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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칼 빈 주 의

성령의 은사

성령의 은사

(박성호목사 일광교회)

      구 절 : 고전 12:4-13

      성령은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은사라는 용어는 신약에 적지않게 나타나 있는데 특별히 롬12:6고전 12: 그리고 엡4:11-13에 나타나 있다.

      위 세곳은 다같이 교회론을 취급하고 있으므로 교회와 은사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가 없다. 따라서 성령님은 교회를 창설하셨고 그 창설한 교회가 유기체적인 기능을 해 나가도록 은사를 주신것이라고 할 수 있다.

      1. 은사란 무엇인가?

      은사란 용어를 여러가지 번역성경이 그 뜻을 다양하게 밝혀주고 있다.

       (1) 구역
           은사를 "은혜 주시는 것"이라고 번역했다.
       (2) 새번역
           은사를 "선물"이라고 번역했다.
       (3) 공동역
           은사를 "은총의 선물"이라고 번역했다.
       (4) 현대인의 성격
           은사를 "영적능력"이라고 번역했다.
           이상과 같이 은사란 은혜주신 것이요. 선물이오. 은총의 선물이오.영적능력이다.
       (5) 직분이 곧 은사이다.
      
      그런데 고전 12:4은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가지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하므로서 은사가 곧 직임이오 은사가 곧 역사임을 보여준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은사는 직임과 역사의 원동력이오. 직임은 역사의 성격이며, 역사는 직임의 활동상이라고 하겠다.

      2. 은사의 성질

      그러면 성령의 은사는 단수인가 복수인가?
      고전 12:44이하는 은사의 다양성을 말씀하고 있다.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은 오직 한분 뿐이시나 그가 분여 하시는 은사는 여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몸은 하나이나 그 몸에 붙은 지체는 여러가지로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하나이나 직임은 여러가지라는 것이다.

      고전 12: 과 13:은 성령의 은사의 종류를 10가지로 나열했다. 8절-10절의 은사와 28절의 직임은 동일한 은사의 목록이다. 두 목록표를 비교해서 유사한 은사를 결부시키면 다음과 같이 나열된다. 
      

      (1) 사도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혜말씀이란 하나님이 계시하신 지혜인 복음에 대한 영적이해를 가리킨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은 복음에 대한 이해를 가리킨다. 이는 소유자 자신과 남을 살리는 영적지혜에 속하는 말씀으로서 최고의 은사이다. 따라서 이 지혜의 말씀은 세상지혜와 온전히 구별되어야 한다. 이 은사는 사도에게 주신 은사인 것이다.

      (2) 선지자와 예언의 은사
      여기에 예언이란 구약시대의 예언과 성질상 다르다. 신약시대의 예언 자들은 온 교회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가진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원시교회로 하여금 특수한 환경에서 알아야 할 것과 행해야 할 것을 단편적으로 알게 한 것 뿐이었다.

      그들의 예언이 신약에 기록된 건수는 아주 적은점으로 보아서 더욱 그렇다(행11:28, 21:11)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치며 설교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고전 14:324)

      (3) 교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시의 말씀이란 복음의 역사적방면의 재료들을 다루는데 활동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자면 복음을 변증하고, 복음을 해설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따라서 복음을 변증, 해설하는데 있어서 일반지식을 사용, 이 일을 수행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4) 능력의 은사
      병고치는 것 외에 여러가지 이적을 일으키는 은사를 가리킨다. 사귀를 축출하는 일, 아나니아부부와 박수 엘루마를 징계하는 일(행5:1-10, 13:8-13) 등이다 (이상근주석)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을 감당하게 하는 힘, 비상한 고난을 견디어 나가게 하는 힘 등이다(박윤선주석)

      (5) 병 고치는 은사
      그 특수한 믿음으로 병고치는 기적을 행사하는 은사이다(이상근주석) 병고치는 은사는 사도시대의 특징으로 있던 은사였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특별섭리인 보통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유의 권능은 나타난다.

      신앙 있는자가 병자 위해 기도할 때에 즉시 완쾌되지는 아니해도 의외로 병세가 덜리는 것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도적 이적은 그쳤다(정치13조 정치조례 49,50).

      (6) 방언의 은사
      방언에 관한 기사는 막 16:17, 행2:3-2110:4519:6 그리고 고전12:102813:114) 세곳뿐이다. 그런데 막 16:17의 방언언급은 행2:에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행2:의 방언과 판이하게 다른 방언이다. 행2:의 방언은 듣는자가 자기네 나라말로 알아들었으나 고린도 교인의 방언은 알아 들을수 없는 말이었다. 행2: 의 방언은 복음전도요 구령의 멧세지로 그 내용이 되어 있었 회개운동 전도의 열매가 있었으나 고린도 교인의 방언은 아무런 덕이 없고 오히려 문제만 일으킨 것이었다.

      왜 방언이 은사항목에 들었는가?
      사도시대는 아직 신약이 재정되기 전이므로 방언은 이적과 더부러 사도들의 멧세지의 신임장이었다. 그러나 정경이 형성, 신앙생활의 규범 이 있게된 후에는 방언의 의의는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방언의 은사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방언이 성령의 은사로 온것도 있고 인위적 또는 인공적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교회안에서만 있은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신비 종교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언이 성령의 은사의 도구인 여부는 그일의 열매로 판단할 수가 있다.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를 봉사한다면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7) 통역의 은사
      오순절에는 완전한 방언의 이적이 나타났으나 그후에 지방교회에서는 비교적 약한 불량으로 나타났다(A.Kuyper)

      오늘날 참된 방언이 있다면 사도의 직접지도가 없는 교회시대에 있어서 그 방언의 참된 여부를 진정으로 알 사람이 누구이기에 교회에서 방언을 통역에 의해서 공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박윤선) 신앙적인 의미에서 성경은 천국방언이오 그 해석은 방언통역이다(이상근주석)

      (8) 영들 분별하는 은사
      행19:13에 보면 악한 영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예언과 거짓 이적을 행사케 한다. 요일4:1은 거짓영이 있다고 했다 고로 악령을 식별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고후 11:14-15) 그러나 교회의 보호를 위해 식별하는 일은 필요했다. 그래서 이 은사를 주신 것이다.

      (9)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은사
      전자는 구제하는 은사, 집사의 직분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장로의 직분의 은사이다.

      (10) 사랑하는 은사
      고전 12:31-13:13이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베푸는 은사는"더욱 큰은사요 제일 좋은 은사"라고 했다.

      3.은사의 목적

      성령님은 왜 각종 은사를 분리 하시는가?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엡4:11-12 이 밝혀주고 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봉사의 일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위해서이다.

      즉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자기의 명예를 나타내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자기 자랑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자기 편리 위해 주신것이 아니다.

      또한 육신 위해 주시는 것도 아니요 세상적인 유익도모를 위해 주신것도 물론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본주의적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개인위주로 주신 것이 아니다. 오직 교회 위주로 주신 것이다. 남의 유익을 도모하도록 주신 것이다. 건덕위해 주신 것이다. 교회부흥 위해 주신 것이오 교회봉사 위해 주신 것이며 성도봉사 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 영광 나타내도록 주신것이다.

      4. 은사의 사용방법

      성령께서 주신 은사, 직임 역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롬12:6-8이 은사의 사용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겸손하게 감당하라는 것이다. 즉 분수대로마 하라는 것이다.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일만, 자기가 맡은 일만 하라는 것이다. 눈이면 눈의 위치를 떠나지 말고 눈의 역활만 하라는 것이다.

      (2) 벧전 4:10 은 선한 청지기처럼 하라는 것이다.

      주인의식을 갖지말고 종의 자세로 하라는 것이다. 그 맡은 은사가 마치 자기 소유인양 교만한 자세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 봉사하는 자세로서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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