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테이션(impartation), 하나님의 통로
이러한 부흥운동 안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헌신과 영적갱신, 새로운 차원의 기도와 전도,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특징적 요소가 있다.
사도행전적 성령의 능력과 권능이 풀어지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부어짐으로만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열쇄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사역이다.
이 흐름 안에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고 불려진다.
이 단어는 뜻이 나누어줌, 전달, 전수함, 분급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안수기도라고 불리는 기도사역이다. 오늘날 새롭게 일어나는 부흥의 중요한 특징이며 원리가 바로 안수기도 사역이다.
새로운 부흥안에서는 다양한 안수사역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선물들이 전수되고 나누어지고 활성화 된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안에서와 같이 안수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계신 것이다. 성경에서 많은 안수에 대한 사례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안수는 축복(창48:14), 희생 제사(레4:4), 성직 수임식(민8:10, 행13:3, 딤전4:14),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때(민27:18, 23), 성령의 은사를 전달해 줄때(행8:18, 19:6), 치유를 일으킬 때(눅13:13, 행9:12) 손을 얹어 기도하는 안수를 했다. 이것으로 볼 때 안수는 어떤 성직수여나 종교의식적 수단의 도구로만 취부 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안수는 교회의 격식에 따른 성직수임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성경에서 안수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이 전달되고 나누어지는 통로로 사용되었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사도시대이후 오히려 이 행위는 구약의 계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지금도 여전히 그의 계약의 약속들을 그 백성들에게 성실히 이루어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에게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사도적 매개체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안수, 손을 얹어하는 기도사역인 것이다. 안수란 정리하면 구약과 신약 전체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권능의 손(신6:21, 7:8, 수4:24, 느1:10, 시136:12)의 연장선이며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통로이다. 그러므로 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와 나타나심의 전달이며 나눠줌이며 전수이다. 안수는 하늘의 것을 임파테이션(impartation) 하는 하나님의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도구이다. 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도행전의 능력을 교회 안에 행하실 뿐 아니라 활성화 시키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을 이 땅에 임파테이션을 통해 부어주시고 전위시키시고 계신다.
끝으로 넓은 의미의 안수, 임파테이션의 세 가지 통로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주께서 교회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시며 사도적 기름 부으심과 같이 새로운 것을 부어 주시려고 할 때 어떻게 구체적으로 임파테이션이 일어나는 가를 아는 것이다. 첫째, 주님의 주권적이고 계획적인 방문하심이다.(행9:1~6) 사도 바울처럼 주님이 집적 찾아오사 부어주시고 세워주는 것이다. 이 통로는 새로운 운동의 지도자나 새로운 계시적 지도자들에게 일어나는 흔치 않은 일이다. 교단의 교조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새로운 기름 부으심과 계시를 전하려는 목적의 집회나 성령의 강한 주장함이 있는 컨퍼런스들이다.(행10:45이하) 이것은 다른 형태의 안수이다. 이때 기도사역을 통해서나 예배 중에 새로운 기름 부으심이 우리에게 임한다. 셋째, 몸, 공동체이다.(요15:1~9)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내가 어느 나무에 붙어 있는가, 내가 어느 리더를 받아들이고 충성하며 인정하는가, 쉽게 표현하면 어떤 줄기인가가 아주 중요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몸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나무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양분을 먹음으로 절로 자라남같이 그 공동체의 리더의 흘러오는 은사와 기름 부으심이 전수되는 것이다. 아무리 안수를 받아도 하나님의 새로운 기름 부으심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곳에서 계속되는 안수는 흘러 들어올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라는 사도행전 19장 11절의 기록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세계가운데 다시금 주의 종들의 손을 통하여 이 땅을 진동시키고 놀라게 하며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으로 임하시길 원하신다. 사도행전적 인물들, 사도행전의 원리들이 회복되지 않고는 사도행전의 재현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안수는 잃어버려진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안수,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회복은 오늘날 새로운 부흥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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