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이 다른 복음이라고 강조한것이 어떤것인지 아시겠습니까? 여기서 다른 복음이라고 하는것은 행위구원을 말하는것입니다. 행위구원을 말하는 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저주받을 복음입니다. 절대로 성경은 행위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론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적혀있는 로마서에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행위구원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행위구원론이 다른 복음인줄 아십니까? 인간은 선한 행위를 전혀 할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선을 행하는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가 남아 있기 때문이며 데살로니가 후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지금은 성령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나님을 거두어 가시는 날 세계는 혼란에 빠질것이고 서로 죽일것이며 서로 미워할것이고 적그리스도는 날뛸것이고 분별없는 사람들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되어 버릴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전적으로 선한행위를 할수 있는 구석이 한구석도 없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영혼은 이미 죽어있는 자들입니다. 인간은 구원받기이전에는 죄의 종으로 태어나 죄를 짓다가 죄와함께 멸망의 길로 가게됩니다. 인간은 전혀 선한 행위를 할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만 듣는다고 모든 사람이 다 믿고 구원얻는것이 아닙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들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들어서 깨닫게 되나요? 우리안에 역사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와 태초부터 이미 예정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있기때문에 가능한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랑할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행위구원은 인간에게 자랑할거리를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에게 내가 이렇게 했으니 구원해주시오! 라고 말할수 있는 꺼리를 남겨둔다는것입니다. 절대로 인간은 행위로 구원얻을수 없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십일조를 안내면 구원못얻고 주일성수를 안하면 구원받지 못한 백성이고 교회에서 봉사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진노의 자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주 심각한 착각중에 하나입니다.
오히려 교회 나가지 않아도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바른 복음과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을 지언정 교회에나가서 많은 시간을 봉사하고 헌신하고 그렇게 봉사와 헌신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봉사와 헌신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은혜받은것에 대한 빚진것을 갚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복음에 빚진자라는 말은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그것을 온전히 갚을수 없는 큰 은혜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기위해서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다닌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으로 일했던것을 자기의 공으로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자기는 똥처럼 여겼던것을 알수 있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쓰고 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고 수없이 많은 전도활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감당했지만 그 모든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만 돌리고 바울선생님이 하나도 그 영광을 가로채지 않음을 성경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기의 행함에 대해서 조금도 그것을 의로여기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이 선택하여 구원을 선물로 준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선택에 감사하여 자기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했던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했을까요? 야고보서가 과연 행위구원을 말한것일까요? 야고보서가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것일까요? 야고보서는 믿음으로의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서의 구원에는 행함이 따른다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로마서 6장을 봅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대해서 살아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것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불러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을 늘 지키셨으며 아브라함과 늘 함께 동행했지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수 있는 여건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충분히 그렇게 할만한 믿음을 가지도록 역사하셨음을 기억하셔야 할것입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로 전혀 그에게 선한것이 있을수 없었습니다. 에서를 속이고 이삭을 속이고 라반을 속이고 그리고 그렇게 속이는 인생을 사는동안 그의 행위는 절대로 그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태중에서 큰자가 작은자를 섬길것이라고 말했고 에서는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착하고 선하게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반열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죄악에 있었던 야곱이 언약의 후손이 되었고 그를 세워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주셨으니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수 없는 것입니다.
행위구원을 말하는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으로 전적으로 타락되어있는 상태에서 영원전에 우리를 택하사 강권하는 은혜로 우리를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셨으니 그 선택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선택의 은혜 무조건적인 선택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선택한 그 뜻을 따라 행동해야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일을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전적으로 타락한 자들이니 그 선은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동이 될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할때야 비로서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될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된것입니다. 우리가 원래부터 의로워서 착한 행위를 하게된것이 아닙니다.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예정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견인 구원받은 백성을 하나님께서 이끄시며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성화되어가는 길에 있는것입니다. 성화되어가는것이 내가 선해서 그렇게 하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 가운데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선을 행할수도 없고 선한것을 알수도 없습니다.
만약 교회에 나왔는데 복음을 들었는데 말씀대로 선하게 살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죽었다면 조용기 목사같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같은데 경건하지 못하고 음란과 토색과 쾌락을 즐겨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준 사람이 아니라 그는 자기의 의로 자기가 생각하는 그 의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거짓선지자와 의로운 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바로 열매로 알수 있습니다. 음행과 토색과 남색과 탐욕과 거짓증거와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여전히 죄악속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는 백성임을 구별할수 있습니다. 교회안에 있지만 가라지에 불과한 사람들이라는것입니다. 가라지는 아무리 커도 결코 열매를 맺을수 없으니 열매로 분별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정하사 선택한 알곡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인도하시니 로마서 8장 38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는 약속과 같이...우리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경건의 연습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며 주의 백성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야고보서가 말하는 죽은 믿음이 아닌 살아있는 믿음을 말하는것입니다.
죽은자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단코 선을 행할수 없으며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수 없으며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들만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수 있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바랄수 있고 그 인도하심을 통해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될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체험한 모든 백성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모든 삶을 하나님을 높이고 자기를 죽여 그리스도를 살게하는 삶을 살게될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이젠 내가 산것이 아니고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신것이니 내 몸은 이제 내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이런 삶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남으로 주변에 변화가 오고 우리를 통해 구원받는 백성들이 늘어나게 되는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전 알미니안주의자들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대해서 부인하는것에 대해 행위구원을 말하는것에 대해서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해서 그 자유의지를 맘대로 사용할수 있다고 말하는것에 대해서 분명히 거부하며 온전히 하나님께서 내 영을 성령님을 통해 중생하셔서 새로운 삶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자라고 성화되어가며 주님께로 온전히 성장해 갈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의 가르침입니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무시하는것이 아니라 야고보서는 우리 믿는자들이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으며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선한 자들은 선한 열매를 맺을수 밖에 없고 악한 자들은 악한 열매를 맺을수 밖에 없다는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안에서 구원받은 백성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선한 열매를 맺을수 없다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을 이끄셨던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을 이끄셨던 하나님의 방법임을 우리가 알아야 할것입니다. 질그릇은 그 쓰시는 하나님에게 절대로 불평할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쓰시는것에 대해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것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쫓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복음이라는것이 바로 행위구원을 말하는것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습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구원받습니까? 율법은 몽학선생에 불과합니다. 율법을 이해하고 율법이라는 지도를 알려면 우리의 영이 중생해야 하는데 중생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이 믿음은 우리의 영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할뿐이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전 알미니안주의를 배격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구원받을 능력이 00000000%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한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율법의 행위와 바꾸지 마십시요!!
지금 이 대한민국 기독교의 위기는 바로 율법주의에 있습니다. 헌금을 잘 내야하고 목사님들을 잘 섬겨야하고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해야하고 이런 전통과 율법주의들이 성도님들을 바른 복음 참된 복음에서 벗어나 행위복음을 가르치고 있는것입니다. 이는 구원얻는 복음과 전혀 다른 복음입니다.
헌금을 하지 않아도 교회에 충성하지 않아도 목사님에게 순종하지 않아도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것을 믿고 그분의 부활을 믿고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롭다 칭함을 얻게된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입니다.
율법주의에 억매이면 안됩니다. 주안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성령님을 통해 죄에대하여 우리는 자유로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불러세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늘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귀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되는것이 바로 신자의 삶이며 성화되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고 구원의 길입니다. 그길이 어렵게 느껴질지 몰라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멍애는 쉽고 가볍다고..우리에게 그길은 정말 쉽고 가벼운 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볼때 좁고 험난한 길처럼 보일뿐입니다. 하나님안에서 자유로운 신앙인으로서 죄에 대하여 억매이지 않고 전통에 대하여 억매이지 않으며 행위에 대해서도 억매이지 않고 오직 말씀을 손등과 이마에 새겨 그 말씀대로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임을 깨닫는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직 구원은 은혜이며 우리는 선택할 권리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기도하며 살게되면 늘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심을 느끼고 알게될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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