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세계운동/알 파 코 스

알파코스는 다른복음입니다.

알파코스에 대한 총신 총장의 말씀이 충격적입니다. 그 말씀이 성령을 주장하나 성령을 분별하는 것은 빠져 있습니다.

이는 알파코스에 등장하는 영이 성령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총장이님의 말씀과 같이 알파코스에 역사하는 영이 성령이라면 이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성령 거역죄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영이 성령인가 아닌가 하는 영을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십니다.

그러면 알파코스의 영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중보는 첫 언약에서 범한 죄를 속하여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면 알파코스의 영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는 성령인가 하는 것입니다. 알파코스의 영이 이 약속을 부정한다면 성령이 아닙니다.

새 언약이 첫 언약에서 범한 죄를 속하여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것이 가톨릭의 신학입니다.

이러한 신학을 개신교가 수용하므로 개신교가 가톨릭의 신학을 벗어나지 못하고 교회 일치를 향하여 뒤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총장님의 교파 경시론은 무서운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모든 교파가 근본족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예수라는 이름만 부르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분별에 앞서야 하는 것이 예수 분별입니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는 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한데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폐하는 자들이 믿는 예수가 어찌 거짓 예수가 아니고 참 예수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마태복음 24장에서 거짓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곧 거짓 예수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적그리스도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거짓 그리스도도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예수를 전하는 자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다르게 봅니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천국에 대한 약속이라 합니다. 그러나 같은 히브리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동일하게 받은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변치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맹세로 보증하신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것은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준다는 그 약속입니다.

왜 성경을 부정하는 이러한 신학을 받아 드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파코스란 말씀보다 성령을 앞세운다는 것은 이와 상통합니다.

성령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폐할 수 잇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치 않는다고 맹세로 보증하신 하나님의 대적이 됩니다.

이는 변치않는다는 것을 폐하기 때문이며 영원한 기업의 약속에 대한 것을 망각케 하므로 이에 대한 것을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곧 말씀보다 성령을 앞세우는 것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폐하여 이 약속을 이루려는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분별은 예수님에 의하며 예수님의 분별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에 의합니다.

곧 영원힌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상통할 수 있으나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폐하는 자들과는 상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교파를 경시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주장하는 조용기 목사의 말을 바로보아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을 성령이 알게하여 강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잘못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강변하는 그의 추종자를 보았습니다.

말씀과 다른 성령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파코스의 성령을 인정하려면 먼저 말씀으로 예수님을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폐하는 것이 가톨릭입니다.

알파코스도 가톨릭에서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일입니다.
성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자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다르면 받는 영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일치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는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