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쉬니카 신부의 간증
로마 카톨릭에서의 50년을 뒤로 하고...
나는 1809년 카나다에서 태어나 로마 카톨릭에서 세례받았고 1833년 사제로 임명되었다. 나는 25년간 사제로 일했으며, 솔직히 말하건데, 로마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도 나를 사랑했다. 나는 나의 교회를 위해 내 피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흘릴 수 있었으며, 교회의 세력과 위엄을 미국과 또 전 세계에서 확장시키는 일을 위해서라면 수천 번이라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다.
나의 가장 큰 야심은 개신교도들을 개심시켜서 카톨릭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로마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설교했기에,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개신교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카톨릭교회에서 성경은 닫혀진 책이었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성경에서 귀중한 것들을 발견했고, 사제가 되었을 때는 나 스스로가 강건해지기 위해서 또 교회를 옹호하는 논쟁을 할 수 있도록 성경을 읽었다.
나는 로마 카톨릭 사제들에게 어떤 나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독자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 판단한 것이다. 때때로 나는 그들을 위해서 애통해 하는데 이는 그 가련한 사람들이(내가 그랬듯이) 주님을 대항해서 싸우며, 비참한 상태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내가 겪은 싸움들을 알게 된다면 로마 카톨릭 사제가 되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나는 1851년에 프랑스 식민지를 찾기 위해서 프랑스계 카나다인 75,000명과 함께 교회의 이름으로 일리노이로 가서 아름다운 대초원에 정착했다. 식민지 개척이라는 커다란 과업을 끝낸 후에 나는 부자가 되었고 성경을 많이 사서 거의 모든 가정에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 일로 주교는 매우 화를 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로마 교회를 포기할 의사가 결코 없었으며 다만 그리스도께서 내가 그들을 이끄시기 원하시는 방식대로 할 수 있는 한 나의 사람들을 잘 인도하길 바랐을 뿐이다.
그때 시카고의 한 주교가 우리 프랑스인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어떤 일을 저질렀다. 그것은 중대한 죄악이었기에, 나는 교황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해직시켰으며 다른 주교가 그를 대신해서 왔다. 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전 주교를 해임시킨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네, 그는 나쁜 사람이었지. 하지만 문제는 자네가 많은 점에서 더 이상 로마 교회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인 개신교도 같다는 의심이 가는 것일세. 자네와 자네 교회 신자들이 아직도 훌륭한 카톨릭 신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제출해 줄 수 있겠나?" 나는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종이를 꺼냈다. 이것이 내게는 나의 믿음에 문제를 일으키며 밤낮으로 들려오는 그 조용한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단순히 "사람의 전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내 자신을 설득시키기를 원했다. 나는 종이에 이렇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주교님, 일리노이 식민지의 우리 프랑스계 카나다인들은 거룩한 사도적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며, 카톨릭 교회 밖에서는 어떤 구원도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주교님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서약합니다." 나는 그것에 서명하고 나의 교회 신자들에게도 서명할 것을 제의했으며,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주교에게 제출했다. 주교가 복종의 서약을 읽었을 때, 그는 매우 만족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복종의 서약을 한 것에 대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하네. 우리 모두는 자네와 자네의 교회가 개신교도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다네." 독자들에게 나의 소경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수치스럽지만 고백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직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지 못했을 때 사람에 불과한 주교와 화평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는 것이다.
주교는 내가 그의 가장 훌륭한 사제들 중의 하나라고 선언하는 "평화의 편지"를 주었고, 나는 카톨릭 교회에 남아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나를 굽어보셨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과 이룬 그 화평을 깨뜨리셨다. 내가 떠난 후에 주교는 다른 주교들에게 나의 복종의 서약을 전보로 알렸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주교는 쉬니키가 가장한 개신교도인 것을 모르시겠소? 그의 서약은 당신에게 한 것이 아니오. 그가 복종의 서약을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한 것이란 말이오. 당신이 그 서약을 파기시키지 않는다면 당신 자신도 개신교도와 다를 바 없소." 주교로부터 편지를 받은 지 열흘 후에 주교를 방문했을 때, 그는 내게 그가 전에 주었던 "평화의 편지"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편지를 그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을 난로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경악했고 편지를 건지기 위해서 서둘러 달려갔지만 편지는 이미 완전히 타서 없어져 버렸다. 나는 주교에게 항의했다. "주교님 도대체 어떻게 나의 소유물인 문서를 내 손으로부터 빼앗아 나의 허락도 없이 없앨 수 있습니까?" "쉬니키, 나는 자네보다 높은 서열이야. 따라서 어떤 해명도 주지 않겠네." "참으로 당신은 내 위에 있고 나는 한낱 사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제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위대한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 제게 그분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기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나는 당신의 부당함에 대해서 항의합니다." "지금 나에게 강의하러 왔나?" "아닙니다. 하지만 주교님께서는 저를 모욕하기 위해서 부르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쉬니키, 나는 자네가 전에 제출했던 그 문서가 실제로는 복종의 결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일세."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복종의 결의를 원하시는지요?"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라는 그 말들을 지워버려야 하네. 단순히 아무런 조건 없이 나의 권위에 복종하겠으며, 내가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약속하게." 나는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주교님. 방금 제게 말씀하신 것은 복종이 아니라 숭배의 서약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주교가 말했다. "자네는 더 이상 로마 카톨릭의 사제가 아닐세."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 뒤, 나는 모자를 집어들고 주교 앞을 떠났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근 뒤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분명하게 로마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서운 사실을 개신교도들이나 카톨릭의 적들을 통해서가 아닌 로마 교회 자신의 입술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작성했던 예전의 문서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을 삭제해야만 교회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로마 교회를 포기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아, 그러나 검은 구름이 내게 몰려왔고 나는 어둠 속에서 울기 시작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제 혼이 이토록 어두운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까?" 길을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구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로마 교회를 포기했다. 지위도, 명예도, 형제 자매들도, 내게 소중한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나는 교황, 주교들 그리고 사제들이 언론에서 강단에서 나를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나의 이름과 명예 그리고 심지어 나의 목숨까지도 빼앗아 갈 것이다! 나는 로마 교회와 나 사이에 놓여진 죽음에 이르는 싸움을 본 것이다. 이 전투를 치르는 데 있어서 나를 도와줄 친구가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한 사람도 없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마저도 나를 저주할 것이며, 나를 지독한 배신자로 간주할 것이다. 내 교회 신자들도 나를 거부할 것이며 나의 사랑하는 조국마저도 나를 저주할 것이다! 나는 다음으로 개신교도들 가운데 친구들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평생 동안 그들을 대적해서 말하고 글을 썼던 내게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전쟁터에 홀로 남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내 손을 잡아 줄 단 하나의 손도, 내게 미소를 보내 줄 단 하나의 얼굴도 없는 상황에서 나를 배신자라고 정죄할 차가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너무나 힘겨웠고 그런 끔찍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지 않으셨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계셨다. 갑자기 "너는 복음을 가지고 있다. 읽어 보아라. 그러면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떨리는 손으로 성경을 열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을 여셨으며 나의 눈은 고린도전서 7:23에 고정되었다.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이 말씀과 함께 빛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으로 복음의 위대한 신비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값 주고 사셨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셨다면, 그렇다면 그는 나를 구원하신 것이다. 나는 구원받은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나는 완전하게 구원받은 것이다. 그분이 나를 절반만 구원하실 수는 없다. 나는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았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구원받았다!" 그것은 너무나 감미로워서 마치 생명의 샘물의 열리고 새로운 빛의 홍수가 나의 혼으로 흘러 넘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마리아에 의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연옥도 고행도 고해성사에 의해서도 아니다. 나는 예수님 한 분에 의해서만 구원받은 것이다." 높은 탑이 땅바닥으로 무너져내리듯 마음 속에서 로마의 모든 거짓 교리들이 무너져내렸다.
그때 내가 느낀 기쁨과 평화는 너무나 엄청나서 하나님의 천사들도 이렇게 기쁠까 할 정도였다. 어린양의 피가 나의 가련하고 죄많은 혼에 흘러 넘쳤다. "오 사랑하는 예수님, 저는 느낍니다. 저는 압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님, 저는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제 마음을 받으시옵소서. 그것은 영원토록 주님의 것입니다. 저를 정결케 해 주시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나의 길, 나의 빛, 그리고 나의 생명이 되어 주십시오. 제가 주님 안에 이제와 영원토록 거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저 혼자만 구원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 교회의 사람들도 구원해 주십시오. 그들에게도 이 선물을 보여 주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오 그들도 주님을 받아들이고 저와 같이 풍요함과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십시오" 나는 빛을 찾았고 구원의 위대한 신비를 발견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아름다우며, 너무나 장엄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의 손을 내밀어 그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선물 안에서 부유해졌다. 구원은 선물인 것이다.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단지 그 선물을 사랑하고 그것을 주신 분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입술로 복음을 고백했고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전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토요일 아침에 나는 교회로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흥분한 상태로 내게 달려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물었다. 그들 모두가 교회 안에 모였을 때, 나는 그들에게 그 선물을 제시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바로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들의 용서와 선물로 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그 선물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저는 여러분 곁을 떠날 것입니다. 저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영원히 떠났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그것을 강요하기에는 저는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 그리스도보다 교황을 따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또 예수님의 이름보다 마리아의 이름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낫다도 생각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심으로 제게 알려 주십시오." 너무나 놀랍게도 온 회중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그들의 흐느낌과 눈물이 온 교회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 중 몇 명은 내게 떠나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였다. 나는 그들에게 기쁨으로 외쳤다. "어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홍해를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며, 위대한 선물을 받고, 행복해질 것이며 그 선물 안에서 부유해질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반대로 묻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황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마리아의 이름보다 예수님의 이름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또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죽은 후에 연옥에서 구원받을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어린 양의 피를 믿는 것이 더 낫다도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다른 사제에게 로마의 교리를 설교하도록 하는 것보다 저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설교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남으로써 제게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일어섰으며, 눈물로써 내가 그들과 함께 남아있기를 요청했다.
위대하고 말할 수 없는 선물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찾아와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소중함을 발견했고, 받아들였다. 어떤 말로도 그 군중의 기쁨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 1,000명의 이름이, 내가 믿건데, 바로 그 날에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다. 카나다 최고의 신부로 알려졌던 쉬니키가 로마 교회를 떠났다는 뉴스는 빠르게 미국 전역에 퍼졌고, 심지어 프랑스와 영국에까지 알려졌으며, 그 사실이 알려지는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송축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자비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구세주의 이름을 함께 찬양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증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그분께 찬양드리기를 원한다.
☆ 로마 카톨릭 거짓 교리의 역사☆
아래에 나열된 것은 로마 카톨릭의 교리들과 그것이 유입된 시기에 관한 자료들입니다.
1.루시안이 처음으로 장로를 사제라고 부름 - 2세기
2.시프리안이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만들어 냄 - 3세기
3.죽은 자를 위한 기도 - A.D. 300
4.십자가 형상을 만듦 - A.D. 300
5.촛불 - A.D. 320
6.천사, 죽은 성인들, 형상 숭배 - A.D. 375
7.미사가 매일 드리는 예식이 됨 - A.D. 394
8.에베소 공회를 통해 마리아를 높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 - A.D. 431
9.사제들이 특별한 옷을 입기 시작 - A.D. 500
10.최후의 도유(치유를 위한 의식) - A.D. 526
11.그레고리 1세가 연옥의 교리 확립 - A.D. 593
12.예배 때 라틴어 사용 - A.D. 600
13.마리아, 죽은 성인들, 천사들에게 기도 - A.D. 600
14.최초의 교황(보니파스 3세) - A.D. 610
15.교황의 발에 입맞춤 - A.D. 709
16.프랑크 왕 페핀이 교황에게 세속 권력을 넘겨줌 - A.D. 750
17.십자가, 형상, 유물 숭배 인정 - A.D. 786
18.소금, 기름을 섞은 물에 사제가 축성해서 성수로 만듦 - A.D. 850
19.성 요셉 숭배 - A.D. 890
20.추기경 대학 설립 - A.D. 927
21.교황 요한 13세가 종(鐘)에 세례를 베품 - A.D. 965
22.교황 요한 15세가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선언함 - A.D. 995
23.금요일과 사순절 금식 - A.D. 998
24.미사가 점차 희생제사로 발전하고, 참석이 강요됨 - 11세기
25.사제들의 독신생활 - A.D. 1079
26.은둔자 베드로가 묵주 사용(이교도의 관행) 도입 - A.D. 1090
27.베로나 공회 때 종교재판소 제정 - A.D. 1184
28.면죄부 판매 - A.D. 1190
29.피터 롬바르트가 일곱 가지 성사 확정 - 12세기
30.이노센트 3세가 화체설 확립 - A.D. 1215
31.이노센트 3세가 죄를 하나님이 아닌 사제의 귀에 들리게 고백하는 의식(화해의 의식) 제정 - A.D. 1215
32.교황 호노리우스 3세가 성병 숭배 제정 - A.D. 1220
33.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됨 - A.D. 1229
34.영국의 사이몬 스톡이 성의를 만들어 냄 - A.D. 1251
35.콘스탄스 공회 때 평신도들은 영성체 때 잔을 받을 수 없게 됨 - A.D. 1414
36.플로렌스 공회 때 연옥이 교리로 확정됨 - A.D. 1439
37.트렌트 공회 때 교회의 전통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됨 - A.D. 1545
38.트렌트 공회 때 외경도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결정됨 - A.D. 1546
39.교황 피오 4세가 만든 신조가 원래의 사도들의 신조 대신 공식 신조로 채택됨 - A.D. 1560
40.교황 피오 9세가 마리아의 무염시태(죄없이 잉태됨)를 선언함 - A.D. 1854
41.교황 피오 9세가 "유설표"를 공표하고 바티칸 공회가 인준함, 로마 카톨릭 교회가 승인하지 않는 종교, 양심, 언론, 과학적 발견의 자유를 정죄함, 교황이 세상 통치자들의 세속 권세 위에 권위를 가졌다고 인정함 - A.D. 1864
42.바티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 선언 - A.D. 1870
43.피오 12세가 마리아의 몽소승천 선언 - A.D. 1950
44.교황 바오로 6세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부름 - A.D.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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