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번져가는 세속화문제
처음에는 CCM 에 대하여 우려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냥 다 체념하고 아무도 아무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입장과 견해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하도 복잡하게 변천하는 중이 이상한 사람들이 몇 사람 혹은 얼마쯤 존재하게 되는 것까지 박멸하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혼란스러워도 보편적 선이 있는 것이고 하시대를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교회에서 번져가는 음악이라는 것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모로몬교 상가대의 거룩하고 차분한, 그 아름다운 화음을 한번 들으면 어린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마치 천국에 반쯤이나 와 있는 것 같은 거룩한 감동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음악이 예배를 거룩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진리를 바르게 받아들인 우리가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찬양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이단 사이비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룩한 감동으로 이끌어 가는데 오늘날 교회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로 거룩한 곳을 공연장으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계속하여 주장하시는 분들의 논지는 이미 수도 없이 들어서 저에게 있어서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사고와 그러한 방식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음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입장은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1. 필요에 따라 교회가 변화하고 있는 세상과 함께 맞추어 나가야 한다. 2. 신세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런 종류의 음악으로만 설득할 수 있다. 3. CCM은 시대적 변화이며 누구나 다 이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야 한다. 4. 나뭇가지처럼,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시류에 따른다. 5. 음악은 단지 선택에 불과하다. 6. CCM을 좋아하는 교회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CCM이 필요하다. 7. 모든 종류의 음악으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다. 8. CCM이 세계적 흐름의 산물이고 기독교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편협 그 자체이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그러한 음악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든 말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수용해야 한다는 이론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어떤 목사들이 CCM을 도입하여 열린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엄밀하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거의 공연에 가깝습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구별이란 차별도 아니고 결별이 아닙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교회의 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01. 착 하 고 아름답게 02. 온유하고 겸손하게 03. 화평하고 거룩하게 04. 진실하고 성실하게 05. 지혜롭고 순결하게 06. 공평하고 정직하게 07. 확실하고 분명하게 08. 신중하고 담대하게 09. 자유롭고 질서있게 10. 근면하고 검소하게 11. 순전하고 양순하게 12. 인자하고 관대하게 13. 은밀하고 친절하게 14. 충성되고 경건하게 15. 풍성하고 충만하게 16. 원만하고 적당하게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는 "엑클레시아"라고 했습니다. 세속에서 빠져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고 맛보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티나 주름잡힌 데가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 상이 이제는 다 허물어져서 이제는 교회인지 사회인지 전혀 구별도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찬양도 기도도 이기주의와 상업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집회도 이름만 성회이지 실제로는 전혀 거룩하지 않습니다. 저의 강의 중에 아모스서 강의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모스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의 절기를 미워한다 내가 너희의 성회를 미워한다 내가 너희의 번제를 미워한다 내가 너희의 소제를 미워한다 내가 너희의 희생의 화목제도 미워한다. 내가 너희의 노래소리도 미워한다. 내가 너희의 비파소리도 미워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니 곧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교역자의 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은 분별력이 생겨나야 합니다. 사람이 이왕에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이제는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모호하게 헷갈리게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 있습니다. 01. 진 위 02. 선 악 03. 미 추 04. 허 실 05. 성 속 06. 귀 천 07. 선 후 08. 경 중 09. 적 부 10. 정 오 11. 본 말 12. 공 사는 판이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이 지금 이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지게 하는 문화 활동을 부단히 추진하고 있는데(뉴 에이지 문화의 일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 장단에 춤을 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교회가 오늘날 이른바 세속화일로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단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분명하고 옳습니다. 진리 앞에서는 논의나 토론이나 논쟁이 길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길게 하지 않았습니다. 설명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 맑스의 자본론은 옳은 말 같은 데 말이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가서는 인간성 속에 있는 욕심과 게으름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100년도 안되어서 실패한 이론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옳은 말도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옳은 말은 공자도 했고 석가도 했고 제자 백가가 다 나름대로 부분적으로 옳은 말을 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에도 더러는 배울 것이 있습니다. 빵이 98 %이고 쥐약은 2 % 에 불과했지만 그 빵을 먹은 쥐는 그 2% 때문에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그 2 %를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작금에는 신학마저 다원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절대적인 진리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도 그 시대의 산물이며 이 시대의 다양화 된 현실속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필요하다고 떠들어 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그 시대의 아들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금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민중의 이름으로, 혹은 이한열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전태일이가 이 시대의 그리스도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도 예수 그리스도도 절대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그들은 한동안 온 신학계를 뒤흔들듯 했는데 그 때 뿐이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힙합 바지나 펑크 바지를 입고 떠들고 춤추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피눈물을 쏟아 놓아도 될까말까 한 때에 육신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음악과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출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냥 한 인간 즉 자연인으로 존재할 때는 여러 가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는 달라져야 합니다. 광화문 앞에 서 있는 이순신 동상에 걸맞는 의상은 당연히 갑주를 입히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처럼 위대한 분의 형상에다가 힙합 바지나 펑크 바지를 입힐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순신 장군 정도의 형상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다가 거지같은 펑크 바지를 입혀 놓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이러한 문화의 옷은 사탄이 우리 인간의 실상이 되는 하나님을 모독하도록 분별력 없는 철없는 세대를 충동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저같은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 보았자 교회와 세상이 세속화로 달려갈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현실을 보면서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러는 옥토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결론은 나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점점 동화되어서 마침내 이 땅에 교회가 되지 않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 해서 결국은 거룩한 교회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모두가 세속적인 문화 속에 휘말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챠드 니버가 그의 책 "문화와 그리스도"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문화 대립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문화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문화를 변혁시킨다고 역설 했습니다. 오늘날 현실은 어떻습니까 ! 잘 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예수 없는 예수교,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敎會)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염려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 ! 사탄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것을 헷갈리게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문화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은 울고 있어도 우리가 알 바 아니고 우리는 노래하고 춤을 추겠다고 할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교회 밖에서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 사이비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세상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 교회를 변질시키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모릅니다 위험스러운 청년지도자인지 아니면 CCM 그룹 인도자인지 또는 소위 말하는 찬양사역자로 자처하는 사람인지.......! 그러나 짐작하기로는 CCM에 대하여 반대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참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진리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그러나 자신을 현실에 개입 시키지 말고 그냥 정말 객관적으로, 영적인 분별력으로, 또는 신앙 양심으로 정중하게 하나님 앞에서 한번 판단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미 입장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적어도 진리가 아닌 것으로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설득도 위협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양심을 따라 스스로 판단할 자유가 주어져 있으니까 신앙 양심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판단할 일이지만 스스로 판단한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면할 수는 없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5장 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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