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기본진리
서론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어떤 종교이고 어떤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 같고 예수님도 믿어야 하는 것 같은데 예수님은 십자가와 곁들여서 믿어야 되고, 또 무슨 성령이라고 하는 신도 있는 것 같은데...하면서 기독교 신앙, 기독교 진리에 대한 체계가 확실히 잡히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단과 사이비 사상에 많이 휩쓸리기도 하고 불신의 길을 걷기도 하는 등의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기독교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진리를 통해서 내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함으로 교회 다니는 이유와, 전도해야 하는 이유, 내가 주일이면 예배드려야 하는 등의 이유를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지고 그러므로 어떠한 유혹과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진리를 우리는 어디에서, 또 어떻게 알 수 있을 까요? 환상, 꿈, 계시... 아닙니다. 오직 신구약 66권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구약 말씀 전체를 똘똘 암송하고 있어야 합니까? 나는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은데 그러면 천국에 못갑니까? 그런 의문이 생기는 사람도 이 자리에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이 지금부터 강의하는 내용을 잘 듣는 친구들은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한번에 머릿속에 속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주목하시고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66권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창조, 타락, 구속, 회복
Ⅰ. 창조
창조의 기사가 나오는 말씀은 창세기입니다. 세상의 창조와 인류 역사의 시작을 기록한 말씀이 바로 창세기입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세상의 처음 시작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세상은 누구에 의해 창조 되었는가?
성경 첫 말씀, 즉 창세기 1:1절은 무슨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경은 이 한 마디의 선언으로 우주,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존재의 기원에 대해 명확하고도 분명한 답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이 세상에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광대하고 복잡한 세상이 너무나도 조화롭고 질서 있게 작용하는 것을 실제로 보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이가 없다면 어떻게 만물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서로 작용하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유)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이유는 자신이 만드신 그 피조물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ex)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은 부적절, 영광을 드러낸다는 표현이 정확. 기도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삶을 살게 이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드러난 자신의 영광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그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의 표준 지침을 제공하는 교리서가 있습니다.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거기에 보면 인간의 제일의 목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창조된 피조물들을 통해 당신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각자의 수준에서, 바다는 바다대로, 땅은 땅대로, 동물은 동물대로....인간은 인간대로 각자의 맞는 수준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과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곧 죄가 들어오기 이전의 세상, 타락하기 이전의 세상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3. 결론
인간이 타락하여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인간도 자신의 존재의 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천지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가장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서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의 시작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죄의 유혹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떠나서 하나님과 같이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지정해 놓으신 가장 좋은 자리를 떠난 것이었고 창조의 목적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범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타락의 시작입니다.
질문)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가?
창세기가 태초에라는 말, 즉 천지창조의 시작을 알리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태초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요한복음 17:24절에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창세전부터,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Ⅱ. 타락
우리가 인간의 타락을 이해하고자 할 때 도움을 줄 수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차의 탈선입니다. 열차는 미리 깔린 철로, 레일을 따라서만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고, 가장 빠른 것이며 가장 편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열차가 그 레일을 이탈해서 달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열차는 빠르게 갈 수도, 안전하게 달리지도 못합니다. 레일을 이탈한 열차는 결과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목적대로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최고로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에서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입니다.
1. 죄!, 타락의 시작
사단이 뱀을 통하여 인간을 유혹합니다. 그 유혹의 내용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 즉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인 선악과만은 먹지말라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약속을 저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유혹에 넘어지고 맙니다. 결국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도록 창조된 인간은 그 이후로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질병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버리게 되고 맙니다.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창조시에 피조물들이 드러내던 영광스러운 광채는 사
라져 버렸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의 모습들이 깨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창조의 본래 목적에서 이탈한 가운데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하고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2. 죄가 미치는 영향
죄는 단지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나 부도덕한 일을 행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이 최종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죄는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 즉 가난, 질병, 인간의 모든 갈등(전쟁. 살육. 테러...)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인간의 죄로 인해 나타난 죽음의 증상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은 그저 목숨이 끊어져 육신이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육체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죽음입니다.
ex) 이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특징지우는 요소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단지 흙으로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의 본질은 육체입니다. 따라서 동물들은 죽으면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 바로 흙으로 만든 인간의 육체 안에 영혼을 불어넣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육체와 영혼이 결합하는 순간 바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단지 육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모두 살아서 함께 결합되어 있어야 살아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고 있을 때에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고 그 죄가 제일 먼저 행한 일은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결을 완전히 끊어 놓은 것입니다.
3. 결론
이처럼 인간은 본래 영혼과 육체가 모두 살아있는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교제가 끊어짐으로 해서 영혼은 죽고 육체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해 죽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있게 됩니다.
이제 인간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러한 절망의 상태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무능력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린 비참한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인가?, 인간은 이렇게 절망 가운데 비참한 존재로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 속에 끝이 나고 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 속에 이제 우리는 구속으로 넘어 갑니다.
질문) 왜 동산 중앙에다 실과를 두어 가지고 죄를 질 소지를 제공했는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후에 아담에게 명하신 두 가지 명령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의 참 뜻을 알아야만 이 질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명령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고 관리할
자로 인간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지키고 보존하며 가꾸어야할 책임이 주어짐과 동시에 모든 만물의 가장 머리에 위치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만물을 통치할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ex) 지배인의 개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지배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게의 원 주인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가게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를 지배인이라고 합니다. 가게의 운영권,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할 것인지에 대한 인사권, 심지어는 재정권까지도 다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배인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인간에게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지배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두 번째 약속, 즉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명령은 첫 번째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기위한 일종의 보호장치입니다.
지배인이 아무리 가게나 회사의 모든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배인이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배인은 어디까지나 지배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세상을 다스릴 지배권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의 주인이 되기를 원치는 않으셨습니다. 자칫 인간이 세상의 지배권을 행세하다가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으로 착각할까봐 하나님은 동산중앙에 실과를 심으셔서 아담이 그것을 볼 때 마다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세상을 지배하는 아담 자신의 주인도 역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주입시키셨던 것입니다.
ex) 성경의 인물로 빗대어 본다면 요셉이란 사람을 들 수 있겠지요.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그의 집 가정총무를 삼아서 그에게 가정사의 전반적인 일을 책임지라고 합니다. 다만 그의 아내만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주인에게만 허락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보디발의 집안의 모든 일을 관장하면서 보디발의 아내를 볼 때는 이 집의 주인은 보디발이라는 것을 되새김질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실과를 심으셨던 것입니다. 아담에게 죄를 질 소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실과를 볼 때 마다 하나님께서 한 명령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장치로 동산 중앙에 실과를 심어 그것은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질문) 아담의 죄가 왜 우리에게까지 영향이 미쳐야만 하는가? 우리가 언제 그 선악과 맛이나 봤나?
아담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 태어날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약속을 맺었습니다. 그 약속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고 나의 말에 순종하면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형벌이 임하는 것, 이것을 바로 성경의 대표사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 축구국가대표선수 - 개인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이름으로 나간다. 이기면 나라가 이기는 것이고, 지면 나라가 지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불공평한 것도, 부당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아담 덕에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 대표자 사상은 그대로 예수님에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류의 두 번째 대표자라고 합니다. 첫 번째 대표자로서의 아담은 실패해서 그의 후손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지만 두 번째 대표자이신 예수님은 성공하셨기 때문에 인류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만약에 대표자 사상이 없었더라면 우리 모두는 개인의 자격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대표자사상에는 부당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Ⅲ. 구속
구속이란 말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단어이기는 한데, 그 의미나 정의를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이중에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질문) 구속이란?
1. 구속의 의미
구속의 의미를 알기 위해 우리가 타락을 이해할 때 도움을 얻었던 열차의 비유를 다시 한번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락이 무엇이라고 했죠? 열차가 레일을 이탈한 상태, 이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선한 목적에서 이탈된 것을 의미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구속은 바로 이 탈선한 열차가 어떤 큰 기계의 도움을 얻어서 원래의 철로 위로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속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서 이탈한 피조물들이 자력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하나님의 선한 목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망적인 영혼의 상태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
타락한 인간이 다시 원래의 선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구별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돌려지는 칭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렸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태로 빠지게 된 인간을 구원해 내실 분이십니다. 그 메시야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의 많은 부분에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처음으로 예언한 말씀이 바로 창 3:15절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15절을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을 했다고 해서 원 복음, 즉 최초복음이라고 이름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이란 말이 바로 동정녀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후손이란 개념을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남자의 후손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는 것처럼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 즉, 남자의 성을 따라갑니다. 아버지의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후손이라고 말할 때는 남자의 후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처녀) 탄생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상적인 결혼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가 성적인 결합을 해서 낳으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그 어떤 남자와도 정을 통하지 않고 예수님을 잉태했으며 예수님을 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창세기의 예언처럼 여인의 후손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게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한 사람이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그 비참한 상황 속에서 구출할 것이라고 창세기 3:15절은 예언 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어야 할 복음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받는 다양한 길을 이야기 합니다. 어떤 종교는 수행을 많이 쌓으면, 모든 것을 절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그리고 전도하면, 선행을 많이 하면, 순교하면...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구원 사건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문을 여신 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당하고 죽어야 하는데 이 모든 죄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다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구원이 진정으로 나에게 미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3. 구원을 얻기 위한 믿음
그러면 이 믿음은 무엇이며, 어떠한 믿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가져야할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민수기 21:8-9절 을 보면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ex) 내용설명 : 불평하는 이스라엘 - 불뱀을 보내심 - 모세의 기도 - 처방을 내리심 -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면 살리라...
바로 쳐다본즉 살리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3:14-15절에서 그것을 바로 구원받을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쳐다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냥 보는 것이 아니고 어떤 대상을 목적을 가지고 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매달린 뱀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알면 예수님이 왜 쳐다보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을만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아니면 죽게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적인 동의, 즉 아는 것으로만 머물러서는 우리에게 구원이 미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나를 이 죽음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인 것입니다.
4.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다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이 바로 구속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구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선한 의도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다시금 소망을 안고 진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회복되는 것입니다.
질문) 구약의 백성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모세, 다윗 등 수많은 구약의 인물들은 다 지옥에 떨어졌는가?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절에서처럼 죄로 인해 죽게 된 아담을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인류를 구원할 여인의 후손 즉 구세주가 탄생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온 마음은 오직 태어날 아기에게 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낳은 첫 아들, 가인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은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가인의 태어남을 자신들의 구원과 연결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는 메시야, 즉 창세기 3:15절에 예언된 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로 메시야 대망사상이라고 합니다.
범상치 않은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는 신앙은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가 자신들을 구속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질문) 하나님께서는 왜 꼭 그리스도를 그 극한 형벌 속에 처하게 하셔서 비참하게 죽게 하심으로 구원사역을 하게 하셨는가? 다른 방법이 있거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냥 구원을 베풀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방법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거나 심심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법칙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과 모순되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거룩한 공의의 성품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성품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로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공의의 성품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죄지은 인간들은 아무런 공로 없이 용서받게 되므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인 십자가의 형을 택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 값이 그토록 큰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고, 꼭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신 이유는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할 만한 사람은 오직 아무런 죄 없으신 예수님이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Ⅳ. 회복
회복을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곳은 병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환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건강한 육체를 회복하여 병에 걸리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 회복이란 무엇인가?
회복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공로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에게 있는 육신의 죽음 이후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원래의 의도대로 돌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회복된 우리는 이제 원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고의 만족과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ex) 돈이 아니라, 명예가 아니라, 지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함으로 인해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2. 완성되지 않은 회복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이 회복은 완성된 회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그 창조의 의도대로 온 세상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는 아직 죽음의 증상들, 즉 질병, 가난, 전쟁, 갈등...등이 남아 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난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죄의 유혹 가운데 넘어지고, 죄를 지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를 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완성될 회복
그러면 그 회복이 완성되는 날은 언제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회복이 완성되는 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처음의 의도대로 복원된 나라에서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회복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고백한 그 모습을 다시 복원하는 회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셔서 세상의 모든 악한 질서를 바꾸시고 예수님의 새로운 질서가 다스리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행복의 최고의 극치를 체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생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질문) 예수님이 오시기전 아직 완성된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재림 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죽으면 천국가고, 예수님을 안믿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믿다가 죽으면 천국에서 행복하게 있을 것이고, 안 믿고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충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을 가리키는 두 단어와 지옥을 가리키는 두 단어가 나옵니다. 천국을 가리키는 단어는 바로 낙원과 천국이고 지옥을 가리키는 단어는 음부와 지옥입니다. 낙원은 때때로 아브라함의 품, 예수님의 품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음부는 고통 받는 것이라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예수님 재림 이전에 신자가 죽으면 그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바로 이 낙원에 거하게 됩니다. 반대로 불신자가 죽으면 그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음부에 있어 고통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영혼들은 예수님 재림의 날, 즉 심판의 날까지 대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 믿는 자는 낙원에 있던 영혼과 땅에 있는 육체가 결합하여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되고 믿지 않는 영혼들은 음부에 있던 영혼과 땅에 있는 육체가 결합하여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천국,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개념은 무엇인가? 그리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3차원의 어떠한 공간인가?
낙원은 예수님 재림 전에 미리 죽은 영혼이 거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낙원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세상의 모든 불의와 불법, 무질서를 없애고 예수님의 법이 다스리는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 즉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천국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새롭게 다스리는 나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새로운 땅이 생겨나고 새로운 하늘이 생겨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더렵혀진 그래서 무질서가 있고, 죄가 있고, 불법이 만연한 이 세상의 모든 질서를 없애고 예수님의 새로운 질서가 임하는 나라를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완성된 나라, 즉 천국이 하늘에서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생기는 것인지는 학자들의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가장 보편적인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멸하시지 않았던 것처럼 멸하지 않으시고 죄인이 의인된 것처럼 지금 이 세상이 죄로 타락하기전의 에덴동산으로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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