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강좌(성경의 힘) - 제39강 성령의 은사와 성도의 봉사 2부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성령께서 교회에게 말씀하실 때 뭘로 하느냐? 성경을 가지고 해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랬죠. 그가 오시면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고.
성령께서 뭘하느냐? 성경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에서 ‘성령운동’, 나는 성령운동이라는 말도 성령이 무슨 스포츠를 하는가 트레이닝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성령운동이란 말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한국에서 성령운동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집어던집니다. 일단.
성령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신비주의로 가서 성경을 집어 던져야 성령운동 하는데, 그것은 잘못하는 거예요.
성령이 하시는 일중에 성경을 기록하게 한것과 성경을 깨닫게 하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행하게하는 능력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시록에 그런 말씀이 나오고, 그 말씀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예수님 말씀이요, 또 다른말로는 성령의 말씀이야.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 성자 예수님 말씀이요, 성령 하나님의 말씀이죠. 성경 자체가.
그래서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충만하기 위해서는, 또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성경말씀과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만약에 성경 말씀 없이 성령이 역사할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성경도 필요없고 전도자도 필요없고 성령만 열심히 일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북에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거요? 성경을 용납하지 않고 성경 가르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성령이 역사할 통로가 없어서 성령이 역사 못해요. 여러분 성령이 게을러서 이북에 안가는 것 아니거든요. 성령이 김일성 김정일이 겁이나서 못가는게 아니잖습니까?
성경을 가지고 가서 가르칠 사람이, 사람의 사역이 결여된 곳에는 성령이 역사 할수 없어서 이북에 복음이 안 전해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가장 두가지 중요한 통로는 성경 말씀과 성경을 바르게 선포할 성령 충만한 사람. 필수적으로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아서 교회와 성도들이 상당히 혼란속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은사라는 말을 일반 세상에서는 잘 안쓰는 말이죠. 우리 교회에서만 은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전적인 의미는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런 뜻이예요. 은혜로 주시는 선물.
그래서 어떤 값을 요구하는게 아니고 기뻐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기뻐해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그런뜻이 은사라는 말인데, 요즘 일반 사람들이 ‘카리스마가 있다’ 그런말을 하죠? 여러분 카리스마는 우리가 생각할 때, 일반사람들이 말할 때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은 무슨 권위가 있다는 것으로 뉘앙스를 풍기죠. 그렇죠? 전혀 잘못된 말입니다.
‘카리스마’라는 말은 이게 바로 ‘은사’라는 말이 카리스마예요. 카리스마타, 카리스마.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떤 카리스마, 즉 은사를 주시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능률적으로 더 완전하게 무슨 일을 잘하는 거죠.
이걸 카리스마라고 해요. 본인의 타고난 재주를 넘어서서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셔서 어떤 일을 잘하게 될 때, 이것을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이지, 어떤 권위가 있는게 카리스마가 있는게 아닙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저렇게 할수 없을 것이다 할때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할수 있는가 할정도로 타고난 어떤 능력이 나타나면 틀림없이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 것이죠.
그 다음에 구약시대에 나타나는 은사가 몇가지 있는데,
첫째, 기술의 은사.
기술과 예술의 은사인데, 브살렐과 오홀리압 같은 경우에 성막 지을때, 성령으로 지혜가 충만해서 공교한 것을 만들기도 하고 깎아 물리고, 보석을 깎고 세공을 하고 이런 대단한 기술인데, 이런 기술이 성령의 은사로 주어진 겁니다.
그 다음에 능력의 은사는 삼손과 엘리야 모세. 이런 사람들은 바다가 갈라지고 이런 것은 굉장한 능력의 은사죠.
그 다음에 보통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하는데, 음악의 은사가 있어요. 성령이 충만해지면서 음악적인 재능이 아주 탁월해지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아마 다윗이겠죠.
다윗에게 음악의 은사가 있어서, 이사람은 작곡 작사 연주 가창력까지 대단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라고 스스로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음악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죠. 고라자손 아삽자손 이런 사람들 성가대 구약시대의 찬양대처럼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쓴 가사가 시편에 보면 많이 나옵니다. 음악의 은사가 있어요
저는 이 음악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볼때마다 부러워요.
그 다음에 믿음의 은사.
여러분 아브라함 여호수아 다윗 갈렙 이런 사람은 믿음이 대단하죠. 일반 사람들이 믿을수 없는 것을 믿은거야. 이런게 믿음의 은사라는 거죠.
그 다음에 지혜의 은사가 있어요. 그렇죠? 솔로몬 같은 경우. 헤만 이런 사람은 다 지혜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죠.
그 다음에 지식의 은사.
학문적 은사가 있어요. 공부도 사실 아무나 하면 되는게 아닙니다. 요즘 공부할 사람도 아닌데 학원에 억지로 보내어서.. 땀 흘리고 일해야 될 사람을 계속 일 안시키고 공부만 시키고 하는데, 일할 사람인지 공부할 사람인지 알아야 돼요.
억지공부를 시키는데 이것은 미련한 거죠. 그래서 학문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 같은분은 정말 학문적으로 대단한 분이죠. 힐렐, 가말리엘, 바울 이런분은 아주 학문적으로 대단한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예요. 지식의 은사.
그 다음에 해몽의 은사.
이런말 처음 들었죠? 꿈을 잘 해석하는 거야. 여러분 꿈만 잘 해석해도 총리가 되는수가 있어요. 그렇죠? 누가있죠? 요셉이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의문을 파하고 꿈을 잘 해석하는 거예요. 꿈을 잘못 꿔도 해석이 좋아야 돼요.
그런 정도가 아니고 정말 꿈이 계시적 꿈을 꾸었을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이런 해몽의 은사, 비밀을 풀어내는 은사. 이런것도 성령께서 구약에서 보여주는 은사인데, 아주 이런 은사 때문에 한 나라 민족 역사를 다르게 하는 그런것도 볼수 있죠.
그 다음에 신약 시대에 여러 은사가 있는데, 제일 처음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지식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이렇게 하는데,
역시 교회의 제일 소중한 말씀이죠. 여러분 그 교회의 성장 부흥 발전의 승패는 그 교회 교역자와 교사가 얼마나 지혜와 지식의 말씀에 능통하냐? 얼마나 그 은사가 충만하냐? 거기에 따라서 현저히 차이가 나요.
그래서 그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설교를 하거나 강의를 하면 어렵던것도 쉽게 들려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없는 사람들은 설명할수록 더 어렵게 해 버리죠. 알던것도 모르게 만들어 버려.. 그런 경우가 정말 더러 있어요. 그런 사람은 목회하면 안돼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아주 중요한 은사인데, 교회에서 제일 일차적으로 필요한 은사예요. 나머지는 2차 3차이고, 1차적으로 지혜와 지식의 은사.
그래서 우리 목회자 되시는 분들 혹은 교사 되시는 분은 다른 은사를 구할게 아니고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구해야 돼요. 이런 것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습니다.
정말 교회에서 필요하고 그래서 교회를 잘 섬길수 있어요.
그런데 자칫하게 되면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사람을 교만하게 할수 있어요.
성경에 그렇죠?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고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이다.
무슨 은사를 사용할때도 그것이 교만으로 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되고, 항상 사랑으로..
어떤 은사를 교회에서 활용할때도 항상 사랑으로 활용되게, 이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믿음의 은사.
이 믿음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뭐든지 그저 일을 겁을 안내요.
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는 길을 찾아내고 되는 길을 발견하고 되는 방법을 찾아서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호수아 갈렙 같은 분은 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대단한 믿음입니다.
저도 제 주변에 가끔 보면, 저는 오히려 믿음이 시원찮아서 되겠나 말겠나 하는데, 집사님들 장로님들은 된다는 거요. 그래서 야 저분이 믿음의 은사는 나보나 낫다. 저는 맨날 규모를 조금 작게 하는데, 집사님 장로님들은 꼭 나보다 크게 해가지고 제 자존심을 팍팍 상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 장로님들이 있어요. 그래서 참 정말 부럽다 싶어요.
한편은 제가 또 고맙게 생각합니다. 목사가 너무 꿈과 소망과 비전과 믿음이 너무 커서 성도들이 못 따라오면 성도들이 피곤하죠. 그래서 저는 때로는 믿음 작은게 감사합니다 그래요.
성도님들 장로님들의 믿음이 더 크니까 저는 따라가면 되거든요..
그 다음에 예언의 은사.
우리가 예언이라는 것을 뭐 구약성경에 예언서가 있고 예언자가 있고 하지만, 구약공부할 때 나중에 좀더 심도있게 공부할텐데, 예언자가 미래를 점칠려고 예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언자가 나타난 것은 미래를 점칠려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예언자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 전에 미리와서 이야기 한다 해서 예언자였지. 뭐 몇 년도에 무슨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예언하러 온 예언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 우리 한국사람들이 예언이라는 말을 오해해서..
그래서 그 예언자가 문제삼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문제삼습니다. 항상.
만약에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정신차리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부리며 나가면 ‘하나님께서 무슨 무슨 나라를 불러서 혼 좀 낼꺼다’ 하는게 예언되는 그런 정도지.
그것을 미래에 무슨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예언이 있었느냐? 절망 가운데 있을때, 나라가 완전히 망해서 그야말로 예루살렘이 쑥대밭이 되고 황무지가 되어있을때, 그때 그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 그런 정도지. 한 개인적인 일을 가지고 미래를 점치고 이런 것은 없는거야. 오늘날 무슨 잘못된 신비주의 예언한답시고 그렇게 하는 것 아주 위험하니까 따라가면 안됩니다.
그 다음에 병을 고치는 은사.
아마 이때 병을 고치는 은사가 지금도 가끔 제가볼때 있습니다. 있으나 지금은 제가볼때 일단 병이 나면 병원에 가야 돼요. 병이 나면 물론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하지만, 의사를 내신분도 하나님이 내셨고, 약사를 내신분도 하나님이 내신거니까, 그래서 제가 아는데로는 의사 병원이 왜 있느냐 하면 그것은 AS센타야. 에프터 서비스. 하나님께서 만든거죠.
그래서 자동차를 만들어 놓고 고장나면 AS 받으러 가는 것처럼, 우리가 고장났을때 당연히 병원에 가서 고침받는게 좋은 신앙입니다.
사도바울이 왜 누가라는 의사를 동행하고 다녔겠습니까? 기도해서 될일도 있지만 또 의사가 할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분은 그저 기도만 해야지 병원이나 약을 먹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아주 치우친 그런 신앙은 건전하지 않다는 거야.
얼마나 많은 병들이 병원에서 치료가 되어서.. 그런 것 우리 눈으로 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 끝까지 안가고 하나님이 고쳐내는가 안고쳐내는가 보자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그런 신앙은 결코 건전한 신앙이 아녜요.
저도 한때 폐결핵, 결핵을 앓아서 저가 기도하면 딴 사람은 병이 낫는데, 나는 결핵을 얻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피를 두번씩이나 토하고 그런일이 있었는데, 그때 간단하게 보건소에서 나오는 약을 1년 반을 먹고 나았었거든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보건소가 없었으면 저는 모르죠 혹시 능력으로 고쳐주셨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폐결핵 걸린 사람들이 기도만 해서 나은 경우도 있지만 또 약을 먹고 낫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어떤 몸이 아프거나 하면 일단 진찰을 먼저 받아보게 해요. 그리고 기도하면서.
여러분 ‘너희 중에 병든자가 있느냐 저희는 교회 장로들을 청할것이고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 기름을 바른다는 말은 약이예요. 약. 약도 쓰고..
여러분 밥도 약이죠. 밥. 밥이 무슨 약입니까? 배고플때 먹는 약. 하하하. 배고플때 먹는 약이예요.
상당히 많은 약이 영양이거든요. 영양. 그러니까 그 영양이 떨어진 것을 계속 기도하고 나 안먹어도 배부르게 하옵소서 해봐. 그러면 그것은 좋은 신앙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안 먹으면 배가 고픈데..
그래서 약을 쓰는거나 병원에 가는것은 부끄러운 신앙도 아니고, 균형잡힌 신앙은 기도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면서 기도하라’.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약을 쓰는 겁니다.
또 디모데가 병이 들었을때에 바울이 ‘네 자주나는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 쓰라’ 그런말도 있죠. 기도하면 다 낫는다 그럽디까? 자주나는 비위를 인해서 포도주를 조금 쓰라 그런말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을, 바울이 하도 건강이 안 좋기 때문에 주치의가 따라다녔다니까. 누가가. 그런것은 안 봅니까 성경을 볼때..
그러니까 병고치는 은사가, 그때는 병원도 잘 없고 하니까 병고치는 은사가 절박했겠죠. 지금은 병 고치는 은사도 필요하지만 역시 병원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이것 아주 중요해요. 많은 사람들이 영들을 분별 못합니다. 특히 서구의 신학들 유럽이나 미국에서 신학한 사람들은 귀신을 잘 몰라요. 이 사람들을 보니까.
귀신을 모르니까 성령도 잘 모르는 거야. 또 귀신을 성령인줄 아는 사람도 있어요. 아니면 귀신이 그 사람속에 있는데 귀신으로 보지 않고 그 사람 속에 상처받은 자기 영혼으로 보는 수가 있는거야.
그런 책이 있었죠. ‘내 속에 울고있는 내가 있어요’ 그렇죠? 그런 경우에 불러내어보면 그 속에 울고 있는 내라는게 내가 아니고, 그속에 있는 귀신이예요. 어린아이 귀신. 제가 경험한대로는 어린아이 귀신이 예외로 많습니다. 어린아이 귀신이야. 이 세상말로는 동자귀신. 어린아이 귀신이 많아요.
그런 것은 “나가!” 그러면 나가버립니다.
제일 잘 나가는게 어린아이 귀신. 그런 것은 잘 나가요. 그리고 어떤 귀신은 끈질기게 안나가는 그런것도 있습니다..
영들을 분별 못하니까 그 귀신을 쫓아내면 될걸 달래고 있어요. 위로하고 ..
상한 감정 치유한다고 하면서 달래고 있는거야.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영들 분별하는 은사가 없으니까 그런거야..
그래서 우리가 딱 들어보면 이게 그 사람이 무슨 마음의 상처를 받은건지 아니면 그 속에 귀신이 들어있는지 바로 알아야 돼요.
어떤 사람들은 정신과 같은데 가면 ‘정신불열증’이라고 그러죠 보통 그렇죠? 정신분열이 아니고 ‘인격 합병증’이예요. 악한 인격 악한 귀신이 한 육체안에 두 인격이 둘 있어요. 하나를 쫓아내야돼요.
에스라인 맥밀란이라는 의사가 ‘한 육체에 두 영혼’이라는 챕터를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폴 튜니어 같은 분은 아주 유명한 학자죠 폴 튜니어가 쓴 책중에 ‘인간 치유의 길’이라는 책이 있어요. 인간 치유의 길.
그런 것 보면 그 수많은 질병들이 귀신들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위대한 학자입니다. 폴 튜니어. 그분 책 중에 우리 교역자 되신분들은 꼭 읽어 볼 필요가 있는데, ‘인간 치유의 길’.
이분은 의사인데, 병을 치료 해서는 안되더라는 거예요. 인간이 치료 안되니까 병을 치료해서는 안되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이 인간 치유. 병 치유가 아니고, 인간을 치유해야 한다. 그 속에보면 수많은 정신병 하는 것들이 악령들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영들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능력 행하는 은사,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늘 있죠.
그 다음에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
그 다음 방언의 통력의 은사.
그리고 상담과 위로의 은사.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은사죠. 교회에서..
상담하고 위로하는 것. 상담하고 위로하는데 예수님이 제일 최고겠죠.
그 다음에 바나바. 우리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나바는 ‘바르 나바스’거든요. 바르 나바스 라는 말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예요. 얼마나 위로를 잘하는지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이사람은 이름 본명은 요셉이예요. 요셉이 본명이고, 별명이 바르 나바스 위로의 아들이야.
위로하고 상담하고 카운슬링해서 침륜에 빠진 사람을 북돋아서 믿음과 용기를 불일듯하게 이렇게 세우는 거예요.
교회에서 이런 은사가 최고의 은사예요. 특별히 권사님들. 교회에서 권사님들이 반드시 사모해야 될 은사가 위로의 은사. 그리고 상담의 은사. 카운슬러의 은사.
그리고 또 그런 은사를 받아도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은사 받은 사람들의 문제가 뭐냐하면 공부를 안하는 거예요. 그러면 곤란해요. 그 은사를 한 달란트짜리 은사를 주셨으면 다섯 달란트나 열 달란트를 남겨야 돼요. 열심히 갈고 닦아서..
그렇게 딱 받은 그것을 가지고 절대 공부도 노력도 안하고 이런 사람은 곤란하다는 거예요.
이 신비주의적 은사주의 사람들은 공부를 할려고 마음을 안 먹어. 성경책도 안 보고 성경공부 하자고 그러면 직통계시를 받겠다고 그러고 말이야. 이러면 정말 곤란해요.
그래서 상담과 위로의 은사,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은사예요. 왜냐하면 교회에서 이런저런 상처, 사회에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가정에서 상처를 주고 받고 할때 상담과 위로의 은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조직과 행정의 은사가 있습니다.
조직과 행정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꼭 노회에 가서 서기를 한다든지 이런 것은 잘해요. 저는 그런 은사가 별로 없는 것 같애요. 노회에 가서 앉아있는 것 얼마나 힘드는지 몰라. 나는 은사가 없어서 앉아 있을려면 하루 앉아 있으면 몸살이 나는 것 같애.
그런데 어떤분은 사흘 나흘 앉아있어도 끄떡없거든요.
조직과 행정 은사, 이런 것을 잘하는 그런 사람도 있죠.
그 다음에 인도와 전도의 은사.
제가볼때 최고의 은사입니다. 최고의 은사가 사람들을 교회로 잘 모셔 오는 것.
여러분 사람들을 교회로 잘 모시고 오는 것, 인도하는 것, 이것을 잘 할려면 온갖 덕목을 종합적으로 갖고 있어야 돼요.
착하고 선하고 사랑을 베풀고 온갖 관심을 가지고 친절하고 온갖것 다 있어야만 전도하고 인도하는 거니까.
제가 볼때는 최고의 은사가 성도중에서 최고의 은사는 전도와 인도의 은사예요.
제가 만난분중에 어떤분은 일평생에 만명 이상을 교회에 인도했다는 거야. 교회가 몇 만명 되는데 가서 보니까 그 교회에 몇분지 일은 그분이 다 인도한 거야. 교회 데려오는데 선수야 선수.
이런 은사가 참 중요한 건데, 물론 성경에 전도와 인도의 은사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탈랜트야 정말.
예수 믿기전에는 전혀 없던건데 예수믿고 성령으로 그런 능력이 임하니까 사람들을 다 인도하는 거예요.
제가 그런 큰 교회에 가서 보고, ‘이 교회가 이렇게 성장한게 목사님의 능력이나 덕망만 가지고는 된게 아니라 이런 은사를 가진분이 있으니까 이 교회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은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꼭 우리 한국교회는 은사 집회한다면 방언집회하는 것으로 해버려요. 은사주의적 신비주의가 너무 성령을 좁게 제한해버려요.
이렇게 다양한 능력과 은사가 주어질수 있는데, 꼭 방언의 은사만 받겠다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무리한 주장을 해서 방언은 모든 은사가 들어오는 통로이다. 그것은 아니죠. 성령이 통로죠.
방언이 아니고.
고린도교회 형편을 보면 그 고린도 교회를 제일 속을 썩이고 애를 먹인 사람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었어요. 아볼로라고 하는 사역자가 바울의 후속으로 고린도 교회에 파송되었는데, 아마도 그 아볼로에게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사람이 가는곳 마다 유대인과 변론해서 이기거든요. 보니까. 별로 실력도 없는 사람이 공부도 제대로 안했는데, 복음에 대해서는 아굴라에게 브리스길라에게 배워야 될 정도로 아직은 그 정도로 복음의 진수에 대해서는 그렇게 탁월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변론하면 항상 이긴다는 거야.
그러니까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있는데, 결국은 그 고린도 교회에서 시무하지 못하고 얼마있다가 사임을 해요.
사임을 하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로 건너오게 되거든요. 왜 건너왔느냐 하면 그 고린도에서 아주 애먹이는 여자들이 있었든데, 그 여자들이 대개 바울파입니다. 바울파.
바울파이고 방언파이고 신령파라. 여자들이고.
그래서 이 고린도 교회를 잘 살펴보면 ‘폐일언하고 여자는 잠잠하라’ 할때, 한국여자 말고 고린도 여자들이 못됬어요 진짜. 지금도 유럽을 가서 보면 알프스 산맥에서 저쪽 프랑스와 스페인 경계 피레네 산맥까지 그으면 그 산맥 밑으로는 남 구라파라 하고, 산맥 위를 북 구라파라고 하는데, 그리스부터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남 구라파 쪽에는 여자들이 큰소리 쳐요.
딸 낳으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딸 낳으면. 아들 낳으면 시무룩해요. 사람들이. 아들 연거퍼 셋을 낳았다 하면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다는 거예요. 의사가. 그래서 의사들이 그래요.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희망을 가지고 키워 봅시다.
우리와 좀 다르죠. 그러니까 여자들이 큰소리 치는거야. 신도 여신이 A급 여신이야. 전부다. 아르테미스라든지, 아프로디테 전부다 A급 여신들은 여신들이죠.
거기서는 여자가 큰소리치고, 모계 신앙을 갖고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거기다가 예수님보다는 마리아를 앞세우는 그런것도 이탈리아에서 나온 거예요.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그 안에.
그래서 그런 곳에서 여자들이 막 그저 방언을 하면서 아볼로라는 목회자가 설교할려고 하면 몇몇 여자가 한꺼번에 방언을 쏟아놓는 바람에 아볼로 목회자가 설교도 못해. 그냥. 결국은 화해가 안되고 파벌이 나누어지고 할때, 제일 애먹이던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의 방언파 신령파 여자파 바울파.
이렇게 애를 먹였는데, 그래서 바울이 경계를 하죠. 방언을 받은 것은 교회에는 아무 덕이 안되고 자기 개인에게는 유익이 있지만 교회에는 덕이 안된다. 그러니까 방언을 할려면 집에서 골방에서 혼자 하고, 통역하는 사람이 없거든 교회에서는 방언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 통역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 방언할 때, 그 방언이 설교하는 방언이 아닙니다. 예언하는 방언도 아니고, 설교하는 방언도 아니고, 오직 그 영으로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야 기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지. 고린도 교회에 소개된 방언이라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지 설교하는게 아닙니다.
설교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방언인데, 고린도 교회에 있던 방언과는 달라요.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방언이라는 것은 그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런 방언이었어요.
우리 한국교회가 한때 생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는데, 1988년부터 시작해서 92년까지 5,6년동안 온 한국교회를 요란스럽게 했던 그런 이른바 ‘다미 선교회’라고. 주님 오시는 날짜를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예수님 재림한다 이렇게 하면서 교회를 아주 어지럽게 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 이 사람들에게는 어린아이거나 새신자거나 불신자거나 거기 가면 다 방언하는 거예요. 갔다하면. 그날로 가면 그날로 방언이 터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방언이 성령의 방언이겠어요 악령의 방언이겠어요? 악령의 방언이죠.
그 방언으로 가지고 통역하거든요. 방언으로 설교를 해요. 방언으로 설교하고 방언으로 통역을 하는데..
아니 성령이 이왕 할려면 한국말 할줄 몰라서 그 방언으로 해서 통역을 하겠어요?
그게 사람들이 신비감을 가지고 따라오게 하는 귀신의 수법인데 그걸 모르고, 그때 다미선교회를 이끌어가던 인도자 지도자가 이장림 씨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쓴 책중에 ‘92년의 열풍’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게 지금도 그 책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92년의 열풍’이라는 그 책에 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겪어본 중에 그렇게 많은 방언을 하는데, 방언의 90%는 가짜 방언이라는 거야. 90%가. 책에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90%가 가짜방언이라고.
그래서 막 믿음도 없고 아무 사명도 은혜도 진리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가자말자 그냥 요란스러운 무질서한 집회에서 방언이 터졌다. 그런 경우는 거의다 성령의 방언이 아니고 악령인 수가 많으니까 극히 조심해야 돼요.
그리고 방언을 가지고 누가 설교한다고 하면 100% 거짓말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방언은 설교하는 방언이 아니니까.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설교하는 방언이 아녜요.
그 설교했던 사도행전 2장에 것은 그 방언하는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알아듣지 못하는게 아니고 알아듣는 설교하니까, 베드로라든지 이런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전부다 약 15개국 16개국으로부터 모여든 사람들이 전부 자기 난 곳 방언으로 알아 들어버렸다는 거예요.
‘알아듣는게 하나도 없고’ 하는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오늘날 보통 한국교회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라는 것은, 그 영이 비밀로 기도하는 방언일수는 있는데, 그나마도 아무 준비도 없고 불신자도 가면 애들도 그냥 바로 방언이 터지는 그런 경우는 성령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은 비인격적으로 원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고 준비도 안됐는데 마구 그저 임해가지고 누구의 말을 이상하게 만들거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비인격적으로 할때에는 제가볼때 악령들이예요. 저는 수많은 귀신의 방언 받은 사람을 봤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 방언이 정말 제대로 된 방언인지 분별하는 사람이 없거나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극히 교회에서는 조심해야 돼요. 지금도..
그리고 통역하는 은사가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어도, 정말 통역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거야. 한번 여러분중에 내말이 안 믿어지거든 이렇게 해 보세요. 방언하는 사람의 방언을 정확하게 녹음을 해봐요. 지금 녹음기 얼마든지 좋은게 많이 있으니까.
녹음을 해서 통역의 은사 받은 사람에게 통역을 녹음을 해 놓으세요. 그것은 보관하고 또 다른 통역사에게 가서 똑같은 방언을 통역해봐요. 틀림없이 다르게 나올 겁니다. 통역이..
한번 해 보시라고.. 우리는 해 봤거든요.
그 다음에 지금 방금 녹음한 방언을 가지고 통역하는 사람에게 통역해서 녹음을 해 놓고 그대로 갖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가져가서 1년이나 후에 똑같은 방언을 똑같은 사람에게 또 통역을 시켜봐. 작년 통역과 또 다르게 나와요
그러면 방언이 틀린거요 통역이 틀린거요? 아니면 둘다 틀린거요?
이런 식으로 무질서하고, 그러니까 다시말하면 귀신들이 우리를 갖고 노는거야. 성도들이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니까. 그런것도 모르고 그냥 그것을 신비하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데, 다 분별력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방언 통역 문제는 고린도 교회도 딴 은사는 말썽 부릴게 없습니다. 항상 말썽부리는 사람을이 방언 잘못된 방언 받은 사람과, 성령이 주신 방언이라면 교회에 말썽을 안 부려야지요. 교회에 덕을 세워야 되죠. 그렇죠?
그래서 바울이 하는 말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방언을 할려거든 그 지도자가 질서를 잡아가지고 지시에 따라서 다불과 두세사람만 방언하고 나머지는 분별하고 그것도 통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분별하면서 통역하는 사람이 없거든 교회에서는 방언하지 않는게 좋다. 이게 바울의 지도입니다. 정확하게.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은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신령한 교회냐? 사도바울은 그 고린도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은사가 임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은사를 쭈욱 나열할 때,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예언하는 은사, 병을 고치는 은사, 영들 분별하는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 해놓고 맨끝에가서 각종 방언하는 것들과..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 방언의 은사를 제일 뒤에다 배열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아무 방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무슨 이상한 방언을 받아서 믿음의 아버지가 된게 아녜요. 세례요한이 무슨 신령해가지고 날 때부터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데 방언으로 설교했다 그런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한국 교회가 참 성령이 주셔서 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그 방언으로 그 영혼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대개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니까 믿음이 약하거나 고집이 세거나 도대체가 믿음이 없어서 잘 안 믿는거야. 그러니까 믿지 않는자를 위한 표적이라는 거예요. 하도 안 믿고 애를 먹이고 하니까 표적을 줘야만 그 기독교의 진리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는..
그래서 그런 신비운동으로 막 치닫는 것은 꼭 잘못되기 쉬운데, 분별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그런 신비운동을 해야지, 그것도 극단적 신비주의 일변도로 갈때는 항상 잘못되어 갔어요. 지금까지.
이런 은사가 주어졌다 할지라도 대부분 표가 나는 것은 방언의 은사라든지 이런 것은 표가 나요. 병을 고친다든지 이런 것은 표가 나는데, 어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은 자기에게 임해 있어도 평소에 인식을 잘 못해요. 그러다가 어떤 일을 하게 되면서, 일을 하는 가운데 그에게 어떤 은사가 나타난다는 거야.
그 다음에 이런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풍성하게 충만케 하는데 있습니다.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봉사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한데요, 모든 지체가 서로 존중하게 여길줄 아는 자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자세, 그 사람 한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사람, 이렇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함부로 할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린아이 하나라도 삼가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죠.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라도.
그의 천사가 매일같이 하나님을 뵙는다고 그러기도 하고,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생각할 때도 우리가 어떤 사람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저는 대개 중학생 고등학생정도 되어도 말을 함부로 놔 하지 않습니다. 보통 예삿말이나 하다못해 반말 이상으로 높여서 하는게 좋을 거예요. 조심을 해야돼요.
그리고 우리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있거나 은사를 받았거나 능력을 받았거나 해도 주장하면 안돼요.
교회를 섬기는 기본 자세중에 우리는 종들이지 주인이 아니죠? 맞아요? 저도 목사지만 종이지 주인이 아니거든요. 주장은 누가하느냐 주인만 하는거예요. 주인만. 주인이 누구예요? 머리만 주인이야. 그렇죠?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밖에 없어요. 목사도 머리가 아닙니다. 장로님도 머리가 아니고 아무도 머리가 아닙니다.
머리는 예수님만 머리이고 우리는 다 지체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서로 아끼고, 손이 발보고 너 쓸데없다 하면 아무데도 못 가죠.
그리고 발이 손더러 너 쓸데없다고 하면 안돼죠. 그러니까 서로가 다 필요하고 서로 소중한 존재,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소중한 존재로 존중해줘야 돼요. 존중하고 아끼고.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성경은 장로님들 보고도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되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일 교회가 어려워지는것은 항상 이 기본자세, 누가 나서서 주장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이라 할수도 없어요.
교회에서 누가 나와서 장로든지 목사든지 누구든지 간에 주장을 한다 그러면 성도도 안돼요. 맨 기본이 주장하지 않는 겁니다.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에서 우리 성도들 앞에서 늘 선포를 하죠. 목회자인 제가 주장하지 않을테니까 따라서 성도님들도 주장하지 말자. 그러면 교회가 편안해요. 이렇게 해도 주장하는 사람이 나와요. 가끔.
그럼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거야. 주인도 아닌데 주장하니까. 주인은 예수님인데, 예수님만 주장해야지. 성도가 주장하면 곤란하다는 거야.
그 다음에 교회를 봉사하는 자세, 주님의 몸된 교회를 봉사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될 것과 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거죠.
목적이니 목표가 아무리 중요하고 바르다 할지라도 방법과 수단도 바르게 해야돼요. 항상 덕을 세우게.
덕을 세운다는 말도, 참 한문으로는 덕이라는 게 큰 덕(德)자 그렇죠? 그런데, 헬라어 신약성경 원어로는 ‘오이코도메’라는 말을 써요. 오이코도메라는 것은 ‘집을 세워지게하다’는 뜻이예요. 오이코도메라는 말은 ‘집을 세우다’ ‘덕망있게 하다’ 그런말로 하는데, 오이코도메라는 것은 집을 세우는, 그러니까 집을 헐지말고, 어떤 사람은 자꾸 흠집을 낼려고 해요. 흠집을. 교회에다가. 흠집을 내지말고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되라는 거야. 덕을 세우라는 말예요. 오이코도메라는 말이..
작금에 오늘 근자에 교회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보면 거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 안에서도 덕이 안되고 사회에 비취면 욕을 먹을 만한 그런 집회문화가 잘못된, 아주 극단적 신비주의 이런 것을 보면 현기증 날정도로 전혀 덕이 되지 않는, 영광이 되지 않는 그런 집회가 그냥 난무하는 거예요.
우리 기독교가, 사실 한국의 기독교가 결정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욕을 먹으면서 우리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오히려 혐오하기까지 하게 된 것은 92년도 다미선교운동 그때부터 신비주의 운동이 밖으로 표출되면서부터, 그런 기도원 문화 이런것들이 아주 극단적 신비주의가 영상을 타고 바깥으로 흘러나가면서부터 질서도 없고 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상식도 통하지 않는..
그런 이상한 사람들로 비치면서 덕인 안 된다는 거예요. 덕이.
그래서 항상 첫째는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것. 둘째는 덕을 세울 것.
항상 하나님이, 이렇게 할때 이것이 누가볼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만한 것인가?
그래서 여러분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한 것을 보면 밖에, 교회 바깥에 사람들이 칭송을 했다는 거야.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집회문화라든지 이런 모든 삶의 이런 모습들이 교회 밖에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칭송하게 하고 있는가? 그러면 성령이 하는 거예요. 칭송하게가 아니고 계속 욕을 먹게하고 지탄을 받게 하고 있다면 성령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볼때 극단적 신비주의 같은 경우는 결코 성령이 하시는 법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요즘 한국교회가 무슨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이 유행한다고 하는데, 여러분 멀쩡한 사람을 쓰러뜨리는게 무슨 성령이 무슨 할일이 없어서 멀쩡한 집사를 쓰러뜨리겠어요.
쓰러뜨려서 회개하고 이러면 좋겠는데, 쓰러져서 두시간씩 세시간씩 비인격적으로 깔깔대고 웃어.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맞습니까?
여러분 성령이 하나님의 형상을 인격적으로, 아무리 성령이 애가타도 인격적으로 하시지 그렇게 누구를 그저 비인격적으로 쓰러뜨려놓고 비인격적으로 비이성적으로 깔깔대고 웃는...
지금 교회가 되어가는 꼴을 볼때, 우리 사회가 되어가는 것을 볼때, 인간성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볼때 성령 같으면 피눈물 짓고 한심하며 근심하며 탄식할텐데, 뭐가 성령이 좋아서 깔깔대고 두시간씩 웃겠어? 그런 집회가 어떻게 성령의 집회냐고?
아니 손만대면 쓰러지는 사람 같으면 교회에 있지 말고, K1으로 가라고 K1. 격투기. 손만대면 넘어가버려 상대방이...
이것은 서구에서 아무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를 잘못 끌고 가는 겁니다.
그것은 은사가 아녜요. 성령의 은사는 지금 봤잖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어때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절제 이런것들인데, 이것을 금할 법이 없죠.
만약에 성령의 은사라는게 기껏해서 집사를 쓰러뜨리는것과 데굴데굴 구르는것과 그리고 깔깔대고 웃는것과 그런 성령의 열매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무질서와 난장판과 이런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죠.
그러니까 이런것도 목회자라면 분별력이 있어야 돼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런거예요.
그리고 금이빨과.. 어떻게 성령이 할일이 없어서 금이빨로 하지말고 본이빨로 하라고 본이빨로..
이왕 변화시킬려면 금이빨이 아니고 본이빨로 만들어줘야 좋은게 아닙니까?
여러분 혹시 여기에 금이빨 박혀있는 사람은 새이빨로 바꿔달라고 해요.
이런 이상한 집회를 우리가 정말 계속할것인지 성도들이 깨어서 교역자들 제발 그런 이상한 것 배우러 다니지 말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뭔지를 다시한번 눈을, 진리의 말씀으로 눈빛을 씻고 성경을 좀 보고 제대로 분별 해야죠.
앞으로 마지막때가 되면 거짓 이적과 표적을 가지고 할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을 미혹하게 할 겁니다.
여러분 우리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펴 보세요.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펴 봅시다.
이런 구절은 우리가 찾아봐야 돼요. 2장 7절입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잘못되고 잘못될 사람은 현저하게 잘못된 길로 가서 심판받게 할려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 혹 그런 이단 사이비에 빠지게 할려고 거짓 이적과 거짓 표적을 나타나게 한다는 거예요. 유혹을 역사하게 하사..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교회는 장난처럼 해볼일이 아니잖습니까?
어떤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걸려있는 그런 진리를 가지고,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분들이 분별력 없이,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그것을 분별도 못하면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이며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여기 제가 오늘 소개한 아름다운 것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그런 비인격적인 것과 비윤리적 비상식적인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끌어모으면서, 분별력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거야. 이것은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때가 되면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희귀할 것이고, 이런 거짓 이적과 표적들, 사탄의 역사를 따라서 일어나는 큰 이적 기사 이런 것을 따라서 사람들이 갈것이라 하는데,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분별력이 없으니까.
그래서 교회에서 성도님들 교회 중직자들이 가장 바라고 사모할 것은 영적인 분별력을 달라고 해야 돼요. 지혜와 명철과 총명과 분별력을 주셔서 참과 거짓을 명확하게 분별할수 있는, 그리고 분별할수 있는 은사만 아니고 분별할수 있는 척도, 분별할수 있는 다름줄, 분별할수 있는 척도가 성경입니다. 성경 그 이외의 다른 어떤것으로도 분별의 척도가 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교회를 섬기되 아무리 우리가 이런저런 능력과 은사를 받았어도 그런 능력과 은사를 바르게 사용할수 있도록 말씀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은사받으면 다 인줄 알지만, 능력의 은사를 받은 삼손 그 능력을 바로쓰지 못해서 그는 실패한 나실인이 되었어요. 그는 태로부터 모태로부터 바치운 사람이고 그는 신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그 능력을 바로 쓸수 있도록 율법을 알지 못하니까 결국 타락하고 맙니다. 눈알이 뽑혀서 다곤 신전에 가서 그런 끔찍한 일을 다 당하고, 눈알이 뽑혀 연자맷돌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던 기드온도 성경을 잘 모르니까 율법을 잘 모르니까, 아들 70명이 있는데 그 아들 70명이 하루아침에 한 반석에서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요.
지혜의 은사를 그렇게 받았던 솔로몬도 율법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 지혜의 은사를 바르게 쓸수 있는 율법을 모르니까 비참하게 타락한 겁니다.
직분, 열두 사도에 선임된 사람이라도 그런 직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니까 배신자의 대명사 가룟유다가 된 거예요.
일곱 집사중에 한사람으로 선발되었던 니골라라는 사람도 이단의 괴수가 된 거예요
직분도 우리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직분도 표준이 아녜요. 능력도 은사도 표준이 아니고, 그 모든 능력과 은사를 가능할수 있는 유일한 척도가 성경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 반드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말씀을 성실히 공부하시고, 또 이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바르게 분별할수 있는 그런 은사가 필요합니다. (아멘)
[정리]
◎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먼저 그 말씀을 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예수님의 말씀이고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다. 오늘날 교회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아서 교회와 성도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 은사란 무엇인가
- 은사 (恩賜) 의 사전적인 의미는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 하나님의 일군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재능을 성령의 은사라 한다
◎ 은사의 목적
-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게 한다.
-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풍성하게 한다.
-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한다.
- 교회와 성도가 사명을 다하게 한다.
- 성도들의 사역을 능력 있게 한다.
◎ 구약시대의 은사
- 기술의 은사 : 브사렐과, 오홀리압
- 능력의 은사 : 삼손, 엘리야, 엘리사
- 음악의 은사 : 다윗, 고라 자손, 아삽 자손
- 믿음의 은사 : 아브라함, 여호수아, 다윗
- 지혜의 은사 : 솔로몬
- 지식의 은사 : 에스라, 힐렐, 가말리엘, 바울
- 해몽의 은사 : 요셉, 다니엘
◎ 신약시대의 은사
- 지혜의 말씀의 은사
- 지식의 말씀의 은사
- 믿음의 은사
- 예언의 은사
- 병을 고치는 은사
- 영들 분별의 은사
- 능력 행함의 은사
- 방언의 은사
- 방언 통역의 은사
- 상담과 위로의 은사
- 조직과 행정의 은사
- 인도와 전도의 은사
◎ 은사의 인식
평소에 자신에게 없었는데 성령님의 은사로 주어진 현상이 있을 때 이를 은사로 인식하게 되다.
◎ 봉사하는 자세 (주장하지 말고, 덕을 세우자)
- 그리스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모든 일을 봉사라 한다.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봉사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지체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자세와 자기 생각으로 주장하지 않는 자세가 기본이다. 주장은 주인만 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종이며 머리가 아니고 지체이기 때문에 아무라도 교회에서 주장하는 자세를 취할 수가 없다.
-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봉사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자세가 있다. 반드시 해야 할 것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 목적이나 목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방법과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덕을 세우지 못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다 덕(오이코도메)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 작금에 교회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거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이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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