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의용 - 겨자씨 만한 관점의 차이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나라마다 그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독일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며 그의 능력을 본다. 미국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일을 해봤나?"라며 그의 경력과 능력을 본다. 일본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디 학교 나왔나?"라며 학벌을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까? 실제로 면접장에 가보면 이런 질문이 자주 나온다. "아버지, 뭐 하세요?" 여러 예상 질문에 대한 준비를 하고, 면접에 나선 학생한테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다니...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미국에서는 교통경찰관이 제일 먼저 달려가 현장을 수습하고 교통질서부터 바로잡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보험회사 직원이 달려와 현장의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보상 조치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두 세 대의 레카차가 갓길로 달려와 고장난 차를 물어가려고 서로 다툰다.
도로가 막히면 미국에서는 교통경찰관이 제일 먼저 달려와 수신호로 길을 열어준다. 일본에서는 신호등 기술자가 달려와 신호등을 상황에 맞게 조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뻥튀기' 아줌마들이 나타난다.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참으로 그럴 듯하지 않은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의 차이는 아주 작은데, 그것이 빚어내는 결과는 대단히 크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우리는 전혀 새롭고 넓고 깊은 세상을 발견할 수가 있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이지만, 배울 점이 많다. 꽤 오래 전에 이 나라의 건설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다. 싱가포르의 도시는 같은 모양의 건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기존의 건물과 똑같은 설계도로는 허가가 잘 나오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기존의 건물과 똑같은 설계도가 허가가 잘 나온다. 요즘엔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 나라 관청에서는 인허가가 잘 나온다. 시민이 제출한 인허가 신청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인허가가 잘 안 나온다. 시민이 제출한 인허가 신청을 함부로 처리해주면 '직권남용'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왜 허가를 내주지 않았는가?"를 감사한다. 그러니 방법까지 알려주면서 신속히 처리를 해준다. 우리나라는 "왜 허가를 내주었는가?"를 감사한다. 그러니 까다롭게 트집을 잡고 일을 질질 끈다. 허가를 안 내줘도 책임이 없고, 질질 끌어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뇌물이 생긴다.
어쩌면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이 간단한 시각의 차이가 '뛰어난 싱가포르'를 이뤄냈는지도 모른다. 관점의 차이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인생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누리는 이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직장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이들들 보면, 일반 직장인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여행 중에 건설 현장을 구경하게 되면 "이 건물 언제 짓느냐?", "이 건물 짓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나 소위 선진국 사람들은 그 건물을 짓는 방식이라든지 건물의 특징 같은 데에 관심을 갖는다.
경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주에 수학여행 온 일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사이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침에 숙소에서 드러난다. 우리 아이들은 자고 난 방을 치우지 않고 나오는데, 일본 아이들은 이불을 개고 방까지 정리하고 나온다. 또 하나는 유물이나 유적지를 구경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우리 아이들은 건성으로 구경을 하지만, 일본 아이들은 노트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자세히 기록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장의 기계가 고장나면 거기에다 '고장'이라고 써붙인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은 바로 '수리 중'이라고 써붙인다. '현재 완료형'과 '현재진행형'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것이 서로 다른 세계를 이뤄낸다.
축구경기를 구경하다보면 해설위원이 '사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걸 듣게 된다. 수비수가 사람을 놓치고 공을 막으려 하다보면 실수를 하게 된다. 좋은 수비수는 공보다는 사람을 볼 줄 안다. 사람인가, 공인가?
직장의 리더 중에는 사람보다 일을 중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이가 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사용'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을 일을 하는 도구로 오인하다가 무서운 상황을 맞이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들이 보기에 많은 권한을 가진 자리,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자리를 우리는 '요직'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별 볼 일이 없는 자리를 우리는 '한직'이라고 부른다. 어떤 자리든 원래부터 '요직'이거나 '한직'인 건 아니다. 바로 전임자들이 그 자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어떤 이는 '한직'이었던 자리를 자기 재임 중에 '요직'으로 만들어놓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요직'을 '한직'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어떤 석공은 자기가 "돌을 깨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석공은 자기가 "먹고사느라 이 짓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석공은 자기가 "호텔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작은 차이가 그 사람과 그가 사는 세상을 다르게 만들어간다.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하는 '일', 그가 일하는 '직장',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비신자들과는 그 관점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 비록 그 차이가 겨자씨 같이 작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이뤄내는 결과는 참으로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그 겨자씨만한 관점의 차이를 갖고 있는가? 그것을 구체적인 삶으로 이뤄나가고 있는가? 이것이 회식 중에 술 한 잔 안 마시는 것보다 몇 백 배나 중요하거늘.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나라마다 그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독일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며 그의 능력을 본다. 미국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일을 해봤나?"라며 그의 경력과 능력을 본다. 일본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디 학교 나왔나?"라며 학벌을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까? 실제로 면접장에 가보면 이런 질문이 자주 나온다. "아버지, 뭐 하세요?" 여러 예상 질문에 대한 준비를 하고, 면접에 나선 학생한테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다니...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미국에서는 교통경찰관이 제일 먼저 달려가 현장을 수습하고 교통질서부터 바로잡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보험회사 직원이 달려와 현장의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보상 조치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두 세 대의 레카차가 갓길로 달려와 고장난 차를 물어가려고 서로 다툰다.
도로가 막히면 미국에서는 교통경찰관이 제일 먼저 달려와 수신호로 길을 열어준다. 일본에서는 신호등 기술자가 달려와 신호등을 상황에 맞게 조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뻥튀기' 아줌마들이 나타난다.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참으로 그럴 듯하지 않은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의 차이는 아주 작은데, 그것이 빚어내는 결과는 대단히 크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우리는 전혀 새롭고 넓고 깊은 세상을 발견할 수가 있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이지만, 배울 점이 많다. 꽤 오래 전에 이 나라의 건설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다. 싱가포르의 도시는 같은 모양의 건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기존의 건물과 똑같은 설계도로는 허가가 잘 나오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기존의 건물과 똑같은 설계도가 허가가 잘 나온다. 요즘엔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 나라 관청에서는 인허가가 잘 나온다. 시민이 제출한 인허가 신청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인허가가 잘 안 나온다. 시민이 제출한 인허가 신청을 함부로 처리해주면 '직권남용'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왜 허가를 내주지 않았는가?"를 감사한다. 그러니 방법까지 알려주면서 신속히 처리를 해준다. 우리나라는 "왜 허가를 내주었는가?"를 감사한다. 그러니 까다롭게 트집을 잡고 일을 질질 끈다. 허가를 안 내줘도 책임이 없고, 질질 끌어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뇌물이 생긴다.
어쩌면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이 간단한 시각의 차이가 '뛰어난 싱가포르'를 이뤄냈는지도 모른다. 관점의 차이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인생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누리는 이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직장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이들들 보면, 일반 직장인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여행 중에 건설 현장을 구경하게 되면 "이 건물 언제 짓느냐?", "이 건물 짓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나 소위 선진국 사람들은 그 건물을 짓는 방식이라든지 건물의 특징 같은 데에 관심을 갖는다.
경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주에 수학여행 온 일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사이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침에 숙소에서 드러난다. 우리 아이들은 자고 난 방을 치우지 않고 나오는데, 일본 아이들은 이불을 개고 방까지 정리하고 나온다. 또 하나는 유물이나 유적지를 구경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우리 아이들은 건성으로 구경을 하지만, 일본 아이들은 노트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자세히 기록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장의 기계가 고장나면 거기에다 '고장'이라고 써붙인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은 바로 '수리 중'이라고 써붙인다. '현재 완료형'과 '현재진행형'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것이 서로 다른 세계를 이뤄낸다.
축구경기를 구경하다보면 해설위원이 '사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걸 듣게 된다. 수비수가 사람을 놓치고 공을 막으려 하다보면 실수를 하게 된다. 좋은 수비수는 공보다는 사람을 볼 줄 안다. 사람인가, 공인가?
직장의 리더 중에는 사람보다 일을 중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이가 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사용'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을 일을 하는 도구로 오인하다가 무서운 상황을 맞이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들이 보기에 많은 권한을 가진 자리,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자리를 우리는 '요직'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별 볼 일이 없는 자리를 우리는 '한직'이라고 부른다. 어떤 자리든 원래부터 '요직'이거나 '한직'인 건 아니다. 바로 전임자들이 그 자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어떤 이는 '한직'이었던 자리를 자기 재임 중에 '요직'으로 만들어놓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요직'을 '한직'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어떤 석공은 자기가 "돌을 깨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석공은 자기가 "먹고사느라 이 짓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석공은 자기가 "호텔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작은 차이가 그 사람과 그가 사는 세상을 다르게 만들어간다.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하는 '일', 그가 일하는 '직장',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비신자들과는 그 관점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 비록 그 차이가 겨자씨 같이 작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이뤄내는 결과는 참으로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그 겨자씨만한 관점의 차이를 갖고 있는가? 그것을 구체적인 삶으로 이뤄나가고 있는가? 이것이 회식 중에 술 한 잔 안 마시는 것보다 몇 백 배나 중요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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