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사람들은 분노에 "차 있다"거나 기쁨에 "차 있다"라는 말을 쓴다.
그것은 전적으로 분노나 기쁨의 통제아래 놓여있다는 말이다.
성령충만은 이와같은 원리로 성령에 의해 지배된 상태를 말한다.
성령충만은 기쁨이나 희열은 될수 있어도 이교도적인 신비적인 도취상태, 무아경이나 광신적 흥분상태의 체험과 혼동해선 안된다.
일회성의 경험과 흥분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앙생활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은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와 관련된다.
그러기에 에베소서 5:19-6:9절은 성령충만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진정한 찬양, 감사, 복종, 순복, 부부간 관계, 부모공경, 신앙적 자녀양육, 상전에 대한 순종과 직장에서의 신실, 아랫사람에 대한 공평대우등이다. 이런 것은 바로 성령충만이 신앙인격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비슷한 측면에서 골로새서 3: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것" 간단히 말하면 말씀충만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알아가므로, 우리가 말씀의 풍성함속에 잠길때 이것이 곧 성령충만의 지름길이다.
성령께선 특별한 경우나 비상시에 비인격적인 측면에서의 강권적 역사를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인격적인 면에서 에베소서4:30절에서 우리가 성령을 근심케하거나, 데살로니가전서5:19절처럼 성령을 소멸케할 수 있으므로(물론 성령께서 신자에게 떠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도록 순간순간의 성령에 대한 순복과 결단의 삶이 요구되는 것이다. 때로는 넘어지고 쉽지 않지만 그런 것이 장성하는 과정이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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