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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땅에 대한 언약을 통해 보는 복음의 의미.

성경적으로라는 말이 너무 흔해졌습니다.  저도 그 말을 많이 쓰는데  성경적으로라는 말을 쓰다가  정말 내가 맞는가? 하는 고민을 하고 이 말을 이제좀 줄일려구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중구난방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하는데  성도님들이 성경을 보는 눈을 좀더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고자 하오니 그냥 막 읽어도 됩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것은 아시죠.  곧 오랜약속과 새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누구와 한것인줄 아십니까?  바로  구약은  아브라함과 한 약속의 연속이고  신약은 이 아브라함과 한 약속의 새로운 약속입니다.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다. 라고 말할수 있지만  복음은 율법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 복음이지 유대인에게는 복음이 아니라 원수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약속을 얻게하는 방편의 복음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논쟁을 할때  논쟁의 가장 근본 원인은  자기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성경안에서 위치가 어디입니까?  저주받은 자입니까? 약속을 받은 자입니까?  가인의 후손입니까?  셋의 후손입니까?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입니까? 아니면 영적 후손입니까?  현 시대에는 가인의 후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홍수에 의해서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여러분은 모두 셋의 후손입니다.  노아의 후손입니다.  일단 하나님으로부터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 아닙니다. 


땅을 얻을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약속을 받지는 못한 자들입니다.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한 약속임으로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 아닌이상 우리는 약속밖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당신은 저주받은 자입니다.  이것을 먼저 인정하고 시작해야합니다.  우리는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땅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밖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이 율법을 논쟁하는것이 웃긴겁니다.  저주받은 자들이 천국을 논하는것 자체가 웃긴겁니다.  저주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말하는게 우선은 말이 되지만 웃긴건 맞습니다. 


일단 창세기로 돌아갑시다.  창세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에덴동산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그 에덴동산을 빼앗겼다는것에 창세기의 시작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땅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히 죽지않게하는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 열매는 12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일년 열두달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땅에 사는 자들은 이 열매를 맘껏 먹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을 빼앗겼습니다.  사단에 의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인간에게 돌려주고 싶은데 그게 안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약속을 어겼음으로 그 땅을 다시 얻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과 다시 약속을 맺습니다.  이 에덴동산을 다시 얻을수 있는 약속입니다.  이 에덴동산은  가나안땅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믿음의 언약으로 가나안땅을 그 후손들에게 줄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우리 이방인이 가나안땅을 얻을수 있는 방법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땅을 현실적으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의미하지만 구약에서는 실제하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이땅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약속하는데 그 후손들에게 그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의 후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밖에 없었지만 야곱에게는 12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십니다. 이스라엘로 변경하죠.  그리고 땅을 약속하십니다.  이 땅을 너희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땅을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400년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게 될것을 말씀하십니다. 


가나안에 온 극심한 가뭄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땅에서 살게하고  애굽땅에서 이스라엘은 그 민족을 국가수준으로 키우고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창세기는 이 약속의 시작이고 출애굽은 이 약속의 성취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을 정복하게 됩니다.  이 가나안을 정복하기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시내산에서 언약을 주십니다.  이 언약이 바로 율법이고 이 율법은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모형은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죽지 않고 살수 있다는것이 에덴동산의 언약입니다. 


이 가나안의 언약 또한 똑같습니다.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면 가나안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행복하게 살것이다.  땅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히 에덴동산처럼 너희가 살게될것이다. 


인간은 에덴에서 약속을 어긴것처럼 가나안에서도 약속을 어깁니다.  가나안언약의 핵심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제사장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무엇이나면 복음에 있어서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제사장이 되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복음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서  제사장의 행실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하는 법도 아니고  천국에 가게 하는 법도 아닙니다.  그 시대 그 당시에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온땅에 알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제사장 나라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 행해야 하는법입니다. 


옛날에  부족들에게는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왕이 있기전에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과 통했고 신의 명령을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서 그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제사장은 왕이었고  왕은 통치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통치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야했고 통치의 근본인 율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나라는 법이 필요했고  이 법은 국가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의 헌법입니다.  이 헌법의 기본은 하나님을 섬기는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 율법을 받았고  이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했고 이 통치 철학은 온 이방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제사장의 나라로서의 백성의 행위를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시내산 율법의 언약의 핵심입니다. 


이 율법 곧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을 잘 지키면 그 땅에서 영원히 산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 율법을 잘 지켰나요?  그들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을 숭배했고  아세라를 숭배했습니다.  곧 하나님보다 태양과 달을 숭배한것입니다.  태양은 빛을  달은 물을 지배했음으로  이 둘을 섬기는것은 농사를 짓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중요한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태양과 달이 더 그들에게 소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의 약속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에서 내쫓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땅에서 내쫓았고  그들이 회개하면 다시 가나안땅에 들어갈수 있겠습니다. 


율법을 범하면 곧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땅에서 쫓겨나지 않고 그 땅에서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약속을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는  그 목적은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을 맺고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땅에서 쫓겨나지 않고  영원히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복음안에 거하면 율법을 범한 죄에서 용서를 받아서 그 땅 곧 이스라엘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며 평안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새롭게 맺은 신약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길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가 생겼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유대지파와 베냐민 지파 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모두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언약이기에 어쩔수 없이 유대인들을 온땅에 흩으십니다.  온땅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찾아 그 땅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잃어버린 12지파 어린양들을 찾는 방법으로 전도를 사용한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사자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땅을 얻을수 있다는 것을 전파하도록 한것입니다. 


복음은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얻게하는 법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잃어버린 가나안땅을 회복하는 법이 된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영원한 기업의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그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날이 언젠가 올텐데 그 날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일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얻게된것은 그들이 복음을 믿고 약속안에 들어와서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린 저주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인 땅에서 쫓겨난 그 저주가 끝나 그들이 그 땅에 돌아올수 있게된것입니다. 


땅에 돌아왔다고 언약이 이루어진것은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마지막 언약이 이루어질 날이 올것입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은 예수그리스도를 언약의 사자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주 복잡하지만  어찌보면 너무나 단순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단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가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파할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전도하는것은 어찌보면 참으로 한심한 것일수 있습니다. 


당신은 저주받은자입니다.  그 저주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합니다. 라고 말해야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들이라는 생각은 스스로 자기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내가 구원얻은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그 교만은  하나님은 너는 사랑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단들의 공통적 특징들입니다.  자기들이 사랑받아 자기들은 잘먹고 잘살고  자기들은 세상이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착각하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저주받은자입니까? 사랑받은 자입니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은혜밖의 사람들이고 약속밖의 사람들입니다.  이 본질을 잊으면 안됩니다. 


내가 잘나서 하나님이 구원한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은 땅을 얻는것으로 표현합니다.  이 땅은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이 준것입니다.  아담과는 선악과의 언약을 통해서 에덴을 주었고  이스라엘과는 율법을 통해서 가나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잃어버린 땅을 다시 얻게하는 새로운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었습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옛언약은 율법이고  새언약은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새언약인 이유는 옛언약이 얻게하지 못한 땅을 다시 얻게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얻은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복음이 우리를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우리를 찾아왔습니까?  그것은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찾으러 떠난 유대지파들의 복음전파 때문입니다.  


바울은 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했나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 이유는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찰때 비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기 민족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야 한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것입니다. 그 바울 사도의 노력과 애씀이 바로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구원얻게되는 은혜를 입은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운영되기 위해서 세워진 법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국가법이고 우리 이방인들은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율법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때 그 땅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려면 이 법을 지켜야 한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법입니다. 


이는 이방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을 지켜야 한다고 떠드는 자들은 한마디로 꼴깝을 떠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땅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이 언약을 살필때 핵심적인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할례와 세례입니다.  


다음번에는 할례와 세례를 통한 하나님의 언약과 그 성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