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신앙의 본질과 거짓신앙(2)

신앙의 본질과 거짓신앙(2)
신앙의 본질과 십자가의 복음은 비상하는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엄무환 weomm@hanmail.net [조회수 : 85]
 
 
▲ 엄무환목사는 숭실대 법대를 나와 장신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현재 샌브란시스코 신학교 박사과정(Th.D)에 있다.
한국 교회의 현재의 영적 상황과 선지자들이 활동했던 시대의 이스라엘(유다) 영적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작금의 한국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메시지와 영적 지도자들 및 성도들의 삶을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아모스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메시지와 지도자들 그리고 백성들의 삶과 한번 비교해 보라.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과도 비교해보라. 분명 결코 다르지 않다라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현재의 한국 교회 영적 상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몇가지만 먼저 생각해보자.
첫째, 매주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메시지 내용과 선지자들이 활동했었던 그 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메시지 내용이 서로 다르지 않다라고 본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가?
 
둘째, 한국 교회의 모습과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비교했을 때 닮은 꼴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셋째,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 중심적인가 아니면 자기 중심적인가?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넷째, 한국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며 그 문제의 해결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소위 개혁 전도자들의 주장들은 과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있는가?
 
다섯째, 한국 교회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낙관적으로 보든 비관적으로 보든간에 그렇게 보는 기준은 무엇이며 비관적으로 볼 때 해결할 수 있는 답은 무엇인가?
 
이상의 다섯가지 질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 바란다.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해 볼 수 있겠으나 어떤 질문을 제기할지라도 결국은 한가지 문제에 귀결되게 되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 교회 안에 불거진 제반 문제들은 매우 다양한 것 같지만 그 뿌리는 결국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면 그 한가지 문제가 무엇인가?  신앙의 본질의 문제다. 즉 한국 교회 안에 나타난 모든 문제들은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이처럼 칼로 무우 토막 짜르듯이 단정하느냐고 항변할 사람이 혹 있을련지 모르겠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매우 자신감을 갖고 아주 당당하게 주장하는게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 믿는 구석이 무엇인가. 이제 그것을 한번 추적해보도록 하자.
 
신앙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부흥을 여는 열쇠다
 
먼저 화두를 하나 던져보고 싶다. 한국 교회는 과연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주제넘은 말 같지만 목회자들과 중직자들에게 한번 물어보라.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며 사는지 모른다.
 
왜 이 화두를 던지느냐. 이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한국교회의 사활이 걸려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신앙의 본질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연재되는 글들을  꾸준히 대하다 보면 나와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심각한 영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 안에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수가 없다.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의 임재나 부흥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한국 교회의 부흥을 바랄지라도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하나의 바람일 뿐이다. 따라서 부흥과 관련하여 거창한 구호와 슬로건을 내걸고 기도회를 열고 대형집회를 연다고 해도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교회는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역대하 7:14에서 하나님이 이 사실을 말씀하시고 있지 않는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따라서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일이라는게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느냐.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 역대하 7:14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는 일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부흥을 여는 열쇠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이뤄지면 자연히 하나님의 부흥이 이 땅을 덮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신앙의 본질이 없는, 거짓신앙이 팽배했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예배나 헌물, 기도 등을 받으셨던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헌신 등을 기뻐하셨던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포하셨던 음성이 지금도 쟁쟁하지 않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이사야 1:11-15)
 
이 말씀이 오늘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시대의 목회자의 설교, 과연 바람직한가?
 
신앙의 본질이 없는 거짓 신앙 체계속에선 당연히 하나님의 임재가 걷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죄를 이길 힘이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억압이 따르게 되며 따라서 평강과 기쁨이 사라지게 되고 대신 심적인 고통과 신음 소리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강단에선 평강과 축복이 주어질 거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진지하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예레미야 8:11)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평강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하나님에게 죄를 범하는 게 아닌가?  하나님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거짓 선지자, 거짓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지적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화 있을진저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여!”(렘 23:1).
 
앞으로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다시 살펴보겠지만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성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드러운 메시지(축복이나 평강 등)를 남발하는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심판하실 것임을 밝히셨다.
 
신앙의 본질과 십자가의 복음은 비상하는 새의 두 날개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서야 한다. 지속적으로 신앙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회 강단에선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여기서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말에 주의하기 바란다. 혹 이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어쨌든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신앙의 본질과 십자가의 복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비상하는 새의 두 날개와 같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지속적으로 신앙의 본질과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면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마다 가정마다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해야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부어지게 되며 그렇게 될 때 자연히 감추인 죄가 드러나게 되어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애통함과 상한 마음을 부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애통함과 상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도다”(시편  34:18).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이것이 내 힘이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야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앙의 본질을 추구함으로 인해 자연히 우리 속에 감추어졌던 죄가 드러나게 되면 애통함과 상한 심령이 일어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죄가 드러나면 날수록 십자가가 얼마나 귀한지를 확실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 없이는 내가 이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발견되어질 때 그제서야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그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온 몸으로 경험되어질 때 나에겐 주님 외엔 아무 것도 필요 없음을 진심으로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을 구하게 되며, 주님과 날마다 친밀한 사귐속에 있기를 원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열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금부터 신앙의 본질에 눈을 돌리자.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신앙의 본질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본질을 알고 추구해 나가노라면 우리의 삶속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됨을 볼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희망의 불씨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 모두를 이 신앙의 본질로 기꺼이 초청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