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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운동/알 파 코 스

알파코스에서 찾을수 없는 정신 - 예수님의 사랑..

알파코스의 문제를 고민하다보니  알파코스의 정신에서 찾을수 없는것이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도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없었던것입니다.   제가 지식이 짧다보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제글이 좀 긴 이유중에 하나도 짧게 잘 설명할수 없어서 설명을 장황하게 하다보니 좀 길어지는것이 있습니다. 그안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알파코스를 하는 교회들마다 분열이 일어나는것은 단순한것이 아닙니다.  알파코스 하는 교회들마다 싸움이 벌어지고 분열이 일어납니다.  이를 알파코스를 보급하는 곳에서 알까요? 모를까요?  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파코스 도입에 대해서 엄청나게 신중을 기하며  함부로 보급시키지 않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알파코스를 도입하는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알파코스를 도입하는 교회들마다 시끄럽고 요란하고 그리고 기존의 전통과 관습이 무너지고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알파코스의 내부적 문제점들은 이미 많이 밝혀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적으로 나타날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중이고 밝혀지고 있지만 그것이 알려지지 않아서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가지를 한번 생각해보고자합니다.

 

첫번째는  알파코스 하는 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도님들을 배려할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배려하고 사랑했는데 알파코스는 예수님의 배려와 사랑을 파괴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롯유다도 사랑했으며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도 사랑했고 높은자리를 원했던 제자들도 사랑했고  대제사장들과 장로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까지도 예수님은 배려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알파코스는 그 배려의 정신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알파코스 하는 사람들과 안하는 사람들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분리정신만 있는것이 바로 알파코스의 정신입니다.  알파코스 참여하기 싫은 사람들을 향해서 그들은 비난을 감추지 않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알파코스를 목사님이 인도하여 진행하는데 참여하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목회자를 따르지 않는 불순종하는 성도로 만들어버리는 흉악한 무기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알파코스를 참여하지 않는것으로도 그러할진데 알파코스를 반대한다면  아마 더 큰 비난과  외로움을 감당해야하는 일이 벌어질지? 그것은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것입니다.  

 

알파코스를 반대하는 성도는   목회자에게 순종하지 않는 성도/전도하지 않는 성도/ 헌금하지 않는 성도/기도생활하지 않는성도/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성도/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성도/이런식으로 성도를 죄인취급하고  악한사람으로 낙인찍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것이 바로 알파코스가 가져오는 불의한 일들입니다.

 

이는 성도님들의 사정과 처지를 배려하지 않고  목회자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시키는 일  교회가 하는 일은  성도님들이 반대하지 않고 따라가야 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파코스는  교회의 중직들과 목회자들이 성도님들을 억매여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진행시키는 프로그램이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알파코스를 하는 교회들마다  목회자의 설교가 전도/선교로 치중되고  복음은 몇마디 나오지도 않으며  성도님들이 이해할만큼의 충분한 가르침이 없고  성도님들의 삶의 목적이 전도/선교라는 식으로 몰아부치고  전도하지 않으면 게으른 성도로 만들고  신앙생활 하지 않는 성도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볼수 있으며  또한 목회자의 설교도  목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으로  목사가 전도하라면 전도해야한다고  성도님들을 몰아부치는 일들을 쉽게 경험할수 있습니다.

 

 

두번째 알파코스의 문제점은  교회의 중심축을  성도님들의 모임에서  담임목사 일당독재로 몰아가는 폐단이 생깁니다. 교회는  성도님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목사는 그 성도님들에게 필요한 말씀의 양식을 먹이는것이 교회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란  성도가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제하고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는 곳입니다.

 

그런데 알파코스는 교회를  전도하는 단체로 만들어버리는 폐단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위에서 시키는것이 못마땅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반대할 명분이 생기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습으로 교회에 출석하지만 그 마음이 항상 편하지 못합니다.  전도하지 못하면 죄인취급하는 교회에 마음편히가서 마음편히 예배드릴수 있을까요?

 

알파코스 하는 교회들마다  장로파 목사파 하면서 전쟁이 벌어지고  한바탕 전쟁이 끝나면  목사파가 교회를 장악하게 되고  뒤늦게 장로가 된 사람들은  목사파가 힘이 월등함으로  목사님을 더이상 터치 못하고  한마디로 치리할 수없는 상태까지 교회는 목사님을 추종하는 교인들로 가득차게 되어버리고  장로님들이 만약 무슨 말을 하게되면 성도님들은 장로님들이나 똑바로 하라면서 오히려 장로들은 존경받지 못하고 목사를 내쫓는 위치로만 인식되게 되어버리는것이  알파코스에서 나타나는 폐단중에 하나입니다. 

 

이 싸움속에서 성도님들은 서로 상처입고 서로 찢어지고 서로 나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하나되게 하신  그 역사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알파코스가 성령운동 운운하며  성령님의 역활을 무지 강조하지만 결국 성령님의 역사인 하나되게 하는 역사 사랑하게 하는 역사를  분열하는 역사 쪼개놓는 역사로 바꾸어 놓으니 바로 이 알파코스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라 사단의 역사 분열의 역사로밖에 볼수 없습니다.

 

알파코스 하는 교회들을 보면  교회의 중심축이 성도님들로부터 알파코스를 진행하는 목사파와 그 추종자들로 바뀌게됨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님들이 알파코스를 반대하고 그것을 교회에서 진행하지 못하도록 할경우에  교회의 중심축이 알파코스 진행자들에게 있음으로  알파코스 진행자들이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알파코스가 싫으면 교회를 옮기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하고  교회의 정책에 반대하는 성도로 만들어서 왕따를 시키고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일을 자행하는데  그렇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향해서 알파코스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고 알파코스 진행하는데 방해하지말고 참여하라!!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라고 말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교회가 쪼개지고 문제가 발생하는것이 알파코스때문이라면 알파코스를 그치고 진행을 멈추고  나뉜게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기위해서 애쓰고 힘써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알파코스 참여하지 않는 성도 반대하는 성도를  불의한 성도로 만들어서 교회에서 내쫓게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목사 그 자신이 자기의 삶의 안정을 위해서  교회를 목사중심으로 만들어서 목사를 치리하는 장로의 힘을 빼앗고  성도님들을 목사추종자들로 만들어서  목사의 생활에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일은  성도님들에게 바른 말씀을 빼앗게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향해야할 그 시각을  목사에게 맞추어서 목사말에만 순종하게 함으로서  목사가 예수님의 위치를 빼앗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세번째 알파코스의 문제점은  성도님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합니다.  위에도 설명했듯이  알파코스는 장로파 목사파 하면서 파당을 나누게 되는데  이는 목사가  알파코스를 이용하여 자기의 위치를 공고히하고 안위를 도모하는 그 시간에 장로들은 그런 사정을 통찰하게되고  목사의 불의한것을 깨달아  목사를 내쫓고 교회를 바로 세우려고 하는 그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알파코스를 도입한 자들은  알파코스가 기존교회에 마구잡이로 도입되면 교회가 분열되고 쪼개질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알파코스 도입이전에  토양화작업을 하게되는  기존  전통적 가치관으로 교회를 운영하던 교회를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토양화 작업을 하게됩니다. 

 

이 토양화작업을 하기위해서 목사는 설교를 이용하는데  아주 좋은 설교 거리가 바로 장로들의 퇴행성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나태해지고  그리고 장로님들같이 나이가 들고  몸을 추스리기 힘든 나이가 되면 성도님들의 불만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맞지않는 상황에 있는 장로님들은 성도님들로부터 존경받는 경우보다 오히려 불만의 대상이 되기가 쉽습니다. 

 

기존교회가 그런 상황에 있으니  알파코스를 도입하려는 목회자들은  아마 이런 상황에 처한 교회들은 더 쉽게 공략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할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시간에  신앙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은근히 장로님들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꼬집고 그것을 훈계하는데  결국 많은 성도님들이  자기들 스스로 볼때도 나태하고 게으르고 힘들게 살고 있으니 담임목사의 설교가 처음엔 참 좋게 들릴것입니다. 

 

그렇게  기분좋은 설교가 결국 장로님들과 성도님들과의 관계를 분열시키고  장로님들에게 대한 반감을 사게 만들며  장로님들을 비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게 설교하고  전도에 관련된 설교와 간증들을 도입하게됩니다.  교회를 대형교회로 성장시키자는 비젼과 포부를 심어주는데 그것이 처음엔  참 목사님의 비젼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목사의 비젼이 훌륭하다고 따르는 성도가 있는 반면  목사님의 설교에 반감을 갖는 성도님들이 있는데 바로 그 성도님들이 기존에 있던 교회의 중심축이었던 성도님들에게 대한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반감을 갖게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느끼지 못한 성도님들은 가면 갈수록 그 설교가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것을 감지 못한체 물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성도님들은 어느새 목사파가되어있고 장로님들을 비판하는 쪽에 있게됩니다. 그걸 깨달으면 다행이지만  아마 그걸 깨달은 성도는 거의 없을것입니다.  장로님들을 비판하는것이 당연한것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장로님들을 비판하는 쪽에 선 성도님들과  장로님들의 기존 가족들과 장로님들과 오랜 친분을 누린 성도님들사이에 분열의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는 분열로 치닫게됩니다.  알파코스를 진행하기위해서 토양화 작업을 하는 중간에  교회안에 문제는 발생하고  그 문제를 깨닫게 되는 날 이미 교회는 목사의 손아귀에 잡히게되고  기존 성도는 아무런 힘도 없고  오직 교회는 목사님의 일당 독재아래 들어가게되는것입니다.

 

만약 그 교회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기존 성도가 많은 경우라면  목사는 바로 쫓겨나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는  알파코스를 진행할수 없고  그런 교회에 부임하는 목사는 알파코스를 바로 진행할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알파코스 자체를 하기 힘듭니다. 

 

제가 다는 교회의 진행되어온 사정을 돌아보면  지난 4년간  토양화 작업을 했고  그 토양화 작업중간에 교회는 쪼개졌고  그 쪼개진것을 이용해서 알파코스를 도입해서  또다시 성도님들을 혼란에 빠뜨렸는데  그것을 지적하는 성도님들은 교회에 붙어 있기 참 어렵게되고 목소리 조차 내기 힘들게되어서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됩니다.

 

기존 장로님들은 성도님들에게 의해 쫓겨나게되고  새로 임명된 장로는  목사로인해서 직분을 얻게되었으니  성도님들을 대변하기보다 목사를 대변하는 장로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의 불만은 더욱더 커져가고  결국 또 교회는 쪼개지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게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변에 알파코스 하는 교회들마다  갈등이 있고  분열이있고 싸움이 있고  그리고  비난과 비판이 난무합니다.  그 비난과 비판을 들어보면  목사를 비판하는것이 아니라 기존 성도/장로를 비판하고  성도님들을 향해서 전도를 하느니 안하느니 게으르니 나태하니 하며  교회의 사명이 전도이고  성도의 사명이 선교인냥  오직 그것을 향해서 나가는 모습을 발견하는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전도와 선교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교회가 그것을 추구하는 목적이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져오는 헌금에  더 눈독이 들어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형교회를 추구하고  교회를 크게 건축하려니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하고  끌어모으는 방법으로 알파코스를 도입하는것입니다.

 

결국 알파코스의 비젼이라는것은  영혼구원이 아니라  대형교회 대형교회의  큰 목사가 되는것이 알파코스의 목적인것입니다. 몇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라면 세상에 이름을 날리기 충분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대형교회를 만들어내고 큰교회로 성장시킨 목사는 유명해지고  그 유명세를 타서  넉넉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수 있는것이 목사들의 꿈이고 그 꿈을 위해 알파코스는 목사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알파코스의 가장 큰 폐단은  바로  교회가 성도중심이 아닌  목사의 안정적이고 걱정없는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도입되기 때문에 이 알파코스는 복음을 전하는 프로그램으로 볼수 없습니다.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프로그램이고  목사를 위해서 성도님들을 혹사시키는 프로그램이 바로 알파코스 입니다.

 

그래서 이 알파코스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희생이 없습니다.  알파코스에는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고  서로를 향해서 할퀴고 싸우고  나뉘고  전쟁을 치루는 것밖에 없습니다.   알파코스에는 위대한 목사가 있고  그 위대한 목사를 만들기 위해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희생되어야하고  그 위대한 목사를 위해  성도님들은  목사의 희생양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니 목사들에게  알파코스의 이단성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해봤자  해결되지 않고  이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져서  교회를 풍지박산으로 만들것입니다.  도입을 늦추는 목사들도  이 프로그램의 유용성을 알기에  성도님들을 배려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알파코스를 도입하지 않고  자기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서 알파코스를 도입할것이고  결국 대한민국 교회들은 무너질것이고 성도님들은 뿔뿔이 흩어질것입니다.

 

그리고 이땅에 의인하나 남지 않는 악의 세상으로 돈을 쫓는 세상으로 변질되어  참 진리는 사라지는 슬픈 세상이 도래할것입니다. 

 

지금도 늦지않은것은  알파코스 이단 연구하는 분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알파코스를 이단으로 판정내린다면!!!  마지막으로 기독교를 살릴수 있는 한가닥 희망을 가질수 있게되는것입다.

 

그러나 목사가 목사의 목에 칼을 대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전 희망을 접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성도님들이라도  알파코스의 폐해와 폐단을 알고  잘 대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