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성과 용기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영원한 존재에 대하여 논쟁했으며, 존오웬은 알미니안 주의와 비성경적인 주장들과 논쟁했으며 메이첸은 자유주의에 빠진 장로교회에 대하여 논쟁했다.”
존 파이퍼목사는 아타나시우스, 존 오웬, 그레헨 메이첸의 삶을 언급하면서 이분들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명료성과 용기라고 하였습니다. 명료성이란 자신들이 직면한 오류가운데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았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이 정직함과 명확함으로 그 문제들에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용기란 그들이 위하여 싸웠던 진리들이 옳으며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함으로 명료성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명료성과 용기” 이것은 이전 시대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입니다. 시대에 대한 바른 판단이 없이는 정직한 행동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명료함이란 매우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포함합니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소리에 현혹당하지 않습니다. 바른 기준을 가지고 시대의 문제에 직면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료성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 나눔이 끊임없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합하여 명료함을 가지게 됩니다.
용기 역시 동일합니다. 용기는 만용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식한 행동도 아닙니다. 용기는 자신이 믿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명료함이 없이는 용기는 없습니다. 동시에 용기가 없는 명료함은 불완전함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삶에 대한 열정을 일으켜 줍니다.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며 소리치는 것입니다. 문제에 대한 오류를 보면 바로 잡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일반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어려워 할 수 있습니다. 너만 잘 났냐고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사람 때문에 수혜를 받습니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이 이러한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지금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당대에는 인기가 없을지 모르지만 다음 세대에 열매를 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삶은 무엇보다도 명료함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명료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모호하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신앙의 영역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명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는지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합니다. 또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생각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세계관이 어떠한 모습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향인지 아니면 성경과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가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남들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책 한권을 읽더라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좋다고 따라가다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이들에게 딱 맞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치가 없는 책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조금만이라도 진지하게 살펴보았다면 결코 현혹되지 않을 책입니다. 책을 낸 출판사는 신나겠지만 한국교회에 큰 피해를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보고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명료성과 분별성은 우리로 하여금 용기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용기는 담대함입니다. 확신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틀렸다고 한다면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용기가 너무나 많이 상실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좋은 대로 살아갑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참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삶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시대와 교회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향하여서 명료함과 용기가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자질을 갖춘 신앙인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분명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부분이라도 이러한 자세를 가진 이들을 통하여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는 소명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신동식 목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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