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다. 수없이 많은 종교중에 하나가 기독교인가?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할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수많은 종교중에 하나의 종교라고 우리가 어릴적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아마 그것이 자연적으로 몸에 습득되었고 그렇게 습득된 지식들을 쉽게 버릴수 없으니 아마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것이다.
죽으면 영혼이 어디있냐? 라든지 아니면 기독교는 천국가고 불교는 극락에 간다거나 뭐 이런것들 말이다. 이슬람교는 어디로갈까? 유교는 영혼소멸론을 말하는 분들이다. 힌두교는? 불교의 윤회설은 왜 나왔을까? 난 그런거 잘 모르고 또 알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개신교는 다른 종교인가? 앞으로 개신교는 개신교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 그리스도교 아니면 기독교라는 말을 써야한다. 개신교라는 말은 천주교에서 개혁되어 나온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신교라는 말을 쓰면 어른들이 쉽게 오해하듯이 천주교는 큰교회 개신교는 작은교회 뭐 이런식으로 착각할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있기전에 이미 기독교는 존재했고 기독교와 천주교는 전혀 다른길을 걸어왔다. 아타나시우스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으로 종교재판을 벌이고 거기서 승리한 기독교가 천주교와의 끊임없는 전쟁속에서 결국 정치적으로 패하고 천주교와 결별하고 나오면서 시작된것이 기독교이고 정치적으로 승리해서 천주교를 장악한 양태론 이단자들은 지금까지 그 천주교를 이어오고 있다.
천주교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자 아리우스파의 후손들이고 기독교는 아타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종교임으로 서로 다른 종교이다. 독자들이 혹 착각하는 분들이 있을줄 아는데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이다. 그러니 천주교를 기독교의 한부류로 보는것을 나는 심히 경계하고 분노한다. 나는 천주교를 한마디로 말해서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종교라고 본다.
종교를 이해할때 가장 중요한것은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는것이다. 첫째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고 둘째는 신이 인간을 찾아오는것이다. 첫째 부류의 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이 대부분 다 첫째종교이다. 샤머니즘/불교/유교/힌두교/이슬람교/모든 종교는 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이다. 인간이 신을 부르는 종교로 이런 종교들의 특징은 주술적이고 기복적이며 인간이 신이되는 과정을 겪는 일들이 벌어진다. 불교의 해탈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둘째 부류의 종교는 기독교를 말한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가짜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니 주의해야한다. 여기서부터 기독교와 이단들의 차이점이 들어나는것이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찾을수 없고 하나님을 부를수 없다. 이미 죽은 자가 어찌 하나님을 찾을수 있는가?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면 안되는 상황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처한 상황이고 하나님없이는 구원자체가 있을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런인간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사랑함으로 찾아온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기독교의 중심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와 구원했기 때문에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때서야 비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부를수 있게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불러서 하나님이 응답해주신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수 있는 분들이 있는데 결코 그럴수 없는것이 인간은 저주받고 타락하고 죄아래 매인자들이며 죄의 사망의 몸을 입고 있는 죽은 몸이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찾거나 부르거나 알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한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살아있는것같아도 그 영은 이미 죽은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을 알수 없는 존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수 없다. 인간은 자기가 죽어서 영혼이 갈수 있는 처소를 만들수도 없을 뿐만아니라 자기의 죽음도 조절하지 못하고 또 자기의 키도 더할수 없으며 머리털도 희게할수 없고 아픈곳을 스스로 치유할수도 없는 스스로 할수 있는것이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는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것은 피조물이고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스스로 알수도 없고 찾을수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것이다.
영혼이 죽은 인간들은 그 안에 양심이 있어서(하나님의 일반은총) 그 양심으로 초월적인 존재를 사모하긴 하는데 그 존재에 대한 의미를 알수 없으니 나무나 돌 해나 달 같은 뭔가 특별하고 기이한 곳에 절을하거나 숭배를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것은 종교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심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이(로마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썩어질것에 절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수 없으니 초월적인 존재를 사모하는것이고 인간이 아무리 찾아도 찾을길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인간에게 나타나셔서 자기를 나타내시고 구원하시게된것이 바로 기독교이다. 그 시초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되고 아벨로 이어지고 아벨이 죽고 셋이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부르게 된것은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한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가인은 그 악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알아도 하나님을 부르거나 찾지 못했음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가인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믿지 않은 죄를 범했고 그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항함으로서 죄를 더했음을 기억해야한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다. 가인의 모습은 나약함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엄포를 놓으면서 자기의 두려움을 감추었으니 그 후손들이 포악해져가는것은 나약함을 감추기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셈의 후손들로 이어진 믿음의 선조들은 노아시대때의 대 홍수의 심판으로 악한 자들이 멸망당했지만 인간은 범죄함으로 바벨탑을 쌓았고 그렇게 흩어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것을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과 그 실천들을 성경에 기록했으니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된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 곧 예정안에서 이루어진것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인간은 신이될수도없고 신을 부를수도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다. 인간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것이다. 성경에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지은바 된 질그릇에 불과하다. 토기장이인 하나님이 질그릇을 만들어 하나님이 쓰고자 하는데로 쓰는것에 인간은 아무런 항변을 할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한다. 질그릇에 귀한것을 넣을때 질그릇이 귀해지는것이 아니라. 그 귀한것으로 인해서 질그릇이 귀하게 보이는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질그릇은 질그릇에 불과함을 알아야한다.
그런데 믿는자들 구원받은 백성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귀한 예수님을 나타내고 보석이신 예수님을 자랑으로 여겨야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은 자랑하지 않고 질그릇에 불과한 자기자신을 자랑하고 자기가 보석이라도 된냥 으시대는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탓이고 잘못이해하고 있으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것을 보고 느끼게된다.
그렇다고 그 질그릇안에 있는 보석을 하나님께서 다시 가져가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질그릇이 자기가 보석이 아니라 질그릇에 불과하며 보석은 예수님임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귀하다 여김을 받게된것을 깨닫게 해주신다는것이다.
다른 종교들은 질그릇에 불과한 인생을 꼬드겨서 당신이 보석이 될수 있다고 속이는것이 이 세상의 종교들이다. 이런 종교들이 기독교인들을 참으로 속이기 쉽고 기독교인들이 쉽게 속아넘어가는데 그것은 자기자신이 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자기가 귀한 보석이라도 된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석이 된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귀한 보석을 담고 있는 피조물이고 우리안에 예수님을 담아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하는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종종 자기가 스스로 보석을 담았다고 착각할때가 많다. 이는 큰 착각이다. 자기가 잘나서 보석을 담았다고 하는데 질그릇은 할수 있는 일이라곤 담는것밖에 할수 없다는것이다. 자기가 보석을 어떻게 찾겠는가?
기독교는 하나님이 찾아오는 종교다. 하나님이 자기의 선택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그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것이 예정인데...예정을 가지고 교만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모든걸 다 예정해두셨으니 내가 지옥가는것도 예정되어 있다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경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르면서 결국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심판의 길로 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발견할수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를 수 있는 초월적 신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이렇다고 말씀하시면 "네 그렇습니다." 라고 고분고분 순종해야할 존재라는것이다. 자기의 존재를 깨달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아야할것이다.
토기장이의 선택에 순종하는것이 질그릇(피조물)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참 구원문제는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인간이 스스로 죽어서 갈곳을 만들수 있는가? 자기가 저 우주 끝에 내가 살집을 지을수 있는가? 아니면 이 지구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 공간을 만들수 있는가? 혹 죽어서라도 자기가 신이 되어서 우주에 자기가 살곳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할수 있는가?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우주에 자기가 사랑하는 백성들이 살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집을 짓고 천국을 건설하는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곳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겠다는것이 하나님의 은혜인것이다.
무신론자들이나 하나님을 스스로 찾겠다고 하는 많은 종교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노력이 없이 천국을 그냥 얻는다는것에 대해서 왠지 미안해서 그런가? 자기의 노력으로 천국을 얻으려고 무단히 애쓰는 모습을 보는데 과연 그런다고 해답이 찾아지는가? 그래서 그들은 포기하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착하게 살면 구원얻는다고 하는 말을 하는것이다. 인간은 죄인이라서 착하게 살수 없는것이 인간이다.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착한 행위를 할수 있지만 이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위한 수단이 아님을 알아�다.
기독교인들은 의를 나타낼때 자기이름으로 나타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의를 행할수 없을 뿐만아니라 늘 악을 행할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악을 행할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하나님을 통해서 어떤것이 의인지 알게됨으로 그 의를 행하게 �으니 결국 자기가 행하는 의는 하나님을 위한 행위이고 그 의의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한다는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된것이다.
믿지 않는자들은 의를 행하며 그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돌리기때문에 하나님은 너희 상은 이미 받았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상급을 기억해 두셨다가 마지막날 심판때 자기를 섬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상을 주시는것이다.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며 우리를 스스로 영화롭게 할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내안에 예수님이라는 보석이 담김으로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존재로 여김을 받게 된것이다. 요즘 나타나는 기독교의 폐단들 중에 하나가 자기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아담이 범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것이다. 입신을 한다거나 신적인 초월적 능력을 발휘한다거나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한다거나 능력을 행한다거나. 물론 성령님의 은사로 이런것을 감당할수 있지만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에서 많은 이단들과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자기만이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자기의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위해 뭔가 특별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해야하는것처럼 그렇게 나타나는 모습을 쉬 발견할수 있는데 이는 불법한 모습이다.
이는 배교이며 그 안에 바른 믿음이 없기 때문이거나 원래부터 구원받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일들이 교회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그래서 은혜언약을 깨닫지 못하는 교회안의 가라지들은 행위언약을 가르치는데 이 행위언약을 말하는 이들의 대표격이 천주교인들이다. 착하게 살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자들 말이다. 믿으면 은사를 행해야한다고 말하는 자들도 경계해야한다. 믿는자들이 모두 능력을 행하거나 특별한 신적인 모습을 보이는것이 아니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자들이 과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는것인지? 그것을 분별해야하는것이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어려운 문제이다.
인간중심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해도 구원을 얻지 못할뿐만 아니라 인간이 신이 되거나 초월적 존재가되는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해탈을 해도 자기가 신이 될수 없으며 결국 죽게된다는것이 인간의 마지막 가는 안타까운 인생이다. 죽지 않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다 죽음으로 간다. 자기 중심의 사람들은 죽음앞에서 두려워질수 밖에없다. 스스로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음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그약속을 믿는자들이기때문에 우리의 죽음은 죽음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으로 가는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은 축복이다.
죽음을 축복으로 여기는 기독교인들은 현세의 축복을 따르지 않는다. 현세에서 뭔가 잘되려고 스스로 뭔가 터득할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인생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 사는것이 기독교인들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안식하는날 하루 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삶이다. 세상속에 속해서 살고 있지만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인이라고해서 특별하다고 세상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특별대우 안해주는것을 환난이다 피박이다라고 생각해서는안된다. 오히려 세상사람들보다 더 낮아지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한다. 그렇게 사는 삶이 주님이 바라는 삶이고 뜻이다. 세상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피박을 받아야한다. 넌 왜이렇게 멍청하냐 좀 약게 살아라라는 말들 말이다. 착하고 멍청하고 온순하고 온유하게 살다보면 세상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수이다. 손해보고 살다보면 일부로 기독교인들을 이용해먹는 자들도 있다. 그렇게 손해도 감수하고 화도 안내고 온유하면서 경건하고 착한모습으로 사는것이 참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요즘 알파코스때문에 많은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기독교인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려는 교회의 부당한 짓에 항거하는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주일 하루만 주님께나와서 예배를 드리면 충분하다. 일주일동안 가정과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나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그렇게 열심히 번돈으로 주님을 위해서 쓰고 이웃을 위해서 쓰고 가족을 위해서 쓰는것이 주님이 바라는 우리의 삶이라는것이다.
그런데 알파코스주의자들은 교인들을 일주일내내 오후에 교회에 붙들어 두려고 하는것이 문제이다. 밤 10시 11시에나 집에 들어가게 하고 금식이다. 무슨 알파기도다 해가며 기도 시키고 혹사시키고 맨토링이다. 맨토다 해가며 자기가 맡은 12명의 신자들을 위해서 일주일 내내 그들을 돌보고 양육해야하는 고통을 떠안기는것이 바로 알파코스이다. 이것이 신앙이고 비전을 실천하는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를 신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주님의 뜻으로 볼수 없다. 전도라는 명목하에 성도님들의 삶을 착취하는것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자를 삼는것은 자기 자신이 있는 곳에서 제자를 삼는것이지 내 주변도 아닌 아프리카 오지 북극 알래스카 같은 곳에까지 찾아가서 일하는것이 주님이 바라는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면 그것이 전파되어서 자연스럽게 세계로 퍼져나가는것이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내가 에베레트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는것 그것이 복음전파의 모습이 아니라 남산 타워 위에서 예수천당을 외치는것이 복음전파가 아니라 바로 내주변 내 아랫집 내 윗집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전파되는것이 복음이라는것이다.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을 세워 특별히 일하시지만 그 특별한 사람이 자기의 위치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들의 활동이 내 귀에 들리게 되어 복음을 듣게되는것이다. 칼빈이 언제 한국에 왔었던가? 그러나 지금 우리는 칼빈이 해석한 것을 통해 말씀을 더 잘 알아듣고 있지 않는가!! 이런것이다. 기독교란 이런것이다. 내가 모든걸 다하려는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퍼져나가는것이고 퍼져나가는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그것을 기뻐하는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빛과 소금의 삶이라는것이다.
그러나 알파코스는 성도를 뭔가 큰일할 사람처럼 추겨주고 추켜세워주고 나서 혹사시킨다. 그렇게 교회에서 혹사를 당해서 칭찬을 들으면 다행이겠지만 가족들과 이웃들로부터 광신자라는 매도를 당하고 자녀들을 돌보지 않음으로 가정이 형편없이 돌아가게되는것을 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게 교회에 매달려 살다가 많은 사람들과 가족들로부터 당신 그렇게 해서 천국가? 그럼 나는 지옥갈련다. 정말 지겨워서 못살겠다는 말을 듣게 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이해를 못해준다고 가족들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위해서 신앙에 손해가 된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기도하는 시간 줄이고 교회가는 시간 줄여서라도 가족을 돌보고 맛있는 반찬을 해주고 같이 여행을 가주고 그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돌보고 섬기면 가족들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 나도 믿어볼까? 하고 나서게되는것이 더 자연스럽고 기쁨이 따라오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가?
교회들은 알파코스를 이용해서 성도님들을 혹사시키고 교회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것처럼 천주교의 행위구원을 가르쳐서는 안되는것이다. 하나님의 은헤를 사구려 인간의 행위로 바꾸는 작업을 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알파코스를 반대하는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종교이다. 인간이 할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감사히 받는것이다. 주님을 내안에 모시고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내안에 보석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주는 역활만 감당하면 주님은 그것으로도 우리를 충성된 종이라 참 잘했다고 칭찬할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멍애가 가볍다고 말씀한것이다. 내가 할일은 없고 내안에서 주님이 모든것을 다 하실것이기 때문에....나는 지금 내 삶에 주어진 일들만 최선을 다해 감당하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쉽고 가벼운 짐인가!!
기독교는 정말 편한 종교이다. 고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해탈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수도원에서 기도에 몰두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대로 6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날 쉬고 날마다 주안에서 기뻐하고 주안에서 감사하며 주안에서 교제하고(기도) 사는 삶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며 그것이 기독교라는 종교의 매력이다.
아직도 착하게 살면 구원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는가? 인간은 결코 착해질수 없다. 의로와 질수 없다. 착하다고 할지라도 늘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착해서 구원을 얻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자기를 나타내시고 믿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는것이다.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거저 선물로 받으시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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