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교회 논의’에서는 불상사가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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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 은퇴를 앞두고 안식 학기를 얻어 미국 칼빈대학 옆에 오자마자 수도권 미래 교회 월요 포럼의 소식을 접하고 기뻐한다. 귀한 기회를 마련한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면서 토론의 A, B, C를 다시 한 번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 모든 주장과 토론의 표준은 '성경’이다. 그러나 ‘우리 국가와 민족’, ‘우리 교단’, ‘역사적 개혁주의’ 같은 매우 중요한 것이 성경의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즉 표준을 혼돈하여 ‘요나의 함정’에 빠진 경우가 자주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요나는 당대의 선지자로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기 민족 국가 위주로 활동하다 실수하였다. 우리 목사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질러 온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중요해도 성경의 자리를 대신하는 잣대는 될 수 없다. 둘째,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토론이 ‘인신공격’으로 바뀌어서는 안된다. 자기와 반대의견을 펴는 사람도 주님 나라 건설의 역군이다. 따라서 끝까지 서로 존경하고 예의를 지키면서 논의 자체에만 열중하여야 한다. 이런 진지한 논의를 거치는 동안에 참 진리가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배우며 자라는 점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단’을 중시한 나머지 ‘이런 자가 우리 교단에 있을 수 있는가?’ 식으로 몰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만이 하나님과 교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처하기까지 한다. 분명 비뚤어진 열심이다. 셋째, 학문적 주장이나 토론을 곧 바로 정치판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개방된 여러 주장과 토론을 들어보자. 정치적으로 다룰 단계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교회 현장을 중시하여 조기에 진압하고자 하는 충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극명한 이단이 아니라면 정치적 단계가 객관적 토론 단계를 앞질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교회를 요람으로 삼는 천국은 조국과 민족은 물론 온 세계를 포함한다. 따라서 큰 안목이 필요하다. 현대는 다양한 중에서, 통일을 기하고 통일 중에서 다양성을 추구하여야 한다. 새 싹들은 꽃샘추위에 큰 상처를 입는다. 분홍색 목련이 터지고 만개한 봉오리도 더러 보이던 이 곳 미시간 주의 새 봄은 ‘폭설’로 멀리 갔다. 부활절 다음날 10내지 15센티의 눈으로 계절은 뒷걸음치고 말았다. 가정교회 논의에는 이런 불상사로 인한 후퇴가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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