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찾아가는 방향을 또한 알아야합니다.
율법의 의미는 창세기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아담과의 언약을 맺습니다. 그 언약이 바로 율법입니다. 행위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나님이 맺은 첫번째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결코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죄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 아담과 하나님과의 언약은 믿음의 언약 은혜의 언약을 맺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이 먼저 등장하게 되는것입니다. 이 행위언약을 누가 파괴합니까? 인간인 아담이 파괴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아담으로 인해서 이땅에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죄가 들어옴으로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맺은 언약이 파괴됨으로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게됩니다. 그래서 원시복음 창세기 3장 15절이 등장합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것과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한다는것입니다. 이것을 원시복음이라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양을 잡아 죽여서 그 가죽을 벗겨 입히심으로 아담으로 인해서 양이 죽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곧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서 죄없는 어린양이 죽어야 함을 가르친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것을 예표한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것을 인간에게 가르친것입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가인은 생명없는 곡식으로 제사를 지냄으로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을 잡아 죽임으로 제사를 지냄으로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십니다. 율법의 제사가 시내산 이후에 주어진것이 아닌 이미 창세기서부터 우리의 죄로 인해서 어린양되신 예수그리스도가 죽어야 한다는것을 가르친것입니다.
행위언약의 파괴로 인해서 죄가 들어오게 되고 이 죄를 해결할수 있는 방법은 이제 행위언약이 아닌 은혜언약 곧 하나님이 그 어린양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할것이라는 언약을 인간과 맺게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것을 잃어버리고 죄악에 빠져들어가게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보전케 하시고 노아와 언약을 맺습니다. 그것이 무지개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더이상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떻습니까?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해버립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하시고 온세상에 흩어버립니다. 이 흩으심은 나중에 또 나오게 됩니다. 인간이 온세상에 흩어지게 된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언약을 세웁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 불러서 지시할땅으로 보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난안에 정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땅을 아브라함에게 줍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바로 그 후손에게서 예수그리스도 구세주가 나올것임을 그리고 아브라함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였다는것을 언약으로 맺으며 그 증거로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택한 자녀가 아닌 이삭을 택한자녀로 그리고 이삭에게서 난 에서가 아닌 야곱을 이미 출생하기도전에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12아들이 이스라엘의 지파가 되고 야곱은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나님이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메시아를 주실것을 약속하시며 400년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할것을 말씀하시고 구원하여 본향으로 돌아오게 될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길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가뭄을 피해 애굽에 피난을 갔다가 그곳에 정착하게되고 400년동안 큰 민족을 이루게됩니다. 이스라엘 12명의 아들로 시작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고 그렇게 커진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학대를 피해서 이스라엘은 구원자를 바라보게됩니다. 이때 탄생하게되는것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모세와 비유하는것이 바로 이때문입니다. 출애굽은 우리 신앙의 모형이 됩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우리는 죄악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애굽에서 풀려나 홍해를 건너 가나안을 향해가는것을 죄를 씻고(세례) 광야의 삶(세상속에서 사는 삶) 그리고 가나안(하나님의 나라)으로 가는것으로 해석을 하게됩니다.
모세와 같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죄악으로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죄를 깨끗히 하시고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그 과정이 광야와같은 고난의 시간들이지만 그 시간들을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것처럼 우리도 지키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광야의 과정에 시내산언약이 등장하게 되는것입니다.
시내산언약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이 왜 주어졌는지를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여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하는 계명으로 십계명을 주시는것입니다. 애굽에 있을때는 율법이 필요없어지지만 애굽에서 벗어나 세례를 받고 광야로 들어설때 비로서 십계명이 주어지는것입니다.
이 십계명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바인것입니다. 이 계명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어진것이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것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 언약의 약속을 지키면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했고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전에 하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와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했을때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게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망하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남겨두고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이 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됩니다. 광야에서 모두 다 죽은것입니다. 그 후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결국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않음으로서 가나안의 언약도 파기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가나안의 언약이 파기되자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또 맺게됩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것이 아닌 인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통하여 모든 나라가 축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 축복을 모두 가로챔으로서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되고 결국 이스라엘은 율법의 저주를 받아 온땅에 흩어지게 됩니다.
율법은 지키면 복을 받지만 지키지 못할때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통한 저주와 복은 이방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입니다. 이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 율법의 문제를 우리 이방인들이 자꾸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예수님은 왜 이땅에 오신겁니까?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여 예수님이 왕이되셔서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는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메시아 곧 왕으로 오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것입니다. 곧 율법의 저주 온나라로 흩어지게 되는 저주에서 구원하여 흩어짐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해서 오신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오신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오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게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온 세상에 흩어지게되고 2천년동안 나라를 얻지 못하게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자 잘리운 가지에 이방인들을 접붙여 구원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하여져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로마서 11장을 잘 읽어보세요)
에베소서에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데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었는데 성령님을 통해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우리는 언약 밖에 있는 자들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자들이지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언약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을 유업 곧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얻을수 있는 자격을 얻게된것입니다. (히 9:15절)
율법의 의미를 잘 알아야합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이 가르치는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속죄의 율법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이미 완성되었음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상벌의 율법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상벌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온세상으로 흩어지는 벌을 받게된것입니다.
이 상벌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인 자녀들에게 주어지는것으로서 이스라엘과 하나된 우리 이방인들도 마땅히 지켜야하는 법이 된것입니다. 이 율법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없는 곧 속죄와 관련이 없는 상급에 관련된 법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법은 속죄의 율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이상 죄아래 거하지 않게 됨으로서 구원을 얻게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입니다. 곧 구원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음으로 구원을 얻게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입니다.
그러나 상벌의 율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키라고 준 법으로서 문자적 율법을 지키는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중에 상벌의 율법에 해당하는 것은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다룸으로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한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는 논쟁은 솔직히 제가 생각할때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지켜야 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자기를 속이는 자들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것은 율법이 악하다고 말하는것으로 하나님이 제정한 법을 악하다고 할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관해서는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제대로 알면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지킨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율법을 지킨 자들이 된다는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보다 더 상위법입니다. 우리 인간은 율법을 지킬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만약 율법을 지킬수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 되는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말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를 믿는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신칭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지켜서 구원얻으라는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는것을 지적하는것입니다. 죄인이라고 말하는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 이 문제가 대두되는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하고 우리 이방인들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것이 내가 믿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여 믿게 하는것임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미 택한백성들로서 구원받은 백성들이고 우리 이방인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하나되게 하심으로서 구원하시는것입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제가 자유게시판에 쓴 예수분별이라는 글을 참고해서 읽으시면 조금더 이해가 될것입니다. 누굴 믿느냐가 바로 율법의 저주에서 어떻게 풀려나서 구원을 얻는가에 있습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자에게 지킬수 없다는것을 알려주고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것을 알려주는 역활을 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서 복음을 바라보게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구원자로 오실것을 창세기부터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모든 민족과 백성들에게 적용되는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택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아주시고 모든 나라의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음으로서 예수님이 직접 일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땅에 오셔야 했고 십자가를 질수 밖에 없었던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것으로 율법을 지키는것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율법을 지킬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완성시킨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이상 율법을 지키고자 할 필요가 없어진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인가요?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는 죽었고 의에대해서 우리가 살아났으니 이것이 바로 복음이고 믿음인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율법을 거론하며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까닭입니다. 이미 우리는 율법을 완성한 자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것은 바로 하나님이 더이상 우리안에서 죄를 끄집어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하나님은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닌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죄악에 자꾸거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었고 그리스도가 우리안에서 살았으니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가 사신것처럼 살아야 하는것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그 과정이 바로 성화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출애굽의 광야의 고난의 길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나가는것.....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심을 믿는것 그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결코 죄악의 삶이 아닌 의로운 자로서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는것입니다.
이미 율법에 대해서 완성된 우리가 율법에 매어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안에서 자유하라고 하신 말씀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곧 왕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왕자는 법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왕의 통제 곧 아버지 하나님의 통제를 받습니다. 법보다 위에 있는 법의 통제를 받는것입니다.
이 법이 바로 사랑의 법이고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불신앙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보아 사랑의 법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면 더이상 율법의 저주아래 있지 않고 율법의 통제를 받지 않음으로 율법에 매인자들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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