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께서 안식일날 병자를 고친것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범했다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을 범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일까요?
하토브님께서 왜 저와 토론이 안되는지를 알아야합니다.
님이 왜 억지부린다고 제가 말씀드리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안식일날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병을 고치는것은 하나님의 선을 행한것이 되지 안식을 범하여 죄를 범한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말하는것은 안식일날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토브님은 아마 안식일날 일하면 그것이 율법을 범한것이라고 할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안식일날 안식해야 하는것이 율법을 지키는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이 될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율법의 어떤 문장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것도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것도 율법주의의 한 단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런 율법주의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폐기론자들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면 그것은 선한것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된 자 그리스도인 된자들이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토브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해서 하나님의 법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는 자도 아니고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며 그 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문제는 자유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자유는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때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밖에 있을때 물고기는 죽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살수 없는 것입니다. 그 법안에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살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용서받은 자들이 죄를 또 지을수 없습니다.
의롭게 된자들이 또 죄인이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를 누리고 삽니다.
천국에는 법이 필요없습니다. 천국은 의인들이 가는 곳임으로 죄인이 없고 죄인이 없으니 심판할 법이 필요없습니다.
곧 천국에서는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그 자유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천국에서는 억압이 없습니다.
규칙도 필요없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될수 있는 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바로 이 천국에 사는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로서의 삶입니다. 이땅이 우리가 살아야할
영원히 살아야할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땅은 따로 있습니다. 본향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우리의 거할곳은 저 하늘나라입니다.
이곳은 단지 거쳐가는 곳일 뿐입니다. 이곳에서는 율법이 필요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자에게는 그나라 법을
지켜야할 의무도 있지만 본 국의 법을 더 적용받습니다.
여행하는 곳에서 죄를 범하여 처벌을 받을수 있지만 본국에 돌아가면 용서를 받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국(하나님나라)의 왕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은 바로 이런것입니다. 이 특권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 받는 것입니다.
다른나라에 여행갔다고 해서 맘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나라의 법을 지켜야하고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나라 법을 지키고 품위를 지키는 것보다 더 나아가서 그나라에게 이익을 주어야합니다.
여행을 간자는 그 나라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이웃들에게 돈을 쓰고 옵니다. 이웃들의 돈을 빼앗아서
여행경비로 쓰는것이 아닙니다. 본국에서 여행경비를 가져와서 타국에 돈을 쓰고 가는 것입니다.
여행자들을 반기는 타국은 그 여행자가 쓰고갈 돈들을 바라보면서 환영하고 기뻐하고 성대하게 접대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베풀고 가야하는것이 나그네의 삶입니다. 이것이 상식이고 법칙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상식과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성령님이 알려주신것이지만 알려주지 않아도
인간으로서도 얼마든지 깨달을수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간섭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저내어 거듭나게 했습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영이 살아났으니 스스로 판단하고 지혜를 가질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이 없을수 없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없어서 성령님이 역사해서 인도하는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살려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서 우리가 할일은 하나님의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수 있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살려놨으니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해야합니다.
우리가 로버트도 아니고 조종받는 꼭두각시도 아닙니다. 그래서 죄도 범할수 있고 선을 행할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면 마음에 슬픔을 주시고 선을 행하면 기쁨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아내 사래를 바로에게 누이라고 속인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누이라고 속였지만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바로에게 농락당하지 않게 도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았다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선택할수 있는 권리가 있고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 간섭을 하십니다.
하토브님의 주장은 율법에서 자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러면 다윗이 바셋바를 범할때? 성령의 역사였습니까? 사래를 누이라고 속였을때도 성령의 역사였을까요?
그들이 성령을 받기전에 그랬습니까? 받은후에 그렇게 행했습니까?
우리의 행위는 자유로울수 있지만 하나님의 간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때 반응이 중요한것입니다.
다윗은 회개했고 아브라함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깊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때도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결심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양을 준비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님은 자유를 부정하십니까?
하토브님은 인간이 자유를 가지고 선택한것을 두고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판단합니다.
그래서 제가 님보고 하나님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것을 판단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님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남의 글을 읽을때 따지면서 읽지 마시고 그 내용을 생각하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님이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기분 나빠합니다.
기독네티즌님도 오죽하면 탈퇴까지 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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