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열심과 열정의 차이...

열심과 열정은 언뜻 보아서는 같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흐르는 정신(Spirit)은 아주 다릅니다.
성서 안에 흐르는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분석해 보면
열심(Enthusiasm)은 자기(Self)에게 초점을 둔 것이라면,
열정(Passion)은 하나님께 초점을 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열심이 특심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그는 이렇게 열심을 표현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19:10]
엘리야의 열심 안에서 자신의 의(義)가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열심이 엘리아를 소진(Burn out) 시켰습니다.
850:1의 영적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 답지 않게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줄행랑을 칩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밑에서 주님의 섬김으로 열정회복을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호렙산에서 주님을 체험하고서야 회복되었습니다.

열심 안에는 신기루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가멜대첩에서 승리한 후 주님 앞에 나아가 재충전 받아야 했습니다.그러나
그는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 엎드리기 보다는 사역에서 사역으로 뛰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대 역사를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채...

가끔 성공과 승리가 자신과 등식으로 신앙방정식을 풀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이미 위험신호가 껌뻑거리고 있을 때입니다.
열정의 열량은 사라지고 자기 열심이라는 빈그릇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상태에서 산으로 올라가 머리박고 기도했습니다.
소진된 자신을 이끌고 자기 열심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간구에 응답은 하였습니다.
이미 예정된 하나님의 긍휼의 응답이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기 열심을 과시합니다.
헤프닝, 약 40 마일로 아합왕의 마차 앞에서 뛰어내려 옵니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열량소비가 있었을까 생각해 봄직합니다.
열정이 아닌 열심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을 사단의 웃음 앞에서 하게되는 것입니다.
결국 영육의 소진됨, BURN OUT 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열심이 낳은 영적 무방비 상태가 바로 이 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바로 이 때가 오기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넘어 트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정은 영적 건강의 표지입니다.
열정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열정(Passion)이라고 합니다.
이 열정이 있어야 죽도록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The Passion of Christ”라고 합니다.
열정(Passion)은 십자가 영성의 아름다운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성장이 아닌 교회건강을 조사하는 과정 안에서 들어난 충격소식,
우리는 이 소식 앞에서 한국적 신앙의 허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국 신자들의 열심은 세계교회가 아는데...
열정은 타 민족들에 비하여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그 실체가 무엇일까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영성,
바로 이 영성이 오래 동안 머리에서 화석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열심과 열정에 혼돈이 와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인이 건강한 교회를 만듭니다.
열심에 대하여 죽고, 열정에 대하여 사십시다.
십자가에 특심이 된 열심을 처리하십시오.
위로 부터 오는 거룩한 에너지인 열정이 솟아 오를 것입니다.

열정은 그리스도에게 미치게 하는(Reaching out) 하늘의 힘입니다.
열정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올인(All in)하게하는 하늘의 불입니다.
열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황홀한 에너지입니다.

그분의 나라를 위한 드려짐 보다 금생과 내생에 확실한 투자는 없습니다.
열심은 투기를 낳지만 열정은 거룩한 투자를 낳습니다.
십자가에 드려진 자기열심은 황홀한 열정으로 다시 부활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패라다임이 그리스도의 가치관으로 바뀔 때에 말입니다.

 

 

 

난 열심으로 이일을 하는 것일까? 

열정으로 이일을 하는것일까? 

내가 이일을 할때 사단이 틈타거나 내가 연약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말씀으로 은혜를 부어주심을  느낀다.

 

남들이 나에게 힘들다고 말하지만

내 삶은 지금 얼마나 평안한지 모른다.

내 가족도 평안하고  내 사업도 잘된다.

옛날보다 더 구석으로 왔지만 정말 사업잘된다.

그리고 주식투자도 잘된다.

하나님이 여러가지로 축복해주신다.

 

바쁜와중에서도 이일을 하게 해주시고.

컴퓨터가 없었던  내 방에도 컴퓨터를 놔주시고...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던가!!

컴퓨터가 없었을때는 

맨날 텔레비젼을 세벽2시까지 보고 자던나였다.

 

그런데 컴퓨터가 생기고 인터넷이 연결되더니...

이젠 새벽까지 컴퓨터로 공부할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컴퓨터로  인터넷으로  좋은 목사님들을 만나게 된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 모든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시고

준비시키심을  감사드린다.

 

내가 올해 초 기도했던 나의 기도제목은 결혼이 1순위가 아니었다.

물론 결혼에 대한 기도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도제목 1순위는

의정부제일교회의 작은 나사못이 되게 해달라는것이었다.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하지 못했다.

내 삶이 많이 바빠서....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한다.

 

이 일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일을 시키셨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마무리 지으실것이다.

 

그 마무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안에서 이루어질것이다.

내가 원하는 뜻이 아니라 온리 하나님의 뜻이다.

말세가 오고 이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뜻이 있다면

이땅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강팍케 하실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어린양들과 그 영혼을 지키시고

그 뜻안에서 온전히 깨어 있는 신자들을 돌보실 뜻이있다면

이땅에서 아직까지 공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실것이다.

 

하나님앞에 불의한 자들이 날뛰게 되면

하나님이 예비한  말세의 심판이  곧 불어닥칠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운행하시며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인간을 통해 실천될것이다.

 

우리는 이때든지 저때든지  온전히 말씀에 바로서야한다.

거짓복음이 우리를 미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마태복음 24장의  그말씀이 이루어지는 때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의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가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침묵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는 것이 우리에게 마지막 주어지는 과재가 될것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왔다. 

지혜로운 다섯처녀처럼  말씀과 기도안에 기름을 준비해야 할것이고

달란트의 비유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이윤을 남겨야 할것이고

양과 염소의 구분에서  우리는  작은 소자에게 구원을 베품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것이다. 

 

이것이 말세에 우리가 가져야할  신앙인의 태도이다.

 

염소처럼  작은 소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오직  돈을 쫓아간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모른다 할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아름다운 신앙인이되어  마지막때를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것이다.

 

주께서  순교자의 피가 찰때까지 우리를 시험하실것이고

그리고  환란후에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허락하실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참여할 권세를 주실것이다.

 

그때를 바라보고  이 순간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고 인내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