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김명복 번호 : 374 조회수 : 126 2007.03.23 12:11
어떤 교인이 자기 동네 어느 교회에 요즘 잘 나가는 인기 있는 목사가 강사로 초빙되어 온다기에 가보았더니 얼마나 재미있고 웃기던지 한 두어 시간을 배꼽 잡다가 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목사들은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재미있게 즐겁게 할까에 대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배도 즐겁게 축제의 분위기로, 찬양도 즐겁게 설교도 재미있게 그 외 2부 순서나 집회는 더욱 사람들이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가는 추세가 일반적일 정도입니다. 더욱이 모인 시간을 주도하며 이끌어 가야 할 목회자는 모인 교인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마치 자기 사명이나 시대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철칙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 보면 뭐든지 재미있는 것이 인기입니다. 대중문화의 흐름이 그렇게 주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복잡하고 바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이 시대 사람들의 흥미 적 요구 심리를 잘 파악해서 상업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인지 모르나 온통 그런 분위기입니다.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TV를 볼 것 같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도 반은 코믹위주이거나 시트콤 같고 그 외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흥미 위주로 꾸며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웃기고 개그적인 연기자가 인기가 많고 여러 프로그램에 인기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재미위주의 대중적인 분위기나 문화의 흐름이 거룩한 교회까지 들어와 판을 치려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목회자가 이것을 따르며 주도해 간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재미있고 즐겁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효과 있는 교회 성장 수단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목회자들은 설교도 재미있게 하려 힘쓰고 아예 설교의 반 이상이 웃기려는 의도의 개그로 되어 있습니다. TV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전문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목사들도 여러 명 있는 줄 압니다. 요즘 그들의 인기는 교계 내에서 인기 순위가 정해질 정도며 일반사회인들도 그런 목사를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것들도 흐름이 있는 것 같은데 과거에 보면 목사들이 웅변을 잘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학창시절 웅변대회 나가 상패나 탄 관록 있는 자들이 설교를 잘한다는 평을 받았고 목회 성공을 했다는 자들 중에는 실제로 그런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적 권능을 이용하는 카리스마적인 자들이 목회를 잘하고 교회를 크게 하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카리스마를 배우려 했고 흉내 내려 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이런 중에 인기 끄는 자들이 또 있었는데 원맨쇼 하는 부흥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울리고 웃기고 함에 타고난 자들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자들이 있지만 이것을 그런 용어로 비교해 본다면 과거에 원맨쇼식은 광대 적이라 한다면 요즘 경향은 매우 개그 적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그 중 기독교 신문에 보면 개그적인 세미나를 한다고 광고가 크게 자주 나올 정도입니다. 그 광고들의 주제적인 내용들을 찾아 인용해 볼 것 같으면 “웃음 속에 복음 실어 신바람 교회 만들자”, “국제 웃음 유머 치료 전문 강사 양성 세미나”, “목회 화술 개발 리더십”, “한국 교회 신바람 나는 웃음 바람 분다”, “웃음은 행복의 열쇠다” 등 이런 것들이 웃기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세미나의 주제들이고 강조하는 내용들을 보면 “웃음은 신비한 힘이다, 치료의 능력이 있다. 건강을 주고 행복을 준다. 웃음이 있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때문에 교회와 크리스천 가정에 웃음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활기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웃음을 통해 삶의 참된 활기를 찾고 신바람 나는 행복이 있는 공동체를 구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가 먼저 건강한 웃음을 웃을 때 교회 전체를 웃게 만드는 환경이 전이 된다. 교회에 웃음이 있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교회마다 웃음 전문 사역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바탕 신나게 웃다보면 살맛이 절로 나고 사람들이 교회 오는 것을 즐거워하게 된다.” 이런 내용들이 웃음 세미나를 하는 이유나 목적으로 강조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강사들을 보면 실제 개그맨도 여러 명 있고 요즘 잘나가는 목사도 있고 신바람 용어를 일으킨 유명한 박사도 있습니다.
요즘 교계가 이지경입니다. 재미있고 웃기는 것이 은혜인 줄 아는 무리들이 많아졌고 웃음이 치료나 회복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아는 지도자들도 많은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이런 인위적인 웃음까지 조성하며 그것이 효력 있는 활력소요 행복을 주는 은혜의 요소로 여기고 목회자가 개그맨이 될 정도로까지 세속적으로 떨어져 버렸는지 황당할 지경입니다. 물론 이것이 세상 일반적인 면에서 웃는 것이 엔돌핀이 생기고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분명 은혜는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교회 된 공동체로 구현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에 “화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눅 6:25). 이것이 인위적인 웃음과 세상적인 즐거움의 한계요 끝인 것입니다. 사람이 지금 아무리 기쁘고 즐거워도 웃고 좋았어도 본질적으로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전 5:17)는 인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무엇이 인생의 즐거움인지 기쁨인지 알까 하여 여러 가지를 다 갖추고 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론적으로 고백하기를 “즐겁게 하고 낙을 누리리라 하였으나 이것도 헛되도다” 했고,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저가 무엇을 하는 가 하였노라”고 증거 했습니다(전 2:1-2). 또한 잠언서에서는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잠 14:13). 인간의 기쁨이란 그래서 일시적이요 웃을 때뿐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선포했습니다(호 9:1). 세상 사람들의 일시적인 인간적 즐거움이나 기쁨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말씀했습니다(딤전 5:6). 그런데도 일부러 웃기려하고 그렇게 해서 웃고 재미있는 것이 참된 활기라고 교회서 하고 있으니 진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엔돌핀을 만들어 주는 데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웃겨서 재미를 주고 즐거움을 주는 데는 세상 방속 국 홀이나 콘서트장이지 예배당은 아닌 것입니다. 교회서 교인들에게 참으로 주어야 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주 안에서의 참 기쁨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개그로도 감히 맛볼 수 없는 거룩한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5:11). 이 기쁨은 세상에서는 감히 흉내 낼 수도 찾아볼 수도 없는 하나님 나라 차원의 기쁨이요 영원한 주의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이 천국의 기쁨을 구원과 구원의 삶을 통해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참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을 통해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점진적으로 충만히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즐거움은 상대적인 형편이나 기분에 따라 없어지고 마는 것이나 주 안에서의 기쁨은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요 16:22). 하박국 선지자는 전쟁의 소식과 환난의 형편으로 몸은 괴로워지고 열매는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했는데(합 3:16-18) 이것이 바로 세상 그 어떤 형편과 어려운 처지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주 안에서의 기쁨이요 천국을 누리는 기쁨인 것입니다.
주의 몸 된 교회는 바로 이런 구원의 기쁨이 있고 구원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된 영적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거룩한 교회 된 모습입니다. 이 기쁨은 복음을 통해 구원의 모습으로 자라가면서 커져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바로 이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구원을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 한 것입니다(롬 17:14). 성령의 열매 가운데 희락이 있는데(갈 5:22) 이 희락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의 교회 된 자들에게 말씀을 통해 깨달음으로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복음의 깨달음으로 오는 신령한 은혜의 상태인 것입니다. “하하” 거리며 웃지 않아도 재미있는 순서가 없어도 심령에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우맹한 지도자들이 역시 우맹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시적인 개그로 웃기려 하고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려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라 칭하고 교회당 건물에 모여들지만 이들이 하는 꼴을 보면 교회당 건물은 콘서트홀에 불과하고 목회자는 무대 위에 연기자요 모인 교인들이라는 자들은 관객처럼 되어 있습니다.
연기를 잘하려고 애쓰는 목회자들, 그것을 보며 재미있다고 웃어대며 좋아하는 교인들, 이들은 서로 교회 이름으로 모독하고 교회 이름으로 모독을 당하고 있는 무섭고 심각한 상태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가 뭔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교회를 바로 안다면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거룩한 연합체입니다. 때문에 교회로 모였을 때는 오로지 주의 크신 영광만이 드러나져야 하고 그 영광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주의 몸 된 교회 앞에서 목회자가 개그맨이 되려 하니 이런 모독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주님 앞에서 재롱을 피는 경우요 하나님을 두려워할지 모르고 우롱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이름으로 모인 이스라엘 총회에 화를 낸 것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세속적인 용어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말로 요즘 유행하는 속어나 잡스러운 말까지 쓰며 때로는 욕까지 하며 세상 노래도 곁들이며 황당하고 기가 막힌 내용까지 곁들여 웃기려합니다. 이들이 교회라고 칭하고 그러고 있다면 그들은 감히 주님을 웃기려 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자신들이 주의 몸 된 거룩한 교회됨을 모르고 무대 밑에 관객처럼 신나서 재미있어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거룩한 주의 몸임을 잃어가는 거스림이나 훼방 속에 있는 것과 거룩한 주의 영광 된 교회로서 모독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관객이 웬 말이고 그 앞에 인기 끌려는 연기자는 웬 말입니까? 그렇다면 타락한 교회던가 아니면 교회 이름을 빌린 세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기에는 교회의 모습이 없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그들은 거룩한 교회 모습이 될 수 없음을 그런 개그적인 모습으로 증명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날 수많은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 이런 테크닉을 배우려 하고 교회에서나 방송매체를 통해 다수로부터 인기 끌려는 연기자들이 되려 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갈 1:10). 지금 많은 교회들은 사람을 웃겨 기쁘게 하고 재미있게 하려는 잘못된 목회자들로 인해 교회 이름으로 모인 자들을 관객들로 전락시키며 함께 거룩하고 참된 교회 모습에서 구분이 되어 가는 마지막 시대가 된 것입니다. 가칭 교회들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들 열심히 재미있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복음적인 교회들은 지금은 거룩해지는 외로움과 어려움과 슬픔의 싸움이 있지만 약속된 영원한 기쁨의 단을 거두기 위한 은혜의 길로 인도받고 있는 것입니다.(*)
고은 교회 황부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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