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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에서 구별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이낳는게 무슨 고난이냐?  돈버는게(일하는것) 무슨 고난이냐?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벌을 주셨습니다.  아이낳는것과 돈버는것(일하는것)이 벌이 아니었는데 그것에 고통을 더하신것이 벌인것입니다.  아이낳는것과 일하는것은 행복한 일인데 거기에 고통을 더해서 행복을 위해서 고난을 겪어야 했던것입니다.

 

사람이 사는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비신앙인들이라고해서 안힘들고  신앙인이라서 더 힘든것이 아니라는것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는것은  의지할곳이 어디 있는가에 있는것입니다.  곧  우리가 어디에 눈을 두고 살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비신앙인들은  눈을  자기 자신에게 두고 있고  신앙인들은 그 눈을 하늘에 두고 있는 그 차이는  눈으로 확인할수 없지만  그 차이로 인해서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는것입니다.   하늘에 눈을 두고 있는것과  땅에 두고 있는것은 어떤것입니까?  바로  하늘에 두고 있는것은 땅에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창고를 짓는것이 아니라  하늘에 보화를 쌓는것입니다. 이는 헌금을 많이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는가의 문제인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세상사람들은  자기에게 눈을 두고 있는것인데  그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이 땅위에 창고를 짓고 안위하자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이 땅위에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것에 대해서 우리가 가타부타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사람들의 삶은  이땅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늘이 없는 안타까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전해도 듣지 않을때는 기도함으로서 위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전도하는 길이 그들을 위한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신앙인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사는 우리들은  이땅에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되는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이라는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에서  자기가 받을 상을 미리 받는것을 의미합니다.  선행을 해도  그 칭찬을 자기가 받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것이 마땅한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을 영광은 그리스도가 받아야 마땅한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삶을 자기의 유익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한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행을 해도 욕을 먹고  선행을 안해도 더 욕을 먹고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부당한 대우가 바로 우리의 고난인것입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면 세상이 우리를 칭찬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은 절대로 우리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볼겁니다. "한두번이야?" "남에게 보일려고 하는 선행아니냐?"  세상은 우리를 비아냥거릴뿐 우리의 선행을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더 도끼눈을 뜨고 우리의 악행을 찾기위해서 혈안이 될것입니다.   우리의 악행 한가지를 발견했을때는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우리의 악행을  끌어내어서  인민재판하는것이 바로 세상이고  우리는 그 세상에서 부당한 인민재판으로 억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는 고난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밉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무슨일을 해도 다  편견을 가지고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묵묵히 대응하고 살아가는것이  힘들고 어려운것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예수님도 아무말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예수님처럼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의 태도인것입니다.

 

아이낳고  일하고  돈벌구 열심히 살면서  땅의 것은 추구하지말아야하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하고   부과 권력과  명예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삶을 더 추구해야하고  가진 것을 내려놔야하고(내려놓을것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하는것을 포기해야하고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야 하고........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이땅에 창고를 짓는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는 영원한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땅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고난인것입니다.  

 

아이를 낳는것이 고난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이를 위해 내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것이 고난인것입니다.  돈버는것이 고난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열심히 돈버는것으로  아내와 아이에게 쓰는것이 고난인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곧 내것을 포기하고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수고하는것입니다. 

 

이런 작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작은 소자에게 한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작은 소자가  바로 내 자녀이고 내 아내인것입니다.  내 자녀와 아내를 사랑하고 그들을 평안하게 할때  전체 사회가 평안하고 행복해지는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정이 평안하면 나라가 평안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것입니다. 세상사람들도 다 아는것을 우리가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왜 세상이 어지럽고  사회가 불안합니까?  바로  가정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는  내것을 찾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기적입니다.  다 자기를 위해서 삽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자기 만족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단지  성령님이  지키시는 일반은총 가운데서  인간이 죄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 믿는자들이 이런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키심이 없다면?  이땅은 죄악으로 인해서 사람이 살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것입니다.

 

아랫글을 읽은 분들중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까짓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것같습니다.  제 글을 다 공감할수는 없지만 우리가 거창하게 생각하는 고난도 고난이지만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받는 수없이 많은 작은 고난들  직장에서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태도와  여러가지것들에 대해서 제약을 받는것들 술이라든지 담배라든지 이성교제라든지 그런 사소한것들의 고난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소한것이 가정안에서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싸움들이 바로 영적 전쟁이고  사단의 계략은  기독교인들을 죽이는것에서  더이상 재미를 보지 못하자 이제는 기독교인들을 타락시키고 나태하게 함으로서 자기의 영역이 축소되어가는것을 지금 막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들 우리가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들  작은 부분들이 하나님이 말하는 큰일인것입니다. 

 

작은것에 충성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큰 것을 맡기십니다.   작은 고난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들은  큰 고난이 와도 그것을 능히 이겨낼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것입니다.  작은 고난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큰 뜻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큰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작은것에 충성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세상이 점점더 악해져가고 있고  양심은 무디어져가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로  불에 타죽은  선량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사형수가 아닙니다.  사형수도  법정판결을 받고  그리고 사형집행이 선고되어야지만  죽는것입니다.  용산의  그 철거민들은  범죄자라고 해도 그렇게 불에 타죽여도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언론들은  그들이 죽어도 마땅한것처럼 말하고  그들이 그렇게 해서 죽은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양심이 무너지고  의가 사라져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양심이 살아있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진 우리들은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깨워야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종교임을  세상에 알려야합니다.  지금은  기독교가 세상에 필요없는 종교로 변질되어가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높으신 양반들이 기독교라는 감투를 쓰고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강호순같은 불쌍한 사람들이 만들어지게되고  그 강호순도 그 아들을 사랑했던것처럼  우리가 강호순과 다르다고 볼수 없는것입니다.  국민들을 불에 태워죽인 국가와  강호순의 범죄와 무슨 큰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다 악하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힘에 의해서  대변될 뿐입니다.  힘이 없으면 범죄자가 되고 힘이 있으면 범죄자가 안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불의한것은 바로 이때문인것입니다.

 

우리는 이땅의 사람이 아닌  하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불합리한 세상속에서  합리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사랑으로 우리의 가정을 보호할때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또 그렇게 가정을 지켜가면  그것이 하나의  향기가 되어 이세상의 모든 가정들이 행복해질것입니다.   그 향기가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작은것에 충성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질때  이 사회는 밝아질것이고  그 안에서 복음의 힘이  나타나  구원받지 못한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고난을  이겨내고  그 이겨내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는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