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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성 경 공 부

[스크랩] Re:궁금한 것..=자유주의(自由主義, Liberal)란 무엇인가?

  자유주의(自由主義, Liberal)란 무엇인가?


  자유주의를 논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서는 그 핵심만 간단하게 논하겠다. 흔히 신학자들은 자유주의를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는 신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다름 아닌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에게서 나온 사상이다. 자유주의를 우리나라에서는 신신학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1. 자유주의 어원

   자유주의란 영어로 Liberal Theology 이고 독일어로 liberal theologie 이며 화란어는 liberaal godgeleerdheid 이다.


2. 자유주의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

  요한 잘로모 젬러(Johann Salomo Semler, 제믈로, 1725-1791)이다.

 젬러는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로 성경본문 비평가로 할레대학교의 신학 교수로 재직했었다(1753~91). 성경의 본문비평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합리주의자였던 지그문트 야코프 바움가르텐의 제자였다. 서기 1757년에 바움가르텐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할레대학교 신학부 학장이 되었다. 그는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특정한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역사적인 성경해석 방법을 동원하여 개혁주의자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점러(제믈리)는 신구약 성경이 신의 영감(영적 감동과 감화)을 받아 오류가 없다는 개혁주의 신학에 반대하면서 신구약성경에는 오류가 있다고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반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제시하였던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기존의 전통적인 교의학(조직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주체적인 사고와 활동을 통해 자유롭게 역사 비평적학적인 입장에서 성경 연구를 시도하였기 때문에 자유주의란 이름을 붙였다. 자유주의라는 뜻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확대시키는 각종 사상과 운동을 뜻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후에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표방하면서 발생한 구속없는 자유로운 사상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유주의 사상을 개혁주의 입장에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으로,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받은 17세기 학자였던 슐라이에르마허가 1798년 집필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  봄에 출간했던 '종교론'(ber die Religion)으로부터 시작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유행했던 각종 사상들을 뜻한다.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칭하지만, 그것은 신학이 아니다. 따라서 ‘신학’이라는 말을 배제하고 그냥 자유주의 사상들이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 신학교에서는 이것을 현대신학으로 분류하고 배운다.


3. 자유주의를 체계화시킨 슐라이엘마허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흐(Friedrich Schleiemacher,1768-1834)는 1768년  브레슬라우(Breslau)에  있는  프로이센(Preussen) 군대의  육군 군목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개혁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성장하여 독일 중동부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할레(Halle) 대학교에서 고대 희랍철학과 Kant를 연구했다. 대학에서 특별한 일없이 1790년에 목사 시험도 치루었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흐가 새로운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개혁교회의 설교를 하면서 할레에 있던 도나(Dohna) 백작의 가정교사로 활동을 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도나 백작의 집에서 상류사회 인사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점차 새로운 사상적들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특히 사탄을 숭배했던 프리메이슨들과 친구로 지내기도 하였다.

  그후 1793년에는 베를린으로 일자리를 옮겨 한 자선 병원의 설교자로 활동하면서 계몽주의 철학의 총본산이라고 칭하는 베를린에서 철학적과 문학적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슐라이어마흐는 낭만주의의 대표적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쉴레겔(F.Schlegel)과 아주 친하게 지냈으며, 쉴레겔의 친구들도 모두 같은 친구가 되었다.

   슐라이어마흐는 마침내 그 사교 모임의 지도적인 인물로 부상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신학자들은 슐라이어마흐와 그 사상을 말하지만 그가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이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국내 신학자들은 가운데 이와같은 사실을 아는 학자들은 없다.

   슐라이어마흐가 이끌던 사교 모임의 친구들은 대부분 프리메이슨들이었다. 그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증거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슐라이어마흐는 프리메이슨들의 친구 모임에서 쉴레겔의 권면으로 1798년 책을 쓰기 시작하여 다음 해  봄에 출간한 책이 '종교론'(ber die Religion)이다.



 1)슐라이엘마허의 사상(종교관)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Immanuel Kant, 1724-1804)는 종교의 영역을 실천적인 이성으로 생각했다. 즉 그는 종교를 도덕의 영역에 두었던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였던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이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슐라이엘마허는 종교는 경험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곧 낭만주의적인 경험을 가르키는 것이다.

  슐라이엘마허는 말하기를 "그대는 교리 신조와 종교의 온갖 전제들을 배격한다. 매우 훌륭하다. 그런 것들을 배격해 버리라. 그것들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종교자체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종교는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 역설하였다. 그는 “온갖 본질적인 감정이 내게 있어 곧 영감이다.” 고 하였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슐라이엘마허는 초자연적인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감정이 곧 신이요 종교라는 뜻이다. 이것을 가리켜 신학자들은 감정신학이라고 말하나, 신학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의 사상은 사탄 사상이기 때문이다.


 2)슐라이엘마허의 성경관

   슐라이엘마허는 주장하기를, 신학에서 성경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기독교 교리가 전적으로 성경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교리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종교적 '자아-의식' 즉,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경험으로부터 추출되어야 한다"고 썼다. 성경보다는 내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3)슐라이엘마허의 신관(하나님의 존재)


  슐라이엘마허가 재구성한 신론은 그리스도인들의 믿는 초자연적인 신을 부정한다. 그는 개인의 절대 의존 감정에 의하여 인식되는 것이 신이라는 것이다. 쉬운 표현으로 인간의 감정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신이라는 주장이다.


4)슐라이엘마허의 기독관


   그는 전통적인 성육신(인성과 신성) 교리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식'이라는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의 교리가 비논리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한 개인 안에 두 '본성'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슐라이엘마허는 예수의 이상성(ideality, Urbildlichkeit)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 속에 재생시킬 수 있는 그의 능력(Vorbidlichkeit)이 있다는 뜻의 개념으로 대치하였다.

 

   슐라이엘마허의 감정주의 사상을 신학자들은 '감정의 신학'이라고 칭하며,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신학자들은 그를 가리켜 현대신학의 아버지란 표현을 사용한다. 사탄을 숭배했던 자를.....

 

필레오~~~~~


출처 : 한국기독교정보학회
글쓴이 : 필레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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