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칼럼리스트 박신 2007/8/30
수박보다 포도같은 교회가 되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경구가 너무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 시대, 한국동란, 전후 경제적 정치적으로 피폐했던 시기 등을 거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개인적 처세술이자 사회적 가치관입니다. 분명히 화합은 분열보다 좋은 것으로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서로 협력하여 매진하는 것은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교회에서마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다뤄지고 있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교회일수록 더욱 하나가 되고 성경도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함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지만 실제로 적용하고 있는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르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선 무슨 일에나 반대 의견을 내면 심지어 순전히 논의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는 태도만 취해도 하나가 되는데 방해하는 것으로 봅니다. 무조건 교회에서 하는 일에 100% 찬성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두고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흡한 면이 있고 심지어 명백한 잘못이 있어도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함에 분열보다는 화합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반 강제성(?) 이유까지 들이댑니다.
그러다보니 담임 목사가 자신의 목회 방침을 밀어붙이기 위해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악용(?)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반대 의견을 누르는 데에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되며 또 그것이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칩니다. 감히 교회가 흘러가는(?) 방향에 반기를 들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심지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매도됩니다.
바울 사도는 분쟁으로 지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인간의 신체에 비유해서 하나가 되라고 권했습니다. 본문은 그 권면을 시작하는 말씀인데 특이하게도 교회가 그렇게 되라고 하지 않고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말했습니다. 특정 행위를 요구하는 명령형 대신에 단순히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서술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연히 한 몸 아닙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몸 인간의 몸 둘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는 데에 유대인이나 헬라인, 자유자나 종, 즉 인종 신분 지위 등으로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 성령이 역사하여 심령을 거듭나게 하고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게해서 한 세례를 받게 합니다. 따라서 교회란 거듭난 성도들이 이미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인간적 기준에 의해 다시 나눠선 절대 안 될 뿐 아니라 교회를 인간이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인종차별 하지 말라는 도덕적 권면이 아닙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구원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결코 혼잡해져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 교회, 성도들의 모임은 오직 하나인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그 진리에 의해 진리를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역이나 목사의 방침에 반대 의견을 내면 안 된다는 뜻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몸과 지체의 비유를 들어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지체는 여럿이되, 실제로는 반드시 여럿이어야 한다는 뜻임, 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이되 여럿이며 동시에 여럿이되 하나라는 것입니다. 반대 의견 하나 없이 무조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지체도 하나이자 몸도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교회를 과일에 비유하자면 포도와 같아야 합니다. 포도송이 하나하나가 다 포도이되 송이들이 수북이 달려 있는 한 뭉치도 포도이지 않습니까? 어떤 송이를 따도 색깔과 맛이 같습니다. 각 송이의 숙성도가 비슷하지만 간혹 아직 덜 익은 것이 한두 개 달려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송이마다 외형적 모양과 크기는 조금씩 다릅니다. 즉 성도마다 예수를 믿는 진리에 있어선 절대로 동일하되 그 진리를 담는 형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니까 잘 실감을 못하실 것 같아 대조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교회가 수박이 되어선 안 됩니다. 겉으로는 수박은 다 수박입니다. 그러나 수박은 겉과 속의 색깔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다 같이 예수를 믿는 교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르쳐지는 내용이 십자가 진리가 아니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나아가 수박 속은 잘라봐야 알고 또 그 속도 여럿입니다. 덜 익은 것, 익다 못해 썩은 것, 적당히 잘 익은 것들 다 다릅니다. 성도들의 진리 인식이 다 다른데 겉으로만 무조건 하나처럼 보여선 교회가 아닙니다. 작금 대다수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포도 식으로 이해합니까? 수박 식으로 적용합니까? 아무래도 후자가 아닙니까?
요컨대 교회는 역사적인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 사건과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에선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되, 그 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 방식에선 여럿이 되어도 되며, 아니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진리는 여럿이 되어도 되지만, 심지어 성경과 달라도 목사가 가르치는 것에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진리를 담아내는 형식에선 달라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상황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에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게” 되었습니다.(행15:36-41) 그들은 복음에서 분리가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형식에서 의견이 달랐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교회가 둘로 나뉜 셈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각지의 교회들이 굳게 되었을 뿐입니다. 복음은 전혀 나뉘지 않았고 대신에 각 교회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역자와 사역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지체가 여럿이듯이 사역에 대한 의견은 여럿이어야 합니다. 토론 과정에선 정말 대단한 격론이 일어나도 됩니다. 그러다 도저히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면 차라리 나뉘어도 됩니다. 단 누차 강조하지만 각기 진리만은 끝까지 붙들되 단지 방법론에서만 다르다면 말입니다. 진리가 살아 있다면 나뉨으로써 진리는 오히려 더 크게 번질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흩어지라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성도들이 그저 뭉쳐서 흩어지지 않자 하나님은 오히려 박해를 일으켜 강제로 흩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분열보다 더 나쁜 것은 교회 안에 파당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의견이 나뉘는 것은 생각의 차이이지만 파당은 사람이 나뉘는 것으로 헬라인과 유대인과 자유자와 종을 하나로 만드신 그리스도에 반하는 것입니다. 의견이 나뉘는 것은 특정 사안별이지만 사람이 나뉘는 것은 사안에 관계없이 친분, 선호도, 심지어 신분과 지위와 인종에 따라 뭉치는 것입니다.
의견이 나뉘는 것은 복음을 더 잘 전하자는 목적이지만 사람이 나뉘는 것은 복음보다는 자기의 의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복음을 더 잘 전하려고 하면 의견이 달라도 일단 결정되면 승복하기 쉽지만 자기 의를 앞세우면 자기 의견과 다르면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는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이유도 많지만 복음에 대한 소명의식의 결핍이 교회의 모든 문제를 야기합니다. 또 그 잘못의 대부분이 담임 목사에게 귀착되지만...
교회에 복음은 하나이되 그 전하는 방법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포도 같은 교회가 하나이지 수박처럼 되었다고 하나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포도입니까 수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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