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온유한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지금까지 살펴본 팔복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연인이 생각하는 것과 전적으로 반대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자연인과 전혀 다른 나라에 속해 있으며, 세상에서 이들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팔복사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물질적이고, 정치, 군사적으로 생각했던 유대인들의 사고방식과 크게 대조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 팔복사상은 자신의 세력과 힘과 조직(기구)을 의지하여 세상과 대적한다는 오늘날의 교회의 사고방식과도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앞에 살펴본 두 복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을 고백하게 하였다. 온유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이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복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살펴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즉 온유함은 다른 사람들의 대우에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레미야 신약의 스데반과 주님을 통해 온유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온유함의 부정적 의미
온유는 생래적 자질이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온유하도록 작정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령께서 만드시는 것으로 성령이 내주하신 이들이 바로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롬 8:9) 온유는 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무기력이나 안이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친절하고 호감 가는 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인격이나 인물됨의 연약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외적태도의 문제 일뿐만 아니라 내적 정신의 문제이다. 즉 성난 일격을 참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참는다거나 견딘다는 느낌을 조금도 갖지 않는 내적 상태의 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온유함의 긍정적 의미
온유는 나 자신에 올바른 견해와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나의 태도를 의미한다. 온유는 자신에 대한 정직한 진단을 통해 나타난다. 나 자신에 대한 온유함은 가난한 심령과 애통에 뒤이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죄 성에 의한 가난한 심령과 애통을 통하여 나 자신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될 때에만 나의 교만은 없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력 앞에 자기에게는 자랑할만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 동시에 온유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 자신의 지위나 특권, 소유물이나 신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든 그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참된 온유는 자신을 더 이상 방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방어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우리 속에서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온유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품행에서 나타나야 한다. 온유는 보복의 영이 완전히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인내하고 오래 참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온유는 항상 배우려는 영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우릴 정도로 우리 자신과 우리 능력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유는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마음과 생각, 우리의 권리, 우리의 대의, 우리의 장래의 전체를 하나님에게 일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사람은 이미 이생에서 항상 만족을 얻는 사람이다. 그는 이미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다. (빌4:11-13, 고전 3:22) 동시에 이것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앞으로 올 그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 날과 새 땅을 상속받을 사람이 될 것이다. (고전6:2, 롬 8:17, 딤후 2: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14:11) 이것이 온유이다. 자연인에게 온유는 있을 수 없다. 성령이 아니시면 아무것도 우리를 겸손하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며, 우리를 애통하게 하며 우리 자신에 대한 정직한 견해를 갖게 하며,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마음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주님에게 더욱더 집중함으로써 우리의 철저한 불완전함을 고백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자아와 절교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주님이 우리전부를 소유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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