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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연구/이 단 연 구

[스크랩] 거짓선지자 1...(펌)

정봉화 씀 <부르는 소리>8부-10 
 
거짓 선지자 (1)
   

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신명기 5장 20절에도 같은 말씀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도 말찌니라”
그리고 이것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십계명 제 9계명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 증거를 하거나, 속이는 것을 하나님은 아주 싫어하신다.
레위기 19장 11절의 말씀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며”
잠언 11장 1절의 말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시편 5편 5-6절의 말씀
“주는....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시편 101편 7절의 말씀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며, 멸망을 당하고 만다.
계시록 21장 8절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이나 거짓 증거에 대해 이토록 엄하게 다스리시는 것일까?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백성들에게 금하신 “거짓말”이나 “거짓 증거”는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거짓말이나 거짓 증거까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거짓말까지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속이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바른 사회의 구현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며, 또 어느 세상에서도 반드시  필요로 하는 보편적인 도덕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속이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하는 이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거짓이 없고 분쟁이나 다툼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기대하신다.
구약 시대 백성들은 이 계명을 이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지켜 왔다. 지금의 우리들도 이 계명을 읽을 때, 흔히 그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실은 이 계명 속에는 이것 외에 다른 뜻이 하나 더 숨어 있는 것이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하신 계명 속에는 단순히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도덕적 계율을 넘어서 “하나님을 거짓되게 증거 하지 말라”하는 신앙적이며 영적인 계명이 숨어 있다. 세속적이고 도덕적인 계명처럼 보이기만 하는 이 계명 속에는 실은 하나님의 신령한 참 계명이 숨어 있는 것이다.
시편 5편 6절의 말씀을 보자.
“여호와는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하는 자란 단순한 거짓말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무의식중에 하는 거짓말이나 혹은 어떤 이익을 바라며 일부러 하는 거짓말을 한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다 멸하신다면 아마 이 세상에 멸망당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거짓말을 하는 자란, 세상적인 거짓말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짓 진리를 말하는 자, 곧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변조한 거짓 진리를 참 진리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거짓 진리를 참 진리인양 거짓말하는 자들을 여호와께서는 멸하시는 것이다.
시편 101편 7절의 말씀을 보자.
“거짓말 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거짓말하는 자 곧 거짓 진리를 참 진리라고 거짓말로 속이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다.
그래서 계시록 21장 8절의 말씀처럼, 모든 거짓말하는 자, 곧 거짓 진리를 참 진리라고 거짓말하는 자들은 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1절의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며”
거짓말하는 자 = 거짓 진리를 말하는 자.
속이는 자 =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속이는 자.
거짓 증거하는 자 = 하나님을 거짓되게 증거하는 자.
그럼, 이렇게 거짓 진리를 말하고,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거짓되게 증거하는 자들이 누군가?
이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다.
거짓 선지자란, 거짓 진리를 말하며,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속이며, 하나님을 거짓되게 증거하는 자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거짓말하고 속이고 거짓 증거하는 것일까?
훔치기 위해서이다. 도적질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도적질하기 위해서인가? 사람의 영혼이다. 사람의 생명을 도적질해서 영원한 멸망 속으로 빠지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자, 여기서 거짓 선지자의 정의를 내려보자.
거짓 선지자란, 사람의 생명을 도적질해서 영원한 멸망으로 빠지게 하기 위해 거짓 진리를 말하며, 거짓 지리로 사람들을 속이며, 하나님을 거짓되게 증거하는 자이다.
그는 마지막 때에, 그의 상전인 적그리스도와 함께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운다.(계 19:20)

목자와 축산업자

요한복음 21장 15-17절의 말씀을 보자.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양을 먹이는 자 중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목자이고, 다른 하나는 축산업자이다.
목자와 축산업자는 어떻게 다른가?
목자는 주를 위해 양을 먹인다. 축산업자는 나를 위해 양을 먹인다.
축산업자들은 양의 머릿수 늘리는 것과, 크고 넓은 양 우리를 짓는데 열심을 낸다. 크고 넓은 양 우리를 짓고 많은 양떼를 소유한 축산업자는 성공한 축산업자로 세상에 그 이름이 난다.
축산업자는 양의 젖을 짜고 또 짜고, 양의 털을 깎고 또 깎고 그것을 가지고 더 크고 더 넓은 축사를 짓고자 한다.
목자는 양을 사랑한다. 축산업자도 양에게 가급적 좋은 사료를 먹이려고 노력한다. 양은 저들의 소유이며 그들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먹이는 사료 속에는 양에게 아주 해로운 성장 촉진제가 다량으로 들어 있다.
축산업자도 양을 돌본다. 보다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서다.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병든 양을 위해 땀 흘려 애를 쓴다. 축산업자들은 병든 양들은 골라 내다버리고, 또 양을 팔아먹는다.    
  
세 종류의 거짓 선지자

모든 시대를 통해 거짓 선지자는 있어 왔다.
이 거짓 선지자를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을 것 같다.
1) 소경 선지자
2) 악한 선지자
3) 마지막 때의 거짓 선지자
소경 선지자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선지자로, 선지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선지자 자리에 올라 결과적으로 백성들을 그릇 인도하여 죽게 하는 선지자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이런 소경 선지자들이 너무나 많다. 소경 선지자가 많다는 것은 이 나라에는 소경 신자들이 그 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악한 선지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로,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백성들을 그릇 인도하여 그 영을 죽게 하는 아주 못된 선지자이다.
마지막 때의 거짓 선지자는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들)로, 종말론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말할 때에는 이를 가리킨다.
그럼, 이 세 종류의 거짓 선지자에 대해 좀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소경 선지자

마태복음 15장 14절의 말씀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태복음 23장 16-17절의 말씀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태복음 15장 1-9절의 말씀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소경 선지자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선지자로, 선지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선지자 자리에 올라 결과적으로 백성들을 잘 못 인도하여 그들을 죽게 하는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첫째, 영의 소경들이다. 영의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 조차 분별을 못하고, 성전보다는 성전의 금이 더 크다고 백성들을 잘 못 가르친다. 이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잘못 가르친다.
둘째, 이들은 말씀에 대해 소경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치지만, 사람의 교훈으로 하나님을 가르친다. 신학 이론이나, 학설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
예수님 초림 당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제사장, 서기관들은 모두 소경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기도를 하고 금식을 했으나 영의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토록 많이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고 했으나 영이 어두워 그 말씀들을 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이런 소경 선지자들이 높은 자리 곧 모세의 자리에 올라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였고, 끝내는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나라와 민족을 망하게 하였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 이 나라에는 너무나 많은 소경 선지자들이 있다. 영안이 멀어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영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단지 신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망한 목회자로 지목되어 큰 교회의 후계자로 뽑히기도 한다.
참으로 이름 있고 소문난 목회자들 가운데에도 이런 소경들이 많이 있다.
이 나라에 있는 소경 선지자들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자.
1) 거짓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자들.
민중 신학, 해방 신학, 자유주의 신학, 인본주의 신학 등, 하나님의 진리 아닌 거짓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자들.
2) 말씀을 잘 못 가르치고 있는 자들.
성경에 의존해서 말씀을 가르치긴 하지만,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는 자들. 말하자면, 성경 말씀을 인간사회의 윤리나 도덕 혹은 교훈으로 바꾸어 놓은 자들.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학문으로 성경을 풀고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영을 모르는 유식하고 저명한 사람들이 그 주위에 많이 모여든다. 때문에, 이런 선지자는 목회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가르치는 목자가 성공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르치는 말씀이 “옳고 바른 말씀” 이 되는 경우가 많다.   
3) 말씀 가르치는 흉내만 내고 있는 자들.
신학교는 나왔지만, 말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아무 것도 가르치지를 못하고 가르치는 시늉만 하고 있는 자들. 슬프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경 선지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 이유는 목회자가 될 소양도 자격도 소질도 없는 사람들이 마구 신학교를 나와서 목회자 길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아무나 되나? 목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아우 소수의 택함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뼈를 깎고 살을 여미는 인고와 나의 모든 삶을 다 바치는 헌신과 끝없는 기도와 정진으로 나를 갈고 닦은 자들만이 비로써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영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을 알며 늘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말씀 안에서 우리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 세상 사람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주의 길을 택한다. 사업이 안 된다고 신학교에 가고, 취직이 안 된다고 주의 종 사명이 있는 게 아니냐 하며 신학교에 갈 생각을 하고,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그 무슨 예언의 능력을 받았다고 하는 권사나 집사들이, 아무나 붙들고 당신은 주의 종 사명이 있으니 빨리 신학교에 입학해서 주의 종이 되라고, 참으로 한심스럽고 어이없는 소리를 함부로 해서, 그때까지 목사 되겠다는 생각은 꿈속에서도 한일이 없는 멀쩡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신학교에 입학시키고, 그 결과 그토록 많은 소경 선지자들을 양산해 놓은 것이다.
4) 저속한 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
거짓 환상을 보거나 거짓 음성을 듣고 거짓 예언을 하며, 천국에 갔다 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지옥에 내려가서 불신자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왔다고도 말하며, 잘 못된 은사에 치중해서 신도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자들.
요즘에는 이런 엉터리 능력자들이 너무나 많이 나타나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자들은 입으로는 예수를 부르고 이지만, 실제로는 예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가끔 말씀을 인용하긴 하지만, 이들이 하는 짓, 하는 소리는 예수님과도 관계가 없고 성경과도 아무 관계도 없는 것들이다. 
5) 지나치게 기복 신앙을 주장하는 자들.
물질적 축복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은 예수님께서 다 담당하셨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고통 받을 것이 없으며, 예수를 믿는 순간 구원과 천국은 이미 받아놓은 당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즐겁게 편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면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
또 이런 자들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며 따라서 환난이 와도 휴거되기 때문에 환난 따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저속한 신비주의와 이런 기복 신앙이 결합되면 무당, 점쟁이 같은 기묘한 신앙이 생겨난다. 산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하고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예언 아닌 점을 처 주고, 또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복을 받기 위해 이들에게 돈을 바치고 기도를 받고 예언을 듣고 한다.
심지어는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강단에 서서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물권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가 기도를 해주면 물질 축복을 받습니다. 물질 축복을 받고 싶으신 분은 지금 헌금을 가지고 내 앞에 와서 기도를 받으세요.” 하고 공공연히 말을 한다.
그러면, 헌금 조금 드리고 많은 축복 받고 싶은 사람들이 헌금 봉투를 들고 우르르 몰려나와 그에게 머리를 숙여 물질 축복 기도를 받는다.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 15:14)
소경 인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그를 따라가다가 함께 구덩이에 빠지는 자들도 또한 소경들이다. 소경이기 때문에 소경에게 속는다. 소경은 소경밖에는 속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영의 소경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영의 눈을 뜨는 방법밖에는 없다.

악한 선지자

마태복음 7장 15절의 말씀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양의 옷을 입다 = 양으로 위장하다.
양 = 어린양 예수
예수님을 위장한 이리. 이것이 바로 악한 선지자이다.
예수님처럼 위장을 하고, 다시 말하면 주님의 종처럼 위장을 하고 양을 잡아먹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오는 이리 같은 자가 바로 악한 선지자인 것이다.
소경 선지자들은 소경 신도들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고 자기들도 구덩이에 빠진다. 그들을 말하자면 어리석은 선지자들이다. 무능해서 무능한 신도들과 함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 선지자는 소경이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욕심과 탐욕으로 해서 성도들을 속이고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이들은 교활하고 못된 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소경도 아니고, 어리석고 무능해서도 아니기 때문에 많은 신도들이 이들의 말에 속아 아들을 따라간다.
이들은 양의 옷을 입고 있다. 참 선지자의 외모를 갖추고 있다. 겉보기에는 참 선지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영의 눈을 바로 뜨고 이들을 분별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4절의 말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독사의 자식들 = 악한 선지자들. 독사 = 뱀. 곧 사단의 새끼들.
그들의 혀에는 독이 가득하다. 성도가 그들에게 물리면 죽는다. 말하자면, 그들 말에 속으면 죽는다.
그들은 악한 말을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악이 가득하므로 그 입으로 악한 말만 한다.
악한 말 = 비 진리의 말. 사람을 속이는 말. 비 진리의 말을 진리처럼 속여서 하는 말.
악한 말이라고 해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양 같은 말을 하지만, 실상은 독사의 독이 든 비 진리의 말을 하는 것이다. 독사의 독이 섞인 비 진리의 말에 축복이니 은혜니 하는 달콤한 껍질을 씌워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 16-17절의 말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모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악한 선지자들은 비 진리의 말을 진리의 말처럼 속여서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그 입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말하기도 한다. 이것을 듣고 속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입으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입술의 말을 믿지 말고 그들의 행함을 보아야 한다. 악한 선지자들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함을 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지, 아니면 악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입으로는 어떤 아름다운 소리를 할지라도, 가시나무 같은 놈들은 가시나무 같은 행동을 한다. 입으로는 듣기 좋은 달콤한 소를 지껄일지라도 엉겅퀴 같은 놈들은 엉겅퀴 같은 행동을 한다.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사랑이 없는 선지자들은 소경 선지자들이며,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이웃을 해치고 있는 자들은 악한 선지자들이다. 행함으로 그들을 분별하라.
악한 선지자는 무능해서도 아니요, 소경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의 탐욕이 그들을 악한 선지자로 만든다.
소경 신도들은 소경 인도자를 따라가고, 악한 선지자들은 욕심 많은 신도들이 따라간다. 땅에 속한 자, 육에 속한 자들은 악한 선지자들을 보고 그를 따라간다.
악한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육신의 탐욕을 버려야 한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말씀을 바로 깨닫고 영의 눈을 떠야 한다.
탐욕스런 신도들 귀에는 탐욕스런 악한 선지자의 말이 달콤하게 드린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간다.
물질 축복 받으라고 소리치는 목회자 밑에는 예수 믿고 부자 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그 신도들을 보면 그 교회의 목회자가 어떠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신도들은 그 목회자의 열매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는다.
마태복음 24장 45-47절의 말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누군가? 그가 바로 참 선지자이다. 그는 주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준다.
주인 = 예수님
그 집 사람들 = 예수 믿는 성도들
양식 = 우리의 영의 양식인 참 진리의 말씀
때를 따라 = 때와 시기에 맞게.
우리는 하루에 세끼 밥을 먹는다. 즉 때를 따라 밥을 먹는다. 아침에는 아침에 맞는 식사를 해야 하고, 낮에는 낮에 맞는 식사가 있고, 또 저녁에는 저녁 밥상에 맞는 음식이 있다. 그리고 그 세끼 식사는 시간에 맞춰 제 시간에 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인 집 식구들을 맡은 종은, 알 맞는 종류의 식물을, 알 맞는 양만큼 준비해서, 제 시간에 먹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해야 할 일이다.
매일 매일의 양식을 먹일 뿐 아니라, 은혜 시대에는 은혜 시대의 말씀을 먹이고, 종말 시대에는 종말 시대의 말씀을 먹이고, 환난 시대에는 환난 시대의 말씀을 먹여야 한다.
때는 종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아직도 지나간 은혜 시대의 말씀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종들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이 되지 못한다. 그는 지혜 있는 종이 되지 못한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때를 따라 때에 맞는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마태복음 24장 48-51절의 말씀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주인이 더디 오리라 = 주인이 더디 왔으면 좋겠다. 주인이 더디 올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아주 멀었다.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 주님의 재림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악한 종은 예수님 재림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경에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했으니까 입으로는 주 재림을 말하기는 하여도 그 마음속에는 재림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다. 또 재림에 대한 소망도 없다.
그저 예수 믿고 자손만대에 복 받아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언제까지나 그냥 이렇게 계속 있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악한 종은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지 않을 뿐 아니라 때리고, 악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술친구들 = 같은 악한 종들.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다 = 같은 악한 주의 종들과 세상 재미에 취하다.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주지 않고 오히려 성도들을 때리고, 성도들의 것을 가지고 먹고 마시며 즐긴다.    
이들이 악한 선지자들이다.
출처 : 나팔수들
글쓴이 : 윤요셉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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