와 같이 떨쳐 내시 리로다.
하면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털 터는 거예요.
그 저줍니다 저주.
자 그런 이야기가 방금 우리가 읽었던 느혜미야서 끝에 있거든요?
근데 읽고 나서야 그런 말이 있었는가 말았는가 뭐.
자 이것이 느혜미야서 끄트머리에 있는 그 사연 들이 말라기서의 배경이 됩니다.
말라기서가 기록된 배경이라.
그런지 한번 여쭤 봅시다.
그러면 느혜미야 라고 해서 평생 동안 아니면 영원토록 이스라엘 백성 곁에 있을수 있습니까?
거 안 되잖아요.
세상을 떠나든지 페르샤 소환돼 가든지 할 거 아니요?
그러면 느혜미야 마저 예루살렘을 떠난 이후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신앙과 생활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정도를 생각한 후에 말라기를 읽을 수가 있어요.
근데 느혜미야 책이 느혜미야서가 있는 위치하고 말라기서가 있는 위치가 전혀 상상도 못할정도 딴데 붙어 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느혜미야서를 읽고 난 후에 그 배경을 이해하고 말라기 읽어야 되는 그 개념 자체가 아예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라기서를 도무지 이해 못하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십일조 하면 복 받는다.
그것밖에 안 보이는 거라.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지만요 이 말라기서에 이야기가 십일조 하면 복 받는다.
그런 말 하려고 쓴 책이 도무지 아닙니다.
자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자존심이 상해서도 견디지 못해 해요.
전에 바벨론 교육을 가기 전에는 그 몇 백년간이나 성경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 몰라서 그랬잖아 몰라서. 그렇죠.
바알이 하나님인지 아세라가 하나님인지 아스다롯이 하나님인지 밀곰이 하나님인지.
케모시가 하나님인지 몰랙이 하나님인지 뭐가 하나님인지 알수가 없었어 그때는요.
근데 이제 바벨론 교육을 통해 가지고 알았잖아요.
이방나라 다른 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상천 하지의 유일하신 하나님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창조주 하나님이고 권능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복주신 하나님 뭐 다 알았어.
그리고 심지어 에스라 느혜미야 때 성경 강좌를 해 봤잖아.
아니 그렇게 까지 해 놓고 에스라가 없고 느혜미야 같은 감독자 없다 해 가지고 신앙 생활이 엉망이 돼 버리니까.
이제는요 하나님이 그냥 지칠 대로 지쳐 버리고 그냥 말도 하기 싫고.
말도 그래 말이 통해야 말을 할 맞이 난다든지 뭐, 그렇지 않아요.
무슨 말을 해도 말이 안 통하면요 말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앞으로 교회 가서 여기서 들은 진리를 조금 꺼내 보고 싶어 가지고 잎이 막 꺼내걸 그렇죠.
꺼내봐, 아무도 안 들어 줄 거예요.
들을 귀가 없습니다, 지금 교회가.
그래서 다 잎 닫아 버립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고 저도 마찬가지고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상대방이 말을 알아듣고 또 옳은 거를 옳다고 수용을 하고 해야 말을 할수 있는 거지.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면요 말을 못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일간단 한 거는 뭐 다시 진멸하고 멸절하고 진멸하고 죽여 버리고 끝장내 버리면 제일간단 하죠 그냥.
그리 할라 해도 하나님은 또 자존심 상하는 거라.
아 전능하신 하나님이 돼 가지고 우리나라 강원도만한 그 이스라엘.
그때 이스라엘 우리나라 강원도 만 하도 안해요,.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뭐 그 해 봐야 십만 명도 체 안 되는 그 조그만 그게 맘대로 안되 그게.
십 만명 같으면 뭐 조그 만한 도시, 한 개 만큼.
나라가 그 하나밖에 안되.
진해시나 밀양시나 아주 조그마한 시.
겨우 시 되는 정도 고 만큼 밖에 안 되는 그 이스라엘 백성 이게 지금 마음대로 안되요.
이렇게.
그 왜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느 냐면요?
이게 인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나 말이나 무슨 맹수나 물고기나 이런 거 다 맘대로 됩니다. 하나님께서.
근데 그 사람이라는 것은 말로 해서 말이 안 통하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참 뭐 하나님 고민 하시다가 마 죽여 버리든지.
이혼을 해 버리든지.
하다못해 별거를 하든지.
어떻든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기는 만나고 끝장 낼거 아니 예요, 마지막으로.
끝장을 낸다는 말을 하고 끝장내야 되니까.
그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하고 험악한 상황이 말라기의 배경 이라는 거예요.
말라기서가 기록된 배경이 되요.
그러고 이제 만났다 손치자,
마지막으로 만난 거예요.
오늘 이야기가 진행 되는 거 봐 가면서 죽이든지 별거 하든지 이혼 하든지 뭐 하나 할텐데 우선적으로 결정 지지 않은 체로 대화를 해야 되는데.
그렇게 마주 앉으면요?
분위가가 안 좋게 되면 서로 말 안 합니다 잘.
처음에 누군가 말을 꺼내야 되는데.
그래도 누군가 말을 해야 되죠.
여러분 만약에 부부가 오늘 때려죽일 건지 이혼할건지 별거 할 건지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러면 누가 먼저 말을 시작하나.
남자가 시작 하는 거요 여자가 입을 먼저 뗄 거요. 응?
아 그럼 누가 아쉽냐고 그래.
여자는 아예 말도안 합니다.
새파랗게 굳어 가지고 빼딱하게 앉자가지고.
결국은 또 약한게 남자라.
하나님이 또 먼저 말을 꺼냈어요.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거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을 꺼냈어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이 대답이 뭐냐 면요?
뭬요?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 했습니까?
하고 뎀벼 들어요.
자 이리 보세요.
여러분 창세기부터 여기까지 왔으니까 여러분 한번 여쭤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 했어요 안 사랑 했어요. 얼마나.
사막에서 포도를 만난 것 만큼 사랑했다 그래요.
여러분 사막 길을 가다 포도를 만나면 얼마나 반갑겠어요.
무화과나무를 심어 놓고 5년 만에 첫 열매를 딴것만큼 사랑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첫 사랑 이거든, 첫사랑.
어느 민족도 하나님께서 안아 본적도 없고 품어 본 적도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그헐게 사랑 했어요.
여러분 그 예레미야서라는데 보면요?
몇 번이나 때려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뭘 생각하며 참냐 하면.
그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처음 데이트 할때.
그걸 생각 하면서 내가 너희를 추억 한다.
안 때려 죽일 려고.
그 광야에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전갈이 있는 땅 불뱀이 있는 땅 그런 땅에 묵묵히 따라 와준 그걸 너무 그때 하나님이 가슴이 설례 였던 그때는 생각 하면서 그때를 지금의 분노를 삭이고 있다는 그런 얘기를 해요.
여러분 하나님이요 꼭 우리 인간 같습니다.
육체가 아니고 영 이신것 뿐이지 그 인격에 희로애락이요,
우리 인간과 꼭 같습니다.
그대로 인격적인 분이예요.
그리고 그 뭐 좀 표현이 그렇습니다만.
꽤 감정적입니다. 감성이.
대단히 만감한 분이예요.
말 한마디만 해도 하나님 상처가 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두마디 하는 것도 하나님 마음에 상처가 된다고.
그래서 참 하나님께서 그만 딱 이스라엘 백성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 했 나이까.
그 말 한 마디 하니까요.
하나님 천지가 아득하고 눈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노랗고 그냥.
그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또 충격이 됐던지요.
천년을 사랑해요 천년을.
천년이나 천 오백년을.
아브라함서부터 하면 천 오백년.
모세부터 하면 일 천년을 하루같이 눈동자 같이 그렇게 사랑 했는데.
일언지하에 묵살해 버리는 거예요.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 했나이까?
여러분 그 한 마디가 하나님께 얼마나 충격이 됐는지 그날 이후로 하나님이 400년 간요.
말문이 닫혀 버립니다. 말을 못 해요.
그런 기가 막힌 책이 말라기란 책 이예요 이게.
저는 아직까지 말라기라는 책을 제대로 알고 설교하는 목사를 단 한사람도 본적이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게 왜 그러냐면 구약 성경을 제대로 안 읽기 때문에 안 보입니다.
말라기도 안 보이고 에스겔서도 안 보이고 예레미야서도 안보여.
예레미야서 그 큰 책에 한 구절 딱 아는게 내게 부르짖어라.
그럼 내가 네게 응답 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분명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
그거 한절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죠.
그래 가지고 정통 이라는 거예요.
성경을 그런 식으로 알면서도 정통 이라고 뻑뻑 우기는 거야.
하여간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 했노라 하는 한 마디가 일언지하에 묵살 됐을때
하나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아무도.
여러분 그러고 나서 이제 말이 뭐 이쪽이나 저쪽이나 말이 시작하면요.
또 티격태격 하고 뭐 왕배덕배 하고 옥신각신 하고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이제.
여자가 또요 말로하면 지도 안 하죠.
지면 여자도 아니지 또.
꼬박꼬박 또 대꾸하고 대들고 목소리가 커지고 언성이 높아지고 하면 뭐가 날아 오는가 또.
한 마디도 안 져요 한 마디도.
뭐라고 하든지 간에 꼭꼭 대들어 또.
그러니까 이제 뭐가 날아오는 거예요.
뭐가 날아오느냐?
ufo가 날아와.
미확인 비행물체가 막 날아다닌다고.
눈탱 이는 밤탱 이가 돼 버리고 벌써,
와장창 쿵창 하면서 거울은 다 깨져 버리고,
그래 가지고 거울이 깨진걸 보통 우리가 파경 이라 그래. 파경.
거울이 깨졌다.
부부가 파국을 맞이해 가지고 거울이 깨질 정도로 싸웠으면 끝난 거죠 이제.
그래 결국 하나님이 도망을 갑니다.
왜 하나님이 도망을 가느냐.
무서워서 도망 가는게 아닙니다.
그 있다가는 살인이 나거든요.
계속 대들면.
계속 쫑알거리고 대 들어 봐요 살ㅇ니 나는 거죠.
그래 안 죽일 려고 하나님이 도망을 가, 안 죽일 려고.
그 도망을 가면서 내가 오늘 딱 끝장을 냈으면 좋겠는데 내가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이 돼 가지고 그럴 수도 없고.
언젠가 내가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을 이렇게 할거다.
그래서 내가 이러기 전에 한번만 더 기회가 줄거야.
그 한번이 뭐냐?
때가 되면 내 종 엘리야를 보내겠다 엘리야를.
그 엘리야가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도 자식의 마음을 아비로 돌이키게 할텐데.
돌이키면 다행 이지만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고 구약의 문이 쾅 하고 닫혀 버립니다.
그리 닫혀 버리고 나면요 400년간 안 말도 없습니다.
예언자도 안 보내고 종들도 안 보내고 뭐 물어 가든지 업어가든지 보쌈을 하든지 죽든지 살든지 너 맘대로 해라 그냥.
하나님 성의를 그렇게 번페 스럽고 귀찮고 힘들면 그만둬 그냥 다.
차라리 이런 식의 그런 무성의 하고 정성도 애정도 없고 경건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공경도없고 사랑도 없고.
그런 형식 적으로 건성으로 드린 제사 같으면 차라리 누가 성전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님이 자존심 상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책이 말라기 란 책입니다.
그러면요 어찌 됩니까?
그러면 모세 때에 그 출애굽에 감격으로 모세가 노래하고 미리암이 춤추고 그렇게 시작 되었던 구약의 이야기가 그 서글픈 종말 말라기로서 끝이 나야 되는 거예요.
이게 구약 전체 이야기 예요.
그러니까 그 크신 하나님 그 전능 하신 하나님이 한 십만명 밖에 안 되는 지금 바벨론 포로 갔다 와서 한 십만 명도 체 안될 거라.
그게 마음대로 안 되요.
뭐 지금은 마음대로 되느냐? 더 안 되지.
여전히 성경 말씀이 바르게 선포가 안 되고 바르게 인식이 안되고 바르게 이해가 안되고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이 없고 바르게 가르치는 신학교도 없고 바르게 가르치는 교회도 없고.
그러니까 여전히 하나님은 교회에서 왕따입니다.
목사가 하나님 노릇 해 버리거나 아니면 온통 그저 귀신들 난장판 되거나.
멀쩡한 집사를 자빠뜨리고 낄낄대고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막 조명을 사이킬 델릭 하게 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귀신들의 난장판이라. 교회는 알수가 없어요.
여러분 사람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런 것 처럼 교회에 하나님 말씀이 돌지 않으면요,
하나님 말씀의 진리가 흐르지 않으면요 교회는 죽는 겁니다, 이미다.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 됐는지를.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면 뭐가 잘못 됐는지 그 명명 백백이 나올 텐데 어느 교회도 보수나 진보, 진보나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할것 없이 성경을 바르게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
하나님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한마디로 못 알아들어요, 한 마디도.
자 창세기부터 여기 까지 왔는데 여러분 여기 창세기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여기서 들은게 아마 백번 옳은 얘기 거든. 다 중요한 얘기고,
근데 여러분 99프로가 교회에서 못 들은 얘기 아닙니까 다.
그런 99프로가 안 통하면 안 통하는 겁니다.
여러분 유리 몸에 피가 99프로 안 돌면 죽는 거죠.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 라는 거예요 죽은 자.
오늘 교회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안 들려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리고 안 보이고 감각도 없고 죽었으니까.
잠들었거나 죽은 거야 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게 너무 잘못 배웠습니다.
서양 선교사 서양 신학자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뭘 전해 준게 딱 지금 현제 우리 교회에서 하는 그런 정돈데 지금은 우리가 믿는 그런 정도도 안 믿거든 서양 사람들은요.
그런 형편없는 거를 우리가 배운 거예요.
다 내려 놓고 새로 시작 해야 되요. 기독교를 완전히 새로 시작 해야 되요.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전부 다 새로 배워야 되요.
아예 어설프게 배운 다 없애 버리고 그거.
거 뭐 미련 가지고 있을 만한거 없습니다 사실요.
다 내려 놓고 백지화 하고 새로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까지 한 절도 빼지 말고 새로 배워야 되요. 모든 교회가.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 모든 성도들이 전부 새로 배워야 됩니다.
그 정도로 오늘 한국 교회가 오늘 기독교가 세계 모든 기독교 다 전체로 잘못 돼 있다는 겁니다.
카돌릭만 잘못 된게 아니라.
이슬람만 잘못 된게 아니리 유대교만 잘못 된게 아니라.
기독교도, 이단도 사이비도 똑 같이 정통이라 해 봤자 아무 근거도 없어요,
아마 정말 그런가 하면서 지금도 아마 긴마 민가 할 거예요.
정말 이거 정말 그런 책인가 하면서 수용이 안 될 텐데 말라기 1장을 펴봐요.
말라기 짧은 책이라 읽어 보겠습니다.
말라기 1장
1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차라리 하나님도요 유대인들에게 멸시만 받는데 밖에 나가면 하나님이 존경 받는다.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장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종자는 자식을 말합니다, 자식들.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언약이 레위기입니다. 레위기.
이게 항상 있어야 되. 또 5절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자 레위기 라는게 저주 받게 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고 평강을 얻게 하는 그런 법이란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가 율법을 이야기 할 때 루터 같은 사람은요?
율법 이란 것은 우리가 심히 죄인 된 것을 깨닫게 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
생각이 그것 밖에 안 가는 거라. 루터가.
그러나 칼빈 같은 분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율법은 구원 받은 이후에 성화의 체찍으로 여전히 유력하다.
이렇게 이제 한 걸음 더 나아 갑니다.
대부분 이 어중제비 얼치기 복음주의자 들이 율법은 필요 없는 것 처럼 말 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하는 말을 오해해서 하는 거라.
사도바울이 율법이 간협한 것은 죄를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 말이 있어요.
그것은 율법의 목적론적 기능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렸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우리를 정죄 하려고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주어진 거예요.
건강하게 거룩하게 복 되게 생명을 얻고 평강을 얻고.
그런 율법의 그 목적론적 순 기능을 보지 못하고 결과론적 역 기능만 보고 한마디 한 그걸 갖다가 그라프를 만들어 가지고 그 안에서 한 발짝도 넘어서지 못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요 자기주의는 잘못 된 것이고 복음주의는 건전한 거라는데 복음주의도 꽤 편협하고 졸속하고 옹졸하고.
제대로 보지 못 했어요. 율법의 기능을.
그러니까 율법을 모르니까 무법천지 같으고 성도들이 방자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도 모르고 거룩한 삶이 없고 이렇게 교회가 변질되고 타락 하는 거예요.
여러분 솔로몬같이 지혜의 은사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도 율법을 모르니까 타락을 하는 거예요.
삼손 같이 능력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율법을 모르면 타락 하는 겁니다.
기드온 같이 욕심도 없고 사심도 없고 참 인품도 훌륭한 그런 사람이라도 율법을 모르면요,
무슨 또 아내를 여럿이 해 가지고 첩도 막 거느리고 아들을 칠십 명이나 낳았는데 하루아침에 다 죽었잖아 한 반석에서 다.
끝이 안 좋다는 거예요.
법이 없고 진리가 없고 윤리가 없으면요 언제나 끝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목적론적 순 기능 이라 하는 것은요?
한없이 아름다운 거예요,
이 같이 큰 유업을 법을 이렇게 아름다운 법을 선물로 받은 민족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하고 신명기에서 이 법이야 말로 이스라엘 민족이 최고의 복이다.
그런데 그런 거 못 봅니다.
교리에 딱 갖힌 사람은요.
교리 옆에도 모르고 교리 앞에도 뒤에도 모르고 눈이 멀어 버려요 전부다.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거기 줄을 그어 보세요.
레위와 세운 레위기가 생명을 얻고 평강을 얻는다.
어떤 사람은요?
생명을 얻었는데 복을 얻지 못 하거나 생명을 얻었는데 평강이 없는 사람이 있어.
반대로 어떤 사람은요?
평강도 있고 복도 얻었는데 명이 짧아.
생명을 얻지 못해.
근데 율법이란 말씀을 잘 지키면요?
땅에서 장수하는 거예요, 잘되고.
여러분 우리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공경 해 봐라.
네가 땅에서 잘되고 네 손으로 하는 일이 다 잘되고 네가 장수 한다 그러잖아요?
잘되고 장수 하는 거예요.
삶을 얻고 복을 얻는 거라.
근데 하나님 아버지께 잘 해봐.
하나님 아버지께 효도하면요?
장수 하는게 아니라 영생을 합니다, 영생해.
존재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감사하고 찬양하고 거룩하고 참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신실하고 하면 영원히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아직 우리 교회나 한국 교회 나요 율법의 목적론적 순 기능에 대해서 일언 방구도 누가 언급 하는 사람이 없어.
그 만큼 성경을 한 장도 제대로 본게 없는 거라 한 장도.
자 지금 마지막 지금 이혼을 하느냐 별거를 하느냐 할 정도로 심각할 때 끝까지 모세를 통해서 주셨던 레위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그가 이것으로 너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함이라.
율법을 잘 보면요?
여호와 경외 하는걸 배웁니다.
하나님 섬기는 걸 하나님 사랑하는 법도를 배우는 거예요,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예요.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 이어늘
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 하였느니라
내가 깨뜨린게 아니야. 너희가 깨뜨렸어.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들어 봐요.
예수님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것 하나라도 빼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 받을 것이고.
이 지극히 작은 율법이라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서 크다 일컬음 받을 것이라.
그렇게까지 말해도 몰라.
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3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헌물은 첫 열매를 말해요, 첫열매.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4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자 여러분 이 책을 읽어 볼때 다시 물어 봅시다.
이 책이 십일조 하면 복 받는다 그 말 하려고 쓴 책 같아요?
십일조는 이미 끝나 버렸어요.
바칠 수도 없고 바치지도 않을뿐더러 관계가 끝나 버렸습니다.
십일조 해 가지고 복 받는 거 같으면 바리세인들이 제일 많이 받아요.
그렇게 십일조 땡전구리 안 떼먹고 하고 그리고 인식일도 그렇게 완벽 하게 지키는데 예수님의 점수가 뭐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면 하겠느냐 한거 아니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한거 아니요.
십일조 하는게 잘못 되었다는게 아니라 십일조 보다 더 중요 한게 있어요.
의와 인과 의로운 정직하게 사는 의로은 삶과 인 인애와 믿음을 믿음이란 것은 충성이라. 충성.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
그 신 이라는 게 믿음이 없어.
믿음 이란 말이 충성이라 충성요.
피스토스 라든지 피스티스 라든지 피스티오 라는 말이 충성스럽게 살아야 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성실하게 경건하게.
그런 성실이 없는 그런 충성이 없는 사랑이 없는 의로운 삶이 없는.
그런 것이 없이 십일조 하면 복 받는다.
천만의 말씀이요.
독사의 새끼들이 되요 그래봐야.
그러니까 성경을 공부를요.
여러분 지금 교회 란거 그 남겨 놓을게 없습니다.
백프로가 다 그래요 백프로.
전부 쏟아도 다 통체로 쏟아버리고 새로 원점에서부터 창세기 1장 1절부터 새로 배워야 되요.
1장 1절에 봤잖습니까.
태초 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그것부터 새로 배워야되.
요한 계시록까지 전부 새로 배워야 됩니다.
목사들부터 신학자 교수부터.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부부가 같이 사는데 사랑이 없으면요?
날마다 강간 하는 거야.
집안이 원수지 원수 사랑이 없으면요.
부자지간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원수야, 원수가 되요.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 하냐 하지 않으면요?
우리가 하나님 원수 돼 있습니다.
여러분 로마서를 봐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 우리가 원수 돼 있을 때 그런 말이 있어요.
지금 교회가 하는거 하나님과 원수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울면서 하는 말이 많은 사람들이 그중에 십자가의 원수같이 되도다.
지금 우리가 복 받을 만큼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닙니다.
의도 없고 사랑도 없고 충성도 없이 전부 그저 겉치레로 외식 하는 거,
사람 보면 하는 척 하고.
제일 기분 나빠 하고 제일 못 견뎌 하는 그런 신앙을 갖고 있다고 오늘 교회들이.
성경을 잘못 배웠고 하나님을 잘못 알았다는 거예요.
한번은 집회를 마쳤는데,
마쳤는데 제가 마치고 나면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가서,
요즘은 제가 다른 목사님 들이 사이사이 몇 시간 해 주니까 제가 좀 덜한데 작년 제 작년 까지만 해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저 혼자 했거든요?
그럼 마치면 얼마나 그저 혓바닥이 다 갈라지고 막 부르트고 입술이 다 짓물러 버리고 가서 그로기 상태에서 쓰러져 버리고 그랬어요.
마치고 이제 보내놓고 집에 와서 한 시간 두 시간이나 이렇게 눈을 붙이고 그리고 나오는데,
아니 한 사람이요 그 위에 그 앞에 소나무 밑에 그 벤치에 안가고 앉자 있는 거예요.
누가 이리 가도 안가고 앉자 있나 싶어서 누구 십니까 하니까.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 집회를 참여하고 집에 못가고 있어요, 목사님 인데.
인천서 오는 40대 중반의 목사님 인데 거기 앉자 있는 거라.
왜 안가고 있습니까?
하!! 목사님 내가 여태까지 설교나 목회나 교육을 잘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와서 성경 강좌를 들어 보니까 여태까지 나는 성도를 앉혀놓고 사기를 치다 온것 같습니다,
지금 교회 가서 내가 양심 고백을 하고 양심선언을 해야 되는데 뭐라고 용서를 빌고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엄두가 안 나 가지고 집에 가지 못하고 앉자 있다는 거예요.
그리도 십자가의 원수로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그러면서도 그게 정통인지 알고 있고 잘 하는 줄 알고 있고 몰라요.
왜 또 그렇게 됐냐 하면요?
맨 먼저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어요.
왜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느냐?
성경을 인격적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요절 몇 절 외에는 아는 게 없는 거예요.
66권 중에 한 권도 똑바로 제대로 이해하는 책이 없으니까 당연히 미신처럼 되거나 그리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거예요.
예수님이나 하나님이나 십자가나 이름을 팔아 가지고 엉터리를 만들어 엉터리를.
자기들 들어가지 않고 지식의 열쇠를 가지가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그런 우를 범 했다는 거예요, 오늘 교회도요.
너무 사람 중심이라.
사람이 죄 사함 받고 사람이 지옥 안가고 사람이 천당 가고 사람이 구원받고 사람이 복 받고 사람이 능력 받고 사람이 능력 은사 받고 뭐 받고 사람 잘되고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없고 그냥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말씀을 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좋아 하는 말만 달콤한 것만 찾아 가지고 그리 전해요.
그러니까 구약에는 그런 말이 없잖아요,
별로 잘 된다고복 준다 그런 말이 없으니까.
누구보고 한 말이든 간에 앞에도 모르고 뒤에도 잘라 버리고 그냥 잘된다 말을 끌고 가는 거야.
여러분 이사야 41장에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보고 한 말 아닙니다.
우리하고는 아무 해당이 안되요.
그거는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 있는 사람들이 그냥 바벨론에서 정 들어 버렸어.
그리고 거기서 물들어 버립니다.
따라서 황무지가 되어 있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생각도 안하고 생각만 하면 골치 아파 오히려 이제.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 돌아간다는 희망을 완전히 그냥 가물가물 해 졌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면 우리가 뭐 할수 있겠나.
그래서 아예 그냥 바벨론 뭐 생활은 뭐 거기서 눌러 앉자서 그만 종 살아도 좋다 그냥.
그렇게 지리멸렬 돼 가는 사람들을 아니야.
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내가 너희를 도와준다는 거예요.
의론\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준다는 겁니다,
바벨론 포로 돼 있는 이스라엘 백성보고 한 말 이예요,
성경 말씀을 볼때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알아야 되,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알아야 되요.
그거를 알아야 바른 설교를 할수 있어요.
제가 일곱 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서 칠하원칙 으로 누구에게 라는 하나 더 보탠 거요.
성경을 엉터리로 하지 못하게.
여러분요 성경을 포괄적으로 말하면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이 한 말씀이나 구절별로 자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절 별로 자르면 어떤 말은 어떤 말씀은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보고 한 말이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이거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알아야 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
그러나 예를 들어서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
그거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보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거는 그때 호세아 한 사람만 보고 한 말 이예요.
두 사람도 아니고 한 사람만.
그래서 이런 그 성경 말씀을 엄밀하게 정밀하게 살펴 가지고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씀을 왜 하신 것인지를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요 설교가 다 엉터리가 됩니다, 다.
그래서 신학대학 교수 신학 박사가 되도 우리 교회 오면요?
우리 교회 학교 교사 시킬 수 없습니다.
성경 모르면 안 되는 거예요 이거 다.
목사라도 우리 교회 오면 교사 안되요.
성경을 66권 가르칠 수 없으면 우리교회 오면 반사도 안 시킵니다.
교회 학교 반사도.
66권 중에 한 권도 옳게 분별 못하는 사람을 교회 학교 교사로 임명하는 거는 하나님의 교회를 모독 하는 거예요 모독 하는거.
하나님의 교회를 뭐로 얼고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 구리를 갖다가 교사로 임명 한다는 거예요 도대체가.
근데 이러한 엄청난 죄를 지으면서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아무도 말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여러분 저를 저까지 말 안 하면요 영원히 모른체 갈거 아니에요 일생동안 그냥.
다 그리 하니까 그리 괜찮은 걸로 알거 아니요 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고 이제 오늘 하나님도요,
그렇게 참 처절한 그런 마음이 상해서 죽을 지경이 됐을 때도 그래도 하나님이요 말을 꺼낼 때 또 내가 너희를 사랑 하였노라.
이렇게 시작 하는 거라.
근데 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한다 할때 그 사랑이라는 부터도 서양 선교사 들이 우리에게 엉터리로 가르쳤습니다.
뭐라 가르쳤느냐?
자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그리고 남녀의 사랑은 그 애로스라는 아주 이기적이고 상대방을 독차지 하려고 하는 사랑이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의 우정이라는 필리야 이고 피의 사랑 혈통적인 사랑 부성애 모성애 동기애 이런 것은 스톨게다.
아가페 애로스 필리야 스톨게 네 가지 사랑이 있다.
해 가지고 뭐 유럽에 있는 사람들이 막 네 가지 사랑 책도 쓰고 뭐 에디프롬이나 스에스루에스나 별별 책을 읽어 보면요 엉터립니다 엉터리.
그 말이 맞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제대로 안 읽어 봐서 그래요.
여러분 이제 구약을 읽어 왔으니까 지금 여러분요 대답 할수 있을 거라.
한번 여쭤 봅시다.
하나님이 하나님 아버지 성부 하나님께서 질투 하세요 안 하세요?
맞죠 질투 하죠.
아니 질투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성경 전체가 어쩌면 하나님 질투 이야깁니다, 질투.
왜 질투하는 거요?
예 그만큼 사랑 하니까 질투 한다는 거예요.
그 질투하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 하는 거 만큼 질투 하는데 얼마나 질투 하냐면요?
우리 인간들이 하는 질투는 질투도 아닙니다 그거는요.
우리 인간의 질투는 그거는 뭐 흉내만 내 보는 거지 질투라 할수 없어요.
하나님의 질투는 죽여 버립니다, 그냥 다.
진멸하고 멸절하고, 멸절하고 진멸할 정도로 질투하는 거라.
그게 진짜 오리지날 질투야.
하나님의 질투가 그게 진짜 질투예요.
따라서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하나님의 질투가 진짜 질투예요 그게.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는 사랑과 질투가 있는데 조금 있습니다.
맛을 느껴 볼 정도 조금 그저 모경으로 맛보기로 조금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 질투하는 사랑이 바로 애로스 라는 사랑 이예요.
질투하는 사랑이 애로스 사랑 이예요.
그래서 애로스의 원 본 이라는게 그렇게 죽여 버릴 만큼 질투하는 게 애로스의 원본이 하나님께 있는 게 원본이고 우리 인간 에게는요 복사판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있는 게 실상이고 우리에게는 형상으로 있는 겁니다.
뭐그 런 사랑만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도 또 다른 사랑도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요 자식처럼 사랑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죠 우리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 형님 같아요.
힘 드는 거 자기가 하고 돈 드는 거 자기가 하고 어려운거 자기가 하고.
성령님은 요 꼭 우리 어머니 같습니다.
근심하고 애 태우고 중보하고 간구하고.
그러니까 그런 부성애 모성애 같은 사랑도 하나님께 있는 게 원본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에 있는 거는 하나님께 있는 게 쬐금 모양만 있는 거라, 냄새만 나는.
또 하나님은 우리를 요 친구처럼 사랑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벗이라 그래요 내 벗.
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요 너희는 이제부터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였 노니 이거는 내 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왜? 친구니까.
죄짐 맞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그러니까 그런 우정과 같은 피그리야도 하나님께 있는 게 그게 원본이고 그게 진짜고 우리 인간에게는 쪼금 그저 쪼가리가 파편이 모종이 맛보기로 그저 비슷한 것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있는 게 우리 인간에게 쪼금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애로스 스톨게 피그리야 이 그 외에도 스토레 라고 하는 스톨게 하고 엘레오스 라고 하는 이 엘레오스는 동정 긍휼 자비 이런 건데 이런 사랑이 모드가 다 셋트로 모든 사랑 요소가 다 통체로 다 들어 있는게 하나님의 사랑 이예요.
그 모든게 다 들어 있는 사랑을 성경은 신약에서 아가페라고 번역 합니다, 아가페요.
구약에서는 아하브로 번역 합니다.
아하브 에디드 라아 이렇게 히브리어로 하는데 대표적인 말이 아하브 야, 아하브.
우리말로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뭐야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님 사랑 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랑 하는 말 아무데나 쓸 수 있는 것처럼 아가페란 단어도요 하나님 사랑에만 쓰는 게 아니라 아무데나 써 먹을 수 있는 단어예요 그게. 아가페란 단어가.
그러니까 헬라어 성경을 원어 성경을 갖고 있으면요?
아가페 아가파스 아가파오 그런 아가 라는 그 아가페라는 어원에서 나온 단어가 쓰여진 용내를 갖다가 검색하면요?
5분 내로 다 찾을 수 있어요, 5분내.
스트롱 코드대로 찾으면 뭐 뚝딱 하면 다 나오거든요?
그 사용된 용법이나 용내를 갖다 사례를 분석해 보면요?
아무 대나 써 먹는게 사랑이란 아가페란 단어에요.
하나님 사랑은 아가페가 아닙니다.
모든 사랑 아무 사랑에든지 아가페를 쓸수 있어요.
사도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할때.
호드 데오스 아가페 스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할때 아가페 예요.
그런 아가페란 말은 일반 용어지 특수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막 주기만 하고 바라지 않고 일방 적이고 자기 증여적 자기희생적 거룩한 디바인 러브다 막 이런 식으로 석역도 모르면서 온갖 말장난 하는 다 헛소리에 불과하고 헬라어로 조사해 보면 원ㅇ\j로 조사해 보면 아가페란 거는 아무데나 써먹는 사랑이란 사랑에는 사람 사랑 이웃사람 원수사랑 아내사랑 하나님 사랑 모든 말에 다 쓸수있는 말이 용어가 공통 용어가 아가페란 단어 예요.
자 이렇게 말 하는 것는요?
세상에서 여기가 처음입니다.
어떤 서양의 신학자도 그렇게 보지 못했어요.
잘 모르고요 또.
성경을 통 전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요.
저는 그걸 십년 이상을 히브리어 헬라어를 조사해 가지고 제가 책을 썼습니다.
사랑은 사랑 학이다 하는.
신학은 사랑 학이다 할때.
저는 신학을 이론 적으로 끝을 낸 사람 이예요.
더 이상 이론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요. 끝 났어요.
신학은 사랑 학이다 하는 걸로 저 신학의 대 명제가 완성이 됐고 끝이 났습니다.
왜 신학이 사랑 학 이냐 하면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신학 이란 것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신학이란 것은 요?
신을 연구 하는 게 아니고 신을 하나님을 베우는 거예요.
하나님을 배우는 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을 배워야 되요.
우리가 하나님처럼 해야 되요, 하나님처럼.
그렇게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신학이란 것은 배우는데 하나님은 뭐냐면?
하나님은 사랑 이예요, 사랑.
그러니까 사랑 배우는 게 하나님 배우는 거예요.
또 여태까지 서양 기독교가 사랑을 배워야 된다고는 아무도 상상을 안 해 봤습니다.
근데 정말 사랑을 배워야 되요.
이 세상의 지식이나 기술을 다 배울 수 없어도 사랑은 배워야 되요.
왜 사랑 배우는 게 하나님 배우는 거니까.
그래서 신학은 사랑 배우는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 배우는 건데 하나님 배우는 건 하나님은 사랑 이니까 사랑 배우는 게 하나님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명제가 성립이 되는 거예요.
또 사랑 학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영어로.
옥스포드 사전도 없고 웹스터 사전도 없고 사랑 학이란 단어가 없어요.
우리말에도 없습니다.
제가 만든 신조어예요. 신조어.
사랑 학 우리말로 사랑 학.
영어로 하면요?
아가펠로지, 아가펠로지 라는 단어를 만들었어요.
단어가 없어서.
그리고 더 저가 신학을 하면서 놀라워하는 것은요?
우리가 천사가 되지 않고 사람 된 이유가 사랑을 배우면서 천사가 아니고 사랑이 된 거라.
천사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그렇게 받아본 적이 없어요.
천사는 첫 사랑을 느끼고 연애를 해 보고 질투 해 본적이 없어요.
또 천사는 애를 낳아 가지고 그래 부성애 모성애 쏟아 부어 가면서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따라서 천사들 같으면요?
우정과 같은 사랑을 그들 세계는 있는지 모르겠어요, 있겠죠?
우정 정도.
그래 가지고는 하나님을 배울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울라면 반드시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받아 봐야 되요.
그리고 이제 결혼 해 가지고 부부애를 나눠 가면서 그 가슴 떨리는 첫 사랑이며 시기하고 질투하기 까지 그런 사랑이며 그리고 그 사랑의 열매로 또 새 생명이 태어 났을때 내가 어머나 아버지에게 받았던 똑 같은 사랑을 그대로 사랑을 쏟아 부어 주면서 받는 사랑 주고 받는 사랑 주는 사랑 이거를 다 배우면서 그게 뭐 하는 과정이냐?
그게 하나님 배우는 과정 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영이 유여 하실지라도.
영이 여유가 많이 있어요.
후~~하고 불어 넣을수 있는 영이 무진장으로 있는데 무 한정으로 있는데도 또 에덴 돈ㅇ산에 흙도 많이 있잖아.
근데 하나님은 영이 유여 하실지라도 하나만 짖지 아니 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말라기에서 방금 봤잖아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만약에 남자는 남자대로 따로 짓고 여자는 여자대로 따로 짓고.
남자는 남자를 낳고 여자는 여자를 낳고 이렇게 안 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냐?
하나만 지었어, 하나만.
인간을 아담 하나만 지어 가지고 그 하나 안에서 여자가 나오게 만들어요.
그다음에 그 둘 사이에서 또 새 생명이 나오게.
왜 그러느냐.
아무도 남이 아니게.
다 하나에서 나온 것이고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해서.
천사는 그렇게 된게 아니죠.
천사는 한 천사가 여자 천사 결혼해 가지고 애를 낳아 가지고 천사가 숫자가 불어 난게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 하듯이 동시 다발 형으로 막 이렇게 생산 되니까 경건하게 훈련 받으면서 큰게 아니라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그냥
한꺼번에 동시 대량으로 이렇게 만들어 졌는데 그 중에 한 그룹이 그냥 한 십분지 일이 반역을 해가 타락을 해 버리고 이렇게 된 거야.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전부다가 한 혈통에서 나온 거야, 한 혈통에서.
그거 왜 그렇게 하느냐?
사랑 배우게 하려고.
어려서는 어머니 아버지께 사랑 받으면서 사랑 배우고 이제 커서는 사춘기가 돼 가지고 이성을 느끼면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그렇게 사모 하면서 밤잠을 설치면서 그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에 사랑의 열매로 서만 한 새 생명이 태어나게 그렇게 해서 그래서 생명이 태어나면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하는 자식인데 그게 엄마가 쏟아 붓는 사랑을 한번 봐요.
그 뭐하는 거냐?
애 키우는 거죠.
애 키우는 게 뭐 하는 거냐.
사랑을 배우는 거예요, 사랑 배우는 거.
사랑 배우는 게 하나님 배우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 이니까.
그래서 제가 그 여기 여 청년들 뭐 남녀 청년들 처녀들 총각들 빨리 결혼 하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데,
그냥 막연히 정부 시책에 호응 해 가지고 뭐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산하 제한이나 가족계획이나 그런 말 써본 적이 없어요.
그대로 성경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사랑 해 보지 않으면요?
하나님을 모릅니다.
처녀는 하나님 모릅니다,
총각이 뭘 하나님을 알아 몰라 그거 다.
결혼을 해 가지고 아이들 하나 낳아 갔고 몰라 또.
둘 셋 넷 여럿이 낳아서 길러 보면요 하나님의 심정을 배워 가는 거예요.
우리 남자들 잘 총각들 잘 봐요.
빨리 결혼해요 그러니까.
신학교가 신학 되는 게 아니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신학이 되는 거예요.
결혼 해 가지고 아내가 참 착하고 또 아름답고 그러면요.
정말 행복한 신학이 될 것이고.
또 아내가 못되고 속 썩이고 대들고 하면요?
바야흐로 신학자가 됩니다.
아주 하나님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알게 되요.
그 애들이 집을 나가고 애를 먹이면 누가복음 15장에 통체로 되요 기자가.
그러니까 교황 총각도 빨리 결혼 하라 그래,
아 결혼을 해 가지고 애를 낳아 봐야 하나님을 알지 그래.
총각이 뭘 알아 알기는 그래.
그 추기경 총각도 빨리 결혼 하고,
박근혜 씬가 그 사람도 뭐 할라면요 결혼부터 하라 그래.
처녀가 뭘 한다고 아이고.
애도 안 낳아 보고 기저귀도 안 채워 본 사람이 뭘 한다는 거예요 지금요.
나는 우리 국민들이 박근혜를 지지한 이유를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게 또 한 게 뭐 있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유신 독재자의 딸인데 그걸 갖다가 좋다고 하는거 백성이 줏대 머리가 없어도 참 한참 없는 민족 같애.
더 웃기는 거는 박근혜를 필적하는 남자가 없다는 거도 희안한 일이라 또.
다 고치 떼 가지고 박근혜 갖다 줘 다.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란 것은.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는 게 철학의 대 명제가 인간이란 무엇이냐,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는 건데.
그 질문을 요?
이천 칠백 여 가지가 나왔어 인류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래도 아직 답이 안 나왔습니다.
그 많은 철학자들이 아직 답을 못 썼어요.
인간이란 무엇인지.
저는 답을 썼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냐?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 배워가는 과정이라.
이게 인간의란 무엇이냐의 철학도 저는 끝을 냈습니다.
신학도 끝을 냈고 철학도 끝을 냈어요.
더 이상 이제 이론을 가지고 헷갈릴 것도 없고 끝났습니다.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을 배워 가는 과정이 인생 이예요 인생. 인간 이예요.
여러분 세계에서 제일 지금 유명한 신학 대학이 독일에 가면 티빙겐 대학이라고, 티빙겐 대학 아주 유명한 대학이죠.
한국 서는요 티빙겐 대학을 나왔다 해야 뭐 좀 신학교서도 알아주고 합니다.
근데 티빙겐 대학에서 제일 또 유명한 사람이 몰트만 교수야.
제렌 몰트만 교수.
그 몰트만 교수의 신학이 희망의 신학이야 희망의 신학, 소망의 신학.
그리고 루터의 신학이 믿음의 신학.
오직 믿음, 쏠라 비데 이래 가지고.
오직 믿음 이라고.
미안 하지만요 성경을 내가 200번도 더 읽어 봤는데 오직 믿음이란 말이 없습니다.
그나마도 루터는 그렇게 오직 믿음이란 믿음의 신학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제렌 몰트만 이란 교수는 소망의 신학 이란 걸 갖다가 막 희망의 신학 하고 정치적으로 잘 하면 앞으로 역사에 희망이 있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볼때 얼빠진 소리 밖에 안 됩니다.
그런 역사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과거도 현실도 미래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의 헛소리에 불과해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 현제.
근데 여러분 사랑의 신학 믿음의 신학도 중요하고 소망의 신학도 필요 하지만요.
그거는 몰트만의 신학은 엉터리고 집에가 읽어 봐요.
소망의 신학,
이런거 보면요 50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겁니다.
그럼 60번 읽으면 아느냐? 더 몰라 그러면.
그런 책이라, 내가 볼 때 자기도 모른 말 쓰는 것 같아 다.
몰트만 자기도 모른 말 쓰는 거 같으고 더 웃기는 건 번역 한 사람도 모르고 번역 한거 같애.
그리고 아니 노목사 같은 사람이 읽어도 모른 책은요?
그 누구보고 읽으라는 거야 도대체가.
내가 표준이 아니지만 그래도 목사가 나이가 60이 넘어서 읽어서 모른 책은요 가치가 없는 책입니다.
누구보고 읽으라는 책이야 도대체가.
몰트만 자기 혼자 읽는 건가?
한번 읽어 봐요.
독일 신학이 유명한 신학이 아니라 최고의 신학은 사랑의 신학 이예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의 신학이 진짜 신학 이예요.
하나님은 소망이시라, 아니거든요?
하나님은 믿음이시라 아니잖아요.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사랑을 배우는 게 하나님 배우는 거예요.
그 사랑을 배우기 천사가 되지 않고 사람이 됐다는 거예요.
이런 사실들을요?
열두 사도도 다 잘 몰랐습니다.
몰랐다가 그 다른 분은 다 순교 했는데 오직 한분만 순교 하지 않고 남아 있었어요.
그게 요한 사도예요.
여러분 아시죠.
요한 사도가 얼마나 성깔이 불칼 같았 던지요.
예수님께서 별명을 우뢰의 아들이라, 우뢰의 아들. 보아느게 라고.
그렇게 성격이 불칼 같은 사람인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나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점점 거룩해 져 가지고 마침내 사랑의 사도가 되었어요.
어떻게 사랑의 사도가 됐느냐.
예수님 말씀 속에서 사랑 이란 걸 발견 한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명제를 내 놓은 거예요 이 사람이.
아직도 복음주의에 서있는 목사들이 맨날 그저 입만 열면 바울이야.
오나가나 바울 앉으나 서나 바울 뭐.
바울, 바울, 바울, 바울, 바울, 예수님은 온데간데없고 바울, 바울, 바울, 바울,
맨날 천날 바울이야 그냥.
물론 바울이 위대한 분인 거는 사실이지만 바울은 기독교 신학의 완성자가 아닙니다.
그는 기초를 넣은 사람 이예요. 기초를.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놓았어요.
진짜 완성자는 요한입니다, 요한.
바울의 신학을 이신득의의 믿음이라 할수 있어요. 이신득의의 신학,
베드로의 신학은요 소망의 사도요. 소망의 사도.
요한이 사랑의 사도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다 중요한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따라서 사랑이 없으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십일조 안식일 독사의 새끼도 지키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언, 천사의 방언이나 망국 방언 다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요?
괭가리야 괭가리.
옆의 사람 기도 호ㅞ방 밖에 안 되는 아무것도 아니야.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산은 뭐 하러 옮겼으며 환경만 파괴 하는 거지 다.
예언 하는 능이 있어 모든 지식과 모든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교만의 재료 밖에 아무것도 아니 예요.
또 자기의 있는 모든 것을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식량만 아깝지, 사람의 몸을 뭐 하러 불 사르겠어, 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바리세인 들이 열심을 냈는데 너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것을 알았노라.
하면 끝이예요 그게. 독사의 새끼들이 되고 마는.
그래서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겁니다.
우리 마음 만큼 사랑 했는지 그릇 가지고.
일이 뭐냐 면요?
일이 사랑 하는 것이 일이예요.
사랑하지 않는 건 죄를 짓는 겁니다.
일이 아니라 그게 다.
일반 적으로 일이 뭐냐?
질량 곱하기 거리야.
질량 곱하기 거리가 일이죠?
그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일이란 것은요 사랑 하는 게 일이라는 거예요.
그래 뭘 사랑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이웃을 사랑해야 되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다 사랑해야 되요.
사람만 아니라 동물도.
그러니까 마구 잡아먹고 할 필요 만약에 그걸 안 잡 먹으면 내가 죽을 판이라 굶어서,
그럼 잡아먹어요,
죽는 거 보다는 먹고 사는 게 나으니까.
그렇지 않으면요?
생명 있는 모든 걸 아껴야 되.
심지어 풀 한 포기라든지 나무 한 그루라든지 벌레 한 마리라든지.
이런 것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되.
생명은 하나님의 작품 들이다.
하나님의 발명품이고 모든 생명은요 사랑을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미생물 에게까지도 빛을 주시고 까마귀 새끼가 배고파 오락가락 할 때 그것을 위해서도 먹이를 준비 하는 분이 하나님 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 하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면요?
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나님 사랑 하는 거야.
우리가 피가소를 사랑 한다 하면서 피가서의 작품을 때려 부수는 사람은요 피가소 사랑 하는게 아닙니다.
피가서를 사랑하면요?
피가서의 작품을 비싼 값으로 사서 잘 모시고 해야 피가서 사랑 하는 거예요.
피가서 에다 뽀뽀 하면서 피가서 를 갖다가 피가소 작품을 때려 부수면 피가서를 미워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움 받은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의 작품도 사랑해야 되요.
그리고 아껴야 되요.
그걸 성경은 충성된 신앙 이라, 신앙.
그래서 참 하나님이 원하는건요?
다른게 아닙니다.
우리가 마은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 하는 거를 원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길 원하는 거예요.
생명 있는 것을 모든 것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다 아껴주고 지켜주고 보호하고 관리하고 섬기고 그렇게 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예요.
천국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사랑 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사랑 배운 사람들이 가는 곳 이예요.
사랑하지 않을 라면 천국 가면 안 돼요.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 뭔가 한번 읽어보세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도 붙어 있잖아.
이쪽 판에도 있고.
저쪽 성전에도 있고 사택에도 있고.
우리교회 당 회실 도 있고.
우리교회 성도들은 모든 집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을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손목에 매여 기호를 삼고 바깥문에 써 붙이고 앉았을 때든지 일어설 때든지 길에 가든지 항상 이 말씀을 강론해라.
여러분 성경에 어떤 구절을 써서 붙이라는 구절이 유일한 구절이 이예요, 저 구절이.
근데 내가 교회를 꾀 큰 교회 작은 교회 뭐 보수 진보 도시 농촌 외국까지 가봤는데 교회가 정신이 나갔어.
한 교회도 써 붙인 교회를 못 봤어 한 교회도.
방송국도 안 써 붙이고 신학교도 안 써 붙였고 총회 회관에도 안 써 붙였고 노회 회원도 안 써 붙였고 꼭 가면요?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 하리라.
그네 그건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그거는.
빌닷이 욥을 조롱 하면서 하는 소리에 불과 해요 그거는.
성경을 포괄 적으로 말하는 하나님 말씀인데 구절 별로 떼면 아닌 게 많다니까.
농담이 아닙니다.
그런 거 써 붙이는 게 아니 예요.
그런 거는 집에 가서 아무도 안 볼 때 갔다 버리세요.
액자가 아까우니까 안에 알맹이 빼 내 버리고.
그건 쪼개 장작을 해야죠.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하는 그런 거는 그거를 써 붙여 놓는 거는 나는 이렇게 무식 합니다.
하는 거는 바로 스스로를 자랑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도 바로 하는 게 없어요 우리가.
아니 써서 붙이란 것부터 먼저 써 붙이고 그리고 공간이 있고 여유가 있으면 또 뭐 좋은 거 하든지.
그래 가보면 꼭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니 그게 제일 많고.
그 다음에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옵 소서, 그런 구절이 있다든지.
근데 그런 거는 성도들이 좋아 하는 것이고.
목사들이 좋아 하는 거는 또 달라요.
목사들은 뭘 좋아 하느냐?
강건하여 네 집을 채워라 젠장.
목회 성공해야 되니까.
하나님은 또 달라요 하나님은 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러니까 하나님 꿈이 다른 거고 목사 꿈이 다르고 성도 꿈이 다르고 동상 삼 몽이라 완전히.
그래서 빨리 목회자들은요?
자기 욕심내려 놓고 성도 욕심에 아부 하지 말고 하나님의 소원에 귀를 기울여봐 먼저.
그러면 그때부터 성경이 보이기 시작 한다는 거야.
하나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 합니다.
자 이제 사랑 이란 무엇 인지를 좀 간단하게 정리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이 뭡니까?
안 물으면 아는데 물으면 잘 모르는 가라.
초등학생들 사랑이란 말을 쓰는데 국어 국문학자들 사랑이란 무엇이냐 물어 보면요.
거의 대답을 못 합니다.
사랑은 그니까 사랑을 뭐라 해야 하나.
사랑은 그러니까.
아이고 사랑은 그러니까 아~~사랑은 저 눈물의 씨앗이다 그냥.
그 참 어렵 습니다,
여러분 안 물으면 아는데 간단한 것일수록 몰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물어 봐요.
답이 안 나와요.
그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논문이 있는데 아까 얘기한 그 티빙겐 대학의 몰트만 교수가 쓴 논문이 있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말로 번역 되었습니다.‘
근데 그 인간이란 무엇이냐 해 놓고.
인간이란 무엇이냐고 질문하는 동물이다 그렇게 써 놨어요.
어떤 존재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질문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가 소란 무엇인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돼지가 꿀꿀 돼지란 무엇인가 이런 거 안 해요.
개가 뭐 멍멍 하고 짖는데 개란 무엇이란 무엇인가 하고 짖는 개가 없어요.
천사가 뭐 천사람 무엇인가 그런 철학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님 이란 무엇인가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귀신이 귀신이란 무엇인가 그런 거 안 해요.
아무도 궁금하지 않는데 사람만이 자기가 사람이면서 사람이 무엇 이면서 사람이 무엇이냐고 질문 한다는 거예요.
근데 몰트만이 교수에 책에 답이 있느냐?
답이 없어요 또.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말에 한마디 더 써 붙인 말이 있어요.
사람이란? 사람이란 무엇이냐고 물어 놓고 지가 대답을 못하는 동물 이라 그랬어.
저는 그 뭐냐 2700년 된 명제 인간이란 무엇 인가?
그거 답을 썼다 그랬 잖아요.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 배워 가는 과정이다.
그게 인생이라.
그걸 다 배우고 죽어야 되. 사랑을.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지식을 지식이나 기술을 다 배우지 못 하지만은 사랑은 배워야 되.
그게 천국의 윤리 이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삼년이나 가르치신 다음에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 같이 사랑 하라.
이게 새 계명 이예요, 새 계명.
옛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또 이웃 사랑을 재 몸 같이 하라. 하고.
예수님 오셔서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할때 서로 라고 우리는 번역을 했는데.
영어 번역은 좀 다릅니다.
러브 어나더, 다른 사람을 사랑 하라는 거예요.
예수님은요?
원수를 사랑하라.
우리가 원수라고 생각 하는 사람 다 꼬집어보면 아야 그러면 우리 편이라,
원수가 아니고.
사람이란 사람은 우리가 다 사랑 해야 되요.
일본도 속을 썩이고 하지만 사랑해야 되요.
우리 원수니까 사랑해야 되요.
김일성 이도 할 수 없이 밉지만 사랑해야 되요.
미워도 다시 한번.
중국도 중국 오랑캐 하지 말고 그것도 사랑의 대상이라,
너희가 사랑 할 때 뭐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너희가 방언 할 때가 아닙니다.
너희가 넘어 질 때가 아니고 너희가 넘어 질 때가 아니고 너희가 사랑 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인줄 알리라.
여러분 기독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의 표식이 뭐냐?
사랑 하는 거예요,
다른 어떤 것도 예수 믿는 사람 표시가 아닙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래서 사랑도 이제 배워야 되는데 딴데 가서 배울데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물어서 배워야 되.
사랑이 무엇인지.
다른데 가서 뭐 몰트만에게 물어도 안 되고 시에스 유에스에게 물어도 안 되고 에디프롬이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썼는데 거기 물어도 안되.
제가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은 우리 집에 한 50권정도 있을 거라.
근데 보니까 하나도 제대로 된 책이 없어요.
하여튼 뭐 헌 책방 새 책방 다 뒤져 가지고 재목에 사랑 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책은 뭐 구할 수 있는 거 다 구했으니까 한국에 별로 없을 겁니다, 이제.
내가 다 가져 왔기 때문에.
신학은 사랑이다 이 책을 쓸려고 없어요, 없어.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님께 배우게 됐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어 보니까.
사랑이 뭐냐?
사랑은 첫째 관심입니다, 관심.
관심을 기울이는 게 사랑입니다.
깊은 관심 그 애틋한 관심.
지속 되는 관심.
포기 할 수 없는 관심.
여러분 사랑하면 계속 마음이 끌리고 관심이 끌리고 그렇죠?
229기는 전혀 사랑도 안 해보고 뭘 하려고 뭐 하다 왔길래 도대체가.
사랑은요 계속 관심이 끌리는 거라 마음이.
자 이래 봐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했는가 안 사랑 했는가 알아 볼라면요 하나님 우리게 대해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그것 보면 알아.
이거 봐 앞을 봐요.
이만큼(성경) 관심이 있답니다.
여러분 이렇게 길고 긴 장문의 러브레터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이거보면요?
우리를 죽도록 사랑 했다네 죽도록.
맞습니까?
그냥 사랑이 아니라 죽도록 사랑하고 죽여 버릴 만큼 사랑했고 지옥 불에 확 태워 버릴 만큼 사랑 했다네.
책을 그 사랑 했다는 사연을 이렇게 두껍게 쓸 만큼 사랑했다는 거야.
이만큼 관심 있다는 거예요.
그 예수님께 물어서 배운 하나님의 사랑 이예요.
두 번째 사랑은요.
이해하는 겁니다. 이해하는 거.
사랑하면요?
다 이해 할수 있어요.
좀 못 생겨도 이해하고 좀 키가 작아도 이해하고 좀 키가 커도 이해하고 뚱뚱해도 이해하고 뭐 다 이해 할 수 있어요 사랑은.
여러분 이해 한다는 말이 한문으로 하면 이치를 가지고 풀어 간다.
이치에 맞게 푼다.
이게 이해 란 말인데 그 보다는 제가 영어를 별로 안 좋아 하지만요.
이해 한다는 말이 영어가 좋은 면이 있습니다.
언더 스텐드야.
밑에서 서는 거야.
아래 서는 겁니다, 언더 스텐드.
사랑하면요?
자기를 높이는 게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는 거예요.
자기가 내려오는 거예요 이렇게.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에 말구유 간에.
심지어 죽음에 까지.
무덤에 까지 자기를 내려가는 거예요.
그게 사랑 하나다는 거야.
여러분 옛날에 요세는 안 합니다 만.
옛날 대통령은 쇼를 많이 했어요.
짚차를 타고 밀짚모자 쓰고 반바지 입고 모내기 하는데 가서 물론 티브이 카메라 갖다 놓고 이제 대한 뉴우스, 리버티 뉴우스 하면서.
땡 전두환 대통령은 땡 전두환 대통령 뭐.
하면서 이제 그런 쇼를 하죠.
국민들의 고층을 이해 한답 시고 이제 농민들이 모내가 하는데 얼마나 허리가 아프 겠는가. 그 옆에서 뭐 이리 좀 해 보고.
그런 이제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저 탄광 막장에 내려가서 사진 한번 찍고 뉴스에 나오고 이제.
높고 높은 데만 있으면 사랑이 아니라.
이 낮고 낮은 땅위에 내려오는 게 사랑이라.
언더 스텐드야.
세 번째 사랑은요?
책임을 지는 겁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거예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마.
내가 다 책임진다.
죄가 있든지 허물이 있든지 염려 하지 마.
내가 다 참는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집도 내가 마련 한다,
왜 사랑 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요 무책임 한 거라.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 놓고 생활비도 안 갖다 주고.
남의 집 딸 그렇게 몇십 년이나 십년이나 이십년이나 길렀는데 그 몸을 갔다가 고이 간직한 순정을 짓밟아 놓고는 다 그런 거야 뭐 다 그런 거지 그러면서 그게 바로 암논 같은 사람 암논 같은 다윗의 큰아들 암논 같은 그게 무슨 사랑이야 욕정이지 사랑이 아니야.
그렇게 무책임 한 거는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은 요 끝까지 책임질라 그래.
제가 한 십 몇 년 전에 미국에 로스 케롤라이나 케이트 빌 이라는 도시에 그 집회를 갔어요.
침례교 교회를 가서 집회를 갔는데 그 미 동남부죠 동남부.
조지아 주 위에 사우스 케롤라이나 그 위에가 로스 케롤라이나 인데 동남부 인데 거기에 한인들이요?
삼천 오백 명이 산다고 하네, 그 구석진 마을에.
그 어떻게 된 거냐 도대체가.
뭘 하는데 한국 사람이 삼천 오백 명이 사냐, 이 마을에.
군인 도시라네, 군인 도시.
우리는 부대가 담장이 있거나 울타리가 있거나 철조망이 있고 보면 그렇잖아요.
근데 미국 부대는 안 그래.
도시가 통 체로 군인 도시고 군인 마을이고 철조망도 울타리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민간인 하고 군인들이 함께 있습니다. 이렇게.
근데 알고 보니까 그 미군 지아이 라고 하는 미군 아저씨들이 한국에 와서 동두천 용주 골 뭐 오산 이런데 그 미군 아저씨들이 와서 술집에 아가씨들 이렇게 건드리거나 해서 이제 사랑을 나누고요.
그걸 끝까지 책임지려고 데려 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랬어요.
아니 그런 사람이 삼천 오백 명이나 되냐고 하니까.
십만 명이 넘을 거라고 하는 거예요, 십 만명.
미국 전역에 케이트 빌이란 조그만 그 군인 작은 도시에서만 그렇고 미국 전역에 다 하면 6.25 이후에 미군들이 한국의 아가씨 들을 그 아가씨 들이 양가집 규수도 혹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분도 더러 있잖아요.
그냥 술집 아가씨 뭐 이렇게,
그런 사람들 건드려 놓고도 끝까지 책임지려고 데려 갔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데려간 그 서양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이 부인들이 된 한국 여성들이 자기 동생 조카 뭐 사촌 오촌 칠촌 팔촌까지 막 끌어다가 공부를 시켜 가지고 오늘 한국 이라는 나라가 생겼다는 거예요.
저가 그걸 듣고요?
깜짝 놀라 뻔 하고 아주 숙연해 졌어요.
그래 이게 바로 사랑 이다.
일순간의 욕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책임이 있는 사랑.
끝까지 책임지려고 했던 사랑.
그게 진짜 사랑 이예요.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는요 미국은 복 받을 만한 나라야.
그 미국 국민들이요 눈물겹도록 착합니다.
그렇게 정직하고 성실하고 대부분이.
뉴스에 타고 악당이란 것은 그 어쩌다가 몇 몇 애들이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코카콜라 하고 뭐 그 감자 칩 하고 햄버거를 많이 먹어 가지고 식품 첨가물 때문에 머릿속에 막 폭죽 놀이 하니까 드르륵 긁어 버리고 이런 거지.
국민들 보면요 눈물 울 정도로 착하다는 거예요.
반면에 우리나라 월남전에서 그렇게 많은 한국의 그 못된 남자들이 월남의 아가씨들 그렇게 많이 건드려 놓고 한 놈도 내가 데려 오는걸 못 봤어 단 한 놈도.
데려 온 사람 말해봐 한번 나와 봐요.
다 놔두고 오고 다 내 팽게 치고.
사랑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겁니다, 끝까지.
죽음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을 때 까지 책임을 지는게 사랑 이예요.
요즘은요?
남자들은 거의 이혼을 안 할라 하는데 여자들이 대게 이혼을 하는 집안은 여자들이 설쳐 댑니다.
못 됐어요, 한국 여자들이 진짜.
그래 가지고 뭐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딱 하면서.
이혼해도 뭐 울고불고 그런 거 그런 여자 없어 이제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은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거예요.
네 번째 사랑은요?
대상을 존중히 여기는 겁니다.
존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기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존중히 귀중히 여겼으면요?
독생자의 피 값을 주고 죄악에 팔린 걸사겠습니까?
우리를 구속 한게 은이나 금이나 없어질 돈 몇 푼 집어주고 구속 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외아들의 피로 값 주고 우리를 구속 한게 아니겠어요.
어떤 댓가 가 지불 됐는지 보시면 우리를 얼마나 존중히 여겼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 했다는 사실을 이렇게 처절하게 보여 주시냐 하면요?
이스라엘 백성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 했나이까?
그 말 한 마디가 하나님 귀에 못이 박힌 거야 완전히.
400년간 귀에 하나님의 귀에 쟁쟁쟁쟁 하는 소리가.
주께서 어떻게 주께서 어떻게 주께서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주께서 어떻게 400년간 귀에서 쟁쟁 하는 거야.
답이 안 나와 답이.
내가 어떻게 하면 자기들을 사랑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다 하겠는가?
여러분 하나님 계신 것 믿는 거 그거 믿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분인 거 믿는 거 그거 믿음 아니 예요.
네가 하나님이 한 분 이신 줄로 믿느냐? 잘한다.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야고보가 하는 얘기예요 야고보가.
하나님이 유일 한 거 하나님이 전능 한 거 하나님이 창조주 신거 하나님이 계신 거.
그 바리세인 들이 안 믿느냐?
독사의 새끼들도 다 믿습니다, 그런 믿음은요?
그거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은요.
그럼 무슨 믿음 이 믿음이냐?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그처럼 사랑 했구나.
하나님이 세상을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 하셨구나.
해서 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하나님에게서 떨어 질수 없는 사랑 그게 진짜 사랑 이예요.
그게 진짜 믿음 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믿음이지.
하나님이 계신 거 하나님이 한 분인 거 하나님이 창조주인거 하나님이 창조주인거 그거 다 믿어요 그거다. 바리 세인도.
그 믿음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 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그게 믿어 져야 되.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관심 있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이해하실려고 하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겼는지.
이런 게 사랑 이라는 거예요.
다섯 번째 사랑은요?
희생입니다 희생.
희생이 없으면요?
그건 사랑이 아니야.
노력이 없는 사랑은요.
뿌리가 내릴 수가 없습니다.
인내가 없는 사랑은요?
줄기가 자라지 못 해요.
열정이 없는 사랑은요?
꽃과 잎을 피우지 못 합니다.
정성이 없는 사랑은 열매가 맺지 못하고.
고통을 없는 사랑은 추억을 만들지 못해요.
희생이 없는 사랑은 아예 사랑이 아니야.
사랑은 바로 희생물이에요, 희생.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고 버린 겁니다.
도무지 내가 너희를 사랑 하였노라 해도,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 했나이까. 하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이처럼 너희를 사랑했다.
이처럼 너희를 관심이 있고 이처럼 내가 너희를 이해하려고 노력 했고 이처럼 소중히 여기고 이처럼 책임을 지고 이처럼 희생을 한 거 아니냐?
이처럼 이라는 말을 사도 요한이 발견 한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 까지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이다.
여섯 번째 사랑은요?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랑 이예요.
여러분 사랑하면요?
함께 있고 싶죠.
사랑 하지 않으면요.
같이 한 시간 있는게 일일이 여삼추라.
하루 있는데 가을이 세 개나 지나 가는거 같애.
사랑 하지 않으면 그래요.
사랑하면요?
세월이 가는지 시간이 가는지 모르는 거라.
함께 있고 싶은 거니까.
함께 있고 싶은 거 같고도 안 되고요.
하나가 사랑하면 하나가 되려고 한다고.
함께 있는 거 갔고 안 되고 하나가 되려고 해요.
둘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둘인데.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요?
둘인데 하나가 되는 길이 있어요.
어떻게 하나가 되느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그럼녀 하나냐.
내 곁에가 아닙니다.
내 앞에도 아니고.
나와 함께 가 아니고 내안에.
너희를 내 안에 집어넣고 싶고 내가 너희 안에 들어가 버리든지.
그렇게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부부애라고 하는 것은요?
뭐 성관계 가운데서 말초신경이 자꾸 깨 가지고 막 성적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런 것의 기쁨이 아니고 그런 것은 창녀도 하고 거지도 하고 불신자도 하고 다해.
진정한 부부애 기쁨은 하나 됨의 기쁨 이예요, 하나 됨의 기쁨.
일곱 번째 사랑은요?
주는 겁니다.
뭘 주느냐?
나에게 무엇을 주는 것도 주는 거지만 자기 자신을 주는 거예요.
자기를 바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주신 것 같이 하라.
어떻게 주셨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걸 받 먹어라 내 살이야.
이걸 받아 마셔라 이건 내 피야.
내 피가 네 안에 흐르고 싶어 그래.
그냥 나를 잡아먹어 내 살이야 이거.
그리고 마음을 열면 내 영으로 네 안에 들어가 버린다, 그냥.
그래서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어떤, 어떤 로미오와 쥴리엣도 이렇게 까지 사랑을 깊이 고백 하는 거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싶고 내가 네 안에 들어가고 싶다.
아니면 내가 너를 잡아먹고 싶다,
그렇게 말한 표현이 없어요.
여덟 번째 사랑은요?
끝까지 믿는 겁니다.
사랑은 신뢰야 신뢰.
끝까지 믿어 주는 거예요.
뭐 중간에 가다가 그럴 줄 몰랐다 느니 뭐 팍 속았다느니 그거는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요?
속아도 속은 줄도 모르는 거야.
끝까지 좋아하는 거야 끝까지 믿고 끝까지 좋아하는 거야.
여러분 여기 봐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가면 뭔가 한 자리 할 것이다.
베드로는 당연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될 때가 생각났을 거라.
근데 어느 날 야고보 요한의 어머니가 와서 또 치맛바람을 날리면서 선수를 쳤어.
주의 날에 내 아들을 주의 우편에 좌편에.
그럼 베드로가 너희 둘이서 우편에 좌편이면 나는 뭐고 나는.
다름 제자들 시기가 가득 했다는 거야 전부다.
전부 제자들이요.
열 두 제자가 예수님께 직접 배우면서도 예수님을 통해 가지고 한 자리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 꿈이 다 무너지니까 베드로가요.
부활한 예수님 몇 번 보다가 자꾸 왜 헛게 보이냐 이렇게.
아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음~하고.
물고기 잡으러 갑니다 그냥.
자기 꿈이 다 깨졌다 그 말이죠.
여러분 그런데 그런 베드로를 세 번 씩이나 모른다고 잡아떼고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고 완전히 다 손씻고 다시 옛날 어부로 돌아가 버린 그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가요.
찾아가 가지고 베드로는 면목이 없지요.
바요나 시몬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아가 파스 메 하고 물어요.
베드로는 자신이 없죠.
세 번씩이나 잡아뗐지.
베세다 출신 일곱 명이나 선동 해 가지고 가노라 하고 또 데리고 떠나 버렸지.
무슨 면목으로 예수님 사랑 하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으로 서는요 꼭 한번 이라도 창세 이후로 누군가로부터 꼭 한번 이라도 듣고 싶었어.
내가 주를 사랑 합니다. 그 말 한번 듣고 싶었어.
창세 이후로 아무도 해 본 사람이 없어.
그래서 억지로 욱박질러 절 받기로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물었는데.
베드로가 자신이 없어 가지고 내가 주를 사랑 하는데 주께서 아시 나이다 그러고 말아버립니다.
아쉬워서 예수님이 한번 더 물었어요.
더 물어도 대답은 똑 같애.
예수님 하늘로 올라 갈 때가 다 돼 가는데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어 봤어.
세 번째 물으니까 베드로가 더 근심 하면서 두려워하면서 맨 똑 같이 내가 주를 사랑 하는줄 주께서 아시 나이다 그것 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요 그런 베드로 에게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그랬어요.
그 어떤 양이요?
자기 피로 값 주고 산양이요.
그걸 세 번씩이나 맹세하고 저주 하면서 자기를 잡아떼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다시 내 양을 치르는 거예요.
내 양을 먹이라,
그 내 양을 치라 하는 말이 라아 라는 말인데.
내양의 친구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게요.
친다니까 막 막대기 갖고 친다는 게 아니라 목회 한다는 거는요?
양들의 친구가 돼 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돼 준 것처럼.
만일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 너 싸나이가 그럴 수 있냐?
해도 너무 했다 야.
나는 너 믿었다 야 이렇게 한 게 아니라고.
만약에 예수님께서 베드로 딱 제껴 놓고 야고보 네가 나를 사랑 하냐 해봐.
내 양을 치라 해봐,
그 다음 주에 교회 안 나옵니다, 이제.
그 세 번씩이나 맹세하고 저주하고 주를 부인 그 사람에게 여전히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에요.
그 사람을 가려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악의가 없어요.
실수도 하고 뭐 하지만 악의가 없습니다.
그것도 뒤끝이 없어요 사람이요,
그런 베드로를 참 예수님이 좋아 하신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좋아 하는 것도 좋아 하는 거지만요.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들이요 외모로 예수님을 사랑 한게 아니라고,
예수님이 못 생겼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잘 생긴 걸로 자꾸 보는 건요 달력을 너무 오래 봐서 그래.
그래 잘 생긴 게 아닙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어요.
삐쩍 마른 줄기 같으니, 풍채도 없고.
그들이 이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요.
딱 한 사람 있어 한 사람.
이 세상에 왔을 때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고.
그게 누구냐 면요?
창녀야, 창녀.
베다니의 마리아입니다.
그것도 목사들이 엉터리로 가르쳐 가지고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라고 그렇게 설교 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수두룩해.
아니야,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도 아니고 또 가능 하지도 않고요.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바닷가 막달래나 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마을에서 꽤 여성 비즈니스가 아주 여성 기업인 같은 돈이 많은 사람 이예요.
그래서 예수님 일행에 삼년동안 사역비의 거의 대부분을 그 막달라 마리아가 다 댔습니다.
야고보 요한의 어머니 하고 둘이서 거의 다 대다 시피 한 거라.
일곱 귀신이 들었던 그 여자.
그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야.
예수님을 징그러운 사랑했던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섬긴 사람이고.
일곱 귀신 들었다 쫒겨 나서 예수님을 따르고 섬겼던 사람이고.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은 베다니의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야.
근데 이 여자가 창녀라고, 창녀.
성경에 창녀란 말이 없지만 아무리 봐도 창녑니다.
뭐로 봐서 알수 있냐?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이 있었어요.
바로 그 일이 있은 직후에 나사로 집 건너편에 그 베다니 문둥이의 시몬 바리세인 시몬 집에서 예수님을 초대 한 거예요.
자기도 예수님 초대하면 무슨 또 큰 은혜를 받을 란가 해 가지고 초대 한 거야.
예수님께서 나 그 집에 안가 그런게 아니라 또 갔어 그 집에도.
가서 식사를 하는데.
아니 식사가 나오기 전에 손님으로 모셨으면 반드시 손 씻을 물을 줘야 되.
발 씻을 물도 줘야 되고.
근데 이 사람이요 안 주는 거야.
얼마나 냄새가 나겠어. 남자가.
예수님 하고 열두 제자면 열세 명에다가 나사로 까지 열네 명에다가 또 이 마리아 저 마리아 다른 마리아 막 하면 또 열 대 여섯 명 한 이십 명 한 집에 있어봐 얼마나 냄새 나겠어요.
그러니까 그때 마리아는 이제 출근 했다가 마치고 집에 와서 보니까 집에 오라버니 하고 언니가 없는 거예요.
어디 갔을까? 어디 갔을까 하다 보니까 건너편에 웅성웅성 하니까 가보니까.
자기 오라버니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 하고 있는데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거기 사람들 다 몰라요, 지냄세 다 모르는데.
마리아는 다 깨끗이 하고 분단장 하고 깨끗한데 있다 왔으니까 냄새가 어떻게 나는지 오징어를 굽는 거야 완전히 막 그래 가지고 마리아가 쫒아 가서 세상에 손님을 모셔 놓고,
손 씻을 물도 안 주고 향료도 안 붓고 이게 뭐야.
그래 가지고 자기 집에 빨리 가서 향료를 가져 온거야.
이게요, 이 향료가 대게 비싼 겁니다. 이게.
가롯유다가 계산하면 2000만원 하는 거예요, 2000만원.
장정이 일 년 벌어야 하나 살 수 있는 거예요.
200, 300데나리온 이니까.
300 데나리온은요?
일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인데 왜 300데나리온 이냐?
안식일 빼면요?
일년에 300일 밖에 일 못해요 제일 많이 해야.
그럼 300데나리온 이면 일 년은 벌어야 산다는 건데,
하루에 10만원씩 하면 3000만원이고 7만원씩 하면 2000만원이야.
그래서 아무리 봐도 2000만 원 이상 하는 건데 이게 뭐 하는 거냐 면요?
히브리 처녀들이 시집갈 때 혼수품 제 일호야 일호.
그래서 이거 탁 줄을 해 가지고 목걸이처럼 가슴에다가 달고 신랑 맞이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가 신랑 맞이하는 첫날밤에 그 히브리 사람들 방이 벽지도 없고 시멘트가 아니고 흙벽이라.
그럼 곰팡이 냄새가 쾌쾌히 나는데 흙 집속에 근데 그때 향료를 꺼내 가지고 한 방울만 신랑 머리에 땅 떨어뜨리면요?
밤새도록 그 방 안에 향기가 충만 한 거예요.
곰팡이 흙냄새 나지 않고,
그러고는 이걸 놔뒀다가 손님을 귀빈을 모셨을 때 그 잔치할 때 주빈의 머리에 또 한 방을 땅 떨어뜨리고 이렇게 평생을 쓰는 겁니다, 일평생,
그리고 이제 남은 게 있으면 남편이 돌아 가셨을 때 몸을 씻어 가지고 그 시신에 발라 가지고 미이라 할 때 방부제로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집갈 때 제일 먼저 이걸 장만해야 돼.
제가 그 마리아 이야기를 할 때 마다 가심이 미어지는 것은 그 마리아가 창녀 짓을 하면서도 몇 살 때부터 했는지 몰라.
오라버니는 나병 환자 예요.
언니는 오라버니 수발 한다고 돈 벌러 갈수도 없어.
그래서 이제 먹고 살려면 마리아 자기가 가서 돈 벌어 와야 하는데,
여자가 돈 벌 길이 있나요?
그래서 몸을 팔아 가지고 이제 돈을 벌어 오는데 그 돈 받아 가지고 다 포주에게 뜯기고 그리고 이제 누가 예쁘다고 서비스 잘했다고 팁을 주면 그것 모아 가지고 언니에게 갖다주고 봉급 받아가 언니 갖다 주는데 그걸 살살 빼 돌린 거 갔어요 또.
이거 하나 장만 한 거 보면요? 이거 거금인데.
그럼 이거 왜 장만 했냐?
자기 같은 창녀는 시집 갈수 없다는걸 몰랐는가봐 애가.
근데 이제 머리가 굵어지면서 자기 같은 여자는 아무 남자가 데려 갈 남자가 없다는걸 안 거예요 이제.
알자 이제 이거 부담스러운 거죠.
괜히 언니 모르게 빼 돌려 가지고 비싼 거 사 놨는데 비담 스러워.
그때 예수님 나사로 동네에 베다니 시몬 문둥이 바리세인 집에서 냄새가 나니까 쫒아가서 가져와 가지고 하도 냄새가 지독 하니까 빨리 깨 가지고 예수님 머리에 한 방을 땅 하고 나머지는 예수님 발에 다 부어 가지고 머리카락 가지고 문지르고 있습니다.
그 머리카락으로 한다는 것은 그거는 상상도 못하지 그 당시에는.
지금도 안 해 지금도.
히브리 여자들이나 중동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성기로 생각 합니다 성기로.
우리 류방이나 엉덩이를 내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머리카락을 어떻게 외간 남자한테 보이냐?
14살 되면 머리카락을 보일 수 없습니다.
다 싸버려요 다.
근데 창녀니까,
온전한 사랑이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는 거예요.
그걸 꺼내 가지고 예수님 발을 문질러요.
그때 그 바리세인 문둥이 시몬 그 집 주인이 속으로요.
야 내가 이 예수를 말이야 응?
괜히 초청 한 거 아냐?
예언자도 아닌 거 같아 저거.
예언자 같으면 저 여자가 얼마나 죄 많은 여잔데 저러고 못 대고 있을 텐데 저 발을 떡 대 놓고 있나 저거.
그리고 막 찡그려 가지고 도끼눈을 보고 있는 거에요.
또 가룟유다는 이 여자여 그걸 허비하느냐 말이야.
300데나리온 받아 가지고 가난한 사람 많이 구제 할텐데.
요한은 속으로 가난한 자 좋아 하시네 저는 도적이라 훔쳐 감이라 또.
다른 남자들도요 말을 안했다 뿐이지 전부다 여자를 젛게 안봐.
12 사도들도요, 예수가 네 신랑 이가 가스나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
근데 예수님께서 왜 자꾸 여자를 괴롭게 하고 그래.
그러지 마 거, 저가 내게 좋은 일 한 거야.
저가 내개 기름을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해서 한 거야.
여러분 마리아가 예수님 장례식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예수님 그렇게 해석을 해 준 거야 그냥.
그리고 이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 이 여인이 행한 일도 말 하게 하여서 전해서 기념 하게 할 거다.
그랬다는 거 아니 예요.
그때 그 누가복음에 보면요.
예수님께서 그 집 주인 바리세인 문둥이 시몬 에게 물어요.
시몬아 내가 할 말이 있다.
예, 주님 말씀 하십시오.
사람이 빛을 졌는데 말이야 한 사람은 500 50전을 졌고 한 사람은 500만 데나리온 빛을 졌어. 5만 달란트.
보니까 둘 다 못 갚을 거 같아서 둘 다 탕감 했다네.
그래 자네 생각에 누가 더 많이 사랑하고 누가 더 감사 하겠는고.
제 생각에는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많이 감사 하겠네요 뭐.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 화법이요 항상 네 말이 옳도다 하는 거예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옳은 말을 하게 해 가지고 네 말이 옳도다 그래요.
네 아는 대로 이 여자는 그래 네 생각대로 죄가 많아.
많은 죄를 탕감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하는 거야.
너는 바리세인 이니까 죄도 많이 안 짓겠지.
그럼 너는 탕감 받은 죄가 얼마 안 되니까 나를 조금 사랑하는 모양인데 그래서 내가 올때 물도 안 줬잖아 너.
근데 너 집에 잔치 집에 나를 불러 놓고 내 머리에 식용유 한 방울도 안 가져 왔잖아 너.
근데 여자는 봐라,
많은 죄를 탕감 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해 가지고 식용유가 아니라 그 비싼 향유를 내 머리에 내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씻은 거 아니냐.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많이 감사하는 거라.
그러면 예수님도 이 여자가 죄 많다는 거 인정 한 거요, 안한 거요.
인정 한 거죠.
그럼 그 착한 마리아가 무슨 죄가 있었겠어요.
창녀라는 거예요.
창녀를 돈 안 벌고 마리아가 나이가 어린 게 어디 가서 이 비싼 걸 사겠어 이가 다.
그래 정황을 볼때 마리아가 창녀라는 것은 그래 하는 말입니다.
근데 죄가 그 까지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참으로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은요?
예수님께서 그 나사로 집에 어릴 때부터 왔거든?
명절 지키러 올 때 마다 들려요.
그리고 공생에 들어서면서 부터 야 이제 내가 체면 때문에 너희 집에는 좀 앞으로 좀 자주 못 오겠다.
그리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너 제발 그 창녀 짓 그만 둬 좀.
그 내가 어떻게 너희 집에 오겠나?
이런 말도 안 했어요 그냥 그대로 두고 사랑 했다는 겁니다.
회계하라 한 적도 없고 또 더 놀라운 것은요?
예수님이 전능 하신 거 맞죠?
아니 오병이어 나 물 위로 걸은 거 봤잖아요.
물로서 포도주를 만들고 날 때부터 소경 된 자 고쳐 버린 거 봤잖아요.
열 명의 문둥이 가다가 길에서 낮게 한 적도 있잖아요,
근데 나사로의 문둥병이 좀 예수님이 고쳐 줄 수 있잖아.
근데 예수님이 안 고쳐 주고 사랑 했다는 거예요.
죽을 때 까지.
죽었어요 또.
죽는 것도 내 버려뒀어 또.
그리고 죽고 난걸 다시 살려 냈는데 살려내도 문둥병이 싹 나았더라 그런 말도 없어요.
죽었다가 깨어나더니 문둥병이 어린아이 살 같이 되었더라 그런 말도 없다니까?
우리는 맨날 그저 복 받는 다는 게 막 병이 고쳐져야 되고,
막 창녀가 억만 장자가 되고 이런 거만 간증하고 돌아다니는데 예수님은 한 번도 나사로의 집에 가서 너 창녀짓 좀 그만둬 이렇게 한 적도 없습니다.
나사로 병 고쳐 주고 그 집에 왔다갔다 한 게 아니라 병 있는 그대로 병 있는 집에 오도 못하거든 원래.
그래도 와.
근데 여태까지 우리가 그 옥합 이야기 들을 때 막 니 옥합을 깨라.
가진 소중한 것을 바쳐라 바치면 복 받는다.
뭘 복 받아 아무도 복 안 받는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그대로 두고 와서 사랑해 주신 그게 복이지.
그거를 막 확 고쳐 주거나 그렇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그 예수님께서 어릴 때부터 명절 지키러 올 때마다 나사로 집에 와서 자고 가고 하는데,
그때야 예수님 혼자와 자고 가면 되는데 지금은요?
따르는 사람이 많아.
12제자가 따라오고 여자들 몇 사람 따라오면 열대여섯 명 20명 되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 집에 오면요?
꼭 보면 밤 9시나 되면 옵니다.
그러면 선생님 조금만 제가 저녁 준비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 밖에서 먹고 왔느니라.
먹고 오긴 뭘 먹고 와 안 먹고 왔어요.
그리고 나사로 집에서 자는데 뭐 침대 놓고 편하게 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토벽에다가 기대앉자 가지고 담요 같은걸 무릎하고 어깨까지 해 가지고 기댄체로 이렇게 앉자서 주무시고 눈 붙이고 아침에 또 일찍 나가시는 거예요.
그럼 나갈라 하니까 또 마르다가 선생님 아침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 준비 됐습니다.
볼일 없습니다. 시내 아무것도.
시내 아침에 예수님이 무슨 볼일이 있어,
아무 볼일이 없지,
근데 일찍 나오신다고,
왜 나오느냐?
그 12명 15명 데리고 빵을 먹어봐 거.
가난한 집에서.
그 눈치 없는 베드로 또 얼마나 많이 먹어 치우겠나, 또.
그러니까 그 페 안 끼치려고 아침에 일찍 나오는데 배가 고파요 안 고파요.
배고프죠.
어제 밤에도 안 드셨는데.
저 무화과나무 밑에 가서 혹시 열매가 있을라나 했다는 거 아니 예요.
그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없었어, 또 하필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예수님의 사랑을 갖다 우리를 부자 되게 해 주고 막 잘 되게 해주고 서울 대학 붙여 주고 그러면 복 주는 건 줄 아는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 예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두고도 사랑 하신다는 거예요.
창녀 그대로 두고도 사랑 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 마리아가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 하지만요?
자기를 알잖아 자기가 시집도 못 간 다는 사실을 알 잖아요.
그래서 그 몸을 팔아서 밀가루 하고 바꿔 먹는 그런 입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얘기라.
다만 마음속으로 그렇게 존경하고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바쳤고 더 바칠 것도 없어요.
또 그렇게 바쳤으니까 어떻게 해 달라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랑 한 거예요 그냥.
그때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몇일 앞둘 때야.
얼마나 예수님 마음이 고민이 되는지 내 마음이 심히 고민 돼 죽게 생겼으니까 말 좀 시키지 말라고.
그리 했다가 나와 함께 좀 깨어 있자 했다가 막 예수님 마음이 오락가락 해요.
제자들 전부 누가 주의 우편에 좌편에 그 교만의 냄새가,
그런데 그 마리아가 예수님 십자가를 앞두고 그렇게 마음이 고민 될 때 마리아의 그 수많은 남자가 남자들이 마리아를 짓밟고 갔는지 몰라도 마리아 가슴속에 있는 그 순진무구한 사랑을 이 향료 값처럼 그대로 간직 되었다는 거예요.
그 마음은 몸이야 뭐 만신창이 됐겠지 만은.
그래서 그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그 사랑을 예수님은 다 받았다는 거예요.
온전한 사랑 이라.
부끄러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꺼리 낄 것도 없고 남이 뭐라 하든지 말든지.
이 사랑은요?
대상을 기뻐하는 겁니다.
아홉 번째 사랑은 대상을 기뻐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리아를 기뻐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걸 뭐 창녀 짓 한다고 막 미워 가지고 막 회계 하라고 닦달 하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그 몸은 뭇 남자가 짓밟고 갔는데 아무 에게도 마음을 준적이 없고 그 향료 옥합처럼 그대로 마리아의 마음은 그대로 예수님이, 예수님께서 받쳤는데 그걸 받아 주셨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기뻐했다는 겁니다.
사랑은 기쁨이죠.
프레지 아모르라는 노래가 있어, 프레지 아모르.
사랑의 기쁨이라고.
사랑이 참 기쁨이죠.
바울이 자기 제자들에게 편지 쓸때.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 하는 자들아.
사랑이 곧 기쁨이죠.
열 번째 사랑은요?
섬기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고 왔다.
섬기는 겁니다.
내가 주와 선생으로서 너희 발을 씻겼잖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교만 떨지 말고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마땅한 거야.
지금 행한 것을 너희가 이전에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서로 섬기는 거.
이렇게 열 가지로 예수님의 삶 속에서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그렇게 보여 준거 아니겠어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사랑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왜냐 하면?
400년 전에 주계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 했나이까?
그것 때문에 이렇게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보여 주신 겁니다.
이런 사실들을 다른 제자들은 다 챙겨보지 못했는데 요한 사도가 이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래서 예수님 하면 그냥 하나님은 사랑.
이렇게 이제 요한이.
그렇게 정리가 되니까 그야말로 사랑의 신학이 된 거예요.
그 사랑이란 말 외에는 아예 요한은 그냥 일절 다른 말 하지 않습니다.
그래 요한 1서 4장 펴 봐요.
요한 1서 4장을 보면 은?
요한 1서 4장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은 그날 이후로 하나님의 사랑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외에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창조 하신 것도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실 목적으로 사랑 하시고 싶어서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를 창조한 거예요.
우리를 구원 하신 것도 영원히 우리를 사랑 하시려고.
영원히 사랑 하시는 그 사랑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가시려고 우리를 건져 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게 중요 한 게 아니라 하나님 사랑 하는 거 이웃 사랑 하는 거 생명 있는 모든 사랑 하는 거 그걸 배워야 하나님을 배우는 거예요.
러시아의 민요 중에 백만 송이의 장미라는 노래가 있어요.
여러분 집에 가서 한번 찾아 봐요.
러시아 민요 인데 백만 송이의 장미.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 에게 장미를 백만 송이 보내왔다 손 칩시다.
그럼 무슨 얘기죠?
그만큼 사랑한다 그 말 이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장미꽃 백만 송이만 보낸 줄 아세요?
봄 이제 돼봐.
진달래 억 만송이,
매화 억 만송이.
장미꽃 억 만송이.
가을에 국화 까지.
수 억 만 송이를 계속 보내.
해 마다 보내.
그래도 몰라 내다 보도 안 해 이 싸가지 없는 것들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불감증 환자들입니다.
전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 몰라요.
볼 줄도 모르고 깨달을 줄도 모르고 느낄 줄도 모르고.
성경책을 봐도 모르고.
연애편지 펴놓고 보다가 자 버리고 그냥.
그 편지를 가르치는 목사는 엉뚱한 소리 하고 앉았고.
맨 하는 게 물질적인 복 잘 되는 거 그런 소리 하고 앉았고.
나사로 하고 마리아가 뭐 물질 적인 거 뭐 잘 됐어요.
아무 잘된 거 없잖아요.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 했잖아요,
사랑 했어도 전혀 로또 복권 당첨 된 것도 아니고.
베다니 동네가 뭐 땅 값이 올라가 가지고 평당에 몇 백 만원 한 것 도 아니고.
지금도 안에 그대로 있어 지금도.
땅값 하나도 안 오르고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
벧 아니 라는 말은 벧 하는 건 집이고 아니는 슬픔의 집이라.
동네 이름이.
전부 나병 환자 아니면 성병 환자만 삽니다.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뭐 십일조 많이 하니까 예수님 우리를 사랑하고 그런 거 아닙니다.
온통 성경 이야기라든지.
성경과 인생과 역사와 자연과 만물과 전체가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로 보여 지고 들려지고 깨달아 지는 날이 있다는 거예요.
그 때 사 우리도 사랑을 배우는 것이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다.
신학은 사랑 학이다.
하는 고백을 하시게 될 겁니다.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찬송 같이 합시다.
404장을 같이 하려 합니다.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이 한적한 곳으로 불러 주신 것은 다시한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는 말씀을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동안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나 또 설교 할 때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헛되고 헛된 것들을 위해서 양식 아닌 것들에서 은을 달아 주고 배부르게 못할 것을 헛수고 하면서 너무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다 배울 수 없지만 장말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을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아버지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가정이 사랑의 동산이 되게 하시고 사랑의 목장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다 천국의 모델 하우스 같은 그런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되어서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