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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운동/관 상 기 도

관상기도를 신봉하는 목사님들에 묻습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한 분이자 교계 명사인 이동원 목사께..한인/한국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한 무명 인사가 쓰는 글이다.

이 글이 이번 뉴욕/시카고 집회를 방해하고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한다고 일각에서 생각할지 모르나, 필자는 온갖 잡다한 현대 영성에 노출돼 갈피를 못잡고 혼동을 겪는 한인/한국 교계의 고유성과 경건 수호를 위한 일심 밖에 다른 뜻은 없다. 한 개인을 때려잡겠다는 '마녀사냥' 유의 글은 아니다.

성령과 성경적 경건의 길을 신속히 떠나고 있는 한국/한인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깊이 염려하는 분들의 피눈물 나는 안타까운 기도와 호소를 대신하여 토로하는 고백이라고 봐 주면 좋겠다. [필자가 따라온 관례상, 존대어미들은 생략한다.]  

아멘 뉴스에 따르면, 귀하는 "세계의 수도 뉴욕에 사는 한국인 청년들이 부흥을 경험하고 한인교회에 부흥이 일어난다면 한국 교회는 이제 2007년 세상을 불 밝히는 부흥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별로 나쁜 말은 아니로되, 귀하가 이번 집회의 주강사임을 의식해서 한 말은 아닌지.
그렇다면 귀하가 '세상을 불 밝히는 부흥의 진원지에 불길을 당기는 존재'란 암시로 봐도 되는가..혹 지나친 호언장담은 아닌지? 귀하는 과연 한국인 청년들에게, 한인교회에 부흥이 일어나도록 해줄 수 있는가? 시카고에서도 비슷한 말을 할텐데..뉴욕이든 시카고든 귀하가 가는 곳이 곧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인가?

알고 보면 기실 사도들조차 그런 말은 쉽게 하지를 않는다. 파울은 아테네 변론 사건 이후 코린토 교우들 앞에서 두려워 떨었고, 자신의 구원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길 바란 사람이었다. 옛 사도의 그런 두렵고 떨림, 겸허함은 귀하에게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든든한 명사성 '빽'을 믿는가? 귀하는 최근 한국 '최고의 설교자'란 절찬을 받은 바 있다. 성령님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처럼) 역시 관상영성을 조장해온 문제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받은 그 평가에 자신감을 얻었기에 그런 호언장담을 하는 것인지?
귀하는 다년간 한국 국내외에  관상 영성 보급에 앞장 서 왔다. 심지어 중국 당국의 거부감을 자아낼 정도로. 이처럼 '관상 전도사'로 목숨 걸고 뛸 만큼 과연 관상 안에 모든 진리가 있다고 믿는지?

귀하의 칼럼을 보면, 연전에 미국의 샬렘 인스티튜트가 주최해 모 카톨릭 수도원에서 열린 영성 모임에 부부 동반으로 참가해 '영성지도'를 받았던데.. 알고 보면 그 단체는 매우 친카톨릭적, 에큐메니즘 적, 종교다원적이고, 종교간 대화를 추구하며, 불교와 힌두교 등 타 종교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자는 이즘을 지녔음을 귀하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지는 않았는가? 그러지 않았다고 반증할 근거가 있는지. 그 칼럼에 따르면, 내외가 깊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그 중요한 모임을 생각 없이 다녀오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거기서 그들의 '영성지도'에 순응한 귀하 부부는 그들과 같은 생각, 같은 종류의 영성을 지녔다고 봐도 되는가?

현대 관상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을 띠었음이 분명한 차제에..한국의 대표적인 관상가인 귀하를 한국서 가장 '성경적', '복음적'인 설교자와 영성가라고 하는 평가는 정상적인 것인가.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이라고 본다면 각각의 이유는 뭔가? 귀하는..워런과 포스터 등등 처럼 여론과 평가가 낳은 베스트 인물, 베스트셀러 저술가들이 교계 영성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가?

귀하는 근래, 과거의 복음주의 노선과는 사뭇 다른 성향을 내비쳐왔는데, 성경과 성령 중심의 영성이기보다 비성경적/카톨릭적 영성을 표준(?)으로 보게 된 동기와 이유가 뭔가? 그리고 한국 교회의 영성을 왜 명사 중심의 영성으로 몰고 가는가? 명사들을 따르는 게 성령의 뜻이라 생각되는가? 귀하는 파울이 예루살렘의 교계 '명사'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은 기억나는가?

귀하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 대표인데..한국 기독교의 미래가 귀하와 같은 관상 중심의 영성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성경으로 직접 극명하게 보여주신 성경적 경건이 아닌, 관상 영성이 기독교 영성의 표본/표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미준이 추구하는 영성은 결국 순수경건이 아닌 혼합영성은 아닌가?  

왜 하필 외래 영성이어야 하나? 장댓재교회에서 시작된 한국교회의 미풍인 새벽기도의 신앙, 믿음의 절개를 지킨 주기철/손양원/한상동 등을 본받는 순교자적 경건이 아니라, 왜 하필 '외제' 영성이어야 하는가? 중세 카톨릭 수도사들, 종교다원주의자 토머스 머튼, 퀘이커 교도인 리처드 포스터 등의 영성을 우리가 굳이 따라야 할 정당하고 절대적인, 시쳇말로 '당근' 같은 이유라도 있는가?

귀하는 관상을 지고의 기도 유형으로 생각하나? 그런데 왜 성경은 관상과는 거의 전혀 다르게 말하는가(본 필자의 지난 칼럼들과 특히 댓글들 참조). 예수님의 기도는 왜 관상기도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가? 예수를 본받겠는가, 카톨릭 수사들을 본받겠는가?

귀하가 그다지도 관상 영성을 중시한다면, 카톨릭 수사로 전향하면 어떻겠는가? 왜 한국 신교 교계 전체, 더 나아가 해외에까지 수도원적 영성, 카톨릭적 영성을 보급하려고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가? 귀하의 지구촌교회에서도 새 신자 훈련과정의 하나로 관상을 권하던데 그들을 훈련시켜 세계 각국의 관상 선교사로 파송할 의도인가-마치 카톨릭의 관상지원단처럼?

귀하는 자신이 바라는 것처럼 성령께서도 관상을 적극 위하시며 세계에 폭넓게 보급되길 원하신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면 귀하의 영성 노선이 잘못되지 않았는가?

귀하는 리처드 포스터, � 워런, 특히 유진 피터슨 같은 관상가들을 영성의 '대가'로 받드는데 귀하의 영성 표준은 성경 인물 또는 성경 중심이라기보다 그런 유의 명사 중심 수준의 영성으로 봐도 되겠는가? 베스트셀러를 써서 여론과 인기를 얻는 것이 영성 대가의 표준인가, 성경/성령 중심이 표준인가? 피터슨/포스터/워런이 성경/성령 중심이라는 확신이라도 있는가?

귀하는, 워런도 그의 목적 영성 교과서 '목적에 이끌린 삶' 등에서 적극 인용한 바 있는 유진 피터슨의 번역 '성경' '더 메시지'(the Message)의 부분적/전반적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안다면 어느 정도로 알고 있나? 성경의 권위를 높이긴커녕 성경과 저자이신 성령을 욕 뵈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를 들은 일은 있나? 그런 평가를 하찮게 생각하는가. '더 메시지' 속의 메이슨적인 용어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포스터가 자신의 발언과 저술에서 열렬히 흠숭/예찬해온, 머튼과 헨리 나웬 등이 신비가, 종교다원주의자, 일편 보편구원론자였고 마리아와 교황에게 충성한 이들이었음을 귀하도 인정하는가? 포스터 자신도 퀘이커 교도로서 '레노바레' 이사진에도 퀘이커/카톨릭 인사 등을 두는 등 노골적인 에큐메니즘적 어젠다와 향 종교다원성, 종교간 조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여실함을 아는가, 시인하는가..그렇다면 귀하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가? 아니라면 그런 범주를 지향하는가, 지양하는가?

귀하는 크리스토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다는 성경의 경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의 문제인가? 머튼/나웬/포스터/피터슨 등이 모두 크리스토와 성경 진리 안에 철저히 입각해 있고 머물러 있다고 보는가?

귀하가 이끄는 한미준은 한국 교회의 순결과 보존에 힘쓰는가, 아니면 비록 성경 원리에 어긋날지언정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는가? 귀하도, 하용조 목사의 두란노서원의 다양한 영성서적들과 '목회와 신학'등 주요 매거진들 , 신교 수도사 엄두섭 목사의 은성출판사 등 한국교계 출판사 다수가 외래영성을 무차별 보급해온 사실을 익히 알 텐데, 그런 무차별적 외래영성 수용 방향이 한국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보존해 나가는가?

귀하가 추구하는 관상 영성은 실상 중세적 기독교 신비주의 성향은 물론, 종교다원주의적 성향, 심지어 뉴에이지적인 소지도 안고 있음을 아는가, 느끼는가? 알고 느끼면서도 지향하는 이유는? 그래도 관상 영성은 끝내 성경적인가?

미국의 젊은 교회들 특히 떠오름교회(Emerging Church) 그룹은 관상은 물론이고, 성상기도/미로명상(labyrinth)/요가 등도 나란히 곁들여 하고 있는데 귀하도 아마 그런 과정을 접하거나 목격했거나 참여했으리라. 워런이나 떠오름교회의 대표적 지도자 브라이언 매클러렌도 적극 지지하는데 귀하도 그런 요소들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귀하도 사가에서 몰래 실천하는가? 귀하의 (샬렘 인스티튜트) 영성수련 과정 안에 그런 것도 포함돼 있었는지..귀하처럼 관상영성을 강조한다면 앞으로 한국교회에도 그런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입수될 터이고(일각에선 이미 그러고들 있슴) 거기 탐닉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온전한 일이며 성령의 거룩한 뜻인가? 이런 성향에 대한 귀하의 입장과 자세 또는 제스처는 뭔가?

귀하가 새신자들의 훈련 과정에 거의 필수과목으로서 관상훈련을 시키면, 그 영적인 결과에도 책임지는가? 일각에선 관상을 하다 완전히 '잘못' 되는 사례도 있다는데..성도의 영혼에 필수적으로 절대 유익하다는 절대적 확신이 있는가?

관상을 강조하다 보면 관상보다 더 성경적인 기도는 덜 강조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사도 파울이 코린토a 12~14장에서 거듭거듭 강조할 정도로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로 평가한 방언기도를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성경이 그토록 강조하는 도고(=중보기도)는 어떻게 보는가? 그 기도들이 관상보다 덜 중요한가? 귀하도 방언을 하는가. 파울처럼 방언기도를 수시로 하는가? 방언기도의 영적인 특성이 관상과는 현저히 다름을 알 텐데? 관상을 더 영적인 기도로 보는가? 왜 관상처럼은 강조를 하지 않는가? 파울이 에페소6:18에서 강조한 기도들은 어떤가? 그런 기도도 다 관상보다 덜 중요한가?

귀하도 다른 수사들/신비가들처럼 자신을 비우고 '기복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는 입장인데..하나님의 복을 열렬히 간구한 야콥이나 기타 성경인물들의 기도는 어찌 보는가? 어린이들과 제자들에게 복을 빈 주님의 기도는 어떻게 생각하나..다 원시적이고 잘못된 기도들인가? 그렇다면 현재 귀하가 차지한 명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 아니라, 스스로 얻은 것이거나 사탄이 내린 복이라고 봐도 되는가?

귀하도 관상이 세계 교계의 '대세'를 이뤄가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터. 관상은 현재 종교간 대화, 에큐메니즘, 더 나아가 카톨릭의 종파일치 운동, 다원종교, 뉴에이지, 궁극적인 종교단일화 등을 향해가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귀하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귀하와 같은 방향이라고 느끼진 않는가? 느낀다면, 느끼면서도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계시록에 나타난 성령의 뜻(?)이어선가?

귀하는 '신 바빌론 운동'에 참여함을 거부하는가, 아니면 참여할 터인가? 궁극적으로 적 크리스토의 도래를 기다리는 쪽인지? 관상 영성의 현 흐름이 적 크리스토화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흠과 주름잡힘 없이 순결한 예수 크리스토의 신부로서 교회가 참 신랑인 크리스토의 재림을 기다리기 보다는 적 크리스토의 도래를 더 흠모해야 하는지? 귀하가 이끄는 교계의 현재 모습이 순결한 신부로서 완벽하다는 자신감을 갖는가? 스스로 속으로 갈등하는-그래서 차라리 고백하는 게 더 나을-그런 자체 모순은 없는가? 아니면 그 모순을 계속 덮고 이대로 나아갈 텐가?

한국 교계의 딴 영성 '길라잡이'들처럼 귀하 역시 한국 교회의 순결성을 빨리 훼손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귀하가 만년에 관상 영성을 "이거다!"라고 골라잡아, 레노바레 한국 대표로서, 한국 교계 영성의 길라잡이로 자처하고 기여해온 모든 행동에 대해..그 결과/열매와 함께 하나님의 공의로운 평가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임을, 너무 늦기 전에 인식하는 슬기를 얻기 바란다.

너무 늦기 전..

    "사랑하는 여러분. 영마다 다 믿지 말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검증하시오. 수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탓입니다."
(요한서신a 4:1.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