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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스크랩] 한명수 목사가 후배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속달편지

한명수 목사가 후배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속달편지

 

한명수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이 진실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목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바람을 서신 형태로 회고록에 담았다. 이 목회서신에는 준엄한 질책과 권면과 위로가 담겨 있다. 그리고 목회자가 나가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외치고 있다. 다음은 한 목사의 목회서신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삯꾼 목자가 되지 말자

 

“화 있을진저 양떼를 버린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슥 11:17)

 

이 말씀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먼저 이렇게 직설적으로 목자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있다는데 놀랐고, 또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킨답시고 목회하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것 같아서 한 번 더 놀랐다.

엊그제 위임식을 하고도 서울의 좀 더 큰 교회에 자리가 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목사님들! 물론 그들이 사례금 때문에, 세상적인 성공 때문에 간다고는 누구 하나 말하지 않지만 솔직히 얘기해보자.

만약 시무하던 교회보다 더 작은 교회, 벽촌 교회에서 청빙하면 그들이 거들떠나 보겠는가? 교인들을 두고 떠나는 목회자들, 그들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들이 아닐까?

 

성도들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헌금하고 뼈 빠지게 교회에 봉사하며 헌신하는데 목사가 자기만 잘살고 자기 자녀들만 돌보는 데 바빠서 가난하거나 병든 성도, 장애인과 같은 소외된 성도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양떼를 버린 목자인 동시에 삯꾼 목자가 아니겠는가?

미가 선지자는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친다”(미 3:11)고 지적했다. 그 누가 “오늘날의 목사 가운데는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돈을 위하여 점치듯 하는 분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총회장이나 감독, 지방회장이 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인다고 하는데, 이것은 돈을 주고 성직을 팔고 사는 행위다. 즉, 성직매매 행위인 것이 이렇게 지적하면 ‘일어탁수’(一魚濁水), 즉 한 마리의 물고기가 온 물을 흐린다고 변명하겠지만, 나는 지금의 한국교회가 중세 교회의 부패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리라.

 

“화 있을진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목사들은 이 말씀을 되씹으며 자신을 성찰하고 크게 각성해야 하며 노회나 지방회 혹은 연회나 총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큰소리치기 전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우리 자신이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평가기준

 

요즘 교회의 규모와 성도수, 그리고 예산의 많고 적음이 그 교회의 부흥과 목회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됨을 주변에서 많이 듣고 본다. 그러나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 교회의 가시적인 부분을 언급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신앙의 질과 진리로만 그 교회를 평가했던 것을 볼 때 교회의 크기나 교인의 수, 재정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교회의 좋고 나쁨이나 목회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교회의 가치가 크게 전도(顚倒)된 것이며, 한국교회의 부패의 일단을 보여주는 슬픈 예(例)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신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목사가 되어서, 농어촌이나 벽촌의 주린 양떼를 찾아 나서거나 미개척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려 하기보다 도시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백 명 모이는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던 어느 목사가 도시 변두리의 십여 명 모이는 교회로 옮겨 목회하면서 “시골 교회 교인 백 명보다 도시 교회 교인 열 명이 더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먹고살자고 하는 구멍가게요 장사지, 교회요 목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한국교회의 성장 침체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를 보았다. 실로 하나님 앞에 참으로 송구스럽고 나 자신에게도 그 책임이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부터 1990년까지 30년간, 교회는 5011개에서 5만 3869개로 늘었고 교인은 62만 3072명에서 1031만 2813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장세가 계속 둔화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에는 교인의 연평균 증가율이 41퍼센트에 달했으나 70년대에는 12.5퍼센트, 80년대에는 4.4퍼센트, 90년대에는 3퍼센트로 급속히 저하되었으며 2000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나는 이러한 통계를 접할 때마다 한국적 종교개혁이 시급함을 절감한다. 흔히 ‘기독교는 피의 종교’라고 한다. 순교의 피가 뿌려지면 뿌려질수록 교회는 새로운 자양분을 얻은 식물처럼 더욱더 왕성하게 성장했고 박해의 정도가 심한 만큼 성장 속도도 빨랐음을, 우리는 2000년 교회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썩어져가는 밀알이 되어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순교’란 현실에는 없는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교회 가기 위해 자기 일과 시간을 포기했다는 신앙 선배들의 고난 이야기는 유년주일학교 시간에나 들려줄 법한 예화거리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외적인 고난이나 박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신앙생활을 하기에 좋은 토양과 최적의 시설이 마련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목회자의 깨끗지 못한 언행이 한국교회의 현실을 얼마나 어둡게 하고 있는지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적 종교개혁은 성직자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대상이 평신도가 아닌 성직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목회자의 자질이 중요

 

통계적으로 기독교를 처음 믿게 된 동기는 42퍼센트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29.5퍼센트는 친지의 권유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질병이나 기타 특별한 이유로 믿게 된 사람은 극소수였다.

한국교회의 당면과제로는 ‘신앙과 삶의 괴리’, ‘목회자 자질’의 문제에 약 70퍼센트가 응답했는데, 이것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목회자들이 양산(量産)되면서 생기는 질적 저하를 염려하는 모습에서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에 대한 목회자들의 노력을 기대하게 된다.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포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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