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이 구원을 줄수 없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고 부활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셔야 했는가?
그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왜 율법과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이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책임지기위해서 오신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죄를 책임지고 오신분이신데 죄가 없읍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지시는것으로
죄를 전가받으실수 있을까요? 무조건 십자가만 지면 죄를 짊어지는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 죄있다는 판결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곧 법정에서의 판결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문법상에서 법정의 판결이 없이는 죄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삼심제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날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판결이 나아지만 죄가 있다고 판결되고 그 죄로 형벌을 받아야 하는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도 죄가 있다고 할경우에도 결국 형벌을 피할수 없습니다.
죄없는 사람들이 독재자에 의해서 얼마나 많이 사형을 당했습니까?
예수님도 죄가 없지만 결국 법정에서 죄가 있다고 판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지러 오신분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법정판결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는 로마의 법에 의해서 벌을 받은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법 유대인의 법에 의해서 벌을 받았고 십자가에서 죽게 된것입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법정에 고발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화해를 시키는 직책을 받은 자들이고 이들이 율법을 적용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할수 있었던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의 반차를 쫓아 오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제사장들인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에서 오신분이십니다.
이는 멜기세댁이 그 출처를 알수 없는 하나님과 동등한분으로 표현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레위지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하는 자들이고 일정한 책임을 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에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로 오셔서 레위지파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온 인류를 대신할 대제사장이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법정에서 죄가 있다고 판결을 받으시고
그 판결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명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칭했다는 이유로 죽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신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율법을 범한 죄를 짊어지신것으로 해석해야합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에 의해서 죽으신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공통의 범죄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진것이라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율법을 책임을 지고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는 죄에 대해서 죽으신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의해서 한마리 거룩한 양으로서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신것입니다.
그런데 양에게 죄를 전가한 사람은 또 죄를 범하면 다시 또 양에게 죄를 전가해야만 합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속죄와 제사로 이는 개인의 죄를 온전히 사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서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양은 그 죽음으로 그 순간의 죄만 사할뿐입니다.
양이 다시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이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은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것으로 에수그리스도에게 죄를 전가시킨 사람의 죄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않으셨다면 그는 죄의 삯인 사망의 죄값만 치룬것이지
이 이상의 진도가 나갈수 없는 것입니다.
죄값을 치뤘다고 해서 또 죄를 범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도 부활할것임을 가르치신것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입니다. 죽음은 죄의 값을 치루는 것이지만
다시 삶으로서 더이상 죄값안에서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는것은 죄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다시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는것은 그 죄값에서 해방되지 못하는것입니다. 죄의 값에서 해방되려면 감옥에서 나와야합니다.
죄의 값이 사망이라면 죽음에서 부활하지 않고는 죄값을 치뤘다고 할수 없습니다. 죄값을 치루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둘째 사망이라고 부르는 죽음이 믿지 않는자들에게 죄값을 치루게 하는 형벌을 받게됩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으로 무기징역과 같은 것입니다.
죄값을 치루고 부활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부여되니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다는것은 다시 말해서 부활함으로서 다시는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죄있다고 정죄받고 죽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주받았다고 말하고 있고 본질상 죄인으로서 죄를 해결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것이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망의 법입니다. 생명의 법이 될수 없습니다.
이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적용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십니다.
성령하나님의 역사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하시고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다시 율법의 적용을 받게하신다???????
이는 전혀 성경적 해석이 아닙니다.
율법의 적용을 다시 받게 하는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율법의 적용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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